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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경수를 처음 만났던 건, 한가롭다 못해 따분한 여름 밤이었다. 밤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참 밤답지 않게 푹푹 찌는 그런 날씨. 옆에서 알짱거리는 모기 떼를 쫓아낼 기운조차 없어 그저 정자 위에서 가만히 누워있던 날 도경수가 툭툭, 건드렸다.

 "이거 먹어."

 분명히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도경수는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이 시골 바닥에서 서울 말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같은 억양으로 말을 걸어오는 도경수가 반가우면서도 또 그만큼 의심스러웠다. 뭐에 대한 의심이었을까, 지금 생각 해보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경수는 처음부터 많이 의심스러운 존재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난, 도경수의 손에 들린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비빅임에도, 가만히 날 쳐다보며 내민 손이 민망할 줄 알고 있음에도, 받지 않았다.

 "나 비비빅 안 먹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지만 정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도경수는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래? 하고 별 망설임 없이 다시 아이스크림을 가져가선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그냥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맛있게 먹는 꼴을 보니 또 괜히 후회된다. 땀에 젖은 옷을 펄럭거리며 입맛을 다시자 도경수가 다시 나를 돌아봤다. 진짜 안 먹어? 이미 제가 먹어놓고는, 뭐 어쩌라는 거지. 싶은 마음에 고개를 휙휙 젓고 다시 바닥에 누웠다. 

 "..옛날에는 먹던 거 줘도 잘만 먹었으면서, 변했네."

 "..뭐? 야, 너 나 알.."

 "그리고 이거 왜 안 좋아해? 너 팥죽은 좋아하잖아. 팥 들어가면 다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뭐? 팥죽이 뭐? 팥 들어가는게 뭐? 그래 씨발, 이건 괜한 의심이 아니었어. 확신이 든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흙 묻은 바지를 탈탈 털었다. 어떻게 알았어, 내가 팥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고, 또 옛날에는? 우리가 옛날에 본 적이 있었어?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일단 자리를 뜨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내가 말이야, 사람 얼굴은 웬만해선 잘 안 잊어버리거든. 그런데 넌 기억이 안 나. 내가 기억 못 할 정도면 깊은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 보러 여기까지 왔을리는 없고. 넌 누구야? 왜 내가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 모든 질문을 꾹 눌러담은 채 난 정자 위에서 뛰어 내려갔다.

 "야, 어디 가."

 "어디 가든 네가 뭔 상관인데."

 "나 너 보러 온 건데, 갈 거야?

 "..그렇다면 더더욱 가야지."

 잘못 엮이면 안 되는 놈 같다, 씨발. 날 보러 왔다니, 집으로 얼른 가야겠다. 빠르게 발걸음을 돌리던 날 불러세운 건, 역시 또 도경수였다. 워낙 다급하게 야, 야! 하고 소리를 질러서 잠깐 돌아봤지만, 그러면 안 됐다. 저 뒤에서 도경수가 꽹과리를 치면서 풍악을 울려도 난 내 갈 길을 갔어야 했다. 내가 왜 그랬지.

 "근데 있잖아 너, 머리는 왜 짧아?"

 "그럼 내가 좆 달고서 머리까지 기르고 다닐까?"

 이 쯤 되니 어처구니가 없기 시작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곱상하다, 여자애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제일 싫어하는게 여자 취급인데, 이건 뭐 대놓고 놀리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서 다시 몸을 틀어 도경수의 눈을 마주봤다.

 "..아, 너 남자였어?"

 ..저 새끼가 진짜. 정말 몰랐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도경수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다가 이내 초면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날 눌러 막았다. 씨발, 가슴도 없고 목젖도 달렸는데, 왜 저딴 시비를 걸지.

 "어, 존나 건강한 대한민국 사나이. 됐냐? 간다 이제."

 "..응, 잘 가."

 마지막으로 들린 도경수의 말이 조금 머뭇거리는 듯 한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딴 건 내 알 바가 아니고 난 얼른 집으로 가야 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뒤에서 내일 또 올게! 하며 소리치는 도경수의 말을 듣고 짜증과 함께 열이 확 올라 길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를 발로 차다가 발목을 삐었다, 씨발. 끝까지 재수없는 새끼.


그래, 도경수의 첫인상은 그랬다. 끝까지 재수없는 새끼.

대표 사진
독자1
뭐죠....이 풋풋함은....내가제일좋아하는오백♥♥♥♥♥ㅠㅠㅠㅠ이런분위기진짜좋아요♥♥♥신알신하고가용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귀엽다.....뭔가 딱 오백이들 스러운....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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