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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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야, 걱정했잖아. 다리도 안 멀쩡한 애가 갑자기 없어져서. 너 이제 고삼이다? 출결 관리 해."
택운을 보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는 학연의 행동이 심각하게 자연스러웠다. 스탠드에 앉아있던 택운이 영혼빠진 웃음을 짓더니 제 옆자리를 탁탁 쳤다. 그러자 학연은 고민도 안 하고 그 자리에 걸터앉았다. 역시나 매우 자연스럽게.
"아까 윤리시간 때문에 그래? 야, 너 비웃은 애들 없었어. 내 뒷자리 여자애 너보고 졸라 귀엽다든데."
"...학연아."
"어, 응?"
차학연은 정택운 입에서 자기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그래서 조금 놀랐는데 정작 정택운은 모르는 거다. 학연은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그리고 무슨 말이 나올지 에측하기 시작했다. 나 너무 쪽팔렸어, 윤리 존나 싫어, 넌 임반이니까 니가 없애줘. 뭐 이정도? 학연은 택운이 은근히 소심한 성격이라는 걸 예상은 했었다.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ㄷ...."
"...나 이재환이랑 사겼었어."
"아, 그렇구ㄴ...뭐?!!!!"
원래 이런 말이 나왔을 때 이정도로 심하게 놀라면 예의에 어긋나는 거라는 걸 차학연은 알고 있었다. 교육자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늦둥이라 그런지 오냐오냐 키워서 버릇없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 부모님 덕에 예절교육 하나는 확실히 받고 자랐다.
하지만 학연은 당장 입시 접고 밭 매러 가도 될 법한 피부톤과 달리 굉장히 곱게 자란 아이다. 즉 게이를 눈앞에서 처음 봤다 이거다.아무렇지 않게 표정관리를 하기에 차학연의 쿠크는 너무 연약했다.
"아, 미안... 나 너무 과하게 놀랐지?"
"괜찮아, 이해해. 바로 앞에서 친구가 커밍아웃 하는데 이정도 리액션도 안 보일 놈이 우리나라에서 몇이나 될 지는 이미 예상했어."
"...."
학연이 보기에 택운은 생긴 것과 달리 꽤나 의연하고 침착했다. 예상인데, 아마도 제법 일찍 제 성 정체성을 깨닫고 커밍아웃을 하기 위해 충분히 준비를 했을 것 같았다.
택운도 제 나름대로 만감이 교차했다. 게이는 아니고 바이라는 말을 할까 했지만 관뒀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말해봤자 뭐가 달라질까 해서, 말해봤자 바이가 뭔지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그냥 귀찮아서.
정택운은 남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왠지모르게 학연에게는 그런 게 있었다. 처음 대화해본 택운을 업고 보건실까지 데려가 친히 치료를 해준 다음 집까지 모셔다주신 매너남이니 이 정도는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어...그래, 존중이니 취향해줄게."
"반대야 병신아."
"...."
"너 많이 놀랐구나."
택운은 학연이 착하다고 생각했다. 약간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
"아무튼...근데 어쩐지 그래보였어."
"뭐, 나 호모같이 생겼다고?"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너랑 걔랑 사이 진짜 이상해보였거든. 근데 이제 알겠다. 니가 찼지?"
어렸을 때 택운은 점집에 가면 귀신 씌인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더불어 남자가 꼬일 상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부모님이건 누나들이건 본인이건 스트레스 한번 존나 심하게 받았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점집에 왜그리 자주 가는지, 그리고 실제로 자라면서 남자가 꼬이기 시작하자 현실을 받아들여 성소수자의 길로 들어서긴 했지만 아직도 남자답지 못한 외모는 콤플렉스였다. 호모 만화와 현실은 달랐다. 현실 게이들은 하얗고 빨갛고 까만데다 허리가 활처럼 휘는 애송이들보다 상남자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차학연은 니가 찼지? 이 말 한마디로 택운의 기분을 다시 끌어올렸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바람을 몰고 다니는 남자, 클럽계의 혁명, 옴므파탈의 끝판왕. 개새끼 중의 개새끼 이재환을 찼다는 것은 아직도 택운에게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그래, 내가 찼지."
학연은 택운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호모지만 귀여운 친구.
"그래서 니가 이재환을 그렇게 싫어했구나, 많이 불편하겠네."
"응, 존나. 한상혁은 있어봤자 도움도 안 되고...."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걔가 너한테 찝적대면 쉴드 쳐달라 이거지?"
"...진짜?"
난 거짓말 안해. 학연이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자 택운의 표정이 일순간 환해졌다. 역시 얘한테 말하길 잘했어, 택운은 갑자기 학연이 너무 잘생겨 보였다. 막 뒤에서 후광이 보였다. 호감도가 5 상승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질러 버렸다. 뭘? 포옹을. 어깨깡패 인증이라도 하듯 한줌도 안 되는 허리와 상반되는 넓은 어깨로 학연을 꽉 껴안아버리자 처음엔 당황하던 학연도 곧 웃으며 택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사나이들의 우정.
.....물론 몰래 훔쳐보고 있던 사람은 이럴 때 제대로 오해를 해줘야 했다. 몬가 사랑과전쟁 느낌도 나궁ㅎ 안 어울리게 우수에 찬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구남친 이재환.
*
"어디 갔다 왔어?"
"...."
"밥도 안 먹고."
재환에게는 지금이 몇 교신지, 무슨 과목인지, 몇 페이지인지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거나 봐도 그게 그거니까. 그저 아까처럼 핸드폰을 꺼내놓고 이어폰을 귓구멍에 쑤셔박는 택운의 옆에 딱 붙어앉아 조잘거릴 뿐이었다. 멘탈 회복을 마친 천하의 정택운이 밥을 안 먹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학연에게서 적선을 가장한 삥을 뜯어 매점을 털었다. 그러나 그걸 굳이 얘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철저한 개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택운을 쳐다보던 재환의 얼굴에 일순간 검은 장막이 드리워졌다.
"귀여운 택운아."
"...."
"나 없는데서 외간남자랑 막 껴안고 그러니까 좋든?"
뚝, 스마트폰 음악 어플의 스크롤을 내리던 택운의 손가락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던 택운의 표정이 잠시 흔들리자 재환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씩 웃더니 택운의 머리카락을 사라락 쓰다듬기 시작했다.
"알잖아,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건 없단다."
"...입 닫아, 미친 새끼야."
"이열, 대사 하나하나가 찰진데."
그래도 너무했다, 나 A형이라 상처 잘 받는 거 알아 몰라. 재환이 눈은 굳은 채 입꼬리만 올리는 전형적인 세계서열0위 미소로 웃어보이자 택운은 지지않고 발끈해서 대답했다. 물론 그것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지만.
"지랄하지마, 너 AB형이면서 약을 팔ㅇ...."
끼룩.
"와 우리 택운이, 오빠 혈액형까지 아직 기억하네?"
니미럴, 택운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여튼 이놈의 입을 꿰매버리든가 해야지 안되겠다. 짧은 순간 정신을 놓아버린 자기 자신을 탓하며 택운은 표정관리는 개뿔 잔뜩 일그러져버린 얼굴을 재환의 반대편으로 돌렸다. 바로 옆에서 재환이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턱을 괴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택운은 혀를 깨물고 죽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택운아, 니가 이렇게 이쁜짓을 하니까,"
"...."
"내가 널 못 놓겠잖아."
글쎄, 택운도 한창 사귈 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재환을 놓지 못하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놓고 싶다못해 절벽 아래로 힘차게 굴러떨어뜨린 다음 두손 탈탈 털며 신명나게 봉산탈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람펴서 찬 구남친, 그의 강제전학, 그리고 좆같은 반과 자리 배정. 신은 택운을 버렸고 택운은 그런 신에게 이쁨받을 짓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택운은 생각했따. 아기예수가 태어난 날이니 사람 하나 죽어줘야 공평하ㅣ 않나 해서. 아기예수님 태어나줘서 코ㅎ마워.
"현실을 받아들여."
"뭘, 새끼야."
"우린 아직 끝나지 않ㅇ...악! 씨발!!!"
음마낀 신동엽 표정으로 쪼개던 재환의 뒤통수에 지우개가 마하의 속도로 날아와 꽂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냥 지우개가 아니였다. 미술학도들이 필요한 만큼 잘라 쓴다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왕 지우개. 본연의 임무에 맞지 않게 바닥에 굴러떨어진 지우개는 제 크기 그대로였다. 즉 어떤 간 큰 새끼가 일부러 던졌다는 말이 되시겠다.
물론 범인을 잡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사태 수습이었다. 지금은 수업중이었기 때문이다. 입꼬리가 귀엽게 쳐져 별명이 미친불독인 물리가 눈을 희번뜩 뜬 채 재환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때따. 재환은 바로 몇 시간 전 택운의 기분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의 교훈, 입장 바꿔 생각하자.
꼴 좋다, 택운은 비열하게 웃으며 누군지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에 지우개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쓰레기를 버린다는 핑계로 재환의 뒤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지우개 투척의 주인공 차학연이 택운을 향해 발랄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큰일났어요
비축분이...사라지고 있어......
근데 확실히 꾸준히 연재를 하질 못하니까 있던 독자님들도 다 떠나가는 느낌...ㅠㅠㅠㅠㅠ죄송해요
맨날 느즈막히 와서 한다는 말이 죄송하다는 말뿐이네요ㅠㅠㅠ
근데 글은 아련하고 우울하고 그런거 곧죽어도 못쓴다는 불편한 진실
이놈의 고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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