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뭐해? 거기 멀뚱히 서서."
오늘도 노여름이는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나에게 다가온다.
"……."
무언가 불만을 가진채로 나에게 다가오며 입을 움직이는 노여름이는 또 예뻤다.
"뭔데.. 대답을 안 해."
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사랑하는 너에게 만큼은 내가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병들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
너랑 만나면서 스트레스 받고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지 않다.
"안들렸어."
"응?"
"뭐라는지 안들렸어."
"아아.., 왜 혼자 멀뚱히 서서 그러고 있냐구. 배는 안고프냐구.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자구!
귀 담아 들어! 바보야.."
또 소리도 모자라, 얼굴 마저도 희미하게 안보이기에 나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노여름이는 나에게 왜 그러냐며 내 앞에 서서 나를 올려다본다.
얼굴이 잊혀지다가도 노여름이의 특유의 냄새에 다시금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 살이 좀 찐 것 같지. 볼이 완전 포동포동하지.."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니ㄲ.."
"어허!!"
"……."
"웃어어!?"
어떻게 널 보고 안 웃을 수가 있을까.
너만 보면 웃겨서가 아닌, 좋아서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제 53회_
사랑하기 때문에
여름이 세수를 하고있자 정국은 괜히 장난을 치고싶은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서 여름이의 뒤에 섰고
여름이 얼굴에 거품을 묻히면 눈을 못 뜨는 걸 알기에, 정국은 여름이의 머리카락을 한가닥 잡아당긴다.
여름이 뭐야아.. 하고 괜히 눈을 뜨려고 하자 정국이 뒤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웃기 바빴고, 여름이 눈을 살짝 떴다가
눈이 따가운지 아앗- 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얼른 씻어. 얼른."
정국도 놀랬는지 얼른 씻으라며 여름을 걱정스런 눈으로 보았고, 여름이 세수를 다 하고선 물을 대충 손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거울로 정국을 눈을 게슴츠레 뜨고선 쳐다보자 정국은 여름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입술을 쭉- 내밀다가도 정국이 안아주고선 볼에 입을 계속해서 맞추자 여름도 기분이 풀렸는지 베시시 웃어보였다.
"아, 하지마."
하지말라니까.. 하다가도 여름이 소리내어 웃자, 정국은 그런 여름을 꼭 끌어안아 목 부근에 얼굴을 묻고선 눈을 감았다.
여름이는 왜 이러냐며 자신의 허리를 감싼 정국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무 이유 없어."
"아무 이유도 없어? 그러기엔 평소보다 애교가 장난 아닌데."
"응."
이상해 이상해.. 하며 여름이 정국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분명 우리는 이렇게 행복한데.. 거울속 비춰지는우리의 모습은 왜 이렇게 우울해 보이는 걸까.
나라도 웃어보자는 생각에 여름이 최대한 해맑게 웃어보았다.
아무래도 나만 행복해보여.
내가 정국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는 할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걸까.
나영희는 거실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이 정국의 인터뷰 영상, 무대영상을 보는 나영희에 가정부는 아들 사랑이 넘친다는 생각에 웃으며 2층으로 올라서려했고,
곧 정현이 방에서 나오자 가정부는 고개를 숙이며 '좋은 아침입니다.'라 말했다.
정현은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선 거실로 내려왔을 땐, 나영희가 여전히 핸드폰을 하고있었다.
뭔 소리까지 저렇게 크게 키워가면서 핸드폰을 보나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을 땐..
"어우.. 놀래라."
"제가 더 놀랬어요."
나영희는 황급히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고, 정현은 그런 나영희의 모습을 보고선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정국이가 그렇게 좋아요?"
"당연히 우리 아들인데.. 밥 먹어야지?"
"밥 생각 없어요. 그.. 저.. 엄마."
"응?"
나영희는 평소와 같이 따듯한 미소를 띄우며 정현을 올려다보았고, 정현은 거짓말을 했다.
"미국에 있는 제 여자친구랑 결혼을 하고싶어요."
"미국에 있는 여자친구? 여자친구가 있었어?"
"네. 이제서야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뭐하는 사람이지?"
"학교 선생이에요."
"그래. 언제 날 잡아서 미국 한 번 같이 가야겠네."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뭐가 아무렇지도 않아?"
"제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게..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기쁘지. 너도 이제 결혼 할 나이니까."
"……."
"얼른 손주 보고싶네. 할머니 소리 듣는 건 싫지만.."
"정국이도 얼른 좋은 애인 만나서 결혼했음 좋겠네요."
"정국이는 안 돼."
"왜요..?"
"정국이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돼. 아직 누굴 만날 나이도 아닌 걸."
나영희는 웃으며 찻잔을 들어보였고, 정현은 나영희의 말들이 이해가 안가는지 고개를 갸웃 하다가도 정국이 해줬던 말들을 떠올렸다.
엄마로 인해 정국이의 애인이 죽었다.. 그리고 아빠의 열쇠가 사라졌다.
나영희가 아빠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건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정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고
나영희는 왜 그러냐며 걱정스런 눈을 하고선 정현을 올려다보았다.
"아니요. 그냥.. 속이 답답해서요."
"속이 답답해? 그거 밥을 안 먹어서 그래! 밥 좀 먹어. 어제 저녁도 안 먹고.."
석진은 햄버거를 사가지고 작업실로 왔고, 윤기는 잠을 못잤는지 눈 밑이 퀭해져있었다.
먹을 걸 들고 온 석진이 그리 반갑지는 않은지 윤기는 하품을 길게 늘어뜨리며 손을 휘이 저어보였다.
"내가 귀찮냐? 민윤기."
"귀찮긴. 형이 엄청난 짓을 하고 왔길래. 설렁설렁 인사 해주는 거지."
"엄청나지?"
"어. 직접 감독한테 가서 드라마 안찍는다고 말하는 배우가 어딨냐? 그것도 몸도 건강하면서 아프다고 구라치고."
"나 오늘 좀 아파보이지않냐?"
"전혀."
"그래도 싸우지는 않았다? 뺨이라도 한대 때릴줄 알았는데."
"형 말고도 그거 찍는다고 했던 배우들 많어. 2회 까지는 잘 찍어놓고 어휴.."
석진이 먹어 먹어- 하고선 햄버거를 던져주자 윤기는 그 햄버거를 받아냈다.
석진은 후련한지 갑자기 소리를 질렀고 윤기는 놀랬다며 욕을 읊기 시작했다.
뭔가 할말이 있는듯 싶지만, 석진이 아무말도 않고 가만히 있자 윤기는 햄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물고선 말했다.
"거의 작업실이 진실의 방 아니냐.. 뭔 말을 하려고 또."
"티 나?"
"엄청 나."
"큰일이네. 숨기고 싶은 것도 못 숨기면서 살고.."
"표정에서 다 보이거든. 형 대사 까먹으면 짓는 표정 그대로."
"아.."
"말해."
너 그거 먹으면.. 윤기는 그 말에 체해도 좋으니 말을 해- 하며 인상을 쓴채로 테이블 위로 올려진 콜라를 벌컥 벌컥 마신다.
"여름이랑 다시 예전의 그 사이로 돌아가고싶어."
"…와 하필 콜라 마시는데."
"어제 여름이랑 다니던 학교에 갔어. 여름이랑 행복했던 순간들이 계속 떠올랐어.
그래서 괴로웠고."
"지금 정국이랑 만나잖아."
"알아."
"그건 좀 아니다."
"아닌 거 알아도 욕심이란 게 어쩔 수 없잖아."
"어쩔 수 없으면 다 용서가 되는 게 아니잖아."
"용서는 안 바래."
"형 답네."
"끝까지 해보려고."
"그냥 나한테 말하지 말지. 괜히 나까지 기분 이상하다."
먹어- 석진이 아주 상냥하게도 웃으며 콜라를 마시자,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심상치 않은 형이란 건 진작에 알았지만.., 이 정도로 미친사람이라고 생각은 못했다.
한없이 착하기만 했던 형이기에 이런 일 따위 없을 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노여름이는 하필 김석진의 첫사랑이며, 하필 나영희의 아들인 전정국이랑 만나 불행중에 불행을 받아들이고있다.
아마.. 여름이가 있어야 할 곳이 이 곳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기엔.. 여름이 덕에 정국이란 놈이 살 수 있다.
"어.. 왔어? 태형씨랑은?"
"웬일로 집에 있대냐? 전정국이랑 살림 차리지 그래?"
"에이이.. 난 너뿐이야."
"이 시간에 네가 여기 있으니까 이상하잖아. 맨날 아침에 나가서 다음날 아침에 오던 애가. 6시도 안됐는데 말이야."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이.."
"너 김태형한테 내 얘기 했었냐?"
"아, 잠깐 정국이 집에서 만나서.. 잠깐..."
"어쩐지 막 미안하다고.. 십만원 얘기 괜히 했다고 그러는데. 니 생각이 먼저 나더라."
"에에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집 앞에 있는데?"
"엥!?"
"화 풀리면 나오라는데. 내가 무슨 지 애인인가? 왜 화 풀리면 나오래?"
여름이 허얼.. 하고선 창밖을 내다보았고, 딱 보아도 비싸보이는 차라
후진 빌라 앞에 세워져있자 집 주인이 신기한지 차를 구경하기 바빴다.
"그냥 한 번만 봐주라아.."
"한 번 봐주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돼. 그게 계속 반복되면 끝도 없어."
"에이.. 네 말대로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반복 되면 뭐 어때. 사귀고나서 잘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연애도 많이 안 해본 게!"
"미안.."
그래도.. 불쌍한데.. 하고 여름이 자꾸만 창밖을 보았고, 화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도 팔짱을 낀채로 창밖을 본 화영은 괜히 미안한지 나갈까 고민읋 하다가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안 나가. 내가 왜 나가?"
"나와줬네!"
그럼 대놓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데 어떻게 안 나와."
"나 별로 안기다렸어. 1시간?"
"그걸 또 재냐?"
"장난이야 장난! 진짜 미안해.. 나 진짜 누구한테 사과도 잘 안해봐서. 어색해 죽겠다..."
"죄 많이 짓고 살았을 것 같은데. 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해봐? 진짜 신기하네."
"그러니까. 네가 처음이라구.. 연하를 좋아하는 것도 처음이고, 이런 상황도 다 처음이 너고, 누구 이렇게 따라 다니는 것도 네가 처음이야."
화영이 됐다- 하고선 창밖을 보았고, 태형이 운전을 하다가도 차를 우뚝- 세워 멈추자 화영이 사고난다며 태형의 등짝을 세게 때렸다.
정국이 정현에게 연락을 하고선 집에 들렀다. 웬일인지 나영희는 없었고, 정국은 나영희 방에 들어서 서랍들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정현은 이러다 엄마가 오면 어쩌냐며 불안해했고, 정국은 아무 대꾸도 없이 옷장 서랍까지 다 뒤져보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아빠가 갖고 있었던 열쇠를 찾고 싶어서였다.
"그 열쇠를 버렸을 수도 있잖아."
"그게 뭔줄 알고 버려. 그런 거 버릴 사람 아니야. 그 사람."
"이러다 오면 어쩌려고..! 이 자식아.."
정국이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없자, 한숨을 내쉬며 복도쪽을 보았고 가정부가 눈치를 보다가 흠칫 떨자 정국은 가정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뭐가 무서운지 정국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분명 고등학생 때부터 봐왔던 가정부였다.
자기 아들처럼 잘 대해주던 가정부는 뭐가 그리 무서운지 정국에게 인사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줌마. 혹시.."
"네?"
"아니에요."
"…뭐 찾는 거라도.."
"제 방에 자물쇠 여는 열쇠요. 혹시 본적 있나요."
"열쇠..."
"……."
"아니요. 청소를 하다가도 본적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정국이 1층으로 내려왔을 땐.. 나영희가 웃으며 정국을 바라보았고 정국은 표정을 굳힌채로 나영희를 뚫어져라 보았다.
"드디어 집에 오는 거니..?"
"……."
"이게 무슨 일이니.. 정국이가..정국이 너 밥은 먹었니? 아줌마! 얼른 저녁좀 차려주세요."
"밥 됐어요. 하지마세요."
밥을 하라는 말에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아줌마에게 됐다고 하자 가정부는 발걸음을 멈춰 뻘쭘히 둘을 보았다.
정현은 2층에서 내려오지 않고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나영희는 가정부에게 2층에 올라가있으라 말했다. 가정부는 2층으로 올라와 정현의 눈치를 보았고, 정현이 방에 들어가있으라며 웃어주었다.
가정부가 올라간 걸 본 나영희는 정국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고, 나영희는 뻘쭘한지 작게 웃으며 정국에게 말했다.
"아직도 안풀렸니..?"
"어떻게 해야 당신의 사악한 모습들을 용서해요."
"내가 아직도 밉니."
"미운 게 다가 아니지. 나도 그쪽이 죽이고 싶어."
"…그 애는 살 수가 없었어. 산소호흡기로 간신히 숨이 붙어서 살던 애가. 간신히 살아서 나중에는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고."
"차라리 그렇게 죽는 게 나아."
"아니. 네 인생을 가로막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필요가 없어. 정국아."
"뭐…?"
"엄마는 널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다 할 수 있어. 가족 하나도 없는 노여름이랑 만나는 것도.. 내가 지금 봐주려고 애쓰는 거 안보이니?"
"…갈수록 가관이구나."
"…널 위해서라면 다 가능해. 엄마는 널 사랑하니까."
"그건 사랑이 아니야."
"엄마는 널 사랑해."
"그 사랑이 당신을 괴물로 만들고 있어. 다시는 여름이 찾아갈 생각도 하지마. 그리고 그쪽 입으로 걔 얘기 꺼내지도 말고."
"여자들이 널 괴물로 만들고 있어. 손목에 이 흉터들은 어쩌고!"
"제발 좀!"
"……."
"친엄마도 아니잖아. 친엄마도 이렇게는 안 해."
"……"
"한 번만 더 거슬리게 하면.., 차에 치여서 죽던가 식물인간으로 남아서 평생 그쪽 옆에 남아 있을 거야."
"그렇게라도 네가 내 곁에 있으면 상관없어."
"정말… 당신은."
"……"
"인간이 아니구나."
정현은 2층에서 대화 소리를 듣고선 눈을 크게 뜬채로 아래 상황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했던 말들이 너무 충격적이라, 정현은 쭈그리고 앉아서는 마른세수를 했다.
"아, 그럼 홍콩 시상식엔 가는 거야?"
"응."
"두근거린다.. 제대로 된 무대도 볼 수 있는 거잖아."
"영상으로 많이 봤잖아."
"영상이랑 실제로 보는 거랑은 완전 다른 걸."
기대가 된다며 발을 동동 굴리다 내 발을 쳐버린 노여름이는 미안- 하더니 웃으며 어설픈 젓가락질로 반찬을 집어 입에 넣었다.
정국의 어머니는 그런 여름이의 모습 마저도 예뻐보이는지 여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수령이 마저도 여름을 빤히 쳐다보고있자, 정국은 그 모습이 웃긴지 피식 웃어보인다.
"그나저나 이 꼬맹이는 언제 간다는 거야."
정국의 말에 수령이가 '나 꼬맹이 아니야!'하고 소리를 냅다 질렀다.
여름이 아이 이쁘다아- 하고 수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밥을 다 먹고나서 두시간을 집에서 티비도 보고, 수령이랑도 놀아주고, 집까지 청소를 해보이는 여름이는 힘이든지 쇼파에 뻗었다.
어쭈.. 잠까지 자.. 정국이 다가와 깨우려고 하자, 어머니가 정국에게 수화를 했다.
' 방금 잠들었어. 깨우지마.'
정국은 그 말에 자고있는 여름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집은 그렇게 더러우면서 남의 엄마 집은 깨끗해야 한다며 청소를 하는 여름이 너무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수화 몇개를 배워서는 곧바로 엄마에게 수화를 쓰는 여름이 또 예뻐보였다.
엄마 기분 좋으라고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여르은 또 예뻤다.
여름이 혹시라도 들을까 조용히 수화로 엄마에게 말했다.
'여름이 어때.'
'좋아.'
'여름이같은 며느리는 어때.'
'결혼이라도 하려고?'
너무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에 정국이 소리내어 웃어보였다.
그냥 해본 소리야.. 장난으로 넘긴 정국이 여름이의 옆에 앉아 여름이의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오늘은 네 얼굴이 희미한적이 없었어.
이렇게 계속 네 얼굴만 선명하게 보였음 소원이 없을 것 같아.
여름과 집에 도착했을까.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면 석진은 문앞에 기대어서서 여름과 정국을 번갈아 보았다.
"정국이랑 할말이 있어서."
석진이 정국을 턱짓으로 가리키자, 여름이 정국을 보았고. 정국은 여름이에게 먼저 들어가라했다.
그 말에 여름이 석진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고, 정국이 석진에게 말했다.
"옥상 가서 얘기해."
"하필 옥상?"
"굳이 형 때문에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아서."
"그래. 그럼."
정국이 먼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석진도 따라 올라섰을까.. 날씨는 여전히 좋지 않았고 야경은 참 예뻤다.
이런 예쁜 곳에서 인간이 아닌 김석진과 얘기를 하려니 참 아까웠다.
그러고 보니 이 곳에 여름이를 데려온적이 없네..
"괜히 말 꺼냈다가 밀어버릴까봐 무서운데."
장난스레 말을 꺼내는 김석진에 정국은 힐끔 석진을 보다가도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은채로 말했다.
"무슨 할말."
"원래는 나 무시하면서 오늘은 웬일이지."
"다른 말 말고."
"그래. 너 시간 끄는 거 엄청 싫어하지."
"……."
무슨 할말이 있는 걸까. 미안하다는 말이 하고싶은 걸까.. 석진이 야경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말을 못하더니 곧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회장님 감옥에 보내고 싶지."
"……"
"그 정도는 내 진술로 보낼 수 있는 거 알지. 내가 증거 하나 없을까."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뭔데."
"언제든지 나는 널 도울 수 있어."
"……."
"하지만 넌."
"……."
"여름이 옆에 있을 자신 없잖아."
"…뭐?"
"결국엔 또 수빈이처럼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낼 거잖아."
"……."
"화내지마. 난 진실을 말할 뿐이야. 너는 지금 너무 약해졌어. 네 자신 하나도 지킬 수 없을 만큼 약해졌는데.
어떻게 네가 여름이를 지킬 건데."
"……."
"그렇게 약해빠진 모습 보이면서 여름이 옆에 지키고 서있는 거. 보기 힘들어."
"…갑자기 나타나서 뭔 개소린데."
"넌 여름이를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나약해 빠진 그 우울증을 고쳐야지만 누군갈 사랑해야 마땅해. 알아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