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ing! 00
"그래도 징어랑 세훈이랑 같은 학교다니게 됬는데, 다행이지 않니."
"세훈이? 그 옆집 살던 쬐끄맣던 애말하는 거에요?"
"어머, 아들. 쬐끄맣긴. 둘 다 세훈이 보면 놀라겠네, 세훈이가 얼마나 많이 컸는지 모르지. 준면이 니가 세훈이 동생이라고 해도 믿을걸."
"그정도에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엄마, 내가 동생이라니."
세훈? 오세훈?
엄마와 오빠의 대화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이름을 곱씹었다. 오세훈? 간만에 듣는 이름이 반갑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미국에 간 이후로는 통 연락을 하고 지내질 않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렇다고해서 오세훈이랑 내가 오랜만의 만남에 감격해서 서로 반갑다 얼싸안을 사이는 아니었다. 차라리 주먹이 오갔으면 오갔지. 암.
그럼에도 티끌만큼은 오세훈을 만나고 싶었는데, 그 이유의 8할은 오세훈을 놀려먹을 생각이 차지하고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정말, 조금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그간 미국물 좀 먹은 나는 제자리를 걷는 영어실력 대신 외모에 한껏 물이 오른 상태였다.
존마니 오세훈은 이런 내 미모에 쫄아 후덜거리며 네발로 기어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키들키들 웃음이났다.
"징어보다도 세훈이가 훨 큰 것 같은데?"
엄마는 별것 아니라는 것 처럼 흘리듯 말했지만, 오세훈이 나보다 크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가 더 컸다니? 오세훈에 대한 기억을 되뇌었다. 맨먼저 떠오른 것은 서늘하니 생긴 재수없어뵈는 얼굴이었다. 내 딱까리에 불과했던 오세훈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구역의 일진짱이라도 된 줄 오해하도롣 만든다는 그 얼굴. 그 친화력 좋은 (나쁘게 말하면 눈에 뵈는게 없었던) 4학년 때의 초딩 변백현도 처음에 오세훈을 보고 쫄아서 말도 제대로 못붙였다고 했으니 말 다 한거다.
그렇다고 해서 오세훈이 초딩때부터 일찐 놀이에 심취했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애가 원체 냉하게 생겨먹은데다가 초딩 주제에 매사에 시큰둥하고 표정변화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세훈네 아주머니께서 딸이 없는 대신, 막내아들이라도 이쁘게 꾸며보고자 오세훈에게 어릴때부터 금발이며 은발이며 왠만한 염색은 다 시키셨던 이유가 컸다. 아마 그 나이에 시뻘건 고추장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다녀본 초딩은 오세훈 밖에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어쨌든 열성적인 아주머니와 달리, 오세훈은 머리 염색을 정말 진저리나게 싫어했던 것 같은데, 워낙에 단순한 놈이었던지라 고작 파워레인저 몇개에 혹해서는 염색을 했었다. 결국에는 오세훈이 중학교를 입학함과 동시에 그 요란하고 시끌벅적하던 색색깔 머리의 향연은 볼 수 없게 된건, 오세훈을 놀리는 맛에 살던 나에게는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변백현이랑 오세훈한테 요상한 별명도 많이 붙여줬었는데.
유노윤호, 믹키유천, 시아준수 뭐 그런 연예인처럼 오세훈은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네글자로 된 별명아닌 별명을 가지고있었다.
이름하여 오존마니.
여기서 오존마니의 오존이 사전에 나온 대로 산소 원자 3개로 이루어진 산소의 동소체로서..뭐이딴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건 절대 아니었다.
키가 좆만한 오세훈, 오세훈 키는 좆만이, 오세훈 키 존마니, 놀리다가 그것 마저도 귀찮아서 줄인게 오존마니였다.
변백현이랑 같이 오존마니, 오존마니 하면 제 머리색처럼 시시때때로 얼굴색이 바뀌는게 볼만했었는데,
사실 그러고보면 오세훈도 쥐오줌 만큼은 불쌍한 놈이었다.
변백현이 오세훈을 처음보고 쫄았던 4학년 때만 해도 우리 셋의 키는 비슷비슷 했었다. 그런데 5학년이 되면서 애석하게도 오세훈은 혼자 성장이 멈췄고, 6학년 때는 결국 변백현이랑 나를 올려다 보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그런 존마니 오세훈이 커봤자 얼마나 컸을려고.
뭐, 조금 컸을 순 있겠지만, 엄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엄마는 평소에도 별것 아닌 걸 과장해서 말할때가 많아서 크게 신뢰가 가지 않았다.
더욱이 객관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변백현이랑 나 보다도 한참 작았던 오세훈이 보다 커졌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
"미국에서 몇년만에 와서 학교에 잘 적응 할 수 있을지 걱정되네, 잘 모르는거 있으면 세훈이한테 물어보고 그래. 둘이 어렸을 때 많이 친했잖아."
"알았어. 나 이제 쉴래."
"그래 딸. 많이 피곤해보이네, 들어가서 쉬어."
"응 "
"그런데 징어 너 예전에는 엄마한테 말도 조근조근 잘 하더니, 엄마 좀 서운하다 얘."
"징어 나이면 사춘기 올 때도 됐죠."
그 말을 하면서 오빠가 씩 웃었다. 집으로 돌아온게 즐거운지 미국에서 비행기를 탈때부터 오빠의 시덥잖은 농담은 계속되고 있었다. 사춘기는 무슨, 오빠의 시시한 농담을 받아줄 마음은 없어 그냥 못 본척 방에 들어왔다. 방문 너머로 엄마가 이따가 저녁에 세훈이네 가족이 오기로 했다고 하는 말이 들려 왔다. 애써 굳이 오세훈을 찾아갈 수고가 덜어졌음에 가뿐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폈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내 방인데도 낯설었다. 중학교 1학년만 마치고 미국에 갔으니까, 그래봤자 4년 정도 있었던 것인데 내 방이 내 것 같지않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도 그간 엄마가 꼬박꼬박 청소를 해주셨는지 먼지도 쌓이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팡- 소리와 함꼐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우니 금새 잠이 솔솔 쏟아져왔다. 멍하게 누워 있으니 어렸을적 기억이 하나 둘 새록새록 떠올랐다. 오세훈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두 분 어머니의 인연 덕분에 아주 옛날부터 알고 지내왔었다. 거기다가 종래에는 두 집이 같은 아파트로 이사했으니, 내가 미국 유학 갔던 동안 을 제외하면 사실 태어났을때부터 같이 살다 싶이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엄마가 오세훈 키가 컸다고 그랬지. 그럼 오세훈이 이제 내 턱까지는 오려나?
평소 엄마의 과장된 화법에 쓸데없이 많이 길들여져있던 나는 그런 속편한 생각이나하며 잠에 빠져 들었다.
*
"딸, 일어나봐. 세훈이네 거의 다왔데,"
"으..왜에.."
"얼른 일어나, 세수라도 해야지."
어기적어기적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마치고 나오니, 그새 오세훈네 가족이 와 있었다. 미리 좀 씻을껄 그랬다.
얼굴에 물기를 닦던 수건을 내리고 오세훈네 부모님께 멋쩍게 인사를 드리자. 오세훈네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고는 너무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어머 준면이는 더 잘생겨지고 징어는 더 이뻐진것 같네,"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고 나니, 그제야 거실 쇼파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폰을 만지고 있어서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큰 키나 체격으로 보아 대충 오세훈의 형 이겠지 했는데,
"세훈아, 뭐하니 인사해야지."
내내 고개를 처박고 제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본 이는,
분명 오세훈이었다.
오세훈?!
쇼파에 앉아있던 놈이 일어서자 훌쩍 자란 키가 더 돋보였다.
뭐,뭐야, 오존마니가 나보다 존나 커졌어! 그것도 존나 많이! 말도 안돼.
초딩 저학년 이후로 줄곧 나를 올려다보던 오세훈을 이젠 반대로 내가 올려다보는 처지가 되다니, 명치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씩 웃으며,인사를 건내오는 오세훈을 눈대중으로 대충 재어보니, 나랑 머리통 하나는 넘게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의미심장한 미소와 내 머리위로 척하니 올려지는 손을 보아하니 나를 약올리는게 분명했다.
이 말도 안돼는 상황에 나는 오세훈에게 형말고 숨겨진 쌍둥이가 있었나 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너 도대체 그동안 한국에서 뭘먹고 산거야?하는 물음이 혀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훌쩍 커버린 키와는 다르게 여전히 허옇게 둥둥 뜬 피부는 오세훈의 검은 생머리와 어울려 창백해 보이기까지했다.
이게 오세훈 맞아? 왜 혼자 크고 지랄이야! 이렇게 막무가내로 크는게 어딨어 어딨냐고!
아무리 이 나이때가 한참 성장기라지만 고작 4년 사이에 확 변해 버린 오세훈의 모습에 나는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였다.
티내면 지는거다 지는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멱살이라도 짤짤흔들며 따지고 싶은 것을 꾸역 꾸역 참으며,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
오랜만에 두 가족이 한데 모여 앉은 저녁 식사가 대충 끝나갈 무렵, 오빠는 회사에 일이 생겼다면서 전화를 받고 급하게 나갔다. 이번주에는 어디로 같이 등산을 갈지, 뭘 먹을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부모님들 사이에서 오세훈이랑 나는 자연스럽게 소외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계속 앉아있기도 뭐한데, 나혼자 쏙 방에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밥만 끄적거렸다. 아니, 어릴 땐 그래도 나름대로 친한 편이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소름끼치도록 어색했다. 이건 내 잘못이 절대 아니었다. 멋대로 엄청나게 키가 커버린 오세훈이 공기를 어색하게 만드는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대로 밥만 깨작거릴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먼저 말이라도 걸어봐? 뭐라고 하지. 요즘은 염색 안하냐고? 아니지,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식사를 마친 오세훈이 자리에서 쓱 일어났다.
"징어야, 오랜만에 방구경이나 시켜줘."
징어야,라니 우웩
성을 떼고 부르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은 내 몫이었다. 구경은 무슨 나도 아직 내방이 어색한데,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네들끼리도 놀아야지.' 하고 웃는 엄마와 오세훈 부모님 앞에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오세훈을 데리고 내 방으로 향했다.
주방을 지나 내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는데 살짝 걱정이 됐다. 설마 얘 아직도 존마니라고 놀렸던거. 기억하고 있진않겠지. 기억하고 있다면 인정하긴 싫지만 한참 역전된 이 상황을, 오세훈 성격에 그냥 넘어갈리가 만무했다. 아니 근데 솔직히 내가 계속 그랬던 것도 아니고 키가 급격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던 6학년 때부터 미국 가기전 동안 고작 2년인데, 마음에 담아두고 이제와서 나한테… 거기까지 생각하는데 어깨위로 팔이 툭 걸쳐졌다. 난데 없이 어깨 동무를 해오는 오세훈을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씩 웃으면서 골때리는 말을 던졌다.
"우리 징어, 많- 이 작아졌네."
.. 왜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나는 순간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옴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 똥을 한바가지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동안 오세훈은 내 어깨에 제 얼굴을 턱하니 걸치더니 팔을 뻗어 방문을 열었다.
기럭지가 존나 길어진 오세훈은 팔도 존나 길었다. 시발.
프롤이라서 내용이라곤
미쿡에서 돌아온 징어와 그사이 훌쩍 큰 셓니☆
아까도 올렸었는데ㅠㅠㅠㅠㅠ
처음 쓰는거라 뭔가 잘못 했는지
글이 자꾸 안보여서 다시 올려요ㅠㅠ
뭘 잘못한 건지 엉엉ㅇ엉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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