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ㄴ,ㄲ
w.1억
세 번째 이야기
"엄청 늦게 나타나는 걸 보면.. 다른 꿈도 꾸나?"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으로 간다던 버스 꿈과, 웬 궁전에 드나드는 꿈, 그리고 내가 애엄마가 된 꿈..
남자는 흐음.. 하고 팔짱을 낀채로 나를 바라보다가 곧 입술을 열었다.
"그럼 다른 꿈에서 다른 남자들도 나왔어?"
"응."
"나보다 잘생겼냐?"
"다 비슷..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어쨌거나.. 너도 그냥 내 꿈에 나오는 인물중 하나일 뿐인 거잖아."
"이게 큰일 날 소릴 하네."
"어?"
"내가 앞서 말했다시피. 너희 세계도 있듯이 우리 세계도 있고.
너는 꿈을 꾸면 이 세계로 올 수 있겠지만, 우리들중에서도 꿈을 꾸면 너희들 세계로 가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나도 애초엔 원래 이 세계 사람이 아니었다니깐."
"그럼.. 너는.."
"나도 네 세계에 있던 사람이야. 너랑 똑같았어. 이곳에 와서.. 처음보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은 나를 너무 잘알지, 처음 보는 지역 이름에, 처음 보는 동네 이름. 얼마나 놀랐게?"
"……."
"여기서는 내가 부자더라고. 현실에선 그렇게 애원하고, 애원해도 100원하나 땅을 파도 나오지도 않더니.
이 세계에선 처음보는 사람이 내게 형이라 했고, 그 형은 내게 말해."
"……."
"엄마와 아빠가 죽었다고 말이야. 그래서 재벌인 엄마랑 아빠 재산을 형이랑 내가 나눠 가지게 돼.
그래서 나는 내 세계에 있던 나를 버리고, 이 세계로 오게 됐어.
이제 좀 이해가 가나? 더 설명을 해줘야 해?"
"버렸다니?"
"뭐.. 쉽게 말하자면, 내 진짜 몸은 죽었다. 이 소리지."
고개를 갸웃하는 남자에 내가 이해를 못하는듯 표정을 짓자, 남자는 나를 답답하다는듯 바라보다가 곧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선
나를 다시금 바라본다. 남자는 내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언제일진 모르겠지만, 네 손엔 알람시계가 쥐어질 거야."
"알람시계?"
"나는 네 세계에선 원래 엄청 가난하고, 아빠 술주정에 항상 맞기만하던 고등학생이었어.
친구놈 따라서 오토바이 타고 달리다가 가드레일 박고 그 뒤로는 기억이 안나는데.
눈을 떠보니까, 이 세계더라고, 한 번도 꿈에서 깨지않고 지냈던 걸 보니까. 나는 혼수상태였나봐."
"……."
"몇달을 누워서 꿈만 꾸고 있는데. 며칠 뒤에 내 손에 알람시계가 쥐어졌어.
그리고 한 중년의 남자가 나타나서 물어."
"……"
"현실세계에서 살 것이냐, 꿈 세계에서 살 것이냐."
"……."
"48시간이 남았었어. 무려 2일동안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거지."
남자는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듯 눈을 굴렸다.
예전의 정국의 눈 앞에는 중년의 남자가 서있다.
정국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중년의 남자에게 꿈에서 살 것이라 대답을 했고.
중년의 남자는 정국을 보고서 웃으며 정국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댄다.
'눈을 감거라' 남자의 말에 정국은 눈을 감았고..
"눈을 감는 순간. 중환자실에 죽은듯이 누워있던 내가 숨을 거두는 모습이 보였어.
내 옆엔 가족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만 기억해 난.
뭐.. 그렇게 그쪽 세계에서의 난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불쌍하고, 철없는 고딩일 뿐인 거야."
"……."
"아, 근데 넌 꿈을 여러개 꾼다고 했으니깐. 선택권 같은 게 있으려나."
남자도.. 왠지 모르게 조금은 씁쓸한듯한 눈을 하고있었다.
그치만.. 나는 꿈이란 걸 안 상태이기에 이 얘끼를 마냥 믿을 수만은 없었다.
고개를 젓는 내 모습에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꿈이라고 함부로 다니지마, 여기서 네가 다치면.. 네 세계의 있는 너도 똑같이 다치니까."
"……."
맞는 소리였다. 정말로 내 스스로 꼬집어도 아팠으며.., 그때 냄비에 손이 데였을 떄도..
정말로 꿈에서 깨어나서도 똑같이 데인 상태였으니까.
"우리집을 찾아가보던가. 우리 아빠가 술에 취해 항상 누워만 있을 거야."
"……."
"서울 하연동 하연2길 232번지야. 달동네고, 아빠 이름은 전은혁."
"……."
"얼른 가."
남자는 내게 얼른 가라며 방으로 들어가려는듯 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는듯 앉아서 허공만 바라보았다.
정말로.. 꿈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다.
예전부터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진짜로 있을 줄이야.
그래도 정확하게 알아내려면..
꿈에서 깨어난 탄소는 어지러운듯 작게 인상을 썼고.
저 멀리선 엄마와 의사가 하는 얘기가 작게 들려왔다.
"사고가 난 뒤로는 잠이 많이 올 수가 있어요.. 근데.. 김탄소 환자같은 경우에는.."
"너무 잠을 많이 자서.. 이상하죠? 그쵸?"
"아직은 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니..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어머니."
곧 의사가 병실에서 나가고, 엄마는 내게 다가와 잘났냐며 웃어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핸드폰을 달라 말했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가방에서 내 핸드폰을 꺼내 건내준다.
"성우한테 전화 좀 걸어주라."
"성우?"
"응."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는 곧 옹성우에게 전화를 걸어주었고, 나는 엄마가 내 입 앞으로 대주는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옹성우.. 너 지금 어디야? 하연동이야?"
- 엉. 너 근데 괜찮냐!? 형이 너 교통사고..
"괜찮아. 괜찮으니까.. 내가 문자로 주소 하나 보내줄게. 거기로 좀 가줄래?"
- 엥? 왜?
"부탁 좀 할게."
탄소의 친구인 성우는 탄소의 부탁으로 바로 문자로 온 주소를 찾아 향했다.
웬 낡아빠진 달동네로 들어오며 성우가 탄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탄소는 성우의 전화를 겨우 받고선 작게 대답을 한다.
"응."
- 어.. 왔는데. 여기 사람 사는 곳 맞아? 집 안에도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아무도 없어?"
- 그런 것 같아서..
집 앞 대문 앞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봉투들에 성우가 허리를 숙여 그 봉투를 집었다.
- 전기세 내라는 것 같은데..?
"이름.. 이름이 뭔데?"
탄소가 긴장을 한듯 입술을 꽉 깨물자, 성우는 봉투를 돌려 봉투에 써져있는 이름을 보고선 입술을 열었다.
- 전은혁 귀하.
"……."
- 왜 그러는데?
"전은혁?"
- 그래. 전은혁.
갑자기 성우의 팔을 덥썩 잡는 한 여자에 성우가 놀란듯 그 여자를 보았고, 그 여자는 성우를 끌고 골목길로 향했다.
성우가 누구세요? 하는 소리를 내자, 탄소는 무슨 일이 있냐물었고
성우는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선 전화를 끊지않고 손에 쥐고 있는다.
여자는 누가 올까 두려워하는듯 표정을 짓고선 정국의 집쪽을 한 번 눈치를 보고선 성우에게 말했다.
"저기엔 가면 안 돼요."
"에?"
성우는 자신의 손목을 여전히 잡고있는 손을 약하게 비틀어내고선 말했다
"왜 안 돼요?"
"저기.. 아저씨가 알콜중독..이라서 눈만 마주쳐도 죽이려고 달려들거든요. 그래서 저 앞에도 못지나가요."
"……."
그 말을 들은 탄소가 잠시 벙찐듯한 표정을 짓고선 있다가, 곧 최대한 크게 말했다.
'성우야!탄소의 부름에 성우가 급히 전화기를 귀에 대었을까.
'혹시 아들 이름이 전정국이냐 물어줘' 탄소의 물음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여자에게 말했다.
"혹시 저분 아들 이름이 전정국이에요?"
"어.. 정국이를 알아요?"
"아, 제가 아니라.. 친구가.."
성우는 몇분이 지나고 나서야 탄소에게 다시금 전화를 걸었고, 성우는 한숨을 내쉬고선 탄소에게 말했다.
- 뭔 이유가 있어서인진 모르겠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고 하더라, 5년 전에.. 열여덟살때 말이야.
납골당이 어딘지 메모해줬으니까. 아는 사람이면 나중에 찾아가봐.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응. 고마워.."
- 뭔데 그래? 사람 궁금하게.. 병문안 가도 돼?
"아니. 나 계속 잠이 와서.. 나중에 조금 더 나으면 와줄래?
- 그래.
"응. 고마워."
탄소는 전화를 끊고선 한참을 눈을 감은채로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 진짜로 꿈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어제 데였었던 손끝을 보았다. 빨갛게 달아올라 아직도 쓰라렸다.
밥을 먹자며 내게 숟가락을 들이미는 엄마에 고개를 젓자, 엄마는 걱정스런 눈을 하고선 나를 내려다보았다.
엄마 미안해. 입맛이 없어.. 이상하게 자꾸만 한쪽 가슴이 아려와서.. 아무것도 눈에 밟히지 않아.
참 이상했다. 신기한 기분이 들면서도.. 뭔가 모를 아픈 마음이 드는 건..
"나 조금만 잘게."
나는 또.. 꿈을 꾸러 간다.
눈을 떴을 땐.. 그때 그 여자와 대화를 나눴던 곳이었다.
저 끝에서.. 그 여자의 어머니가 불렀으니, 저쪽으로 가면 그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걸까.
언덕을 지나 마으로 내려오자, 몇백년전의 모습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신기해.. 이게 정말로 다른 세계 속에 사람들이란 거잖아. 갑자기 누군가 내 손목을 덥썩 잡기에 고갤 돌리면.. 그때 그 여자애였다.
"너 또 사라져! 요즘 왜 그래?"
"아.. 그게. 미안."
"어머니가 널 얼마나 찾으셨는지 알아? 일단 집에 가자."
집에 가자며 고개를 젓는 여자는 옆에 지나가는 또래 남자들에게 인기가 꽤나 많은듯 했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인사를 하면, 여자애는 그래! 하고선 날 질질 끌고.. 어느 집으로 향한다.
"요즘 또 암살자가 나타나서 위험하단 말이야. 암살자가 평민들을 죽이진 않았지만..
얼마전에 우리 앞집에 아저씨가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는데. 그 암살자가 그랬다는 소문이 돌았어."
"……."
"그러니까. 계속 혼자 사라지지마. 뭔 일이 일어나도 난 몰라."
"혹시 네 이름은 뭐야?"
"나? 또 장난친다.. 또.. 나 김제니야!"
"제니?"
"그래! 너 이제 오랫동안 사리지지 않겠다고 약속해."
"에이.."
"에이..?"
"그래. 약속."
"약속! 어..? 안녕하세요."
내게 웃던 여자는 옆집으로 향하는 차갑게 생긴 남자에게 허릴 숙여 인사를 했고, 그 남자는 대충 고개를 까딱이고선 집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 행동에 제니는 어어! 하고 남자가 들고있는 많은 지푸라기들을 대신 들어주겠다며 남자에게 붙는다.
아마.. 제니 저 아이는 저 남자를 좋아하나봐.
"제가 들어줄게요! 많이 무거워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매정하게 제니를 무시하고 그냥 집으로 가버리는 남자에 나는 저 남자가 왜 저렇게 매정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설마..
"설마 고백했다 차였나?"
내 말에 뭐어!? 하고서 내 쪽으로 방방 뛰어오는 여자를 귀찮은듯 표정을 지었다. 뻔하잖아.. 저 남자는 너한테 관심이 없어.
"저 남자는 누구야?"
"너 기억이 정말 하나도 안나?"
"응."
"우리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잖아."
"설마 어렸을 때부터 좋다고 따라다녔어?"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뭐."
"진짜 기억이 안나나봐.. 너는 저분이랑은 말 한마디도 안하던 사이였다는 것만 알아둬라."
"그래."
"어디 가게?"
"궁전."
"뭐??"
처음에 눈을 떴을 때.. 나는 궁전에 있었으니.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쪽 왕들이랑 연관이 되어있다던가.
"왜 따라오냐?"
"위험하니까!"
"위험한데 왜 따라와?"
"정말로 궁전에 들어가는 건가 싶어서!"
"속고만 살았나.."
"아니..! 말이 안되잖아. 네가 어떻게 궁전에.."
궁전에 다 와가자, 제니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고. 나는 또 와도 된다는 왕의 말을 믿고선 궁전의 앞으로 향했다.
제니는 긴장이라도 되는듯 얼른 오라며 손을 들어 손짓을 했고, 나는 천천히 궁전으로 발을 디뎠다.
기사단들은 나를 보고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며, 내 눈을 마주하지도 않았다.
기사단들을 지나쳐 궁전으로 들어가려고 했을까.. 내 앞에 있는 키 큰 남자에 고개를 천천히 들면..
"……."
셋째 아들 차은우였다. 아.. 셋째가 맞았던가.. 기억이 잘 안나네.
길을 비켜주려 오른쪽으로 향하니, 차은우도 날 따라 발걸음을 옮겼고
또 피하려 왼쪽으로 피하니, 또 이 남자는 날 따른다. 고의가 아니였다.
어찌됐건 왕이 될 사람이니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선 입을 열었다.
"셋째 아들이라고 하셨죠? 막내.."
"……."
"저기요."
문 양쪽을 지키고 있던 기사단이 내게 창을 들이밀었고
남자는 그 기사단에게 말한다.
"뭐하는 짓이야."
"……."
"내려놓지 못해?"
차은우의 말에 기사단은 창을 내려놓고선 고개를 숙였고, 곧 차은우는 나를 지나쳐 나간다.
참.. 정이 없어보였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줄만 알지, 주는 방법을 모를 것 같은 사람이었다.
분명.. 여왕님도 나를 잘알지도 못하면서 인정을 해준 걸 보면.. 내가 이 꿈에 오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땅을 보며 한참 걷고 있었을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또 사라졌다.. 나타났군."
"아.. 안녕하세요. 그래도 어제는 말이라도 하고 사라졌잖아요."
"…말이 또 그렇게 되는군.."
"그쵸."
"들어와라. 차를 한잔 내줄테니.."
첫째 김석진을 따라 방에 들어가자.. 방은 참 김석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고.. 좋은 냄새가 나.
하녀가 들어와 차를 내줄줄 알았는데.. 김석진이 직접 나에게 차를 내주었다.
따듯한 찻잔을 받아내고선 감사하다고 하자, 김석진은 내게 의자에 앉으란듯 손짓을 한다.
의자에 앉아 김석진을 올려다보니, 김석진은 침대에 앉아서 쓸쓸한듯한 눈을 하고선 창밖을 내다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어색한 공간 속에서 정적을 깬 건 나였다.
"혹시 꿈을 자주 꾸시나요?"
"꿈?"
"네. 꿈이요."
"……."
"세상에는요.. 꿈이 없는 것 같아요. 꿈을 꾸게 되면.. 그건 꿈이 아니라 다른 세계래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저기.."
"저기라는 말은 궁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쓰지 않는다. 왕, 왕의 자식들에겐 더더욱.
버릇없이 굴게 될 경우엔 처형을 당할 수도 있지."
"아.. 그래서 아까.."
그래서 아까 기사단들이 창을 들이밀었던 거구나.. 그치. 예전 같은 경우에는 왕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으니까.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죠?"
"……."
"아.. 제가 그때 언덕에서 한 번 굴렀더니! 기억을 다 잃어서.."
"…안쓰럽구나."
"……."
"전하라고 부르면 된다."
전하..? 그냥 내가 알던 조선시대 때랑 똑같잖아.
"둘째와 셋째에겐 세자라 부르면 돼."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꿈.. 얘기는 무슨 뜻인지 제대로 설명을 해줄 수 있나?"
"아니요. 그냥 해본 소리에요. 너무 귀담아 듣지 않으셔도 돼요. 전하?"
김석진은 내게 웃어주었다. 왜 나에게 웃어주는데도 슬퍼보이는 것일까.
왜 이렇게 약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자주 우리와 지내야할테니.. 아우들과 친해질 수 있으면 좋을텐데.."
"…친해지면 저야 좋죠."
.
"……."
"제가 친화력이 좋아서요..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아우들이 유별나서 친해지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은 하녀들에게 네게 궁금한 것들은 다 알려달라고 할테니 밖에서 기다리지."
"지금요?"
"그래."
"얼른 가보도록 해."
김석진은 얼른 가라며 일어서 등을 돌린채로 창밖을 보았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선 방에서 나왔다. 아.., 뭔가 방에서 나오니까 살 것 같아.
석진이 벽에 노크를 두 번 하자, 밖에서 서있던 하녀가 들어와 석진에게 다가왔고, 석진은 하녀에게 밖에 나간 여자에게 궁금한 것들을 다 알려달라고 했고
석진은 하녀가 나가자마자 기침을 했다. 끊이지않는 기침에 석진은 곧 어머니가 주셨던 손수건을 입에 댄채로 기침을 계속 했다.
탄소가 궁전 문 앞을 지키는 기사단쪽에 있는 태형을 보았고, 곧 웃으며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러다 한 하녀가 탄소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앞을 가로막았고, 탄소가 궁금한듯 표정을 지으면.. 하녀가 말한다.
"전하께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아.. 네에."
"……."
"궁금한 거..는.."
"……."
"일단은 여기 계신 전하, 둘째 세자, 셋째 세자 얘기를 좀 듣고싶은데요."
하녀는 당황스러운듯 고개를 숙였고, 탄소는 조금만 말해달라며 하녀를 끌고 구석으로 향했다.
"전하께서 다 알려달라고 하셨다면서요."
탄소의 말에 하녀는 곧 고민을 하는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탄소에게 작게 말했다.
"셋째 세자께선 워낙 말수도 적으시고.. 잘웃으시는 분이 아니셔서.. 속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와 많이 닮으셨단 이유로.. 셋째 세자께선 성이 다릅니다."
"둘..째 세자는요?"
"많이 밝으세요. 기사단 뿐만이 아니라, 저희 하녀들과도 친구처럼 대화도 많이 하시는 편이구요.
장난기도 많아 셋째 세자님과는 그닥 친하지 않습니다."
"그럼.. 전하께선..?"
"전하는.."
"……."
"자상하십니다."
"……."
"다가오는 봄처럼 따듯하신 분이라, 저희가 제일 믿고 의지하는 세자중 한분이셨는데..
이렇게 왕의 자리에 앉게 되셔서.. 너무 행복해요."
하녀의 표정은 정말 진심인 것 같았다. 탄소는 역시.. 그럴줄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궁전 문을 지키는 기사단 옆으로 누군가 보이기에 눈살을 찌푸리고 보면...
태형이 기사단에게 다가가 뒷짐을 진채로 말한다.
"오늘 날씨가 참 좋군. 오늘같은 가을날씨에 어머니께서 저 꽃밭에 물을 주라고 말씀하셨는데. 기억이 나는가?"
"가을 날씨가 아니고, 봄 날씨입니다."
"에? 아니다! 가을날씨다!!"
"아닙니다. 세자님 봄날씨입니다. 여왕님께서 직접 심으신 저 천년의꽃은 봄에만 유독 빨갛게 피기에
빨간색을 좋아하시는 여왕님께선 봄날씨에 물을.."
"무엄하도다!! 무엄해애!!"
"죄송합니다.."
"감히!!!"
그리고 그 뒤로 지나쳐가던 셋째 세자가 둘째 세자에게 무심하게 말한다.
"봄날씨가 맞아."
"봄날씨라고? 아니라니까!?"
"그러게 어머니가 말씀하시면 귀를 기울여서 듣지."
"저 싸가지..!"
둘은 앙숙인 마냥.. 태형이 차은우에게 손을 뻗어 장난으로 때리려고 하자
기사단중에 한분이 태형의 팔을 잡고 말리기 시작했다.
"아유! 안됩니다! 세자님!"
"놔!! 놔라!?!?"
태형이 자꾸만 발버둥을 치자, 기사단은 더욱 더 세게 붙잡았고
곧 탄소가 태형의 뒤로 서서 안녕하세요! 하고 게 인사를 하자, 태형은 놀란듯 심장부근에 손을 올려둔채로 탄소를 본다.
그리고 은우는 무심하게 뒤돌아 탄소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두 번째로 인사 드리는 거죠."
"아! 너는..!"
"네. 어제.."
"아아.. 안다, 알아!그래..!"
크흠.. 하고 얼굴이 금세 빨개지는 태형에 은우는 힐끔 태형을 보았다가 다시금 탄소를 보았다.
다시금 탄소가 은우를 보고 고개를 꾸벅이자, 은우는 대충 따라 고개를 꾸벅인다.
"되게.. 이상한 소녀구나..? 어제도 느껴졌지만.. 절대 처음 본 것 같은 느낌이 아닌.."
"그래요? 저도 그런 느낌이 조금 들더라구요!"
"그나저나! 넌 집이 어디냐?"
"집..이... 그... 어! 언덕 뒤로 있는 마을.."
"마을.."
"네!"
"부모는?"
"부모요?"
"그래. 부모!"
"없는 것 같던데.."
"같던데는 무엇이냐..?"
"없어요."
고아라고 했으니까.. 없는 게 맞는 거겠지? 되게 너무하네 꿈이.
꿈에서 부모가 없고, 그럴 거면.. 내 과거 이야기라도 대충 알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된 게 부모도 없냐? 이상한 애네.."
"어어? 그거 패드립이에요!"
"패드립?"
"……"
"네. 부모 얘기를 들먹이면서.. 막 기분 나쁜식으로 말하고 그러면 그게 패드립이라고들 해요.
예를 들면.. 너희 어머니 없냐? 없으니 버르장머리가 없지.. 라는 식으로?"
"아아.. 그런 것이냐??"
고개를 끄덕이는 탄소에 태형은 다시금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호우! 하고선 손으로 부채질을 했고
곧 기사단 두명이서 태형의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해준다.
듣던대로 되게 개구쟁이같은 느낌이네..
"그럼."
그럼..하고 탄소를 빤히 바라보는 태형에 탄소는 궁금한듯 표정을 짓고선 태형을 보았고,
태형은 곧 있지도 않은 턱수염을 만지는척 하며 탄소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이름이요?"
"그래. 이름.. 설마 이름도 없나?"
"……."
이상했다. 이상하게..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것은.. 오롯이 친구 이름, 부모님 이름.. 밖에 생각이 안난다.
아무말도 못하고 세자를 바라보니, 세자는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부모님이 이름도 안지어주시더냐?"
"……."
"이것도 패드..패...ㄷ.."
"패드립이요."
"그래! 패드립!"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겠죠.. 근데.. 정말 제 이름이.."
"……."
"기억이 안나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기억이 어떻게 하나도 안날 수가 있어.
이상한 소녀라며 고개를 젓는 태형에 탄소가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을까.
"혜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탄소가 뒤를 돌아보았을까.
석진이 궁전에서 계단을 밟고 내려오며 탄소를 향해 말했다.
"저 소녀의 이름은 혜다."
"저요?"
"그래. 너."
"아.. 저.."
다시 한 번 '저..요?'하고 자신의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탄소에 석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보기좋게 웃어보였다.
이상해. 정말 이상하게 저 첫째 아들만 보면.. 자꾸 마음이 아파.
탄소가 이번엔 말도 없이 궁전에서 빠져나갔고
석진은 궁전을 돌아보다 방 앞에 서있는 하녀에게 물었다.
"혜는 어디갔지?"
"못봤습니다.."
"또 사라졌군.."
"……."
"앉아서 좀 쉬도록 해요."
석진이 그 말을 하고선 계단을 밟고 1층으로 내려왔고, 곧 태형이 궁전 바닥에서 쭈그리고 앉아 기사단과 얘기를 하고 있다.
"예전엔 호랑이가 궁전에 들어앉아 살았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궁전 밖에 나가면 호랑이에게 뜯겨 죽는다는 얘기도 있어.
나와 같이 나가게 되면 호랑이를 보여줄 수 있다. 어디.. 보고싶은 사람?"
"저요!"
젊은 기사단이 저요! 하고 손을 들자 태형은 싫은데? 하며 괜히 장난을 쳤고, 석진은 괜히 태형을 보고선 웃었다.
저 아이는 참.. 항상 밝아서 좋다니까. 그런 반면..
자신의 옆을 지나는 셋째와 눈이 마주친 석진이 셋째에게 말했다.
"어딜 가는 거지?"
"바람 쐬러요."
"그래. 호랑이 조심해."
"호랑이는 무슨.."
"……."
"그런 거 없습니다."
셋째는.. 왠지 모르게 우리와는 엄청 다르게 많이 차갑고, 속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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껑쓰껑씅!!씅씅껑썽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