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11월 09일
인간은 항상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리고 준면이 들어온다.
작년 수능에서 컴퓨터 싸인펜이 아닌 검은색 일반 싸인펜으로 마킹을 했다가 00점 처리가 된 후 다시 보게 된 수능.
그렇다 오늘은 모든 고3들의 지옥의 날, 3년을 기다려온 해방의 날 , 바로 수능날이다.
준면의 표정을 살피던 OO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야... 우찌 됐노? 이번에는 잘 쳤나?”
준면이 울상을 짓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 이번에는 답안지를 밀려 써뿟다..."
“헐... 얼마나? 우짜다가?”
“언어, 수리, 탐구까지는 괜찮았는데 외국어에서 다 밀라써뿠다.”
“우짜노...”
“뭐 어쩌겠노. 이미 시험 다치고 나온걸. 어쩔 수 없다 다시 한번 쳐야지 뭐...”
준면은 힘없이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다.
그런 준면의 모습을 본 가족들은 울상을 짓고 닫힌 준면의 방문만 쳐다보았다.
식탁을 차리던 혜정이 쇼파에 엎드려 티비를 보고 있는 종인과 OO에게 소리친다.
"야, 야! 야 이 자식들아! 고2가 되가지고 소파에 누워서 빈둥빈둥거리 면 수능을 잘만 치겠다. 니들 서울에 있는 대학 안 갈 거가!"
"아 엄마 좀... 좀만 쉬자..."
"야이 가스나야! 너는 공부도 안 하고 쉬면서 좀만 쉰다고 그 지랄을 해샀나! 공부할 거 아니면 오빠방 들어가서 오빠 보고 밥 먹으러 오라 캐라!"
"아 알았다. 알았다. 소리 좀 그만 질러라. 갱년기가? 맨날 소리만 지르노"
"야 이 저 가스나! 못하는 말이 없노! 저 가쓰나 확 마!"
종인은 OO에게 행주를 국자를 던지려고 하는 혜정을 막아선다.
"엄마, 진정해라. 그걸로 맞으면 누나 머리 깨진다."
OO는 부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 체 2층에 올라가 준면의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한다.
똑, 똑, 똑
"오빠야, 엄마가 밥 먹으러 오래"
"....."
"오빠야, 자나? 좀 일어나봐. 엄마가 오빠야 좋아하는 잡채랑 돼지 두루치기 했는데 안묵을끼가?"
"... 내 안 묵는다. 니 혼자 다 묵으라"
훌쩍임이 가득한 준면의 목소리. OO는 준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준면이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는다.
"오빠야... 우나?"
"내 안 운다. 그냥 감기 걸려서 그런 기다."
"지랄, 내가 오빠야를 모르나. 오빠야 지난번에도 이렇게 울었다이가."
준면이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나 성을 낸다.
"내 안 울었거든! 문디 가쓰나! 왜 말을 지어내노!"
OO에게 성을 내고 다시 침대에 눕는 준면. OO는 준면의 옆에 누워 돌아누워있는 준면의 허리를 안는다.
"오빠야, 울지 마라. 오빠야가 슬프면 내도 슬프고, 인이도 슬프고, 엄마도 슬프고, 아빠도 슬프다.
수능 치는 게 이번이 마지막도 아니고. 이제 나도 고3되니까 오빠야랑 내랑 인이랑 셋이 같이 공부하면 되지."
"...니는 공부 안 하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하면 한다. 내가 인이 기 안 죽이려고 못하는 척하는 거지."
주면은 OO의 말에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려 OO를 쳐다본다.
"웃기고 있네. 그런 애가 수학을 19점 맞아오나?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에이 그것도 일부러 그런 거라니까"
"글나? 그러면 믿어줄게. 그 대신에 다음 시험에서는 수학 90점 이상 받아오면 그때는 진짜 인정해줄게."
"껌이다. 껌. 두고 봐라 내가 딱 90점 받아온다."
"그래, 함해봐라."
밑에서 OO과 준면을 부르는 혜정을 소리에 '예' 하고 대답하고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가는 준면.
"엄마가 부른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우리 밥순이 밥 많이 먹어야 수학 90점 받아올 거 아니가."
"하모하모, 내가 밥 많이 묵고 전교 1등도 해올끼다."
준면은 OO의 말에 웃고는 OO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식탁에서는 단란한 가족의 웃음소리만이 들려왔다.
OO와 친구들이 자주 가는 카페에는 민하 혼자만 덩그러니 앉아 삐삐를 손에 쥐고 안절부절못하며 앉아있다.
얼마 후 까만 야구모자를 쓴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이내 민하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와 민하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민하를 쳐다본다.
경수다.
"많이 기다렸어? 미안, 우리 형이 나한테 심부름을 시켜서 그것 좀 하고 오느라 늦었어.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나도 방금 왔어."
민하가 경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정적이 이어진다.
경수가 정적을 깨며 말했다.
"... 근데 궁금한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민하가 먼저 정적을 깨었다.
"저.. 경수야. 혹시 여자친구... 있어...?"
"아니, 없는데."
경수의 대답에 수줍게 웃는 민하.
"... 그러면... 내가 네 여자친구 해도 돼..?"
".. 응? 여자친구?"
"응.. 여자친구.. 내가 경수, 너를.. 너를 좋아하는 거 같아."
볼을 붉히며 수줍게 말하는 민하와 놀란 눈으로 민하를 멍하게 쳐다보는 경수.
경수는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근데 어떡하지.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응, 너도 잘 아는 사람인데... 백현이는 알고 있어서 너한테 말한 줄 알았는데 몰랐구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백현이가 말 안 해줬는데... 누구야..? 혹시... OO이야?"
"... 응, 맞아. OO이야."
"아.. 그, 그래? 아 미안해.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미리 말해 줬어야 했는데."
"아니야.. 괜찮아. 나 삐삐 울린다. 나.. 먼저 가볼게... 나와줘서 고마워."
"어, 아니야. 먼저 들어가. 내일 보자."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하며 카페를 나와 무작정 시내를 걷는 민하.
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로 나오자 눈물을 뚝뚝 흘린다.
'왜.. 항상 나는 안되는 건데...'
이렇게 인어 공주의 짝사랑은 수만 개의 거품 방울이 되어 바다에 스며 들었다.
그때의 하늘은 쓰라린 상처가 생겨 피가 흐르는 인어 공주의 마음같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쿠헬헬헬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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