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애 박지훈 X 평범한 너듀]
w.529
1. 포도향
"야, 방금 나 쳐다본 거 맞지?"
"누나 잘 먹는 거 봐 개귀여워..."
알겠으니까 제발 작게 좀 말하면 안 될까....?
밥을 먹다 말고 들리는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박지훈이 지칭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한 듯 아이들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웅성거렸고,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곤 밥을 마저 먹기 바빴다.
먹던 밥도 다시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신경질적으로 소리의 근원지, 그러니까 내 맞은편 테이블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박지훈을 쳐다보자 뭐가 좋은지 활짝 웃어 보인다.
그만 쳐다보고 밥이나 먹어줄래? 라고 말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내 성격을 탓하며 신경질적으로 보던 시선을 거두고 억지로 방긋 웃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밥을 먹었다.
곧 내가 밥을 다 먹고 일어서면 일어날 일들이 벌써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아 작게 웃자, 건너편에서 박지훈의 욕설이 들린다.
아, 웃은 거 취소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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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오늘 누나 기분 안 좋아 보여서 초코우유 샀어요. 저 잘했죠?"
"...고마워, 잘 먹을게."
"누나 오늘도 야자 해요?"
"응, 너는?"
"저는 오늘 약속. 대신 이따가 데리러 올게요."
안 데리러 와도 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박지훈이 당장이라도 날 끌고 가 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해요.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말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니 박지훈이 마음에 든다는 듯 웃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그 손길이 퍽 다정하다고 느꼈다.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
9시 30분. 야자가 끝나기 30분 전임을 확인한 후부터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박지훈이 신경 쓰였다.
올 거면 차라리 10시까지 오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항상 30분이나 일찍 와서 날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는 쟤도 참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계를 확인한 후 가방을 챙기고 있는 나도,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헐, 누나 오늘 왜 이렇게 일찍 내려왔어요? 어디 아파요? 교문 앞에서 폰을 만지작거리는 박지훈의 어깨를 툭툭 치니 놀란 얼굴을 하고 날 쳐다본다.
날 향해 우수수 쏟아지는 질문들과 이마를 짚어보는 손길에 미처 대답할 생각도 못 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겨우 입을 떼 안 아파. 라고 대답을 하자 심각했던 표정이 금세 풀어진다.
그 모습이 강아지 같아 나도 모르게 웃었더니 박지훈이 마주 웃어준다.
"왜 웃어?"
"누나가 웃잖아요."
"....야, 그런 말 좀....!"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에 볼을 감싸고 박지훈을 지나쳐 집 방향으로 걸어가자 아 누나- 라며 나를 쫒아온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별 영양가 없는 얘기를 하며 나란히 걸어가던 도중, 무심코 본 박지훈의 왼쪽 얼굴에 작게 생채기가 나 있었다.
너 얼굴이 왜 이래? 놀란 내가 묻자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며 정말 아무것도 아닌 듯 대답하고는 걸음을 빨리한다.
분명 어디서 또 싸우고 온 게 분명한 박지훈의 팔을 붙잡아 근처 공원으로 끌고 가 벤치에 강제로 앉혔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가방을 한참 뒤적여 밴드와 상처연고를 찾고는
날 빤히 쳐다보는 박지훈에게 얼굴 좀 당겨봐. 라고 하자 내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입술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 당황한 내가 어깨를 밀자 생각보다 쉽게 물러난다.
장난치지 마... 작게 말하고는 상처 연고를 손가락에 조금 짜서 볼에 발라주는데 따가운지 아, 아! 소리를 내길래 따가워? 물으니 아니요, 장난. 이라 대답하며 씩 웃는다.
아, 또 당했어. 딱히 대답해줄 필요성을 못 느낀 내가 다시 연고를 바르는데 집중하자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계속 웃음을 흘리는 박지훈 때문에 괜히 귓가가 간지러워서 웃지 마. 라며 핀잔을 줬다.
박지훈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게 흠이겠지만.
내 나름대로 치료를 다 끝내고서 뒷정리를 하는데 박지훈이 다급하게 내 손목을 잡길래 눈짓으로 왜냐는 듯 물으니 나, 여기도 다쳤는데. 라며 손끝으로 부르튼 입술을 가리킨다.
입술은 또 언제 이랬대. 속으로 생각하며 또 다시 가방을 한참 뒤적여 동생이 언젠가 넣어놓은 립밤을 꺼냈다.
아, 근데 하필 뽀로로 립밤일게 뭐람.
"누나, 뽀로로 좋아해요?"
"아, 그런거 아냐. 이거 그냥 동생이...!"
"알아요. 귀여워서 그래, 귀여워서."
".....볼 꼬집지 말라고..."
"어, 누나 얼굴 빨개졌다."
"놀리지 마..."
내 반응이 그렇게 웃긴지 배까지 잡고 웃은 박지훈이 내가 자기를 흘겨보고 있단 걸 눈치채고 웃음을 그치고 내 코앞으로 얼굴을 훅 들이민다.
이에 질세라 내가 그 상태 그대로 립밤 뚜껑을 열고 박지훈의 입술에 발라주니 포도향이 솔솔 올라온다.
몇 번 문지르다가 뚜껑을 닫았는데도 박지훈이 그대로 날 쳐다보고 있길래 왜 쳐다봐. 라고 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이었다.
박지훈이, 나한테 입술을 맞댔다.
놀래서 눈을 크게 뜬 날 보고 입술이 맞닿은 채로 웃음을 짓던 박지훈이 손으로 내 눈을 가려준다.
얼떨결에 눈을 감게 된 내가 박지훈의 마이 끝자락을 잡으니 박지훈이 고개를 꺾어 더 진하게 파고든다.
처음 해 보는 키스에 심장이 뛰는 건지, 그게 박지훈이라 심장이 뛰는 건지 구분도 안 되는 상황에 애꿎은 마이 자락만 쥐었다 놓았다 하길 여러 번, 내 입술을 한번 강하게 물었다 놓은 박지훈이 아직도 어리둥절한 날 보고 옅게 웃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입가를 닦아준다.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에 침만 삼키는데 박지훈이 말을 건넨다.
"누나."
"..."
"저랑 사귈래요?"
"...어?"
"잘해줄게요. 이제 학교도 꼬박꼬박 나올게."
"...."
"어, 그리고 머리도 다시 염색해올게요. 오늘처럼 싸우지도 않고, 공부도 누나따라 해볼게요."
풉, 박지훈이 무슨 엄마한테 허락받는 7살 어린이마냥 줄줄 말하는 걸 보다 결국 웃음이 터졌다.
내가 웃는 걸 보고는 확답을 받아내듯 누나, 사귀는거에요. 알겠죠? 묻는 박지훈에게서 미약한 포도향이 나서 나도 모르게 기분좋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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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결국 저질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처음으로 글잡에 글을 올려보네요!
이거 사실 리네이밍아닌 리네이밍같은 리네이밍이에요.....(민망)
능글거리는 연하 지후니가 보고 싶어서 써봤습니다! 지후니 데뷔해ㅠㅅㅠ
원래 한편에 다 끝내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길고, 나누자니 짧은 것 같지만 일단은 나눴어요!
아마 3편 이내로 끝이 날 초초초초단편입니다....^^
오타나 수정부분 지적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