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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펫ll조회 2613l 1
이 글은 7년 전 (2016/10/01) 게시물이에요

듀스 김성재가 살아생전 직접 신문에 연재한 에세이 1화 -외국에서 자란 나 | 인스티즈

현도가 오디오담당이라면 나는 듀스에서 비디오담당이라고 할 수 있다.

안무부터 시작해서 의상, 메이크업 등 코디를 맡는다. 듀스의 음악이 감상용이라기보다는

보면서 함께 즐기는 음악이라 눈에 보이는 부분은 그만큼 비중이 크다. 

듀스만의 개성을 부각시키면서 성공적인 데뷔와 계속 인기를 얻은 데는 독특한 패션과 외모가

한몫 단단히 한 것이 사실이다. <나를 돌아봐>로 데뷔할 당시 체크무늬 옷을 입고 나왔었는데

강남지역 옷가게는 우리 같은 옷을 사려는 신세대들이 몰려 매상이 80% 가까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내가 항상 비디오를 꾸미는 노하우는 파격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예컨대 초록색과 빨강은 어울리지 않아 함께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나 그 색깔을 잘 조화

시키면 절대 촌스럽지 않고 신선 그 자체이다. 듀스가 다시 등장할 때는 또 한차례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드릴테니 기대하시라. 그러면 색깔 잘 맞추고 춤 잘 추는 나 김성재의 오늘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과거로 돌아가 보겠다.

 

듀스 김성재가 살아생전 직접 신문에 연재한 에세이 1화 -외국에서 자란 나 | 인스티즈

 

태어난 것은 1972년 4월 18일 부산 서구 부민동이다. 아버지는 고려대 법대를졸업하신 후

무역관계 사업을 하시던 김수흥씨(51), 그리고 어머니는 이대 교육학과를 나오셔서 일어교사

이신 육영애씨(49)인데 이분들은 지금도 같은 일을 계속해오고 계신다. 내가 출생한 2년에는

남동생 김성욱이 태어났고 현재 명지대 건축과에 재학중이다. 즉 나는 2남중 장남이라는 이야기

이다. 어머니는 나를 잉태하셨을 때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나는 태몽을 꾸셨는데 여의주

안에 내가 있었단다. 내가 여의주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일어교사 자격증은 물론 꽃꽂이, 기계체조,

피아노교사 자격증 등 거의 자격증 따는 일이 취미활동일 정도인 어머니가 용인 것은 확실하다.

가수로서의 재질이 돋보이기 시작한 것은 5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기억이 나고 어머니도 가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음악만 나오면 무조건 흔들어 대며 따라했다. 당시에는 소위 통기타

가수들의 포크음악이 한창 유행하고 있었고 나는 어니언즈의 <편지>를 가 막히게 노래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체 얘가 자라서 뭐가 되려고 이럴까"하고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내가 오늘날 인기 듀오 듀스의 일원으로 뛰고 있는 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드러내놓고 노래한다는 말은 하지 않지만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아버지의 노래솜씨는 한마디로 '가수 저리 가라'라고 한다. 어머니도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다가

우연한 모임에서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는 너무 놀랐고 좌중에 있던 분들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

였다고 한다.

듀스의 비디오를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 했는데 이 감각은 어린 시절 외국을 돌며 이것 저것

보고 느낀 것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창 노래부르고 춤추며 찧고 까불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한국중공업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영국지사로 발령이 나 우리식구 모두 영국의 런던으로

떠나야 했다. 약 1년간 우리식구는 영국에서 살았고 다시 아버지가 본사로 귀환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 휴가를 얻어 유럽, 홍콩, 일본여행을 다녔었다.

항상 안개가 끼어 음산하게 느껴지는 영국 런던거리에서부터 온갖 사람들의 문화전시장 같은

유럽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흥청망청대는 듯한 홍콩, 그리고 아기자기한 일본의 거리등이 감수성

예민한 가슴에 새록새록 배어들었다.

한국생활도 잠깐 국민학교 3학년 때까지 대도, 대치, 언북 등 세 학교를 옮겨다니던 나는 아버지의

일본지사발령이 나는 바람에 일본으로 또 떠나야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고1때까지 6년간은 일본에서 살았다. 이기간은 일생에있어 언제까지든

기억에 생생히 남을 시간들이었다. 일본에서 보냈던 기간은 그야말로 '김의 전쟁'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이라고 박대하고 놀려대는 일본아이들과 싸우고 또 혼내주었다.

일본으로 살러간다고 부모님께 처음 이야기 들었을 때는 정말 싫었다. 하루 이틀 여행가는 것은

좋지만 그곳에서 오랜동안 생활해야 한다고 하니 싫었다. 정든 친구들과 또 선생님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싫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도 있었다.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일본 어린이를 '빠가, 빠가'하며 무척이나 놀려댔었는데 이제 내가 일본에

가면 거꾸로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걱정한대로 그것은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일본에 가자마자 부모님은 재일동포 학생들만 다니는

동경한국인학교를 알아봤으나 그 학교는 워낙 정원이 적어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빈 자리가

나면 연락을 받기로 하고 우선 일본인학교인 우에하라국민학교라는 곳으로 들어가야 했다.

가는 날부터 일본아이들의 눈초리는 차가웠다. 특유의 정 안가는 눈으로 슬슬 눈치를 살피더니

마침내 한 친구가 시비를 걸어왔다.
"조센징" >

일단은 아무 대꾸 않고 참았다. 그러나 그렇게 놀려대는 친구가 하나둘 늘기시작하더니 너도 나도

"조센징"이라고 약을 올리는 게 아닌가. 아이들의 면면을 보다가 가장 덩치가 좋고 리더급으로

보이는 친구를 조용히 불렀다. 운동장으로 끌고 나가 사정없이 두들겼다. 아이들이 교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그 현장을 목격하고있었다.

이날 이후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김의 전쟁'은

계속됐다. 여기서 한가지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식생활개선을

빨리 해 체격도 크고 체력이 앞서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

이다. 대부분 나보다 왜소했고 힘도 약했으며 무엇보다도 더 비교가 되는 것은 정신력에 있어서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고 할까. 내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와

그전의 태도는 큰 차이가 있었다.

듀스 김성재가 살아생전 직접 신문에 연재한 에세이 1화 -외국에서 자란 나 | 인스티즈
같은 학교에 다니던 2살 터울의 동생 성욱이도 나와 비슷한 경우였다. 성격이 착한 동생은 일본

아이들이 '조센징'이라고 놀리는 것을 참을 만큼 참았으나 어느 날 배설물을 들고 와 얼굴에

들이대는 것까지는 견딜 수 없어 그 친구를 한 방에 뉘어버렸다고 했다.

우리형제는 일본학교에 다닌 지 약 3달만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우리를

'김씨형제'라는 뜻의 '키무 교다이'로 불렸다. 성가시게 하는 친구들을 멋지게 격퇴한데다

교내에서 열리는 체육행사에 나가기만 하면 항상 달리기, 높이뛰기, 멀리뛰기 등은 도맡아

우승은 우리차지였고 우리말이 아닌 국어 (일본어)를 제외하고 특히 산수는 일본학생들과

상대가 되질 않았다.

이때 또 한가지 인기를 끌었던 것은 미술 솜씨였다. 국민학교 6학년 때로 기억된다.

미술선생님께서 미래에 살고 싶은 집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다른 학생들은 대충 집 모양

비슷하게 꾸며놓고 앉아있었지만 나는 집안의 가구, 계단까지 오밀조밀하게 다 엮어냈다.

선생님은 이 작품을 교단 앞으로 내놓았고 아이들은 감탄한 듯 많은 박수를 쳤다.

서투르던 일본어가 우리말처럼 익숙해지듯 어느덧 일본생활도 약간씩 재미가 생기고 있었다.

물론 그 재미 중 하나는 못된 일본친구들을 혼내주는 일이었다.

일본 우에하라 국민학교 시절 나는 일본친구들 사이에 '키무'로 통했다. 일본인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는 동경 한국인 중학교에 입학하려했으나 이때도 국민학교 편입했을 때처럼 자리가

없었다. 결원이 생기면 꼭 불러달라고 하고는 입학한 곳은 세인트 메리스 인터내셔널 스쿨

(Saint Marry's International School)이라는 외국인 학교였다. 이 학교는 미션스쿨로

세계적인 체인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그 규율이 보통 엄한곳이 아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도 이 학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학교 시절 일본아이들을 혼내주며 자란 못된 성격은 중학교에 다니면서 더욱 만개(?)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잔인할 정도로 못되게 굴었을까 후회도 된다.

아마도 그때 그랬던 것은 일본아이들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공격을 당하며 싹텄고 어쩌면 못된

성격이 그들로부터의 방패막이었는지 모른다.

다국적 학교인 세인트 메리스 인터내셔널 스쿨에는 친하게 지내던 터키인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걷잡을 수 없던 내성격의 대표적 희생물이었다. 바트라이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어느 날 2만엔을

꿔갔는데 3달이 지나도록 갚지 않는 것 아닌가. 바트라이는 나만 보면 슬슬 피해다녔고 참다못해

그 친구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의 어머니가 집에 있었고 나는 "당신 아들이 꿔간 돈 내놓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집안 환경을 보아 2만엔 정도가 없을 것 같진 않았는데 그 어머니는 돈이 없다며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나는 야구방망이를 들어 2만엔 어치를 때려부쉈다.사고를 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바트라이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숨어서 쳐다보고 있었다. 내친김에(?) 바트라이까지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겼다.

 

김성재 에세이(1) - 외국에서 자란 나|작성자 파란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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