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이상하다.” “....응?” “너 로빈이랑 친하잖아. 우리 반... 아니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친할 걸?” 뜬금없는 친구 -이 반에 로빈말고 유일한 친구- 의 물음이였다. 사실 학교에서라는 말은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면 학교의 전체 학생이 로빈을 안다는 소리인가?- 로빈은 외국에서 왔기 때문인지, 잘생긴 외모 덕분인지 전학 첫날부터 로빈을 보러 온 사람 때문에 반이 엉망이였으니. 그러고 보면 로빈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옆집으로 이사온게 계기였으니.. 아.. 갑자기 다시 생각하니깐 신기하다. 옆집으로 이사 온 외국인이라니. * 띵동- 하는 벨 소리에 올 택배가 없다는 걸 알지만 무의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건... 떡을 든 외국인?
“아녕하세여..” 그 때의 로빈은 지금보다 발음이 어눌했었다. 하지만 그 땐 발음 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갔다. 요즘 한국인도 잘 돌리지 않는 -사실 우리 집도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떡을 돌리지 않았다- 떡을 들고 왔다는 것에. “......이사 오셨어요?” “네..? 아.. 네.” 아.. 대답할 땐 발음이 정확하네. 웅얼거리는 발음이 귀엽다고 느껴졌었는데... 한 번 더 듣고 싶어 괜히 당연한 것이지만 물어본건데.. “그릇은 제가 씻어서 드릴게요.” 집 주소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 층에서 다른 사람이 새로 들어올 수 있는 빈 집은 옆집 말고는 없으니깐. 그릇을 씻어서 옆집에 가져다 주면서 로빈과 나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자연스럽게 친하게 된 것엔 같은 나이가 한 몫을 했겠지만- 그리고 얼마 후 로빈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로빈이 전학을 온 날 학교는 난리가 났었다. 외국인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그 외국인이 잘생겼다는 소문에. 이번년도만 해도.. 로빈에게 고백한 여자애들이 몇 명이더라..? 아무튼 이게 벌써 작년 일이라니.. 새삼 세월이 빠르다는 걸 느꼈다. “....ㅅ...아” “......ㅈ....상..아” “정상아!!” 아.. 깜짝이야. 잠시 로빈과 처음 만났던 생각을 했더니 어느 새 친구의 말에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대답이 없자 이상하게 여긴 친구는 날 봤을거고. 얼마나 예전 생각에 빠졌으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못 들은거지... “......응? 미안. 잠시 딴 생각 하느라... 뭐라고 했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아무튼 정상아! 너 로빈이랑 되게 친해서 항상 붙어다니잖아. 그럴 때 넌 로빈한테 설렌다거나, 막.. 그런거.... 없어?” ....이상한 질문이다. 로빈에게 설렌다니?.로빈이랑 난 친구인데? 의아하게 여긴 난 질문을 한 친구에게 되려 물었다. “.....음?.......있어야 해...?” 어휴- 눈이 얼마나 높은 거야! 옆에서 외치는 친구의 말은 한 귀로 흘리고 내 자리 보다는 앞에 앉아있는 로빈을 쳐다 봤다.
음...? 로빈을 안 좋아하는 게 이상한건가..? * “로빈.”
“응. 정싱아.” 로빈을 부르고 쳐다보는데.. 음..... 잘생겼네. 새삼스럽게. “로빈. 몰랐는데.. 너 되게 잘생겼다. 눈도 이쁘고, 코도 오똑해. 와... 넌 남자애가 피부는 또 왜 이렇게 좋아? 심지어 하얘. 그리고 지금 보니깐.. 너 키도 되게 크다. 공부도 잘 하는 편이고.” “.....어?” “아니.. 오늘 있잖아......................” 평소라면 응 오늘. 하면서 내 말에 맞장구를 쳐 줄 로빈인데 들려오는 소리가 없어서 옆을 보는데.. 없..다? 뒤를 쳐다보니 벙진 로빈의 얼굴이 보인다. 뒤로 걸어가서 로빈을 살피는데, 내가 한 말에 로빈은 꽤나 당황했는지 귀가 살짝 붉게 물들기까지 했다.
갑자기 칭찬한게 그렇게 부끄럽나..? 왜 저렇게 당황하지? 너무 뜬금없어서? 하긴.. 갑자기 저런 말을 들으면 나라도 당황하겠다. “어유- 귀여워. 당황했어? 내가 칭찬해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고맙습니다- 하며 내가 배꼽인사를 하는 시늉을 하자 방금까지도 멍하던 로빈은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한다. 아.. 정상아.. 너 진짜 귀여워. ......응? 이런 반응을 원한 건 아닌..데? 갑자기 귀엽다는 말을 하면... 고맙다! “나 귀여운 거 이제 알았어? 난 원래 귀여운데?!” 내 장난에 로빈은 웃으며 내 볼을 잡고 이리저리 늘리기 시작한다. 우어.. 로비..ㄴ.... 아픙데.. 뭉개지는 내 발음에 로빈은 더 크게 웃었고.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평소처럼 하교를 하고, 집에 가선 익숙하게 로빈과 카톡을 했다. 음... 오늘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새삼 로빈이 잘생겼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은 것.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 그런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뭐지.... 로빈과 항상 같이 등교를 하기 때문에 오늘도 같이 등교를 하고 있었고, 학교 건물에 들어와 복도를 걷고 있을 때 였다. 그런데 갑자기 모르던 여자아이가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대뜸 잠시만 자리 좀 피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였기에 당황한 난 어...어? 라는 누가 들어도 나 당황했어요- 를 티내고 있었고, 혼자 교실을 들어갔다. ....꼭 고백할 것 같은 분위기 였는데..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친구는 응? 하고 물었지만, 친구에게 내가 한 말을 함부로 말 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나도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혼란스러우니깐. 로빈이 고백을 받는 건 분명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근데 오늘은 왜 이런 기분이지..... 어느새 들어온 로빈을 보는 난 울상이였다. 로빈은 바보같이 내 마음도 모르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어보였고, 난 고개를 숙여버렸다.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였으니깐. * 로빈. 아침에 무슨 일이였어? 좋아. 자연스러웠어. 최대한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냥 툭- 말을 뱉었다. 근데 로빈은 왠지 표정이 이상했다. 로빈 특유의 재미있다거나 궁금할 때의 표정이였다. 갑자기 왜 저런 표정인 거지? 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 다음 말에 난 소리를 질렀다. 고백 받았거든. 뭐....? 고백?!!!!!
갑자기 소리치는 나 때문에 로빈은 눈이 커져서 날 바라보았고 뭐라고 답을 했냐는 내 물음에도 아까 고백을 받았다고 한 것 같이 담담하게 말했다. 거절했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이번엔 내 눈이 커졌다. 좋아하는 사람...? 아... 안 되는데... 내가 왜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로빈이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 그 날 이후로 왠지 난 로빈을 피하게 되었다. 등교와 하교도 등교는 평소보다 일찍, 하교는 평소보다 늦게 하면서. 며칠간은 로빈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로빈이 화장실에 가려고 나서는 내 손목을 잡았다. 쉬는시간이였기에 난 또 화장실을 가려고 했다. 로빈이 고백을 받은 날 이후부터의 로빈을 피하기 위해서 내가 하는 행동 중의 하나였다. 내가 로빈을 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로빈을 보면 계속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으니깐. 정상아.. 내가 잘못한 거 있어? 아니야... 그런 거 없어. 그러면 정상아. 왜 나 피해? 로빈도 내가 피하는 걸 느겼구나. 그리고 잘못이라면 나에게 있었다. 난 지금 친구 사이에선 느껴서는 안 되는 기분을 느끼고 있으니깐. 이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로빈을 안 보고 지내는 게 제일 옳은 선택이라고 나는 여겼다. 정상아.. 나 피해도 되니깐 오늘은 집에 같이 가자. ..어?.. 어.. 피해도 된다니.. 정작 피해다닌 건 나지만 왠지 서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너랑 난 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 라고는 하지만 싫다. 로빈과 꼭 친구여야 하는걸까? * 정상아. 나 저번에 좋아하는 애 있다고 했잖아. ..응. 로빈은 갑자기 저 얘기는 왜 꺼내는 걸까? 설마.. 내가 좋아하는 걸 눈치챈.. 거절..? 아.. 그러면 난 이젠 완벽히 로빈과 남이 되는 거겠지? 앞으론 이렇게 하교도 같이 못 하겠고. 아... 진짜 상상하기도 싫은 미래다. 그거 너야. “...응. 그렇구나. 로빈이 좋아한다는 애가 나였구나. .............나...?!” “응. 정상아. 나 너 좋아해. 사실 그 동안은 내가 고백하면 네가 피해다녀서 너랑 멀어질까봐..............” 로빈이 하는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로빈이 나를 좋아한다니? 언제부터? 그러면 로빈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때 왠지 친구의 말이 들리는 듯 했다. 뭘 어떻게 되는거야. 사귀는 거지. 하고. “로빈. 나도 너 좋아해. 사실 너 피한거도.....”
“괜찮아. 내가 애인의 그런 점도 이해를 못 해주겠어?” ...애인? 아..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듣기 좋은 말이다. 애인. 근데.. 그런 점이라니? 내 표정을 읽은 건지 로빈은 말했다. 둔한 거. “니 친구가 최근에 이상한 질문했잖아. 그거 내가 부탁한거야. 난 너랑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었지만 넌 안 그럴 수도 있고. 근데 네가 날 피해다니니깐 이상하게 확신이 생겼어. 그래서 고백한 거야.” 그게 처음부터 로빈의 계획이였다니.. 헐.... 일단 친구를 불러서 피자라도 사줘야지.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깐.. 이런 고마운... 내 마음을 깨닫게 해줬으니깐. *
좀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로빈과 난 사귀게 되었다. 사귄다고 하지만 달라진 건 없.. 아 조금 달라지긴 했지. 이젠 등교할 때 라던지 하교할 때 라던지 손을 잡고 걸으니깐.
내가 내 마음을 빨리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로빈 Je t'aime
초록글 고마워요 아벨라 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