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수만의 1호 가수였던 현진영...미국에서 힙합장르의 가능성을 본 이수만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현진영을 발탁함.
현진영은 이수만이 프로듀싱했던 "슬픈 마네킹"으로 단숨에 그 당시 대세였던 박남정의 라이벌이 됨.하지만 1991년 현진영은 대마초혐의로 구속됨. 폭삭망함.이수만은 현진영 옥바라지 다 해주고 부모님 생활비까지 지원해줌.그리고 다시 현진영에게 기회를 줌.당시 1992년 서태지가 가요계를 휩쓸고 난후 1992년 8월 현진영의 2집 흐린기억속의 그대 발표 . 초대박이남 1993년 이수만은 현진영의 3집 "두근두근 쿵쿵"을 발표하며 서태지와의 정면 대결을 펼침 하지만 발표한지 일주일만에 현진영은 필로폰 투약 혐의로 다시 구속되고 방송정지 당함.이수만은 사력을 다해 현진영을 띄웠으나 그 때마다 대마초와 필로폰으로 무너졌고 결국 최종적으로 서태지가 이수만과의 힙합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하게됨.힙합 경쟁에서 패한 이수만은 이후 아이돌을 키움 . 그리고 무엇보다 인성을 중시하게됨. 뽑을때 생활기록부는 필수로 봄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e=bestofbest&no=118204&s_no=118204&page=1(현진영, 서태지, 이수만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90년대 가요사)<대마초피운 현진영에게 이수만이 한말>....그는 이태원의 나인트클럽 무대에서 아르바이트로 춤을 추던 그를 정식으로 데뷔 시킨 프로듀서였다.`슬픈 마네킹`이 이수만과 현진영이 합작해 빚어낸 성과물이다. 이태원의 춤 잘 추는 소년 현진영에게 던진 초보 프로듀서 이수만의 첫마디, "앞으로 생활비 걱정하지 말고 연습이나 열심히 해라"2년간의 혹독한 준비 끝에 성공적 데뷔를 이룬 현진영은 어둠의 유혹에 넘어가 대마초를 흡입하고 만다." 진영아, 몸은 괜찮니? 많이 놀랐겠구나. 어떡하다 이런 짓을 했니? 어째든 엎질러진 물이니까 당당히 죗값을 치르거라. 밖에서도 이번 일에 대해서 많이 힘쓰고 있으니까 조그만 고생하면나올 수 있을 거다. "근래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매정한 이미지의 `돈수만`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모습이다. 고정관념이 이래서 무겁고 무섭다.현진영은 구치소에서 사회에서는 감히 꿈도 못 꾸었을 수모를 경험한 다음에야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출소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기획사 사장인 이수만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자신을 버리지나 않을까 너무도 걱정이 되었던 거였다. 매니저가 운전하는 자동차를타고 회사로 향하던 현진영이 차안에서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전전긍긍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가고도 남을 지경이다. 그러나 이수만은 다시금 `대인배`스러운 풍모를 보여줌으로써 현진영을 감동시킨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차마 고개를 못 들고 사과하는 현진영에게 이수만은 "그래, 됐다. 네가 정말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면 됐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앞으로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해야 한다. 재기를 하려면 지금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거다. 앞으로 지켜볼 테니까 열심히 해라. 그동안 고생 많았을 테니 집에 가서 좀 쉬어라."박준희 씨의 책에 실린 현진영의 회고담을 계속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