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몇 년 만이더라. 동창이었던 한 녀석이 문자가 왔다. 잘 지내냐는 안부를 시작으로 9시에 그 술집에서 보자. 나는 알겠다는 응답을 하고 침대에 몸을 던져 중얼거렸다. 그 아이도 올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도서관에 자주 갔다.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책을 가까이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도 쉬는 시간, 점심시간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가느냐, 그렇게 안 봤는데 너도 참 순정파다. 안 어울리게. 친구들의 농담에도 나는 화 한 번 못 내고 발걸음을 바삐 했다. 혹시라도 네가 없을까 봐. 햇살이 잘 비추는 곳에 위치한 도서관. 나른한 햇살 속에 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책 넘기는 소리뿐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소파에 기대어 책을 넘기는 너를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 내가 책 한 권을 들고 데스크에 가까이 가면 푸드득 일어나 데스크로 뛰어서 책에 바코드를 찍고, 나에게 건네어 주는 모습이 여간 예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손이 닿일까 걱정 하던 순간, 내민 손이 닿았고 그 순간 화상이라도 입은 거 처럼 그 부분만 화끈거렸다. 멍 하니 홀린 듯 도서관을 나서면 서도 그 부분이 점 점 두근거렸고 반으로 들어서자 친구 녀석의 야, 너 얼굴 엄청 빨갛다. 라는 말이 왜 이렇게만 간지럽게 들렸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느순간 도서관에 들어섰을때 그 아이가 데스크에도, 항상 책을 읽던 소파에도 보이지 않자 나는 묵묵하게 책 하나를 가져와 그 아이가 항상 있었던 소파에 가 앉았다. 보고 싶다. 절대 하지 못할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눈물이 핑 돌아 책에 얼굴을 묻었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빌린 책은 결국 반납하러 가지 못했고 그렇게 내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은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약속한 시간에 술집에 도착하여 동창을 찾았다. 정말 몇 년 그 사이에 동창의 얼굴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볼 수 없었던 성숙이 묻어나 있었고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야, 너 기억하냐. 너가 맨날 그 애 본다고 도서관 갔었잖아. 동창의 기습적인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렇지. 기억 해. 내 대답에 동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주를 집어 먹더니 결국 손바닥에 얼굴을 푹 가려버리고는 그 묻힌 손바닥 사이로 웅얼 거리며 말을 꺼냈다. 걔, 얼마전에 죽었단다. 자살로.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죽다니, 걔가? 왜. 무슨 이유로 자살 한 거래. 동창은 한숨만 푹 쉬어대더니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제 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그 말을 다 듣지 못했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술집을 나가버렸다. 한참을 위태롭게 걷다가 결국 얼굴이 눈물 범벅인 채로 집에 들어갔다. 곧장 향한 곳은 방 한 구석의 책꽂이. 그리고 모교의 이름과 바코드가 찍혀있는 그때 돌려주지 못했던 책.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책을 열었다. 그 날의 추억이라도 떠오를까 싶어서. 그리고 여는 순간 떨어진 작은 종이. 대출명부에 적힌 네 이름과 바로 밑의 내 이름. 내 고등학교 시절은 아마 전부 너였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툭 툭 떨어지기 시작했고 네 이름과 내 이름이 적힌 말라빠진 잉크가 번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