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둘은 매일 같이 강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닝의 연주를 들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레 강당에 와서 서로가 오길 기다렸다.
“내는 이게 제일 좋다.”
아츠무가 처음 주웠던 악보를 닝에게 보이며 말했다.
“드뷔시의 달빛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
닝이 살짝 웃으며 익숙한 선율을 연주해가기 시작했다. 몇번이나 들어도 질리지 않는 연주에, 아츠무가 평소처럼 눈을 감았다 닝의 얼굴로 시선을 향했다.
연주를 하고 있는 닝의 얼굴을 볼 때면 감은 두 눈 위에, 하얀 콧등 위에, 도톰한 입술 위에. 제 입술이 닿았다 떨어짐을 항상 상상했다.
연주를 끝낸 닝이 고개를 돌려 저와 눈을 마주할 때면, 아츠무는 두근거림에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닝이 싱긋 웃고는 아츠무의 손가락을 들어 건반위에 살살 올려 놓았다.
“쳐봐, 가르쳐 줄게.”
닝은 아츠무의 두 손 옆에 나란히, 제 손가락들을 올려 놓고서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닝이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하얀 건반을 눌러대던 아츠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게 젓가락 행진곡. 같이 쳐보자.”
닝이 반주를 치기 시작하자, 아츠무가 긴장한 듯 침을 삼키더니 닝이 가르쳐준 대로 건반을 눌러보기 시작했다.
하얀 건반 위에 올려진 두꺼운 손가락이 어울리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 더 옮겨 옆에서 움직이는 닝의 하얀 손가락을 바라봤다.
“..아..”
열심히 움직이던 손가락이 꼬이고, 연주가 끊기자 아츠무가 아쉬운 듯 탄식을 내뱉었다.
닝이 살짝 웃고서 아츠무의 손가락을 하나씩, 원래 자리로 돌려놨다.
“이 손가락은 여기에, 엄지는 여기...”
순간 아츠무가 닝의 손을 덥석 붙잡고서 깍지를 껴왔다.
말을 멈춘 닝이 깍지껴 잡은 손을 바라보다 천천히 풀고는, 의자 위에 손을 내려놨다.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닝에 아츠무도 따라 웃더니 머쓱한 듯 제 뒷 머리를 긁적였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무대위에 걸터 앉은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갔다.
조용한 강당 안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져 나갔다.
“피아노, 다시 안칠끼가.”
“..응.”
아츠무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대신, 졸업하기 전까지 너한테는 많이 들려줄게.”
닝을 바라보던 아츠무가, 천천히 그녀의 얼굴에 다가섰다.
가까워지는 아츠무의 눈에 닝은 숨을 한 번 내뱉고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닝의 굳은 새끼 손가락을 슬쩍 잡은 아츠무가, 깍지를 껴왔다.
이번엔 피하지 않는 닝이었다. 깊어지는 숨결에 잠시 떨어진 두 입술이 예쁘게 곡선을 그리며 웃어보였다.
“이 손가락이, 제일 예쁘다.”
아츠무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닝의 두 눈이 다시 감겼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숨소리, 섞여오는 타액, 짙어지는 서로의 향기가 몸을 간지럽히던 그날은,
6월, 이른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