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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년 전 (2017/7/26) 게시물이에요

새벽 한 시에 나는 죽고 싶었다. 밤 열 시와 저녁 여섯 시에도 죽고 싶었다. 소설 페이지를 넘기며 감자튀김을 먹던 점심과 한껏 낄낄대며 웃던 학원에서도 죽고 싶었다. 죽음을 바람은 일상이고 안식을 쫓음은 치욕이다. 나는 새벽 두 시에 또 죽고 싶다. 나는 늘 죽고 싶다. 그러나 죽지 않는 것은 남겨질 가족이 슬퍼할까가 아니라 간사하고 이기적인 나 때문이다. 나는 존재조차 의심되는 지옥이 두려워 죽겠다 하지 않는다. 물론 단편적인 이유다. 머저리다. 

죄인과 죄인이 아닌 것으로 모두를 나눈다면 나는 두말 할 것 없는 이다. 혀도 손도 잘못 놀렸으니 당연하다. 나는 가장 순진하고 순결하다던 어린 시절에도 남의 금붙이를 도둑질했다. 까마득히 먼 기억에도 모든 것은 시야의 사각지대에 자리한다. 떠오르는 족족 나는 혼자다. 나는 모든 것을 알았고 모든 것을 행했다. 인간은 간사하다. 어쩌면 나만이 간사하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빙글빙글 돌린다.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자전한다. 힐리오센트릭 아닌 미센트릭이 옳겠다.

이기적인 나는 그래서 또 뭐가 아깝더라. 나는 내가 지금까지 아등바등 쌓아온 지식이 아깝다. 일년에 일억을 부으며 십일 년을 다닌 초중고가 아깝다. 내가 지금까지 써제낀 상상들이 아깝다. 홀로 구축해 왔던 세상들이 아깝다. 그리고 두렵다. 내가 만들어 낸 세상을 누가 들춰보곤 그것이 속 빈 강정임을 알아차릴까 봐. 나는 지금도 나만을 걱정한다. 이기심의 극치다.

차라리 미쳤을 때가 편했다. 그때는 무엇을 든간에 믿었다. 엄마가, 또는 아빠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눈을 하고도 동생이란 이름 아래 애써 이해하려 들던 오빠가. 시야에는 괴물이 번졌다. 눈을 감거나 뜨는 것으로는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놈들은 내 결핍도 약점도 알았다. 나는 그 이후로 바퀴벌레를 무서워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손바닥만한 벌레는 몸을 감싸안고 심장만이 남게 천천히 녹아내리던 괴생명체보다야 덜 자극적이다. 내 살점이 놈의 기도를 통과하던 느낌과 뼈마디가 와작 씹히던 느낌은 생생하다. 그렇지만 나는 죽을 때의 고통이 무섭다. 아픔은 익숙해질 수 없다. 대신 중첩된다. 둔감한 것은 이미 썩어 죽은 살이다. 나는 그럴 때면 분홍색 하늘을 찾는다. 현실은 까맣고 파랗고 하얗지만. 나는 소설 속 아이에게 내 고통을 투영한다. 그녀는 똑같이 좌절을 맛보고 나를 대신해 일어난다. 거짓투성이다. 모든 것은 거짓말이다. 허울 좋은 형용사로 뒤범벅한 문장들은 다 뻥이다.

아빠는 내가 너무 꾸미려 든다 했다. 분명 주어는 내 글인데 정작 모든 호통은 그걸 써내리는 내 를 친다. 아빠는 왜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단어로 애써 구색을 맞추는지 알까. 나는 무섭다. 간사하고 이기적이어서 모든 게 무너질까 무섭다. 그래서 예쁘고 고운 낱말들로 성을 장식했다. 무너트리는 대신 우러러보게끔 했다. 분홍색 솜이불로 하늘을 만들고 커피 얼룩이 번진 침대보를 대지 삼아, 나 혼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에서 몽상한다. 나의 세계. 그리고 나만의 세계. 그곳에서 나는 나를 관객 삼아 나를 말한다. 나는 이단자이며 몽상가고 지배자이자 창조자이니 내가 나를 거스르고 내가 나를 지지한다. 결핍은 삽시간에 번져든다. 나는 아직도 약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다시 두려움에 잠길 엄마의 얼굴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다시 병원에 갈 내가 불쌍해서다. 나는 아직도 이기적이다.

새벽 두 시 삼십삼분에 나는 또 죽고 싶다. 상상이 현실이라면 난 뼈조차도 남을 수 없다. 옥상에 처음으로 올라간 날의 밤공기는 차가웠고 도시는 단조로웠다. 그래도 새벽에 반짝이는 네온사인은 예뻤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이름은 죽고 싶은 날의. 낸시 시나트라의 뱅뱅과 오로라의 아이 웬트 투 파, 아그네스 오벨의 더 커스를 세 번씩 들었다. 제일 좋아하는 가사를 불렀다. Bang bang. My baby shot me down. I hit the ground. Bang bang. 소망이자 뜻이다. 그날 나는 새벽 네 시에 집을 나서 다섯시에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갈 때 나는 반쯤 고장난 철문을 열심히 닫았다. 쾅. 소리는 컸고 토끼는 놀란 마음에 열심히 도망쳤다. 대리석에 발톱이 긁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엄마는 밤귀가 밝다. 엄마는 토끼의 물 먹는 소리 하나에 깨는 사람이다. 엄마는 다음 날 아침에 웃는 얼굴로 내게 먹일 팬케이크를 했다. 그날 엄마는 새벽기도를 가지 않았다.

사랑하면 대신 죽어줄 수도 있단다. 당연한데. 갑절의 행복이지 않던가. 나를 위한 개죽음을 연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하니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벽 두 시 삼십구분에 나는 또 죽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세 시와 깨어날 아홉 시에도 죽고 싶을 것이다. 죽고 싶었고, 죽고 싶고, 죽고 싶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세쌍둥이가 되어 동일한 답을 내놓는다. 나는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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