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공부가 재밌냐?"
"..."
"이건 뭐야, 영어야 수학이야? 왜 수학에 영어가 나와?"
"..."
"이거는 뭐, 상형문자인가"
"..."
"목소리 존~나 귀하시네, 대답 안 해?"
"..."
"됐다, 재미없게"
툭, 한상혁이 뺏어갔던 문제집이 도로 내 책상 위에 돌아왔다. 나는 말없이 다시 연필을 쥐고 다시 문제를 풀어내려갔다. 옆에서 한상혁은 짝짝 껌을 씹고 있었다. 양아치 새;끼. 한심하다 진짜. 이러저러한 욕들은 속으로만 삼켰다. 반년만 버티면 된다. 이런 애랑 짝궁도, 진짜 딱 반년만 버티면 되는 거였다. 한상혁은 유명했다. 학교에서, 이 동네에서. 뭐 쌈박질로도 그랬지만 얼마나 여자들 다리 사이에서 움직여 대는지 옆에 지나가면 정액냄새가 난다고 유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한상혁에게 달라붙는다. 뭐, 잘생기고 키 크고 그래선가. 그래. 그렇겠지. 근데 양아치잖아. 어차피 양아치일 뿐이잖아. 인생 망한. 양아치.
"야, 빚쟁아"
"..."
"넌 섹스해본 적 있냐?"
"..."
"없겠지, 모범생이신데"
한상혁은 혼자 말하다 내가 하도 대답을 안 하면 제 풀에 화가나 입을 다물었다 금방 다시 입을 연다. 지금처럼. 한상혁은 곧 잘 내게 음담패설을 해댔다. 나는 그게 참 화가 나면서도 불쌍했다. 그래서 나는 늘무시한다. 그럼 또 제 풀에 지쳐 입을 다물테니까.
"섹스하면말이야"
"..."
"그냥 쩔어"
"..."
"막 말캉말캉 하다. 넌 모르지?"
"..."
"알려줄까?"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더;러워, 미X놈. 속으로 이리저리 욕을 했다. 절대 입 밖으로는 못 꺼낼 말들이다. 저 한상혁이, 나를 어떻게 할 지 모르니까. 여자도 때려서 병원 실려가게 했다는 소리 여럿 들었다.
"어? 빚쟁아. 알려줄까?"
"..."
"알려줄까? 응?"
한상혁의 큰 손이 갑자기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숨이 흡 하고 막혔다. 움찔하는 몸을 느낀건지 한상혁이 풉 하고 나를 비웃는다. 그리고 반응했다! 하며 아이처럼 기뻐한다. 허리 위에서 한상혁의 손가락이 피아노치듯 움직였다. 눈 앞의 숫자들이, 수학 기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숨이 다시 내뱉어지지 않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업중인 교실, 수십개의 시선이 내게 몰린다. 나는 급하게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교실 안에서 한상혁의 웃음소리가 복도까지 들려왔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처음이었다. 벽에 기대어 스르르 주저앉은 나는 절망에 빠졌다. 아래가 무언가 축축했다.
02
그 일 뒤로 한상혁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전에는 그저 반 안에서 건들만한 조용한 애 쯤으로 보는 듯 했는데 이제 그의 눈에는 흥미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무서웠다. 수업받다가 한상혁이 살짝이라도 움직이면 흠짓 몸을 떨고는 했다. 근데 이상하게 그러다가도 집에 와선 한상혁을 생각하며 혼자 침대위에서 몸을 떨었다. 그 큰 몸이 나를 짓누르는 걸 상상했다. 어렴풋이 여자애들이 왜 그렇게 한상혁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녔는지 알것도 같았다. 허리를 감아쥐던 그 큰 손의 감촉이 생생했다. 잊고싶다. 어떻게든 지워보려 했는데, 그런데, 그럴수록 밤에 눈이 더 뜨이는 것이었다. 침대 위에만 오르면 다리사이가 근질거리고 아랫배가 땡겼다. 한상혁 생각이 났다. 그가 나를 침범하는 꿈을 꾸었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나는 엉뚱한 결론을 내놓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자. 혼자있으면 한상혁 생각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상혁과 내가 이상한 짓을 하는 생각이 나니까. 침대 위도 올라가지 말자. 이유는 마찬가지.
"제가 문 잠구고 갈게요."
근데 세상이 날 도와주지 않았다. 시험기간이라 도서실은 꽉 찼고 문화센터도 학교가 끝나고 가보면 만원인 상태였다. 떠돌다 결국 집에가면 전같은 상황의 연속. 결국 나는 교실을 택했다. 학교가 끝나고 해가 저물어 달이 뜰 때까지 난 혼자 교실에 남아 공부를 했다. 혼자라는 사실이 한상혁을 떠오르게 했지만 교실이라서인지 딱히 무엇을 할 수 없어 전같은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날, 혼자 있던 교실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뒷문이 드르륵 열렸다.
"...빚쟁아."
그리고 그게 한상혁이었다는 걸 깨닫자 마자 나는 온 몸이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뒷문이 열렸다 닫힌다. 교실 안에 나 말고 다른 이가 들어왔다. 저벅저벅 그 사람이 나를 향해 걷는다. 뒷걸음질도 칠 수 없었다. 앉은 상태에서 일어나지도 못 할 만큼 놀랐다. 길다란 몸이 내 앞에 멈추었다. 그를 천천히 올려다 보려는데, 언젠가 내 허리를 쥐었던 큰 손이 갑자기 내 어깨를 뒤로 확 밀었다. 의자와 함께 쿠당탕 넘어지고 치마가 들린다. 벽에 쿵 박은 머리덕에 눈 앞이 핑핑 돌았다. 그 와중에도 들린 치마를 내리려 손을 뻗는데, 한상혁이 더 빨랐다. 한 손으로 내 두 손을 휘어잡아 당기고 다른쪽 손으로는 마구 내 허벅지 안쪽을 훑는다. 숨이 턱 막혔다. 벽에 머리를 부딪혀 생리적으로 고인 눈물이 주륵 흘렀다. 순식간에 치마 단추가 풀린다.
"넌 왜 다른 년들처럼 나한테 안 찾아와?"
"..."
"박아달라고 너도 질질 짜. 왜 안 와."
"..."
"씨X, 이런 년 따먹기는 또 처음이네."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내 블라우스룰 미친듯이 헤치고 마구 내 몸을 더듬는 손에 엉엉 눈물이 나왔다. 종국에 내가 도피처로 찾아온 교실에서 그에게 짓눌려 그를 받아낼때에도 나는 엉엉 울었다. 흔들리는 몸과 아린 밑, 감당할 수 없는 자극, 핑핑 도는 눈 앞과 버거운 한상혁의 것. 나는 그 때를 지옥이었다고 정의내릴 수 있다. 반년만 참으려던 내 생각은 산산조각으로 박살났다. 나의 웨하스 의자는 부서졌다. 후에 그를 신고하고 이리저리 학교가 떠들썩해진 날 나는 그 일이 생기기 몇일 전을 떠올렸다. 시작은 그저 단순한 물음이었다.
야 빚쟁아, 너는 섹스해 본 적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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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은 생각중이얌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