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이 여섯 살 범규가 두 살이 되던 해 범규가 딱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 날 범규는 연준이네 집의 둘째가 되었을 듯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서 자란 범규는 고아원으로 봉사 활동을 오는 연준의 부모님에 의해 입양됐을 것 같다 연준은 이미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나이였기에 이 아이가 새로 생긴 내 동생이라는 걸 알았겠지 홀로 여섯 살까지 지냈고 동생이 있었으면 싶었던 연준이에게 범규는 미움의 대상은커녕 사랑스러운 존재였을 것 같다
연준이에게 범규는 자신의 부모가 낳지 않았지만 자신의 부모의 자식이 틀림 없으며 자신의 동생이라고 사랑스러운 내 동생이라고 생각할 듯 범규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를 것 같다 범규의 생일인 날 연준의 집으로 왔기에 두 번째 생일이라든가 그런 것도 없었고 어린 아이에게 말하면 놀랄 수 있으니 말하더라도 성인이 되면 말하자고 부모님들끼리 약속했을 것 같다 나중에 범규가 자신의 친부모를 찾고자 할 수도 있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완전히 할 수 있을 때에 알리기로 한 것일 듯 연준이는 이 사실을 눈치로 알아챘을 것 같다
범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여덟 살의 봄에 열두 살의 연준이는 작은 손으로 자신보다 더 작은 손을 잡고 학교로 갈 것 같다 앞으로 아침마다 형이랑 이렇게 손 잡고 오면 돼 알겠지? 하면 범규는 고개를 신나게 끄덕거릴 것 같다 응 형아랑 같이 올 거야 연준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연준이는 늘 범규를 데려다 줄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의 2년을 제외하면 같은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음에도 연준이는 늘 범규 손을 잡고 데려다 줄 것 같다 범규가 학교에서 아이들이 형 손 잡고 온다고 놀려도 범규는 아무렇지도 않을 듯 놀림 당하는 것보다 연준이랑 같이 못 오는 게 더 싫으니까
연준이가 열아홉이 되던 해에 수험생 신분으로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게 될 듯 범규는 늘 연준이를 기다리다가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는 연준이 옆에서 주저리주저리 오늘 있었던 일 말할 것 같다 연준이는 피곤한데도 범규 말 들어 주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들 듯 그런 하루가 매일 이루어지고 또 하루도 범규가 잠든 연준이를 구경하고 있을 때 자각할 것 같다
못 보면 보고 싶고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어지는 연준이를 친형이 아닌 연애 상대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늘 그랬는데도 서서히 마음이 커지다가 문득 사랑을 깨달았을 것 같다 바람 넣은 풍선이 터지듯이 펑 하고
범규는 그렇다고 티내지는 못할 것 같다 어디까지나 연준이와는 핏줄이고 이 화목하고 평온한 이 가정에 자신 욕심 하나 때문에 돌을 던질 수는 없었으니까 늘 속으로만 삼키고 밖으로는 착한 아들로 착한 동생으로 살아갈 것 같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형제를 사랑하는 제 자신이 들켜지면 가족들이 자신을 더럽게 볼까 봐 두려웠고 감정을 썩히는 동안 속은 문드러졌을 듯 종국에는 자기 자신마저도 역겹게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자신을 죽이고 범규는 4년을 보낼 듯
범규까지 수능을 보고 집에서 다함께 바다로 여행을 간 날 범규는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 주는 연준이 모습만 눈으로 좇을 것 같다 부모님 두 분이서 바닷가를 산책하는 동안 연준이는 바다 사진을 찍고 범규는 그 모습 구경하다가 연준이한테 형 우리 사진 찍자 할 듯 연준이는 셀카 모드로 바꾸고 범규랑 사진 여러 장 찍고서 범규한테 보내 줄 것 같다 형 이거 지우면 안 돼 알겠지? 귀엽게 협박조로 말하는 범규 덕분에 연준이는 웃으면서 어 알겠어 안 지울게 할 것 같다
범규와 연준이가 한창 바다를 구경하다가 범규가 연준이를 붙잡을 것 같다 형 우리 나중에 또 오자 연준이가 그러자 이따가 엄마랑 아빠한테 내년에 또 오자고 말씀 드릴게 범규는 가만 듣다가 형이랑 나랑 둘만 오면 안 돼? 범규는 자기가 뱉어놓고 아 더럽겠지 징그럽겠지 싶어서 거짓말이라고 하려는데 연준이가 그래라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을 때 범규는 거절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을 것 같다
차라리 거절을 하지 차라리 바쁠 것 같다고 하지 왜 희망을 가지게 하는지 그저 연준이가 미울 것 같다 범규는 바닷가에서의 그 날 자신은 연준이에게 친동생 그 이상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완벽하게 깨달았을 듯 자신이 바보처럼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음에 더 자신을 혐오하게 될 것 같다 더불어 자신이 마음을 접을 수 없다는 것까지 깨달았을 듯
범규가 성인이 되던 날 범규는 집을 나올 것 같다 범규는 집을 나온 그 날까지도 자신이 연준이와 핏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듯 전날까지 가족들과 행복하게 웃던 범규는 하루 아침에 사라졌고 가족들은 범규를 찾으려고 사방팔방 수소문을 했지만 결국 범규는 못 찾을 것 같다 가족들은 범규가 자신이 입양아임을 알고 자신의 가족들을 찾아서 갔구나 그렇게 생각할 듯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에 부모들은 매일 밤마다 범규를 그리워하면서 울 것 같다
단 한 사람 최연준만 놀라지도 울지도 않았을 것 같다
범규가 나가기 바로 전 날 연준이에게 남겨놓은 편지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