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년이 다지나가고 겨울 끝무렵이다.
이제 이렇게 펑펑 내리는 눈도 끝이겠구나. 지겨워 죽겠다 진짜
맨날 내리는 눈 때문에 미끄러져서 다치기도 했고, 폭설때문에 밖에도 나가질 못하고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도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는 건 지겹지만 이렇게 은은하게 눈이 내리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신나기도하고,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고, 로맨틱한 일이 일어날것만 같아서 좋다.
친구들이랑 한잔두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서, 주위가 다 깜깜하다.
가로등도 거의 없어서 앞이 안보일 지경이다. 요즘 세상이 어찌나 흉흉한지.
남자지만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나를 누가 잡아가진 않을까 무섭다.
"무서워 죽겠네. 힝."
혼자 투덜거리며 혼잣말을 하자 뽀얗게 입김이 나온다. 이제 이 입김도 한 두달 뒤면 한동안은 못보겠지
괜히 이런 생각이 들어
계속 입김을 뿜었다.
"하~~ 하~~~ 하~~~"
술에 취하긴 했나보다. 얼른 집에 가야지.
오늘따라 왜이렇게 집이 멀게 느껴지지.
됐다! 이제 이 골목만 지나면 우리집! 좁지만 아늑하고 따뜻한 우리집!
이제 따뜻한 전기장판안에 들어갈수있다는 생각에 신나서 골목길안으로 한걸음을 뗐는데,
골목길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몸이 느꼈다.
'위험해.'
뒤돌아서 뛰어가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적어도 이십미터는 떨어져있던 그 사람. 인기척의 주인이..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않고 빛의 속도로 달려와 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놀라웠다. 믿을 수 없었다.
약 이십미터를 일초도 되지 않아 뛰어온다는게 가능한건가? 내가 몸 한번 비튼 순간에 이십미터를?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가능하지 않다.
내 앞을 가로막고 구부정하게 서있는 큰 덩치의 이사람.
이 사람의 정체는 뭐야.
너무 놀래고 무서워서 온몸이 떨린다.
떼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다시 뒤돌아 뛰었다.
'좀만 뛰면 돼. 코 앞이 집이야. 집에만 들어가면 안전해. 내가 착각한거야. 어떻게 사람이 일초도 안되서 이십미터를 뛰..'
" 왜 뛰어."
내 노력이 무색하게 그사람은 다시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아아악!!"
귀신이다. 귀신이야. 사람이 이렇게 빠를순없다. 이렇게 인기척없이 뛰어올순없다.
너무나 놀랬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이 쌓여있는 눈 덕분에 다치진 않았다.
아무말 않고 그남자는 나를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는 그남자를 무섭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난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남자는 이런 날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고, 한손으로 내 팔을 잡아 올려 날 일으켰다.
아니 잡아올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지금 내 다리가 땅에 붙어있지 않으니
사람이 아니다.
60kg가 넘는날 한손으로 종잇장 들듯이 들수가 있나. 팔에서 느껴지는 손아귀의 힘도 장난이 아니다.
팔뼈가 부러질것같이 센 손아귀힘.
아무리 생각해도 이남자는 사람이아니야.
난 어떻게 되는걸까.
그 남자는 날 들어올려 계속 날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을까 배째라는 심정으로 난 그남자에게 소리쳤다.
"뭐..뭐에요!!! 이..이것 좀 놓으세요!!! 경찰 부를겁니다!!!!"
그래도 미동도 없다.
"경찰 부를거라고요!!!!! 아파!!! 아프다고!!! 이것 좀 놔!!!!"
그런 내가 시끄럽다는 듯이 귀한쪽을 틀어막더니 날 놔준다.
겨우 벗어난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아까 보지 않았는가.
말도 안되는 그 속도를.
아까 마신 술이 제 역할을 하나본지 어디서 깡이 조금씩 솟아나기 시작했다.
"야. 너 뭔데. 좀 비켜. 나 집에 갈거야."
"...."
"말못해? 짜증나게 하지좀 말고 나와. 관심있냐?"
그 남자는 계속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 보았다.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질 않는다. 욕을 해도 미동도 없다.
" 아 몰라. 꺼11져."
계속 가만히 있는 그 사람이 이젠 만만해 졌는지 나는 그사람을 밀치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
그러자 눈 깜짝할 새 그 사람은 내 팔목을 부여잡고 날 벽으로 밀어붙였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벽치기다.
게다가 팔목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힘.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이사람은 그냥 날 힘만으로도 죽일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아까의 깡은 수그러들고 얌전해졌다.
그리고는 불쌍한 척을 하며 말을 했다.
" 왜..왜..그러세요.. 저 갓 취직했어요.. 여자도 아직 한번 못사겨봤고.. 아직 월급도 못받아봤고..
집에 다운받아놓은 야동도 다 못 봤.."
" 피 좀 줘."
내가 잘못들었겠지.
"네?"
" 피 좀 달라고."
이게 무슨 신선한 개 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