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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전 (2013/9/17) 게시물이에요

 

 
부서지기 쉬운 보석 다루듯 조심히 들어 올려 탁, 폴더 뚜껑을 열었다. 컴컴하게 죽은 액정화면이 내 얼굴을 비춰 냈다.

생각해보니 변백현은 사진을 잘 찍어 놓지도, 문자를 오래 보관해 놓지도 않는 성격이였다. 

그래도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어 문자함, 통화기록, 전화번호부 등 여러 폴더를 마치 떨어진 곡식 찾아 창고를 기웃거리는 생쥐처럼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훑어봤다.

텅 빈 문자함. 깨끗이 지워진 통화기록. 처음으로 들여다보는 핸드폰 주소록. 90여 개가 등록된 그 주소록을 혹시나 뭔가 발견해야 될 것이 있을까 하며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다음엔 미디어 메뉴로 넘어가 갤러리를 들여다 보니 잠금이 걸린 스무 장 정도의 사진이 보관되어 있었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내가 아는 네 자리를 누르자 소리 없이 잠금이 풀렸다.

 

여름에 빙수집 가서 먹은 딸기빙수. 길 가다 전봇대에서 찍은 변백현이 좋아하던 밴드의 포스터. 한동안 함께 키웠던 열대어 어항.

언제 찍었는지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뚱한 표정으로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는 내 옆모습.

발 한쪽을 다른 쪽 종아리 뒤로 감은 이상한 자세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 플래시 때문에 눈이 반짝 빛나는 채로 클로즈업된 내 얼굴. 언젠가 장난삼아 찍었었던 엄지발톱에 구멍 난 내 양말.

연습장 구석에 끼적여진 '그러다 넌 장가 못 간다' 하는 우스운 낙서와 옆에 따라 그려진 심통 난 만화캐릭터.

볼펜 끝을 입에 물고 또 골똘히 내려다보고 있는 내 옆모습. 잔뜩 찡그린 채 어딘가 멍하게 보고 있는 나. 콜라 캔을 입에 대고 마실 찰나에 있는 나… 나… 나… 나……


파르르 떨리는 숨이 흐느낌 비슷하게 흘려나왔다.
도대체 이런 사진들은 언제 다 찍었는지. 그러면서 제 사진은 왜 하나도 없는건지.

내 핸드폰이든 자기 핸드폰이든 제 모습은 절대 못 찍게 하는 탓에 내가 가진 변백현의 사진이라고는 언젠가 바로 이 카페, 내 자리 맞은편에 앉아 비스듬히 목을 기울이고 자고 있을 때 몰래 찍었었던 그 사진 한 장뿐.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 갤러리에서 나와 동영상 보관함에 들어갔다.

분명 동영상 기능을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음에도 웬일인지 파일 하나가 저장되어 있었다. 7월 20일 이라는 날짜를 보는 순간 '아…' 하는 내 음성이 머릿속을 울리며 알게 되었다.


잠금을 해제시키고 나서 한참 동안을 재생 버튼에 손가락만 얹은 채 앉아 있었다. 만약에 그 애의 얼굴이라도 나온다면 나는 그대로 심장이 멎어 버려 죽을지도 몰랐다.

거의 근육의 발작이다 싶은 움직임으로 버튼이 눌렸다.

영상이 살아나고 숨이 폐 가득 들어차 밖으로 흐르지를 않았다.


내가 앉은…이 자리에서 찍고 있었다.


내 앞에 텅 빈 채 있는 저 맞은편 자리를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 똑같이.

아무 소리도 없이 그 소파를 찍고. 테이블 위를 천천히 스치면서 성냥갑을…재떨이를 찍고.

다시 각도가 틀어져 정면을 담아냈다. 만약 저 빈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면 바로 중앙에 그 사람의 모습이 담아지도록. 가만히 정면만을.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니가 눈 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를 사람이… 나라면.


조금은 흐릿해진 과거의 내게 했던 것 같은 말, 그 목소리가 진공에 흡수되어 가듯 사라지고 화면은 다시 움직여 소파 등받이를, 그 너머 벽을 천천히 따라 올라갔다.

드문드문 붙어 있는 사진들 사이를 느리게 빠져나가 마침내 오른쪽 끄트머리에 걸린 한 그림 위에 멈춰 섰다.

 

John Everett Millajs 'Ophelia'


좁은 호수 위에 부유하듯 누워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는 한 여자의 주검.

갓 생명이 떠나간 그 얼굴은 아름답게 창백하고 살짝 벌어진 입술은 아직 붉으며 수면 밖으로 힘 없이 떠 있는 오른손에는 꺾인 꽃줄기가 몇 쥐어져 있다.

 

난 약속 지켰다, 끝까지… 끝까지 너만 기다렸어.

 

화면은 그림을 떠나 정확히 거꾸로 다시 벽을 따라 소파 등받이를 따라 원 위치로 내려와 멈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구라도 앉아 있는 듯 영상은 소파 한가운데를 한참 동안 담아냈다.

그리고 근처에서 들려오는 듯한 TV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볼륨을 높히자 목소리만 들어도 알 것만 같은 대화가 들려왔다.

항상 내가 이 영화를 봐야한다 보챌 때면 억지로 나의 옆에 나란히 앉아 함께 보았던, 이젠 질리도록 보아 외워버린 토탈 이클립스의 대사,


[ 랑보는 베를렌느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다.


"Do you Love me?" (날 사랑해?)

"What?" (뭐?)

"Do you love me." (날 사랑하냐구.)

"Yes." (그래.)

"Then put your hand on the table." (그럼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놔.)

"What?" (뭐?)

"Put your hand on the table. Palm upwards."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으라고. 손바닥을 위로)


랑보는 손에 쥔 작은 칼끝으로 베를렌느의 손바닥을 이리저리 장난하듯 훑으며 베를렌느를 의아케 한다.


"The only unbearable thing is… thet nothing is unbearable." (참을 수 없는 건… 참을 수 없는 게 없다는 사실뿐이야.)


랑보는 이렇게 말하며 베를렌느의 손 한가운데를 일시에 찍어 내린다. ]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생생한 목소리.


나를 사랑해?


실날같은 목소리가 흩어져 가고 그 여운마저 모두 사라졌을 쯤 화면에도 생명이 떠나갔다. 소리가 흐름이 시간이 멈췄다.

화면 위에 얼어 버린 장면과 내 눈앞에 실존 하고 있는 그 빈 자리를 동시에 바라보며 나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었다.


우리의 모든 게. 이 짧은 영상 안에 들어 있다.

 

***

  

 나이가 지긋이 든 베를렌느는 술집에 앉아 압생트(Absinthe) 두 잔을 시킨다.

술을 조제하는데 유년 시절 모습의 랑보가 눈앞에 나타나 술잔 하나를 집어 한 입 마신다. 그리고 과거에 둘 사이 오갔었던 대화가 베를렌느의 상상 속에서 똑같이 재연된다.

 

랑보는 베를렌느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다.


"Do you love me?" (나를 사랑해?)

"Yes." (그래)

"Then put your hand on the table." (그럼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놔.)

"What?" (뭐?)

"Put your hand on the table. Palm upwards."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으라고. 손바닥을 위로.)


과거와 똑같이 랑보는 작은 칼끝으로 베를렌느의 손바닥을 천천히 훑으며 베를렌느를 의아케 한다.

랑보는 쥐었던 칼을 살며시 내려놓고… 베를렌느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미소 짓는다.

 

***

  

…며칠째 계속되던 폭우로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사실…

…화물차 운전자 A씨(43)의 중앙선 침범으로 인해… 당시 오토바이에 몰던 B군(18)은 추락시 차체에서 튕겨져 나가 계속되는 악천후로 이틀간 행방을 찾을 수 없었으나 지난 24일 오전 9시경 수색대에…

한강 하류에서… 자살 의도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며… 무엇이었는지는 현재 수사 중에…

 

 

 

 



 
여우1
앗 토탈 이클립스!!
10년 전
여우2
와 분위기 좋다ㅠㅠ 나도 토탈 이클립스 짱 조아하는데ㅠㅠ 더 써줘ㅠㅠ
10년 전
여우3
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분위기 쩐다ㅠㅠㅠㅠㅠㅠ
10년 전
여우4
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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