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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그렇게 성공의 정점에 선 인물이 민희진 대표다. 그는 뉴진스 데뷔와 활동 과정 전반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쳤다. 기자회견에서 민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선발할 수 있는 친구가 민지밖에 없었다. 나머지 친구들은 연습이 더 필요하거나 나이가 너무 많거나 나랑 결이 조금 안 맞아서. (…) ‘우리 걸그룹이 추구하는 어떤 방향성을 오디션에도 넣어서 브랜딩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발) 했다. (…)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방)시혁님이 갑자기 전화하셔서 ‘희진님, 나 무슨 음악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콘셉트 생각하신 것 있냐’ 그랬다.” 방향도, 선발도 민희진 대표의 ‘결’이 정했다. 음악은 방시혁 의장과 논의하다가 독자적 방향을 따랐다. 이 서사에서 뉴진스의 예술적 주체성은 보이지 않는다.
민희진 대표는 ‘에미(어미)’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뉴진스는 ‘애들’이며, 그들의 성공은 ‘민희진 스타일’의 산물이다. 그것을 복제해 다른 아이돌에게 입히면 뉴진스의 독창성은 곧장 흔들린다. 역설적이게도 뉴진스를 보호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공로를 강조하고 뉴진스의 개별성을 깎아내리며 하이브를 규탄했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아티스트를 연기하던 이들은 그날 울먹이는 10대 아이가 되었다.
시사인, 이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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