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정환의 고백은 말 그대로 어느 한 계기를 통해 마음먹고 쏟아부어진 거야. 그리고 그 계기가 바로 이승환 콘서트지. 지금까지 운명과 타이밍의 탓이라 여겼던 엇갈림이 사실은 알고보니 자신보다 더 간절했던 한 사람이 만들어낸 순간이었단 것. 그래서 정환의 나레이션은 뒤로 갈수록 빨간 불 중 단 한 번이라도 초록불이었다면 하며 타이밍을 탓하다 나중에 택이의 기권패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망설임을 자책하는 쪽으로 흘러가지. 자신보다 택이가 더 절실했음을 깨닫고 마음먹은거지. 이젠 첫사랑을 보내주어야겠다고.
그래서 어제 그 술자리에서의 고백이 진짜 아름다웠다고 생각해. 진심을 말하지만 장난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간 나왔던 정환이의 성격을 보면 다 나오지. 정환이는 처음으로 진심을 털어놓으면서도 덕선이에게 부담되지 않는, 그리고 우정 또한 깨트리지 않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거야. 그래서 엄청나게 멋있는 캐릭터인거고. 여기서 정환이가 각성해서 진심으로 고백해버리면 이렇게 멋있고 짠한 장면 안나왔을거라 생각해. 말그대로 ‘첫사랑’을 잘 표현해줬어 정환이라는 캐릭터로.
그리고 중요한 건 덕선이도 정환이의 진심을 읽어냈다는 것. 장난스레 끝난 고백에 ‘뭐야’라며 짜증내는 듯한 표정을 짓지 않은 것도, 듣는 내내 따뜻한 미소로 그리고 추억에 잠긴 미소로 정환이를 바라봐준 것만 봐도 충분히 유추가능하지. 비록 선우와 동룡에겐 장난으로 치부됐지만 다들 덕선이 표정 봤잖아? 덕선이와 정환이만 아는 추억이었고, 덕선이도 처음엔 놀란 듯 싶지만 나중엔 따뜻한 미소 지어주면서 ‘그 때 정말 진심이었구나’라고 표정이 다 말해줘. 그러니까 절대 실패한 전달이 아니란 소리지.
그리고 반지는 회수 안 될 것 같아. 피앙세 반지는 졸업할 때 정환이가 덕선이에게 주려고 계속 가지고 있던 반지인데 결국 졸업할 때 못 줬지. 덕선이,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마음을 나타내는게 곧 피앙세 반지인데 이번 계기로 첫사랑을 놓아주면서 그 반지도(덕선이에 대한 마음) 그 자리에 놓고 온 것 같아. 그래서 화면에 그렇게 오래 잡아준거고. 말 그대로 이제 몇 년간 누구에게도 주지 못한 그녀를 향한 마음을 이젠 놓겠다 이런 뜻으로 쓰인 거지. 그게 나중에 있을 반전으로 쓰일 것 같지는 않다는 소리. 제목과 노래와 플래시백과 심경의 변화 모든게 잘 어우러져서 내가 첫사랑을 포기한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
그러니까 사장들 택이가 남편이 된다해도, 그 동안 나왔던 정환이의 감정선이 쓸모없어 지는 것도 그리고 드라마 흐름이 이상해지는 것도 아니야. 택이는 한결같이 알게 모르게 마음 속에 녹아 들어가는 사랑을, 덕선이는 어리고 미숙한 사랑에서 주체적인 사랑으로의 성숙을, 정환이는 풋풋하고 간질거렸던 첫사랑을 잘 표현해준거야. 정환이 시점으로 돌아간 감정선이 없었다면 절대 이런 먹먹하고 간절한 표현 불가능 했을 거란 소리지. 택이랑 정환이 모두 남자주인공이었어. 인생에 ‘서브’가 어딨어 다 자신만의 사랑을 쟁취하고 아파하고 그런거지. 그러니까 서브남주는 이러이러해서 누구다, 정환이 감정선이 쓸모없어졌다 그런소리는 하지말자. 작가가 말해주려는 이야기 찾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드라마가 남편찾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게 보기 안타깝다. 다들 자기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고 시청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잘 전달해줬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