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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엄마압구정에 엄마밥상이란 한식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가끔 가부좌를 틀고 이름 모를 계모의 밥상을 받았다. 뜨끈한 온돌에 엉덩이를 지지며 잠시나마 기름진 손맛을 느끼는 일은 혈혈단신의 타향살이에 크나큰 위로였다. 물론 그 온정에는 대가가 따른다. 갈비찜으로 사치하지 않으면 1인분 가격이 1만원 조금 넘었다. ‘진짜 엄마’의 밥상을 걷어차고 상경한 이후 서울에서 때운 모든 내 끼니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쓸쓸한 허기에 모정을 찾아 비집고 들어간 백반집은 물론이고, 바깥 밥이 입에 물려 어설픈 솜씨로 요리를 하겠다고 들락날락한 마트장 보따리에도 여지없이 계산서가 끊어진다. 그나마 친구에게 덤터기 씌워 해결한 끼니 후에는 커피 한 잔으로라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성가신 염치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계산서로 손에 들린다. 만약 지금까지 엄마의 집에 얹혀살았다면 종량제 쓰레기 봉투의 규격별 가격이나 대파 한 단의 가격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내 나이 스물하난가 스물둘인가 할 때, 자동차 부품 공장지대 한복판에 있던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살았다. 바람 심한 날이면 쇳가루가 동향의 창문을 때리며 기괴한 소음을 만드는 방이었는데, 그나마도 월세를 미루기 일쑤였다. 편의점에서 냉동 만두를 사다 튀겨 먹으며 ‘오대수’로 1년 가까이를 거기서 살았다. 높은 데 올라가서 보면 빌딩숲이 우거져 도시에 여백이라곤 없는데 내 베개를 놓을 한 뼘의 그늘을 갖고 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값을 정당히 치르며 타지에서 살아가려면 수도 없이 더러운 꼴을 견디며 비참해지기를 감수해야 한다. 만기가 끝난 후에 친구 두 놈이 사는 방 두 칸짜리 집으로 빈대 붙어 이사를 갔는데 그것은 한참 동안이나 내 마음의 빚이었다. 만약 지금까지 엄마의 집에 얹혀살았다면 나는 훨씬 낭만적인 청년이 되었으리라.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그 말은 절대적인 사실의 생존 지침이고 나는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도시는 삭막하다. 서울의 밤은 꽤나 화끈해졌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치열하고 도무지 내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식당 아줌마의 계란 프라이 서비스가 기적처럼 느껴지는 이 땅에 정말로 공짜는 없는 것일까. 구경만 하면 주겠다는 화장품 샘플이나 잡지에 딸려 나오는 별책 부록을 진짜 공짜라고 믿으며 마음 달래야 하는 것일까.불필요하게 벌여놓은 집이나 사치스러운 식탁은 고사하고 친구의 호의나 연인의 정열에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떳떳하기 어렵다. 어떤 친구에게 술을 사는 횟수가 일방적으로 늘어나자 나는 내가 산 술병을 일일이 되짚어 세기에 이른다. 순수한 내 호의를 계산하게 만든 건 저쪽이지만 어쨌든 나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지난 내 연인은 자기의 사랑 빼기 내 사랑을 하고 남은 것을 세며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나라는 이름 너라는 이름으로 덩어리진 사랑을 주고받고 나서도 더 준 것에 이를 갈고 덜 준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우리는 그렇게 산다.학창 시절에는 엄마가 지금 쓰는 휴대폰 알람의 대신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이면 알아서 깨워주고 밥 먹여주고 용돈 쥐여 엉덩이 두드리며 투정쟁이 아들을 학교에 보냈다. 나는 그 용돈을 택시비로 쓰고 학교에 가서는 친구에게 빌붙어 딸기 우유를 마셨다. 엄마가 내게 제공한 집과 밥과 온갖 금품과 용역은 모두 다 공짜였다. 그때는 공짜인지도 몰랐다. 감사한지도 몰랐고 그래서 더 뻔뻔스럽게 일방적으로 누리던 사랑이었다. 내게 공짜를 주는 것은 엄마밖에 없다. 공짜가 공짜인 줄 모르고 살다가 엄마의 공짜 밥상이 1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이제 와 감격스러워지자 모정이 부채가 되어 뒤통수를 때린다. 내가 아는 세상의 마지막 공짜도 이렇듯 철인지 나이인지 내게 찾아온 불편한 세월 앞에 매진되었다. 세상에 진입해 얼추 어깨를 펴고 선 이제부터는 하루하루 그녀의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겠지. 그 손길이 아무리 완전무결한 사랑일지라도 그것은 상환 불가능한 자식의 빚이다.매 순간 지갑을 열어야 살아지는 삶을 지극히 당연하게 느끼다가도 타인과 나 사이의 빗금 위로 주고받는 것들이 우리를 계산적으로 만드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엄마의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듯 하염없이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대는 로또를 손에 쥐고 토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일처럼 무모할지라도.엄마가 나 몰래 숨겨놓은 땅 한 무더기가 어딘가 있지 않을까. 빈 반찬통을 가득 채워 가지고 온 친구의 마음을 계산서로 끊어 하루 빨리 결제해야 하는 것일까. 이 바쁜 세상의 그늘 아래에 쉬어가면서 마음의 거래로 너무 분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내 친구의 외상 장부에 내게 얼마짜리 밥을 몇 번 샀는지 따위의 기록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준 생일 선물이 숫자로 환산되어 응당한 대가로 돌아오지 않아도 서운치 않았으면 좋겠고, 지인의 결혼식에 낸 축의금의 숫자가 내 마음의 크기를 대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나 내가 낸 10만원짜리 봉투가 마이너스로 돌아오더라도 괘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친과 사별한 또 다른 친구가 장례식에 오지 않은 지인들을 일일이 데스 노트에 적으며 자신이 그들에게 준 것들을 세고는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게 반쯤 얹혀사는 친구가 그 어떤 부채 의식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친구는 10평 오피스텔로부터 도망갔던 투룸 집 안방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 절실한 동지애 이상의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어수룩한 낭만을 품는다.고된 촬영이 끝나고 돌아온 부산 중앙동의 호텔방, 1200원짜리 컵라면에 눈물인지 뭔지 뜨거운 것을 붓는다. 시야를 가리는 수증기 사이로 진한 강된장이 놓인 엄마의 공짜 밥상이 스친다.







-섬유유연제, 린스교복 입고 학교 다닐 적에 교복에 섬유유연제의 향이 가득히 벤 아이들이 부러웠었다. 왠지 그 향긋함은 그 아이들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학교에서까지 그 사랑이 아이들에게 흠뻑 묻어있는 것 같았다. 사랑의 증표라는 택이 있으면 그 택에는 이런 향이 날까. 이렇게 미화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내 교복에서는 단 한 번도 그 증표의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교복에서 땀에 절은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고 세탁을 제때 하지 않아 얼룩이 자리를 튼 것도 아니었다. 내 교복에 그 향이 머금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어느 날은 건조대에 얌전히 햇볕을 쬐는 내 교복에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좋은 향이랄것도 나쁜 냄새랄것도 없는 그 아무 냄새도 스며 있지 않은. 정말 무향이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나도 섬유유연제 향이 나고 싶다고 떼를 쓰니, 엄마는 교복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별 것에 신경을 쓴다며 내킨김에 그런 거 듬뿍 넣어주는 집에 가서 그 식구 자식으로 살아버리라고 하셨다. 그 말이 서운하게 다가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여태 그런 거 없이 잘 지내왔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난데없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한이라면 한, 나는 그날 아껴뒀던 돈으로 페브리즈를 샀다.이제부터 나만의 향수가 된 페브리즈를 교복에 엎지르듯 뿌려댔다. 그럼에도 내 향수는 섬유유연제의 후방 50미터, 뒤꼬리 만큼도 못 따라갔다. 그래도 거의 들이붓다 싶이 해서 교복에 뿌리고 다녔다. 물론 엄마 몰래. 엄마 곁을 지나가면 페브리즈의 향이 엄마에게 다가갈까봐 하교 후에는 교복에 불이라도 붙은 것마냥 당장에 벗어버렸다. 그러길 며칠, 어느 날처럼 허겁지겁 옷을 벗는 중에 내 방 책상에 우리 집에 익숙해서는 안되지만 내게는 이미 익숙한 물건 하나가 내 눈치를 보며 빤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내가 뿌리는 똑같은 페브리즈를 내 방안에 사다 놓으셨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섬유유연제 이야기를 꺼냈던 그날 아침에 나를 너무 매정하게 혼낸 것 같아 본인이 되레 마음이 아프셨고, 그 아픈 말들이 계속 마음 한 가운데 무거운 추로 달려 떨어지지 않으셨다고 했다. 나는 그날에 내 용돈으로 페브리즈를 샀고, 그 향의 값으로 당시 아침의 일들을 아득히 잊었는데, 엄마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단 돈 몇천 원이면 해결될 일을 가지고 아들 마음을 속상한 게 한거 같아 미안하셨다고 했다. 그날 화를 낸 건 엄마였는데 며칠 후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 엄마의 미안했던 마음에 데롱데롱 달려있던 중추가 내게 이식된 듯 내가 엄마께 죄송스러웠다. 무려 이 일이 몇 년 전인데도 선명하게 그날들이 생각이 났다. 내 방 안에 두개 씩이나 있었던 쌍둥이 페브리즈는 옅은 노란색이었다는 것까지.꽤 오래전의 일이 불현듯이 떠오른 것은 오늘 일 때문이었다. 어제 아침에 샤워를 거의 마치고 머리를 감고 마무리로 린스를 하려고 했더니, 반 년은 족히 쓸 그 거대한 린스 통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짜내보려고 펌프질을 하니 그 큰 통은 이미 꼭두새벽부터 두세명의 사람한테 심란하게 시달릴정도로 시달린 듯했다. 내게 아무것도 남은게 없으니 제발 좀 괴롭히지 말라며 성난 바람 소리만 슉슉 내고 있었다. 린스통의 씩씩거리는 소리를 엄마가 들었는지, 린스가 다 떨어졌냐고 물으셨고 나는 단지 '네' 라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엄마는 '사다 놓을게.'라고 말씀을 덧붙이셨는데,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 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늘 린스로 머리를 마무리를 하는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린스를 하지 않아도 찝찝하지 않았다. '사다 놓을게.'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언제 사다 놓을지는 모를 일이기에 내가 기억하고 오늘 중에 사다 놓기로 결심을 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늘 그렇듯 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생각이 문득 들어 좀 더 신중하게 지혜롭게 생각을 해야겠다 결심을 하며 일단 자리를 옮기기로 다짐을 한다. 그러나 자리를 옮김과 동시에 그 중요한 생각들은 이미 삭제. 아디오스. 아듀. 마찬가지로 나도 머리를 바짝 다 말리고 나니, 린스를 사야지 했던 생각도 헤어드라이기의 더운 바람에 함께 날아갔다. 엄마도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처럼 쉽게 잊어버리셨을 테고, 게다가 린스 하나를 사러 가기 위해 우리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마트를 들리는 일은 사실 귀찮은 일이기도 하니까. 린스의 필요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느끼는 가족 중 한 사람이 마지못해 사다 놓겠지! 그런데 오늘 아침 떡 하니 브랜드 제품의 린스 하나가 그 무식하게 크기만 컸던 린스 통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색깔도 훨씬 밝은 것이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그전의 린스보다도 예쁜 색깔의 액체일 것이며, 그 색체에 걸맞게 향들도 향기로울 것이라는 직감이 왔고, 그 직감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피곤한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콧노래가 빠져 나왔고 말끔히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머리가 한결 단정해 졌다. 머리 윗 부분에서 시작된 그 차분함은 내 발 끝까지 모든 것을 얌전하게 해 주는것 같았다. 그렇게 볕 좋고 바람 좋아 기분 좋은 촬영길, 바람은 길가에 핀 꽃들보다 더 좋은 향이 나는 내 머리칼을 다른 꽃으로 착각했나 보다. 시간 들여 신경 써 매만진 내 머리카락들을 흩뜨리며 머리 위로 그들이 바삐 지나간다. 바람을 타고 내려온 린스의 향은 내 코에 닿아 곧 마음으로 퍼졌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이 마음에 우려졌다. 린스를 사러 마트까지 향했을 엄마, 진열되어 있는 많은 린스 중에 어떤 게 좋을지 고민했을 엄마, 잠깐 선택의 고민을 하셨을 테고 그 머뭇거림 끝에 하나를 골라 다시 집으로 향했을 우리 엄마.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욕실 한 켠에 자리를 내어 서 있는 그 린스는 단지 머리칼을 코팅해주는 용도를 넘어 나만의 섬유유연제가 되었다. 어쩌면 내 섬유유연제린스는 머리칼보다 더 푸석푸석해진 내 마음을 좀 더 희끔하게 코팅을 해주려 엄마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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