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원의 유서-첫 장 우리 아들. 내 아들. 우리 애. 우리 아이. 더이상 이름이 아닌 지시 대명사 따위로 부를수 밖에 없다. 내가 곁에 가기만 해도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곤 하던 아이. 내가 이름 불러줄 때마다 꼭 답이 왔는데. 이젠 목이 터져라 가슴이 찢어져라 부르고 또 불러도 귓속에 내 목소리만 들린다. 말랑말랑하던 아이 손 한번만 더 잡아보고 싶은데. 나는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아빠가 됐다. 나와 아내가 기쁨 속에 낳아 금지옥엽 기르던 내 아들. 품에 꼭 껴안고 이름 불러줘야 하는데. 버스에 절대 태우지 말았어야 했다. 소풍장소까지 내 차로 따라갔어야 했다. 아들 단짝친구들도 모두 태워서. 자리가 없으면 트렁크에라도 눕혀서. 회사 하루 쉬고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걸 안했지. 하필 가드레일 설치기록이 없어졌고 하필 브로커가 돈을 먹여 굴러가게 만든 그 버스에 내가 직접 내 아이 태워 소풍 보냈다. 아빠랑 같이 놀고싶다며 옅게 투정부리던 아이 옆구리에 손을 끼워 들어올려주며 어서 타라고 했었다. 어서 타. 친구들도 다 타잖아. 아내는 울다 지쳐 정신이 들면 나를 탓했다. 네가 태워보냈기 때문에 애가 그렇게 갔어. 네 탓이야. 네 잘못이야. 나도 잘못했어. 울아들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아침에 널 깨워서 씻기고 옷입히고 아침 먹였어. 아침 먹이면서 오늘 아빠가 태워다주신대. 우리 영광이 좋겠다. 우리 영광이 오랜만에 아빠랑 아침 같이 먹네. 아빠가 소풍 잘 갔다오면 주말에 동물원 데려가신대. 내가 그 말도 했어. 지키지 못한 말이었어. 내가 우리 아들한테 거짓말하고 당신 손에 아이를 들려 보냈어. 내가 보내버렸어. 아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회사 휴직하고 1년을 매달렸다. 누가 왜 내 아이를 그 버스에 태우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그날 아침 저지른 최악의 잘못을 합리화시킬만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알아내자. 뭐든지 반드시 알아내는거 내 전문이잖아. 회사에서도 인정받은 실력이잖아. 왜 내 아들이 죽었나. 왜 하필 회사에서도 대충 눙치고 있는 것만 같은 이 사고에 휘말려 죽어야 했나. 내내 어디 매달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눈만 감으면 아이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 수백번 눈 깜빡깜빡하는 순간마다 그게 떠올랐다. 떠오른다. 말랑말랑하던 그 손에 검댕이 묻고 폐에 유독가스가 차 서서히 쪼그라들, 아니다. 아들은 그 이전에 죽었어야 한다. 우리 아들은, 버스가 뒤집히던 순간. 불이 번지기도 전에. 신에게 기도하면 들어주시겠지. 아주 아주 사소한 소원인데. 사망확인서에 적힌 단어만 바꾸면 되는건데. 회사에선 가드레일 부실시공이 원인이라고 했다. 아니다. 가드레일 관련 서류가 하필 사라져 있었다. 운전기사는 주행중 휴대폰을 자꾸 봐 전 직장에서 짤렸던 인간. 버스회사는 스테빌라이저를 빼버렸고 타이어는 알고보니 고무 땜질된 십수년짜리 고물. 그리고 브로커. 박무성이란 XX. 박무성은 일개 과장이 못 만지는 자리에 있었다. 내가 직접 끌어내려 목덜미를 쥐고 법정 앞에 세우긴 힘들었다. 회사에 복직했다. 강부장님께 달려갔다. 부장님 도움이 필요했다. 내사과는 회사의 폐부를 향해있는 송곳 같은 곳이고 거기서 일을 잘한다는건 그다지 좋을게 못됐음에도 늘 내 어깨 두드려주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니 이번에도 날 도와주시겠지. 그랬는데...... 그 분이 나보고 산사람은 살아야하니 이제 그만 가슴에 묻으라셨다. 어이없어서 흘깃 쳐다보다 말았다. 눈 마주친 찰나 부장님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계셨다. 아시는구나. 내 아이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일개 과장인 내가 건드리지 못하는 XX 이 분도 아시는구나. 그래...그래서 가슴에 묻으려 했었다. 묻으면 어찌어찌 살아질까. 품에 꼭 묻어두고 있으려니 집에는 점점 먼지가 내려앉고 밥은 넘어가지 않고 사람이 싫고 내가 싫고 그 XX는 반드시 조져야겠고 어떻게든 그 숨통 끊어 불에 타는 고통을 알려줘야겠고...... 정신 차려보니 대궐같은 집 앞이다. 그 XX 집 앞이다. 대궐. 내 집만한 차고가 있는. 무탈하게 떵떵거리며 잘 사는구나. 듣자하니 '귀족스포츠' 하는 아들XX도 있댄다. 내 아들은 운동은 커녕 초등학교 입학도 못해봤는데. 죽어 마땅한 XX. 차가 온다. 낯익은 차다. 낯익은 사람이 운전하고 있다. 헤드라이트 너머 차장님 안경이 빛난다. 황급히 팔짱 끼고 등을 돌렸다. 신문지에 넣어둔 단단한 절망이 느껴진다. 차장님이 빼주신다. 개 한마리 죽여봤자 도살업자밖에 더 되겠냐고 하신다. 피가 뚝뚝 흐르는 싱싱한 한우 스테이크 같은 이야기를 할테니 들어달라 하신다. 귀에 들리는 말이 달콤한 사탕처럼 녹아내린다. 나는 그 고급진 걸 잘근잘근 씹어삼키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때가 되면 죽여야 할 놈을 죽이고 살려야 할 놈을 살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