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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70·80년대 눈부신 경제발전의 이면
14명 여공들의 추억·증언 바탕으로
인권·청춘 희생 당한 아픈 삶 그려
억울한 세상 ‘잘 살았다’ 스스로 위로
세대 뛰어넘은 화해의 용기 큰 울림
그 시절 소녀들의 삶과 애환 희망의 '미싱' 바퀴를 굴리다 | 인스티즈
‘미싱타는 여자들’은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가난 때문에 공부 대신 미싱을 돌리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렸던 12∼16살 소녀 여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사 진진 제공

‘원단 더미에서 풍기는 포르말린 냄새가 아리게 코를 찌른다. 밖이 환한데도 작업장은 침침하다. 눈앞에 매달린 백열전등에 익숙해지고 나면 밝은 햇살 아래 눈을 뜨지 못한다. 작업대에 몸을 굽히고 있는 열세 살짜리 ‘시다’들의 눈은 핏물이 든 것처럼 빨갛다. 재봉대와 시다판으로 꽉 찬 다락방에서 사이사이 끼어 앉은 여공들이 실밥을 뜯고 자크(지퍼)를 단다. 퇴근시간까지 닭장 같은 곳에서 하루 15시간씩 재봉틀을 밟아대는 것이다. 천정이 낮은 탓에 허리조차 똑바로 펴지 못하고…’(‘전태일평전’ 중)

여공들은 또래 학생들을 부러워했다. 하얀 세일러칼라 교복 차림에 책가방을 든 여학생을 보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았다.

1977년 조사에 따르면 구로공단 여공들의 절반이 초등학교만 나왔고, 70%는 농촌 출신이었다. 공단 측은 노동력을 충당하고 노사관계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산업체부설학교를 세웠지만 혜택을 받은 이들은 전체 여공의 10분의 1도 안 됐다. 그나마 대규모 공단 여공만 해당되었고, 전국에 산재한 중소기업 여공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게다가 기업들은 야간학교에 다니게 해주는 것을 특혜처럼 여겨 ‘말 잘 듣는, 마음에 드는 여공’만 골라 보내기도 했다.

70, 80년대 독재정권들은 경제성장을 자랑하지만 그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인권과 청춘, 삶을 희생당한 여공들이 있었다.

그 시절 소녀들의 삶과 애환 희망의 '미싱' 바퀴를 굴리다 | 인스티즈

‘여공’과 함께 ‘버스안내양’ ‘식모(가사도우미)’를 당시의 세상은 ‘삼순이’라 비하해 불렀다. 그 많던 삼순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때 가장 고단했던 그들은 바로 우리의 누이이자 엄마, 할머니다. 딸이 대학생이 되어서야 자신의 소녀 시절을 이야기해 주었다는 엄마도 있고, 자녀들 혼인에 해라도 끼칠까봐 고생하던 시절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다는 할머니도 있다.

그 시절, 노동운동의 주역들은 여공이었다. 남성 노동자 대부분은 방관하거나 심지어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서기까지 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왜 여성들이 노동운동의 주역으로 나섰던 것일까. 독재체제 아래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성적으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차별받는 여공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운동의 길을 스스로 열어가야 했다.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유신체제는 당시 유일한 노동조직이었던 한국노총을 어용화해 노동운동하는 여공들을 빨갱이로 몰아 구속시키는 등 탄압을 가했다. 이에 경공업 중심의 여공들이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에 섰다.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 2주 뒤인 11월 27일 청계피복 노조 결성을 시작으로 72년 원풍모방과 동일방직, 이듬해 콘트롤데이타, 74년 반도상사, 75년 YH무역 노조가 만들어졌다. 특히 청계피복 노조는 창립 조합원 560명의 대다수가 여성노동자였다. 이들 노조는 독자적인 교육기관부터 설치했다. 청계피복 노조의 ‘노동교실’, YH무역 노조의 ‘녹지야학’이 유명하다.

이혁래, 김정영 감독의 다큐 ‘미싱타는 여자들’은 평화시장 ‘시다’로 일하며 ‘노동교실’에 다니던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을 포함한 14명 여공들의 70년대 추억과 증언을 들려준다.

그 시절 소녀들의 삶과 애환 희망의 '미싱' 바퀴를 굴리다 | 인스티즈

당시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탓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참으로 험한 노동환경과 다양한 사연들을 소개한다.

7번 시다 혹은 1번 미싱사 등 항상 번호로만 불렸던 여공들은 ‘노동교실’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연대했다. 여기서 ‘근로기준법’을 통해 부당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을 깨달았고, 통장을 개설하는 법과 한자로 이름 쓰기 등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생활 필수사항들을 익혔다.

영화는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선동하지도 않는다. 주변의 진솔한 이야기들이어서 공감하기 쉽다. 억울한 세상 몹시 힘겨웠지만 ‘바르게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용서가 가슴을 친다. 지금은 노년에 이른 그때 그 시절의 여공들은 세대를 뛰어넘는 화해를 보여준다. 진정한 용기다. 이미 삶을 넉넉하게 부릴 줄 아는 거인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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