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전략이 반영된 대표적인 아이돌 그룹 이름이 ‘동방신기’다. 당초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팀을 결성할 때부터 아시아 진출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동방신기 한자의 뜻은 ‘동방의 신이 일어나다’는 뜻이다. 먼저 후보로 올랐던 이름은 ‘전먹고’, ‘오장육부’, ‘동방불패’였다. 전먹고(전설을 먹고 사는 고래)는 발음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오장육부는 모두 중요 장기인 만큼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그룹이 되자는 의미였지만, 유치해 탈락됐다. 결국 동방불패를 이름으로 정하고 이 회사 이수만 회장은 중국 영화 <동방불패> 감독을 찾아가 이름을 써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았다. 다만 ‘불패’라는 한자가 예쁘지 않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동방신기라고 최종 선택했다.
동방신기 멤버 이름은 사자성어처럼 모두 네 글자다. 최강창민은 당시 팬 카페 이름인 ‘최강(最强)창민’에서 따왔다. 유노윤호는 ‘당신을 안다’는 뜻의 영어 문장 유 노우(You know)에서 따와 ‘언제나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탈퇴해 JYJ를 만든 시아준수는 아시아를 제패하자는 의미로 아시아의 뒷 글자 두 개를 따왔다. 영웅재중은 가요계의 영웅이 되자는 뜻이다. 믹키유천은 미국 이름 미키를 앞에 내걸었지만 비장의 무기가 되자는 ‘비기(秘器) 유천’ 뜻을 담고 있다.
최근 K팝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면서 기획단계부터 그룹이나 멤버 이름을 영어를 쓰는 경우가 늘어났다. 주요 연예기획사 소속 아이돌 그룹 이름을 보면 슈퍼주니어, 빅뱅, 투애니원, 원더걸스, 포미닛, 비스트 등 대부분 영어다. 소녀시대도 해외에서는 ‘걸스 제너레이션(Girl’s Generatio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소녀시대를 영어로 표기했을 때 이니셜을 따 SNSD로 쓰기도 한다.
멤버 이름도 해외 팬에게 친숙하게 미국에서 살던 때 쓰던 이름으로 활동한다. 티파니, 제시카가 그렇다. 제시카의 친동생이자 같은 소속사 그룹 f(x)로 활동하는 크리스탈도 미국 이름이다.
발음하기 쉽고 들었을 때 한번에 의미가 파악되는 이름으로 짓는 게 최근 흐름이다. JYP 관계자는 11일 “투피엠, 투에이엠처럼 일단 음절이 길지 않아야 한다”며 “뜻이 난해하면 기억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비스트, 포미닛 등이 소속된 큐브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도 “예전에는 단어나 숫자를 조합해 독특한 의미를 만드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엔 음악 콘셉트를 단번에 떠올리게 하는 일반 명사를 쓰는 게 유행”이라고 했다. 그는 “포미닛이 소속사에서 가장 잘 지은 이름인 것 같다”며 “노래를 부르는 4분 동안 팬들 마음을 빼앗겠다는 뜻인데 발음하기도 편하고 그룹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룹 이름은 영어로 짓는다고 하더라도 멤버 이름은 실명을 쓰는 게 최근 흐름이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대중들에게 실명으로 각인되면서 인지도를 고려해 굳이 이름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연예 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도 개인 이름은 실명을 쓰는 경우가 늘었다. 아이돌이 음악활동 외에 연기, 예능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음악 콘셉트에만 한정해 짓는 예명이 다른 영역에서 이미지 변신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트렌드에서 벗어나 특이한 이름으로 주목받는 아이돌 그룹도 있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B1A4, 방탄소년단, 엑소(EXO) 등을 참신한 이름으로 꼽았다. 방탄소년단은 작곡가 방시혁이 기획한 아이돌이라는 의미에다가, 방탄(防彈) 기능처럼 강한 음악을 하는 그룹이라는 이미지에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엑소는 태양계 외행성을 뜻하는 ‘엑소플래닛(exoplanet)’에서 착안했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새로운 스타라는 의미다. 여기에 ‘비범한’ ‘놀라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 ‘엑스트라오디내리(extraordinary)’를 연상케 해 신비로운 팀 이미지를 극대화했다고 평했다.
본래 이름을 지은 취지와 달리 읽히는 사례도 있다. 2012년 데뷔한 남성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는 ‘무한한(Infinite)’이란 뜻이지만 일본 닛산의 자동차 이름인 ‘인피니티(Infiniti)’와 혼동되는 일이 잦다. 인피니트를 인피니티와 혼동하는 기사가 인터넷에 뜨면 팬클럽 ‘인스프릿’이 단체로 몰려가 ‘티’가 아니라 ‘트’라는 것을 강조하는 항의 댓글을 달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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