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라 29대 왕으로, 최초의 진골출신 왕이자, 신라의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왕이라 국사교과서에서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김춘추는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대당청병외교를 펼침으로써 후세의 사람들에게 강한 비판을 받는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김춘추를 비열한 사대주의자라 혹평하였고, 지금도 김춘추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태종 무열왕 영정
난 이 김춘추와 관련해 재미난 이야기를 할까 한다. 바로 그의 식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김춘추의 또다른 모습을 이야기할까 한다.
식신(食神)이란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식신의 사전적 정의는 음식을 맡은 귀신이란 뜻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식신하면 음식을 너무 잘먹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식신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그렇다. MBC에서 방영한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한 정준하씨다. 하이킥에 보인 그의 끝없는 식성은 결국 그에게 식신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실제로 식신준하 못지 않는 음식을 너무 잘먹는 이가 있었다. 누군지 대충 눈치 챘을 것이다. 바로 김춘추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김춘추의 식성에 대한 재미난 기록을 남겨 놓았다.
"(김춘추의) 식사는 하루에 쌀 세 말(斗)과 수꿩 아홉마리였는데, 경신년(660)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로는 점심을 먹지 않고 아침과 저녁만 먹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계산해보면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
우리는 통닭 한 마리를 먹어도 한끼를 안먹을 정도로 배가 부르다. 그런데 김춘추는 닭보다 큰 꿩을 그것도 하루에 9~10마리를 먹었다니 대단한 식성이라 할 만하다.
그가 하루에 먹었던 쌀 세 말(斗)은 어느 정도의 양이었을까?
고대 양제(量制)의 단위는 10흡(合)이 1되(升)이며, 10되가 1말(斗)이었다. 이때 1되의 용량은 200ml에서 삼한일통을 전후한 시기 당나라의 영향으로 300ml로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춘추가 백제를 멸망시키기 전에 하루에 먹은 쌀 세 말은 약 6,000~9,000ml가 된다. 우리가 먹는 우유갑의 부피가 200ml이므로, 대략 200ml 우유갑 30~40여 개가 김춘추가 하루에 먹은 쌀의 부피이다.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그는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었다. 그의 식성이 늘어난 것이다. 앞의 계산대로 본다면 그는 200ml 우유갑 60~80여 개 부피의 쌀을 먹었다. 더군다나 그는 술까지 마셨으니, 술의 부피까지 합하면 200ml 우유갑 120~160개 만한 부피를 먹었다는 것이 된다. 여기다가 그는 꿩 열 마리까지 먹었다.
한국인이라면 술을 마시면 배가 나온다는 걸 알 것이다. 그가 밥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으니, 그의 체형은 대단히 뚱뚱했을 것이다.
사람이 저 정도를 먹을 수 있느냐며 이 기록을 믿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록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건, 김춘추가 엄청난 대식가였음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한가지 김춘추의 용모에 관해 언급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2009년 인기리에 방영한 MBC 선덕여왕에서 탤런트 유승호가 김춘추로 출연했다. 그 때문인지 김춘추하면 귀엽고 출중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이 판에 박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김춘추는 잘 생겼을까?
김춘추의 용모에 대해 위작의 시비에 걸려 있는 『화랑세기』 「춘추공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을 구제한 왕이고 영걸한 군주며, 천하를 바로잡으니 덕이 사방을 뒤덮었다. 나아가면 태양과 같고 바라보면 구름과 같다(就之如日 望之如雲)”
“얼굴이 백옥같고 온화한 투로 말을 잘했으며, 대지(大志), 즉 커다란 뜻이 있었고, 말이 적었고, 행동이 치밀하고 법도가 있었다”
‘귀티가 줄줄 흘렀다’는 식상한 관용적 표현들이 나열된 것일 뿐 화랑세기를 진본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용모 역시 문자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듯 싶다. 물론 이 말이 춘추가 추남이었다거나 평범한 외모였다는 주장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과연 잘생겼었는지 아니면 평범했는지 확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본서기』를 보면 김춘추의 외양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춘추의 용모가 수려하고 화술이 뛰어나다(春秋美姿顔善談笑)”
한마디로 잘생겼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김춘추의 식사량과 연관지어 생각해보자 과연 그가 오늘날 얼짱이라 불리우는 잘생긴 남자처럼 잘생겼을지 의문이다.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살이 찌는건 당연지사 아닌가? 그는 머리를 쓰는 사람이었지, 김유신처럼 몸을 움직이는 장수가 아니었다.
『삼국유사』 「기이」편을 보면 김춘추가 당나라에 청병하러 갔을 때 당 태종이 김춘추를 보고 신성지인(神聖之人)이라 평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당 태종이 김춘추를 신성지인이라 표현한 것이다. 즉 당 태종은 김춘추의 용모를 보고 그를 특출하게 여긴 것이다.
당나라의 미의 기준은 현재와 달랐다. 현재에는 마른 사람이 미의 상징이라면 당나라 때는 뚱뚱한 사람이 미의 상징이었다.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로 칭송받는 양귀비를 보자. 우리는 그녀가 엄청 예쁘고 갸날픈 몸매의 소유자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당대에 쓰여진 매비전을 보면 양귀비를 일컬어 '비비(肥婢)! 살찐 종년이라 기록하고 있다. 양귀비는 비만 미인이었던 것이다. 즉 양귀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당나라의 미인이 꼭 비만인 사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고대에는 살이찐 풍채가 좋은 사람을 귀티가 흐른다고 한 예가 있는 걸로 보아 김춘추가 신성지인의 용모를 가졌다고 평한 당 태종의 말을 미루어보아 김춘추는 MBC 선덕여왕에서 나온 잘생기고 귀엽고 출중한 외모였다기 보다는 살이 좀 찐 체형을 가진 사람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