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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별이 지갑에 대한 제목+내용 검색 결과
키루스ll조회 2495l 1
이 글은 8년 전 (2015/9/29) 게시물이에요


















너라는 계절이 아름다운 이유 | 인스티즈





지친 얼굴과 표정 다리를 질질 끌면서
붉게 비치는 노을에 얼굴을 찌푸린다
가볼까 돌아갈까 계속된 고민을 해도
이윽고 꿋꿋하게 걷기 시작한 뒷모습
그래 가지 않으면 안돼
아무것도 없지만 살아가보는거야
우리는 어차피 거둬질 목숨이다
이제는 짊어진 것을 내려놓고서















부드럽고 단순하게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十자 모양으로
가른 적도 있고

조그만 삽 같은
스푼으로 뜬 적도 있다

홈이 파이고 물이 모이고
빛이 고인다

혀를 대봐요
희고 매끄러운 내 몸에
그냥이라는 말은
싱겁긴 해도

당신이 괜찮아, 라고
말해 준다면
이 세계는 순결하게
무너져 버려도 좋을 텐데


연두부/신미나








우리의 잠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개미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는 통로에서
서성인다
어떤 열매를 거두려
저토록 더듬이를 곤두세울까
다리 하나가 끊겨도 멈추지 않는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행렬
눈알이 하나 떨어져나가도 귀를 잃어도
괘념치 않지 새끼를 잃어도
멈출 줄 모르는 저 행렬 속엔
어떤 절규가 있는데
그것은 너무도 고요해서
아무도 깨뜨릴 수가 없어
그토록 바라던 거대한 바퀴에 짓눌린 꿈을 꾼다
한데 무서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묻는다, 내가 버린 이 감정들을 누가 다시 주워 왔을까
그때에 우주의 침묵은 가혹하다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 계절이 오면
줄기를 타고 오르는 일에 익숙해질까
저 줄기처럼 보일 수 있을까
이내 내가 죽은 둥치처럼 보일 땐
단잠을 잘 수 있을까
꿈꿀 수 있을까
낮이면 별을 기다리고
밤이면 별을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 할 일이 없는 그런 나무둥치 그런 꿈


꿈이란 위로가 없었다면/정영











삶이 한 마리 짐승처럼 네 몸에 갇혀 울부짖는다
삶이 회돌이를 지난 강물처럼 네 몸의 바다를 향해 줄달음친다
고삐를 놓친 계절이 바람채찍을 휘두르며 황혼과 안개의 거리를 가로지르고
내일을 알지 못하는 열망은 여자의 몸을 빌어 수태하지 않은 아이의 이름을 짓게 한다
겨울은 잠시 너의 짐승이 잠드는 시간,
너는 새를 기다리던 골짜기 벼랑 위에
쓰러진 나무의 초록심장을 꺼내 묻어두고
깊은데서 울리는 어둡고 비밀스런 목소리를 듣는다
키 낮은 밤나무숲길 아래 옥수수하모니카를 불던 어제의 소녀가 걸어간다
너는 아무 곳에도 없는 낯선 짐승
눈과 북풍의 산맥을 넘어 나날의 전장으로 가는 사냥꾼이다


야성/류인서













분홍 설탕 코끼리는 말에 꼭 맞는 장화 때문에 울고 다녔다
발에 맞는 장화를 신게 된다 해도 울고 다녔을 테지 어릴때부터 울보였고 발은 은밀히 자라니까 두 번째 분홍 설탕 코끼리가 말했다 그렇다고 코끼리가 두 마리 있는 건 아니었다 설탕이 두 봉지 있는 것도 분홍이 두 바닥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도 없었지만 분홍 설탕 코끼리는 오늘도 언덕에 누워 설탕을 먹고 분홍에 대해 생각했다 코끼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있었나 아주 오래 전 일이라 잊었나
설탕 하고 발음하면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바보 모든 설탕은 녹는다 뚱뚱해지는 건 시간 문제
계절이 지나자 분홍 설탕 코끼리는 분홍 설탕 풍선이 되었다 아니 그건 잘못된 말이다
분홍 설탕 코끼리는 분홍 풍선 풍선이 되었다 아니 그것도 잘못된 말이다
분홍 설탕 코끼리는 풍선 풍선 풍선이 되었다
할짓이 없구나  네 그럼요 그럼요
풍선 풍선 풍선은 이름이 바뀌었는데도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막 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사랑받는 느낌도 없었다 친한 사람들끼리 그러듯 막 대해줘도 좋은텐데
풍선 풍선 풍선은 일부러 잃어버린 장화 한쪽을 손에 들고 이미 녹아버린 설탕을 음미하면서
하늘에 떠가는 분홍 설탕 코끼리를 바라보았다 구름 같았고 추억 같았고 눈물 같았다
불지 않는 바람의 깃털 사이로 풍선 풍선 풍선의 없는 꼬리가 한 번 나부꼈다 아니 두 번 나부켰다 아니 세 번 나부켰다 본홍 설탕코끼리 풍선구름 멋진 이름이다 이제부터 슬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분홍 설탕 코끼리/이제니













한 친구에게 세상 살맛이 없다고 했더니

사는 일이 채우고 비우기 아니냐며 조금만 기울어져 살아보란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노처녀로만 지내던 그 친구도 폭탄주를 마시고
한 남자 어깨 위로 기울어져 얼마 전 남편을 만들었고
내가 두 아이 엄마가 된 사실도
어느 한때 뻣뻣하던 내 몸이 남편에게 슬쩍 기울어져 생긴 일이다
체게바라도 김지하도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다
혁명을 하고 시대의 영웅이 됐다
빌게이처도 어릴 때부터 삐딱한 사고로
컴퓨터 신화를 일궈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고
보들레르도 꽃을 삐딱하게 바라봐 악의 꽃으로 세계적인 시인이 되었다
지구도 23.5도 기울어져 계절을 만들고
피사탑도 10도 넘게 기울어져 세계적인 명물이다
노인들의 등뼈도 조금씩 기울어지며 지갑을 열듯 자신을 비워간다
시도 안 되고 돈도 안 되고 연애도 안 되는 날에는
소주 한 병 마시고 그 도수만큼만
슬쩍 기울어져 볼 일이다


기울어짐에 대하여/문숙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성미정















구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산길을 걸으며
내 앞에 가시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들의 꽃 피고 나비가 날아가는 사이에서
당신 옷깃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당신 목소리는 거기 계셨습니다
산 안개가 나무를 밟고 계곡을 밟고 나를 밟아
가이없는 그 발길로 내 가슴을 스칠 때
당신의 시는 이끼처럼
내 눈동자를 닦았습니다
오래된 기와지붕에 닿은 하늘빛처럼
우물 속에 깃들인 깊은 소리처럼
저녁 들을 밟고 내려오는 산그림자의 무량한 몸빛
당신 앞에 나의 시간은 신비였습니다.
돌담 샘물에 떨어진 배꽃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새벽 산에서 옷을 벗는 새벽빛을 보셨습니까
당신은 나의 길을 이렇게 오십니다
산사로 향한 따뜻한 길처럼
하늘에 새 날려보내고 서 있는 나무처럼
내 앞에 당신은 그렇게 계십니다


당신이 나를 스칠 때/이성선














당신을 만지지 않아서 내가 노래하는 건 아니죠
내 노래는 당신의 얇은 피부 밑을 흐르는
혈관 같은 것 손대지 않아요
흐르는 노래는 당신의 심장에서 나와 심장으로 돌아가죠
당신을 만나지 않아서 내가 노래하는 건 아니죠
내 손은 당신의 심장을 기억하고
그래서 언제나 둥근 허공을 어루만지고
노래는 손가락 끝에 맺혀 있어요
당신을 만지지 않아서 내가 노래하는 건 아니죠
내 입술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동심원들이
당신을 만나 내게로 돌아오고 있어요
들숨과 날숨 사이 거기 그렇게 당신이 있어요


당신을 만지지 않아서 내가 노래하는 건 아니죠/권혁웅













태초의 이전부터 오신다더니
꽃과 바람
물과 불
하늘과 땅 어디에도 보이시지 않네

터진 듯 쏟아 내리는 별빛 속에도 묻어오지 않으시고
전생의 전생에도 보이지 않으시는

우주의 바깥에 계신 당신

모든 이즘의 프리즘인
처음의 줄기이자 분열의 마지막인

아, 당신은



애초의 당신/김요일












당신의 배경은 종이인가 담벼락인가 다 구겨진 영사막인가
당신은 뚜렷이 서 있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창문도 대문도
벽도 없는 공간이 만들어놓은 안식처에 당신은 겨우 붙들려 있다
겨우 튀어나오는 목소리는 공기의 이동과 다르지 않다
대기의 흐름과 다름 없는 당신의 이동과 정지 할 수 없는
공기들이 죽어 있는 대로변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공백이
두려워서 화면은 움직인다 소리도 빛도 모두 정체 상태에서
움직인다 하나씩 차례차레 앞자리가 비는 대로 뒷자리가
거의 모든 것이 비어 있는 금속의 내면이 어떤 함성에도
움직이지 않을 때 공기를 가르는 비행의 흔적은 균열을
가르는 망치와 정의 끝에서 시작하는 막다른 충격과
얼마나 다른가 얼마나 엇비슷한가 다 엎질러진 물빛에도
얼굴이 굳는다 표정은 한 번 본 그대로 푸른 스크린에 펼쳐지고
묻어난다 마땅히 분노할 만한 장소가 거기라는 듯


거의 비어 있다/김언







어제 잊어버린 문장이야말로 완벽한 것임을 믿는다
하얗게 질린 천장 아래로 기둥 하나가 내리뻗어 있고
당신과 수작업으로 만든 감정들이 둘러앉아 있다
나는 그것들은 내 눈의 무늬로 새긴다
감정들을 만들고 전시해온 시간들이 지문을 닳게 했다
담배를 피웠던 흔적도 남아 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해 물러 보이는 감정들과 너무 오래되어 상해 버린 감정들 사이사이의 바닥에
세상에선 볼 수 없는 검은 꽃으로 흐드러진 담뱃재들이 내게 안녕 안녕 인사한다
당신이 버려둔 담배도 있다
담배를 끄려고 길게 비벼댄 자국들이 희끄무레하게 끌려간 주저흔의 골목길 같다

일찌감치 잃어버린 웃음이 어떤 감정 위에 아로새겨져 있다
저 똑바르게 각진 웃음들 웃을 수 있느냐 너는 웃을 수 있느냐
다른 감정들은 울음이나 일그러진 눈두덩이나 씩씩거리는 입술로 무늬를 갈음한 상태다
기둥에 맞닿은 바닥은 너무 깊은 교접에 무너질 리도 없다
벽에 벗는 창문이 불러불이는 구름들
문장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잊어버리는 것은 나의 새로운 고질병
나는 언제나 불모지에서
문장을 잃어버리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의 차이를 세공하는 버릇이 있다

지문이 묻어나지 않게 되었으므로 수작업이 훨씬 수월하다
새로운 감정들이란 퍽이나 밝은데 당신이 없다
당신이 버려둔 담배는 오래 전에 넘어져 있다
기둥이 되지 않겠다 기필코 쓰러지겠다
말을 목구멍 아래로 넘긴다
무늬가 없다는 건 올바른 일이지만 무늬가 없는 것일수록 삼키기 쉽다
벽이 없는 창문에서 햇살이 들어온다
빛의 줄기들은 창문을 찾는데 오래 걸렸을 것이다
눈동자의 문신이 되어 상상하는 감정들을 본다
내일은 빛이 돌아가는 순간에 있을 것이다



소규모 감정 공작실/이이체














프랑스인지 이탈리아인지 그런 영화가 있었어요 지지직 지지직 들려줄게요 잠들지 말아요 먼 나라에 외로운 남자가 살고 있었죠 하루는 혼자 사는 집으로 콜걸을 불렀는데 콜걸이 다음 날부터 페이도 받지 않고 매일 찾아오는 거예요 날마다 푸른 핏줄이 도드라진 가슴을 실컷 뛰어다닐 수 있다니 남자는 아주 기뻤어요 전 이쯤에서 핏빛 오줌을 누고 왔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남자는 의심스러웠어요 개연성 없는 서사의 결말이 대개 그렇잖아요 왜 돈을 받지 않는 걸까 왜 나 같은 새끼를 만나는 거지 남자는 추궁했어요 여자 표정이 석고상처럼 딱딱해졌어요 당신밖에 없어요 아냐 너의 숨소리까지 거짓이야 진실을 말해 남자는 다그쳤어요 여자 피부가 붉어졌어요 색깔은 중요치 않아요 살아 숨 쉬는 석고상에게 결국 남자는

혼자 살던 방을 나와 여자 손을 끌고 여자네로 갔어요 상냥한 부모님과 동생들, 오리훈제는 부드러웠어요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믿지 못해요 여자의 친구들도 만나고 여자의 방에서 억지로 강요한 적도 있었지만 여자는 끝까지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사라졌어요 잠들지 말아요 자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래서 당신의 여자들이 자꾸 사라지는 거잖아 남자는 미친 듯이 여자를 찾아다닙니다 여자의 집도 부모도 형제도 사라졌어요 커다란 코르셋 밖에 기억나질 않아요 남자는 차를 끌고 오솔길을 달려요 사고가 나고 병원에서 절망에 관한 멋진 대사를 중얼거리죠 그게 생각이 안 나요 누가 이 영화의 제목을 맞춘다면 당신과의 비밀도 털어놓겠어요 펄쩍 뛰지 말아요 결말 없이도 우린 가까워질 수 있잖아요 깨워줄게요 우리에게 아침이 오면, 누가 이 영화의 제목을 알려준다면



위험한 고백/주하림














처음부터 파랑새는 아니었어 당신도 저런 새를 갖고 싶다면 좋은 방법을 알려주지
위험을 무릅쓰고 추억의 나라나 밤의 나라 따위를 헤맬 필요는 없어 우선 새를 잡아와
흔해빠진 참새라도 새를 잡을 정도로 민첩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새를 사오라고
그리고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새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때리란 말이야
시퍼렇게 멍들 때까지 얼룩지지 않도록 골고루 때리는게 중요해 잘못 건드려서 숨지더라도 신경 쓰지 마
하늘은 넓고 새는 널려 있으니 오히려 몇 마리 죽이고 나면 더 완벽한 파랑새를 얻을 수 있지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 말하라고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왔다고 모두들 기뻐하겠지
물론 밤마다 새를 때리다 보면 둔해빠진 가족이라도 비밀을 눈치채겠지 걱정마 그정도는 눈감아줄 거야
그리고 비밀 없는 행복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 거야
뼛속 깊이 퍼렇게 골병든 행복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지는 행복 처음부터 파랑새는 아니었어



동화/성미정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고래는 제 아기들을 먼 데서 낳아 돌아오고

멀리 있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가끔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멈춘 걸음을 끌고 가는, 스스로의 발등을 내려다보게 한다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돌아보면 그 자리에 아직도 네가 서 있는 걸 믿고 싶어지는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정윤천















연애시절, 나는 은근슬쩍 당신에게 여보라고 불러봐 했더니
그 말이 어색했던 당신은 여보를 거꾸로 바꿔서
보여? 라고 묻고는 딴청을 피웠다
나는 느닷없는 물음에 당황스럽기만 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당신은 나지막하게 사랑해라고 했다

결혼을 앞두고 사소한 이유로 다투던 날
당신은 내가 되어도 내가 아니 되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나는 먹먹해져서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니 된다고
당신이어야만 한다고 소리쳤다
당신은 내 마음이 보여? 라고 묻고는 뒤돌아섰다
나는 눈을 감고 사랑해라고 속으로 속으로 되뇌었다

당신은 이 세상 기꺼이 나와 함께 살겠다고 했다
깜깜한 나에게 전부를 보여준 당신
당신은 겨울 꽃처럼 단아한 신부가 되었고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어둔 세상에 살지라도
당신이 내민 손을 꼬옥 붙잡고 가겠다고 했다

새신랑이 된 나는 당신에게 보여? 라고 물었더니
당신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여보라고 말했다
여보라는 말이 어찌나 아늑하던지
나는 사랑해! 라는 말로 들렸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이 보여? 내 사랑이 보여? 정말 내가 보여? 라고 묻지 않고
단지 여보라고 말할 것 같다
여보라는 말 입속에 가만히 숨겨둘 수 없어서
부르면 부를수록 보여줄 수 있는 사랑보다 더 커져만 가는 말



여보라는 말/윤석정














잘 못 꾼 꿈이 지워진 거에요 마음이 시끄럽네요 쮸릿 쮸릿 칫 칫 물이 끓고 있나요

머릿속을 지우개로 박박 지웠더니 보글보글 구름이 생겼어요 요리에 앞서 별표 3개라는 걸 잊지 마세요
너무 많이 문지르면 검게 비구름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럼 한쪽으로 쓸어버려야 하죠 쓸려나간 구름은 어디선가는 필요로 하거든요 아픈 배 문지르던 엄마의 손길로 잘못 디딘 첫발을 지워봐요 뒷걸음질치며    구름이 송골송골 피어날 테니까요

일단은 지나가는 뜬구름 낚아채 통째로 집어넣어야만 해요 낚아챌 때는 빠른 감각 두꺼비 혀의 본능이 중요해요 토끼 기린 강아지 오빠 엄마 물고리 할머니 얼굴로 수시로 변하거든요 강아지가 싫으면 절대로 피해야 하니까요 오빠와 엄마를 요리하고 싶으면 적절할 때 낚아서 납득시킬만한 꺼리가 필요해요 잘못하면 당신이 설득 당할테니까요 할머니에겐 안개구름 한 소반 선물해 봐요 그럼 그 속에 감춰진 추억을 하나하나 따내며 끄덕끄덕 하시겠죠 그리고는 겹겹이 포개 진 뭉개구름 동강동강 썰어야 해요 구름의 남쪽 비늘구름 잡아 당겨 살점만 떠 넣고요 다시 제 위치에 걸어놓아야 해요 요리는 늘어놓고 하면 곤란해요 제 살점을 잃은 구름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다른 형상으로 변해 떠나가버려요 하악 그새 악어가 입 딱 벌리고 급 하강하는 줄 알았어요 간이 철렁했죠 긴 꼬리를 끌며 지나간 뒤에 간을 보니 소금을 좀 더 넣어야겠네요

요리를 하다 보면 알게 되죠 구름을 절대 새총으로 쏘아 잡으면 안 돼요  조리법에 어긋나는 일이죠 빗맞기라도 하면 냄비에 구멍이 나요 조루처럼 빵빵 뚫린 구멍으로 빗줄기가 쏟아질테니까요 조리법에 의하면 그 총탄자국은 밤에만 보인다지요 그것은 인간들이 쏘아댄 빗나간 꿈이에요 별들의 실체라고도 해요
요리가 다 됐나요? 새털구름이 하늘 가득 웃자라 피었어요 여러 빛깔로 아롱진 꽃구름이 피었어요 배추읜나비가 꽃잎에 앉았어요 지나가던 바람 배추흰나비 날개깃에 머무네요
요리는 다 되었나요 꽃구름?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심명수


추천  1


 
너구리 계절이 아름다운이라고 읽었찌 왜..
8년 전
비프리  유노유캔볶음밥팀!
기울어짐에대하여
8년 전
예뻥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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