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철 / 맑은 물세수를 했는데 잊고 또 세숫물을 받았다 물을 내리며 두 손을 깍지 낀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류시화 / 자살눈을 깜박이는 것마저숨을 쉬는 것마저힘들 때가 있었다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자살을 꿈꾸곤 했다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그러나 나는 아직당신 앞에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서덕준 / 이끼마음가에 한참 너를 두었다네가 고여있다보니그리움이라는 이끼가 나를 온통 뒤덮는다나는 오롯이 네 것이 되어버렸다.구영주 / 헛된 바람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예고없이그대와 마주치고 싶다그대가처음 내 안에 들어왔을 때의그 예고없음처럼.류시화 / 잔 없이 건네지는 술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당신이 부어 준 그 술에 나는 이미취해 있기에.문정희 / 겨울 사랑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머뭇거리지 말고서성대지 말고숨기지 말고그냥 네 하얀 생애 뛰어들어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서덕준 / 꽃밭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더니너 때문에 내 마음엔 이미 발 디딜 틈 없는너만의 꽃밭이 생겼더구나.복효근 / 안개꽃나로 하여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네 몫의 축복 뒤에서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류시화 / 별에 못을 박다어렸을 때 나는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흔적이 아닐까 하고생각했었다별들이 못구멍이라면그건 누군가아픔을 걸었던자리겠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