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Q : 사실 그에게도 한 때 윤지훈처럼 순수하게 열정 넘치는 시절이 있지 않았나.
장항준 : 극 초반 전광렬 씨에게 “가장 이명한을 닮은 사람은 윤지훈이다. 15년 전 이명한의 모습이 윤지훈이다” 라고 말했고 박신양 씨에게는 “극좌와 극우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순간 극좌는 곧바로 극우로 바뀔 수 있으니까. 그래서 원래 윤지훈도 10회쯤에 변하는 걸로 설정되어 있었다. 정병도 원장의 죽음을 보면서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명한과 싸우다가 이명한처럼 되는 거다. 그러면서 윤지훈과 고다경(김아중)이 대립하게 하려 했는데 이미 시청자들 사이에선 윤지훈이 거의 안중근 의사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을 변하게 만들면 우리는 이민 가야 하는 거다. (웃음) 누군가 ‘윤지훈은 지금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 자기 길만 딱 보고 달려가면서 ‘다 필요 없고 정의면 된다’는, 어떻게 보면 구닥다리 인물인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다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런 면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 같다.
김은희 : 드라마라는 게 그렇더라. 어느 순간 우리 손을 떠나더니 살아서 움직이고 스스로 진화한다.
Q : 영화였다면 내가 만들고자 했던 캐릭터를 사람들이 원하는 캐릭터로 바꾸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상업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건가.
장항준 : 그렇다.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의 속성이라는 건 대중성에 절대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재미들도 나름대로 느꼈다. 피드백이 팍팍팍 오니까, 한 주에 두 개씩 개봉 하는 게 장난이 아닌 거다. (웃음) 수요일에 개봉하면 목요일에 또 개봉하고, 다음 주에 또 개봉하는 게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고 신나면서 위태위태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중략)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논란이 될 만한 결말에 대해 “왜 그래야만 했느냐”고 한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장항준 :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거니까 우리한테는 당연한 거였다. 대책 없는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진짜 영웅이, 세상에 걸맞지 않은 영웅이 온전하게 남으려면 그 때 그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남겨준 세상의 교훈을 갖고 우리가 앞으로, 그가 가졌던 갈등이나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윤지훈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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