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관, 저녁별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다 오는 소년이저녁별을 쳐다보며 갑니다빈 배 딸그락거리며 돌아오는 새가 쪼아먹을들녘에 떨어진 한알 낱알 같은저녁별저녁별을 바라보며가축의 순한 눈에도 불이 켜집니다가랑잎에서 부스럭거리며 눈을 드는풀벌레들을 위해지상으로 한없이 허리를 구부리는 나무들들판엔 어둠이어머니의 밥상포처럼 덮이고내 손가락의 거친 핏줄도풀빛처럼 따스해옵니다저녁별 돋을 때까지발에 묻히고 온 흙이 흙들이오늘 내 저녁 식량입니다김혜순, 감지당신이 들여다보는 사진 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마주 본다당신의 사진 속은 늘 추웠다기침나무들이 강을 따라 콜록거리며 서 있었다눈을 뜨면 언제나 히말라야 가는 길이었다간신히 모퉁이를 돌아서도 희디흰 눈밭날카로운 절벽 아래로 툭 떨어져도 가이없는 눈밭이었다얼어붙은 하늘처럼 크게 뜬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는 저녁동네에 열병을 옮기는 귀신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굴뚝마다 연기들이 우왕좌왕 몸을 떨었다당신은 내 몸에 없는 거야 내가 다 내쫓았거든내 가슴에서 눈사태가 나서 한 시간 이상 떨었다기침나무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뭉치를 떨구자벌어진 내 가슴 계곡에서 날선 얼음들이 튕겨져 나왔다맨얼굴로 바람을 맞으며, 입술을 떨며 나는 얼어붙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당신이 들여다보는 여기에서 나가고 싶었다최승호, 모래와 모레나는 모레쯤모래가 될거야살이 모래가 되는 날그게 내 모레야 나는 모레쯤모래가 될 거요뼈가 모래가 되는 날그날이 내 모레라오 나는 모레쯤모래가 될겁니다마른 눈물샘이 모래로 메워지는 날그날이 내 모레랍니다 그날이 오면아무것도 아니고아무것도 아닌 나는아무것도 되지 않을 겁니다아무것도 아닌 놈이그 무엇이 되려고 한다면하늘이 나를 건방진 놈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신현림, 자화상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창문 밖에서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이정록, 반달편지함오늘 밤엔 약수터 다녀왔어요플라스틱바가지 입술 닿는 쪽만 닳고 깨졌더군요사람의 입, 참 독하기도 하지요바가지의 잇몸에 입술 포개자첫 키스처럼 에이더군요. 사랑도 미움도돌우물 바닥을 긁는 것처럼 아프기 때문이겠죠그댈 만난 뒤 밤하늘 쳐다볼 때 많아졌죠달의 눈물이 검은 까닭은 달의 등짝에 써놓은수북한 편지글들이 뛰어내리기 때문이죠.때 묻은 말끼리 만나면 자진하는 묵은 약속들,맨 나중의 고백만으로도 등창이 나기 때문이지요오늘밤에도 달의 등짐에 편지를 끼워 넣어요달빛이 시린 까닭은 달의 어깨너머에 매달린 내 심장,숯 된 마음이 힘을 놓치기 때문이죠. 언제부터저 달, 텅 빈 내 가슴의 돌우물을 긁어댔을까요쓸리고 닳은 달의 잇몸을 젖은 눈망울로 감싸 안아요물 한 바가지의 서늘함도조마조마 산을 내려온 응달의 실뿌리와돌신발 끌며 하산하는 아린 뒤꿈치 때문이죠우표만한 창을 내고 이제 낮달이나 올려다봐야겠어요화장 지운 그대 시린 마음만 조곤조곤 읽어야겠어요쓰라린 그대 돌우물도 내 가슴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까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