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몇 겹의 계절이고 나를 애태웠다.
너를 앓다 못해 바짝 말라서
성냥불만 한 너의 눈짓 하나에도
나는 화형 당했다.
장작, 서덕준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한 사내는
수국 가득 핀 길가에서 한 처녀와 마주치는 순간
딱, 하고 마음에 불꽃이 일었음을 느꼈다.
사랑이었다.
부싯돌, 서덕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시야로 너의 낯이 프레임처럼 필름으로 쌓였어
상영시간은 속절없는 나의 수명이었고
나는 너를 한 편 다 보고 나면
엔딩 크레딧이 되어 네게 달려갈 거야
시나리오처럼,
찬란한 영화처럼.
엔딩 크레딧, 서덕준

나의 인연은 너로 꿰매어진다
꿰어지는 실은 통증이며 바늘은 곧 당신이다.
그때는 왜 알지 못했는가
실이 꿰매어진 뒤엔
항상 바늘이 떠난다는 것을.
바늘, 서덕준

그 사람이 꽃구경을 간대요
뭐가 좋아서 가냐 물었더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말하더군요.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잖아."
날 그런 눈으로 바라만 봐준다면
잠깐 피었다 시드는 삶일지라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꽃구경, 서덕준

모든 빛은 전부 네게로 향하고
꽃가루와 온갖 물방울들은 너를 위해서 계절을 연주하곤 해
모든 비와 강물은 너에게 흐르고 구름이 되고
다시금 나를 적시는 비로 내려와
모든 꽃잎과 들풀, 그리고 은빛과 금빛의 오로라는
세상이 너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빛깔이야
밤이면 네가 하늘을 잔뜩 수놓는 바람에 나는 아득하여
정신을 잃곤 하지
아,
세상에 너는 참 많기도 하다.
세상의 빛깔, 서덕준

처음 마주치는 순간
너는 큰 강이 되어 나에게 흐르고
나의 마음을 가로질렀다
하는 수 없지,
차마 건널 수 없어 평생을 너의 강변에 걸터앉아
네가 마르기를 기다릴밖에.
마르지 않는 강, 서덕준

@seodeokjun
- 시인 서덕준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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