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두번째 주제와 다르게 동물실험이 아닌 인간 실험입니다.
* 비윤리적인 실험으로 읽으신 후 기분이 안좋아질 수 있습니다
* 그럼에도 이러한 실험은 많은 아직까지 시사점을 주고 있어 올립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의한 복종 실험 (Milgram Experiment)
- 1961년 예일대학교의 심리학과 조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실시한, 권위에 대한 복종에 대한 실험

나치의 대량 학살 시대가 끝나자, 사람들은 독일의 나치 장교들이 어떻게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받들어, 1,200만 명의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가스를 마시게 하고, 교수형에 처하고, 고문을 가하여 죽게 만들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 당시>
1960년 5월 11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 실무 책임자였던 홀로코스트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됐고, 악랄할 것 같던 그의 모습과 달리 전범재판에 선 그는 평범한 모습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에는 어린 시절 엄격한 게르만식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훗날 지시에 따라 누구에게 어떤 짓이든 가할 수 있다는 가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유행한 '권위주의적 성격'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지켜본 밀그램은 사람들이 대단히 설득력 있는 상황이 생기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도덕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명령에 따라 잔혹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밀그램은 한 연구재단의 후원으로 관련 실험을 진행했다. ‘복종’에 대한 실험이었지만 ‘학습과 공포’라는 주제로 자신의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심리학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위대한 실험을 계획했다.

<당시 밀그램의 실험 참가자 공고문>
실험 재료 표면적(실질적)
선생 역할(복종하는 역할) - 시간당 4달러
연구자 스탠리 밀그램(권위에 의하여 명령하는 자)
가짜 전기충격기
전기 감전을 실감나게 연기할 연기자들(주로 연구진들의 학생들로 이뤄짐)


실험 과정
1. 실험은 두 사람씩 참여하게 된다. 피실험자는 오직 교사역 한명이다. 실험자는 두 명(연기자와 교사역)에게 처벌이 학습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한다고 설명을 해준다.
2. 제비뽑기로 역할을 정한다고 하지만 제비뽑기도 조작된 상태

3. 선생역을 맡은 피실험자가 단어를 읽어주면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이 맞추고, 틀릴때마다 선생역은 학생역에게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4. 처음에 약한 15볼트 정도에서 시작하면 나중에는 '아주 위험'한 강도까지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주어진다.
5. 스탠리(실험자)는 선생역 뒤에 앉아서 지켜본다.

<당시 실험에 쓰인 가짜 전기충격기 -버튼 아래에 어느정도 충격응 가하는지 적혀있고, 잘려진 마지막 세 부분은 x x x 로 표시됨 그만큼 전압이 높다는 것을 의미 하지만 직접적으로 어떠한 충격을 주는지 써놓지 않음>

6. 실험이 더욱 진행될 수록 틀리는 빈도가 높아지고 그에 비례하여 전기 충격은 더욱 강해진다.연기자 답게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호소하며 괴로워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참가자 중 65%센트가 실험자의 지시에 따라 고강도의 전기충격 버튼을 눌렀다.
<참고 책의 실험자 시점 내용>



7. 선생역이 버튼을 누르는 것에 대해 거부의사를 비칠때 실험자는 냉정한 목소리로 '실험은 계속 되어야합니다.'라고 뒷말도 없이 내뱉으면 한참 쳐다보다가 실험을 계속 했다.
"괜찮아요. 만일의 경우가 생겨도 선생이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실험자의 책임이니까요"

그리고 중간에 '영구적 손상은 없을겁니다.'라고 또 무심히 내뱉으면 실험자는 또 고강도의 전기충격 버튼을 눌러댔다.

실험 결과
실험을 시작하기 전 밀그램은 4달러의 대가로 피실험자들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밀그램은 0.1% 정도의 사람들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65%의 피실험자가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이 실험은 1971년 필립 짐바도르의 스탠퍼드 감옥실험까지 확대되었다.

<감옥실험을 주제로 한 영화>
예일대라는 권위에, 제복을 입을 사람들의 명령에, 실험 참가비를 받았다는 심리적 부담감과 양심 때문에 명령에 복종했을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추정한다.
결국 나치의 대학살에 나섰던 사람들도 그러한 상황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것이 밀그램의 주장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실험을 해나갔다고 한다. 학생표본에서 일반인으로 점점 확대해나갔고 그럴 수록 밀그램은 점점 인간들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명령에 따르기는 하겠지만 65%센트나 되는 수치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아닐꺼야 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스탠리 밀그램은 린슬리-치텐텐 홀과 브리지포트에서의 실험을 통해 그것을 입증하였고,
전 세계에 걸쳐서도 그와 똑같은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신뢰 할만한 권위를 대면했을 때 62~65퍼센트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힐 정도로 명령에 복종했다.

밀그램의 실험은 피실험자들에게 심리적 외상을 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윤리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대학에서 해임당했다.
나중에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피실험자 중에는
심리적 외상증후군으로 병원치료까지 받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실험자들 인터뷰
1. 전압 올리기를 거부한 실험자
“걱정스러웠어요. 실험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장 마비가 올 수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한 남자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2. 전압 올리기를 행한 실험자
"전 그냥 계속 했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죠. 그저 영구적인 조직 손상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믿었습니다. 실험진행자가 옳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실험에 관한 설명을 듣고서 전 몸서리를 쳤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그들은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게 계속 이야기 했어요. 하지만 너무 늦었죠. 실제로 충격을 주었으니까요. 아무리 해도 저의 행동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었어요. "

그래서 우리는 적절히 권위에 대항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직장에서 부하직원들에게,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그 규율을 따르면 좋은 사람으로 여기지만, 따르지 않으면 나쁜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복종이 사람들의 자율성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밀그램은 사회 심리학자 였다. 그것은 곧 그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상황의 차원에서 주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회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우리가 언제, 어느 장소에 있었는가를 더 중요시 했다.
또한 밀그램은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도 사람을 죽여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가 어떻게 살인자가 될 수 있는지 자신이 증명했다고 이야기했다.

후일담
이 충격적인 실험결과 끝에 밀그램 교수는 종신 재직권을 예일대로부터 거부당했다. 결국 어느 대학에서도 그를 포용하지 않았다. 또한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실험이 아니라 실제로 어두운 불빛 아래 억류되어 이상한 사람 취급까지 받고 가까스로 풀려났다.
겨우 뉴욕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채용되었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 50번의 심장 발작을 일으키며 쉰한 살의 나이에 쓸쓸히 사망했다. 그 역시 살면서 너무나 많은 상실감을 겪었다. 어렸을 때는 제빵사였던 아버지를 잃고, 젊어서는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수직을 잃고, 비인간적인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연방 공격을 당하고, 늙어서는 마침내 완성되지 못한 명성까지 잃고 말았다.

참고 자료 및 미디어 자료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EBS 다큐 https://youtu.be/aH0ahfOaZ9M
- EBS 다큐 https://youtu.be/UpIDjepjTjM
- EBS 지식채널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유
http://m.tvpot.daum.net/v/rF-Hqmd4JxM$
http://m.tvpot.daum.net/v/rF-Hqmd4JxM$
- 복종실험을 주제로 한 영화 밀그램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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