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번 지각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데도, 발랄한 종소리가 울린 다음에야 허겁지겁 교실에 들어서곤 했다.
그 아이의 자리는 내 앞이었다.
휑하니 비어 있던 곳이 그 아이로 채워지면 무심결에 그 뒷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그 아이가 야무진 뒤통수와 동그랗게 똑 떨어지는 어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오롯이 나뿐이리라 생각하면서.
지각 / 열매달

너는 나의 자랑이다
그것을 한시라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답답하다고 메마른 가슴 퍽퍽 두드리며 괜히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으면
너는 나의 자랑이다
내가 마음껏 사랑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너는 자랑이 아닐 수가 없다
너 / 열매달

아름다움을 한 가지로 정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다가 너를 볼 때면 또 마냥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실에서는 늘 너의 뒤로 두 번째, 대각선 즈음에 앉았다.
혹여 눈이 마주치면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흘끗거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너는 어려운 것이 있으면 미간을 살짝 찡그렸고, 웃음을 터뜨릴 때는 한쪽 눈이 자연스레 감겼고, 형광펜과 유성펜을 번갈아 써가며 필기를 열심히 했고, 졸음이 올 때는 제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 모든 일련의 행동들에 가슴이 떨렸다.
비록 전하지 못한 마음이나마 간혹 너와 눈이 마주칠 때 활짝 피었다.
/ 열매달

네가 힘들다면 그뿐이다.
어딘가 예민한 곳을 건드리고 생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어거지를 쓰며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사람에게는 내가 필요하니까, 하는 합리화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괴롭혀서는 안 된다.
나는 언제나 너의 편이지만 네가 스스로를 괴롭힐 때는 잠깐 미워진다.
/열매달

고통은 통각으로 기억되었다.
가슴이 아프거나 아리다는 말을 들으면 명치 끝이 시렸다. 활자 하나하나가 내 몸 깊은 곳 어딘가에 박히는 것처럼 아팠다.
네가 주고 간 것이지만 너를 떠올린다고 아픈 것은 아니었다. 네가 가고 난 뒤 홀로 새우던 새벽을 떠올릴 때 비로소 그 섬세한 감각이 나를 산채로 사로잡았다.
/ 열매달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창밖이 어둑하고 깨어 있는 사람이 오직 나 하나인 것만 같은.
그럴 때는 술을 한 잔 기울여도 좋고 음악을 귀에 꽂고 마냥 멍하니 있는 것도 좋다.
고요를 벗삼아 한 잔 두 잔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흐릿하던 네가 선명해져 내 옆에 와 있는 것도 좋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귀를 터뜨릴 듯 가득 메우는 것도 행복하다.
그럴 때면 매번, 그 순간에 새삼스레 반하게 된다.
혼자라는 것이 서글프다가도 행복한 시간이다.
/ 열매달

예를 들면,
물기 어린 내 목소리를 달래주던 전화 너머 그의 목소리가 사랑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 한 말투로 울 것 같으면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누군가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나보다 누군가를 더 아끼지 못할 거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그가 미안하다는 말로 끝을 고했을 때도 매번 나를 기다리게 했을 때도 그가 밉지 않았다. 다만 그가 미웠던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 시늉을 한 그 순간이었다.
/ 열매달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일종의 환각이다.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고 온 몸으로 껴안고 기댈 수 있는 선명한 환각. 그 품 안에서라면 자신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는 최면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혼자가 유일하게 버거운 순간은 그 일련의 환각을 통해 위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때다.
/ 열매달
전부 개인의 창작물이니 소중히 다뤄주세요
개인적인 사용은 늘 환영이며 필명을 함께 기재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사정이 있어서 글을 다 지웠었는데 몇개 추려서 올려요ㅠㅠ
이건 놔둘게요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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