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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없어!ll조회 912l
이 글은 7년 전 (2016/9/09) 게시물이에요





참고1: 다음 업데이트가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2: 모두 고마워요


테라스에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아침엔 정말 상쾌했어요. 7월의 토론토잖아요 
게다가 캐나다는 최근에 여름이 좀 지독했거든요


제 삶이 수렁에 빠졌단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불어오는 바람에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정말 도망갈 곳 조차 없단 사실로부터 숨막히는 공허함이 느껴졌어요


그 괴생명체는 독일에서, 캐나다에서, 영국에서, 어디에서나 모습을 드러냈어요
우리 부모님과 저는 제가 어렸을때 여행을 여기저기 다녔거든요
어딜갔든간에 섬뜩하게도 그 수수꼐끼가 따라온거구요


그놈의 수수께끼는 끝나지도 않았어요..
제 부모님은 그날밤 성공을 위해 당신들의 자식으로 흥정을 했단걸 잊으셔선 안돼요


거짓말이었다니... 저는 서있을 힘도 없었어요.
저는 의자에서 일어나 의자 옆에 있던 기둥에 몸을 기댔어요


담배 한갑을 거의 다 폈지만 밤에 일하는 메이드 한분이 친절하게도 제게 와인 두병을 가져다줬어요
저는 시간이 얼마나 됐을지 감도 못 잡고 있었죠. 새벽 4시 반 정도 됐을텐데..
새들이 날아다니는게 보였어요, 새벽이 오면 어둠은 씻겨나가는 법이죠.. 그런데 그다음은요?


전 필요한 돈은 다 있었어요 
크리스와 전 어디로든 도망칠수있을거에요. 그런데 어딜가든 그게 따라오겠죠
제가 잘못한건 없는데도 말이에요


전 마약도 끊었어요 다시 태어났다구요
젠장.. 제가 아무리 파티하고 난잡하게 놀았어도 계약따윈 안했어요
항상 섹스도 안전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게 다 무슨소용이죠? 
그냥 좀 더 막 살았어야 되는데 베를린이고 베니스고간에 ...
그냥 파티나 즐기면서 마구 방탕하게 살았어야되는데...
빚쟁이가 빚받으러 오기전에 말이에요
빚은 갚아야겠죠 


결국 콘도로 들어가서 동쪽 응접실로 향했어요
그리고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죠


전 화가 나있었어요.
화가 나고 억울했어요.
화가 나고 억울하고 술도 취해있었죠.


그리고 몇 시간 뒤면 수업도 있는데..
못하겠죠, 수업도.
이제 제가 어떻게 학교로 돌아가요?
어떻게 다시 제 삶으로 돌아가요? 그 무엇도 아마 하기 힘들겠죠.


크리스와 전 나중에 뭐할지 계획도 정말 많이 세워놨는데..
아이들이며 휴가며 은퇴며 여기저기 여행하는것까지..
이제 그런건 다 어떻게 하죠? 크리스한테 어쩌면 좋죠?
이제 아이들은 물건너갔어요....
크리스가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와서 절 데려가게 보게 할 수 없어요.
아..하나님. 절 원한대요. 어떻게 하죠?


직원들은 오전 5시에 교대를 해요 
두명의 메이드가 옷을 사복으로 갈아입은걸 봤어요


이걸 해결해야된다는건 아는데 어디부터 시작해야할까요.. 어떻게 해야할지...
휴대폰을 봤어요.
수업은 8시 30분이었는데
제가 학생들에게 휴강이라고 단체 메세지를 보내면 몇명 정도는 아침 8시반에 오지 않아도 되겠죠


배터리가 2% 남았어요
충전기를 찾아야하는데... 


페이지 버튼을 눌렀어요. 다행스럽게도 아직 실비에가 근무중이었네요.
저는 실비에에게 샤또네프 뒤 빠쁘 와인 냄새를 풍기며 (그래도 좋은 와인이었어요) 
술취해 어물거리면서 아이폰 충전기를 가져다줄 수 있겠냐고 말했어요.


실비에는 제가 괴로워하는것도 알았을거고
앤소니와 크리스, 제가 엄마와 한 대화도 아마 들었겠죠. 어젯밤..아니 새벽인가?


실비에는 충전기를 가지고 금방 다시 돌아왔어요.
아,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에요. 정말 쓸모있는 사람이죠.
제 삶에서 편리함이란 그냥 사라져버렸을때니까요.


- 여기 계셨네요 틸맨 박사님. 휴대폰 확인좀하세요, 그 분은 기다리시는걸 별로 안좋아하시거든요


그 여자가 테이블에 충전기를 내려놓고는 나갔어요
전 좀 취해있었어요 
그래도 그 여자가 뭐라하는진 다 이해했죠
그 여자가 방을 나가자마자 아이폰 유저라면 모두가 친숙할 그 트라이톤 음이 울렸어요


647의 지역번호였어요


[뗴라쓰 츄ㅃ따]


정신이 확 들었어요.
여기있어요. 그가 여기 있다구요.
그가 지금 밖에 있어요.. 그가 원하는게뭔지 제가 안다는걸 "그"도 알아요
전 일어나서 테라스를 향하는 복도쪽으로 나갓어요


이 도시의 좋은 경치가 보이는 창문들이 주르륵 있는 길이었지만
가기 망설여졌어요. 


돈, 그래요. 돈으론 많은걸 할 수 있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지만...


문을 열고 손잡이를 돌렸어요.
제가 술 깨어있지 않았더라도 콧속으로 훅 들어오는 이 냄새 덕분에 정신이 들었을거에요
"그"가 가까이에 있단걸 냄새로 알 수 있었어요


그 썩은 살점의 맛이 입에서도 느껴졌어요
이번엔 "그"가 날 원하고 있단걸 알고 있었어요.


테라스는 빌딩의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어요. 옆집까지 이어져있었죠.
엄마는 거의 3/4가 넘는 공간을 쓰고 있었어요. 그리고 톰슨핏치씨 (광고계 거물의 4번째 아내)가 나머지 1/4를 소유하고 있었죠.


코너로 돌아서자 거실이 보이지 않았어요.
해는 천천히 뜨고 있었고 여전히 좀 어두웠어요
아침에 해가 지평선 위로 뜨기 시작할때 은근 소름돋는다는걸 아실거에요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니죠.


테라스 끝 쪽에 그 생명체가 저에게 등돌린채로 서있는게 보였어요.


억울하니까 객기도 좀 부리고 있었는데
이젠 두려움으로만 가득차버렸죠.


이건가요? 이렇게 전 죽는건가요? 빚을 갚아야하니까?
전 걸음을 멈췄어요.


그러자 크리스토퍼의 목소리로,..
제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목소리로.. 제가 모든걸 다 줘도 아깝지 않을 그 사람의 목소리로..
그 괴생명체가 말했어요


- 안녕하신가, 피터.


전 대답할 수 없었어요. 그저 거기 서서 죽기만을 기다렸죠.


- 안녕하신가, 피터.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어요. 


한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느낄 수 없었죠.
마치 제 세포 하나하나가 공포로 전율하고 있었으니까요. 


- 안녕하신가, 피터. 대답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제 대답을 기다리던 "크리스"는 참을성이 바닥나보였어요. 대화를 원하고 있었죠.


- 안녕하..


전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했어요 너무 피곤했고, 힘들었고, 진도 빠지고.. 그냥 다 그랬어요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안좋은 감정들이 마치 커다란 돌처럼 절 짓누르고 있었어요.
제 자신이 뭉개지도록요.
행복한 것도, 만족스러운것도, 평화로운것도 없었어요.
그냥 제 삶을 파괴하는 무게였을뿐이에요.


그 냄새가 여전히 공기 중에 퍼져있었어요. 
진하고 톡쏘는.. 머리카락 타는 냄새같기도 하고..


- 파올라가 너에게 거래에 대해 말했더군.


그 괴생명체가 계속 저에게 등을 돌린채로 말을 했어요.
움직임은 없어보였지만 전 여전히 아무말도 할수없었어요.
등을 보고 있는것조차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인생에서 실패했던 순간들을 다시 겪는것처럼요.
실재하는 극심한 공포로 휩싸여있었죠.


- 너희 엄마는 이야기의 절반만 해준거야. 나머지는 크리스토퍼에게 물어보도록.


그가 크리스토퍼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마치 크리스를 제3자로 지칭하듯이.
그리고는 마침내 제쪽으로 몸을 돌렸죠.


15미터 정도 떨어졌지만 그 입술은 보였어요. 
그땐 입술이 터져있었어요. 검은색의 걸쭉한 액체가 그의 코트로 흘러내렸어요.
타르와 물을 섞은것 같았어요. 타르같이 검은색이었지만 물처럼 흘렀어요. 마치 괴사한 피처럼요.


전 뒤로 물러섰지만 이젠 더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죠. 너무 무서워서 죽을것만 같았어요.
크리스토퍼가 아니란걸 알았지만 그를 지켜보는게 힘들었어요.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죠.


전 이미 벽을 등지고 섰어요. 이젠 물러설 곳도 없었어요.
누군가 조종이라도 하듯이 다리가 풀려버렸어요. 달아날 수도 없었어요.
그 괴생명체는 점점 제게 다가왔어요.


걸음걸이마저 크리스토퍼와 닮았다는걸 눈치챘어요.
크리스가 천천히 걸을때 그 특유의 바보같은 걸음이 있어요.
10대시절에 높은 절벽에서 물로 많이 떨어진 덕분에 생긴거죠.


눈을 질끈 감아버렸어요.
끔찍한걸 보고싶지 않아서 아이들이 그러는것처럼요.
그 생명체가 다가올때마다 냄새는 점점 강해졌죠.
저는 제 얼굴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걸 느낄 수 있었어요.
무서워서라기보단 더이상 가망없단 것에 눈물이 흘렀어요.


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아서 열심히 노력도 했는데..
이제 모든게 끝났어요.
아마 남은거라고는 비어있는 차용증서뿐이겠죠.
제게 지금 다가오는 이 괴생명체와 사인하게 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멈춰서더니 제 얼굴에 오른손을 가져다댔어요.
냄새는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죠. 
참을수 없었어요. 헛구역질을 하고 싶었어요.
지난 24시간 동안 이런 냄새를 몇번이나 맡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토할정도였어요.


전 여전히 눈을 뜰 수가 없었죠. 마법이라도 일어나서 이 생명체가 없어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죠.
제가 눈을 뜨면 크리스토퍼 옆이길 바랬어요...
성관계를 하고나서 숨을 헐떡이며...


그 생명체는 제 볼에 손을 갖다댔어요.
따뜻한게 마치 크리스가 만지는것 같았죠.


우리가 처음 만났던 하우스파티 부엌이 생각났어요.
부모님 앞에서서 우리 결혼을 허락받는 것도..
제가 박사 학위때문에 디펜스 준비하던 순간도..
세이첼스의 해변에서 결혼을 맹세하던 순간도..


제가 눈을 뜨게 만든 생각이었어요.
제가 갖고 있는 것을, 제가 협조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이 모든걸 잃게 될거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무서운 거였어요.
절 데려가려는 무언가와 그렇게 가까워진단게..


그 순간 전 기절하면서 콘크리트 타일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어요.


- 어머, 피터! 우리 애기, 내 아들, 일어나보렴


세 명의 뿌연 형체가 제쪽으로 몸을 굽히고 있는게 보였어요
제가 아직 밖에 있다는걸 알수있었어요.
머리가 좀 울려서 몇 초가 지나고나서야 앞이 보였죠.
그 뿌연 형체는 크리스, 앤소니, 엄마였어요.


전 벌떡 일어났어요. 일어나보니 밖은 밝고 덥더라구요. 7월이 늘 그렇듯이요.
제가 대체 얼마나 이렇게 있었던걸까요?
더이상 뭐가 진짠지 그 생명체가 뭘했을지도 모르니까 세 명에게서 물러섰어요.


하나 잊고 있었네요
전 몸을 돌려 크리스를 보고 말했어요.


- 어느쪽이야? 진짜야? 나한테 뭘 원해? 어떻게 빚을 갚으면 되겠어? 왜!! 어떻게! 이 망할새끼야


저는 어린아이처럼 울며 바닥에 쓰러졌어요.
엄마가 제 가까이로 오시자 전 비명을 질렀죠.
방금 자식의 죽음을 전해들은 부모처럼..
화재에서 빠져나왔지만 아내가 죽는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남편처럼..
삶의 목적이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요...


- 엄마가 나한테 이런거에요. 엄마 아빠 잘못이에요 이건. 제가 한게 아니라구요. 엄마 아빠가 날 팔아넘긴거에요.
나한테 거짓말 했어! 아빠가 날 팔아넘겼다고!


전 다시 일어나서 테라스로 나가 벽에 몸을 기댔어요
여전히 울고 있었죠. 터져나오는 눈물이 통제가 안됐어요.
제게 다가온 앤소니에게 몸을 기댔는데..
제가 거의 30cm는 더 크니까.. 아마 앤소니가 좀 힘들었을거에요. 그래도 그냥 받쳐주고 있었죠.
베트남 전쟁에서 정글을 헤치며 전우를 들쳐매고 가는 군인처럼요. 아무도 남겨져선 안되니까요.


앤소니가 저를 의자에 앉히고는 안아줬어요. 
과호흡을 일으키는 절 보고 앤소니가 제 다리를 벌리고 제 얼굴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고는 말했어요.


- 피터, 저 좀 보세요. 저 보라구요! 지금부터 숫자 셀게요. 
자,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숨쉬어요.






제가 다시 평정을 되찾는데에는 3분 정도 걸렸던것같아요. 
제 생각은 여전히 날뛰고 있었지만 몸은 이제야 컨트롤이 가능해졌죠. 
과호흡이 멈췄고 최대한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아직 7시더라구요. 다행이에요


앤소니: 저 오늘 수술이 두건있어요. 제가 떠나도 괜찮을거같아요?
여전히 손뻗으면 닿을 거리에 서서, 제 구세주였던 앤소니가 물었어요. 


피터: 네.. 괜찮을거같아요. 다 끝나면 돌아올거죠?
앤소니: 네 그래야죠. 마지막 수술이 오후 3시에요. 아마 10분이면 될거에요. 
병원에 도착해서 전화할게요. 혹시 못올지도 모르니까 출발하기 전에도 할게요. 


앤소니의 침착함덕에 안심이 됐어요.


앤소니: 제가 얼마나 형수님 좋아하는지 알죠? 걱정말아요. 다 잘될거에요.


테라스를 빠져나가는 그를 보며 전 미소지었어요. 
낮에 일하는 메이드 한명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죠.


크리스: 수업 공강처리해.
피터: 네가 아는게 뭔지부터 다 털어놔. 


근엄하게 말하는 크리스에게 제가 소리쳤어요. 그가 맞아요.
공강처리 해야죠. 그런데 전 지금 그 무엇보다도 답이 필요했어요.
그 생명체가 그랬다구요 크리스가 저한테 말한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전 실체를 밝혀내고 싶었어요.


크리스: 무슨 뜻이야?


걱정하는 얼굴 빛을 띄고 크리스가 물었어요.


피터: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 어젯밤 너 잠든다음에 엄마가 다 말씀해주셨어.


크리스가 샤워를 하러 간 뒤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줬죠.
엄마가 제게 사실을 말씀해주신것부터, 그 생명체를 만난거며, 제 인생의 사랑에 대해 충고들은것까지요. 
제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저한테 뭔가 숨기고 있다는걸.
단숨에 다 말해버렸어요.
다시 과호흡 증세가 올거같았지만 절 지켜줄 앤소니가 더이상 여기 없다는걸 아니까 정신을 바짝 차렸어요.


크리스: 피터,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그 생명체를 만났다는거야? 나처럼 생겼어? 걔가 나에 대해 뭐라고 했어?


결국 크리스가 드러냈죠. 
전 눈을 찌푸리고는 거의 크리스를 칠뻔했어요.


피터: 무슨 소리야. 걔가 너에 대해 뭐라했냐니? 크리스. 네가 아는걸 말해. 난 사실을 들어야겠어.


전 다시 소리질렀어요. 정말 정신이 나간거같았죠.
가족들은 절 노리개처럼 흥정해놓고 아무도 저한테 사실을 말할 배짱은 없는거에요.


전 항상 사실을 탐구하는 인생을 살아왔어요.
물리는 세상의 법칙을 이해하고 변칙을 이해하려는 학문이에요.
감마선 폭발이나 렌즈 구름이나, 러시아에 생긴 구멍같은거요.
우리 일은 신비로운걸 풀어나가는거에요. 불가능한걸 가능하게 하는거죠.
이건 불가능해요. 제가 아는건 더이상 진짜가 아니에요.


크리스: 메간 선생님은.. 실재하는 사람이 아냐.


크리스가 읊조렸어요.


피터: 뭐라고?


전 혼란에 빠져 물었어요.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지만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크리스가 결국 입을 열었죠.


크리스: 피터.. 나 어젯밤 한숨도 못 잤어. 테라스에 널 남겨두고.. 너희 어머님이 안에 들어오셔서는.. 울고 계셨거든.
서재에서 혼자 술 마시고 계시길래 대화상대가 되어드리려고 했는데.. 다 말씀해주셨어.
하나 모르겠는건.. 왜 그 생명체가 나랑 닮았냐는거야. 
너희 아버님을 닮은건 이해가 가는데.. 아버님이 거래하셨으니까..  
네 마약문제가 생각나기전까진 이유를 몰랐지..


피터: 그래서 이게 내 잘못이란거야? 그래 나 어릴때 좀 막나갔어. 그래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건 제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이에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기분이었어요. 크리스가 제게서 뺏어간거같았죠.
박사 학위나 교수직을 제안받은것보다도
스스로를 구원한게, 마약 문제를 고친게 제가 이룬 큰 업적이라구요. 


크리스: 넌 죽었었어, 피터.


크리스가 퉁명스럽게 내던졌어요. 전 그게 무슨말인지, 대체 무슨뜻인건지 감도 못잡았어요.


피터: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의식이 없었던건 알아 그런데 죽진 않았다고!


전 가차없이 다시 소리쳤죠.


크리스: 넌.. 내 인생의 사랑이야. 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이유고..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해도 집에 오면 네가 날 기다리고 있단 생각을 하며 버텨냈어. 네 멋진 얼굴과 좋은 냄새와 완벽한 몸 말야.
넌 그렇게 내 삶을 지탱해주는 사람이야.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 내가 눈을 감는 마지막 그 순간에..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너였으면 좋겠어.
넌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크리스는 울고 있었어요.






크리스: 우리가 서로 만났을때.. 넌 정말 최악이었잖아. 메탐페타민에 찌들어서 파티나 다니고 있었어.
난 하우스 파티 부엌에서 일을 돕고 있었고..
그때 네가 내게 와서는... 내 눈이 네가 여태까지 본 눈 중 제일 예쁜 눈이라고 말했어. 
내가 뭔가 가치있단걸 일깨워줬지.
피터, 우리 만났을때말야.. 난 정말 혼란스러웠어. 내가 남자를 좋아한단 사실도 그렇고... 부모님이 싫어하시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넌 약에 찌들어있는 상태에서도, 내가 가치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었어.
난 사랑에 빠진거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진짜 사랑에 빠진거야. 
네가 맨정신일때 넌 최고였어. 네가 약에 취해 있을때도 넌 정말 최고였어 (19금적으로).


그런데..네가 약에 찌들어있는 동안 널 잃었지..






눈물이 났어요. 크리스토퍼를 사랑하는 이유를 다시 되새겨줬으니까요.






크리스: 정말 끔찍한 밤이 한번 있었어.
그날, 너랑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먹고 오후엔 하버프론트(주: 토론토의 항만)를 같이 걸었지.
아름다운 날이었어.
넌 데이빗을 만나러 간다고 가버렸어. 마약 딜러상말야.
네가 내 곁에 있을땐 곁에 있는데, 내가 보내주면 넌 그냥 가버렸어.






전 크리스를 쳐다볼수밖에 없었어요. 어머니는 입을 막고 울고게셨죠. 
아까 아침에 어머니께 크리스가 이미 이 이야기를 해드렸던거같았어요.
크리스는 계속해서 말했죠.





크리스: 그 날밤 10시쯤이었어. 너한테 전화를 해도 네가 받질 않더라고..
낌새가 안 좋았어. 넌 아무리 상태가 안좋아도 항상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네가 밤새 약하며 놀고있던 클럽의 쿵쿵거리는 음악소리만 들리더라도.. 


그렇지만 그날밤엔.. 전화를 안받더라.
여러번 전화를 했는데 11시쯤엔가 포기하고 너희 부모님께 전화했어.
그랬더니 밤에 일하는 직원 한분이 받아서는 네가 병원에 실려갔다더라고.
세인트 마이클 병원에 말야.






전 크리스가 말하는 그날밤 일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제가 기억하는거라고는 
병원 침대에서 의식을 되찾았다는 것 뿐이었어요. 
메간 선생님이 저를 다시 되살려줬다면서 얼마나 감사한지에 대해 얘기했던 것도 기억이 나요.
하지만 그게 다였죠.







크리스: 가디너 고속도로를 시속 150도 넘겨서 마구 달렸어. 내가 뭘하는지도 몰랐지.
친구들하고 몇 잔하고 꽤나 알딸딸했는데 어디 박지도 않았다는게 대단해.
주차장으로 가서 아버지 벤틀리를 밀어넣고 병원으로 달려갔어.
응급실로 갔더니 널 못보게 하더라고.
그때 너희 어머님을 만났어. 의자에 앉아서 혼잣말을 하고 계셨지.
높이 올라가서 떨어지면 어떡하냐.. 무릎팍이 깨질텐데.. 이런 얘기를 하고 계셨어.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병원에서 냄새가 났던거같아.
킹 에드워드 호텔에서 났던거랑 같은 냄새 말야. 주차장에서 우리 BMW 안에서 났던 그 냄새.


어젯밤 너희 어머님께 말씀드리기 전까진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어.
어쩌면 그때는 몰랐을지도 몰라.
난 병원도 싫어하고 너한테 가야겠단 생각만 했으니까.






제가 엄마를 쳐다보자, 엄마는 시선을 돌렸어요.






크리스: 난 너희 어머님께 달려갔어. 눈높이를 맞추려고 쭈그리고 앉았지.
뭐가 잘못된거냐고 여쭤봤지만 계속해서 '윌헴, 쟤좀 지켜봐요. 떨어지면 다친단말야' 이 말만 반복하고 계시더라.
앞뒤가 안맞는 말을 하고 계셨어.


난 최악을 예상하고는 예진실로 들어갔어. 
엄청나게 뚱뚱한 여자가 치질때문에 불평을 터뜨리고 있었지
간호사가 당장 나가라고 소리쳐서 나왔지만..


복도에서 만난 주치의 파텔 의사선생님이 날 데려갔어.






낮에 일하는 메이드 한명이 쟁반에 쥬스와 진을 담아 왔어요.
(이건 우리 가족 전통인데.. 아침 8시에 술을 마신다면 그건 진이어야했죠)
엄마가 한잔 따르고 메이드에게도 한잔 권했어요. 메이드는 거절했지만 결국 한잔 받았죠.


진 한잔을 손에 든 크리스토퍼가 이야기를 계속했어요.






크리스: 파텔 의사선생님이 어머님이 어디 계신지 알려주셨어.
따로 떨어져있는 대기실로 옮겨져 계셨지.
빈 의자를 바라보면서 '우리 애는 물리학자가 될거에요!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죠!' 
의사나 내가 들어간 것조차 모르고 계셨어.


의자에 앉고... 세상이 끝나버릴 얘길 들었지.
파텔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


"피터는 오늘밤 10시경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습니다."


내 세상이 무너져버렸어.. 


그제서야 왜 너희 어머님이.. 그러시는건지 알겠더라.
아무도 없는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아있는것처럼 지갑에서 아기 사진을 보여주시는건지 말야.


누군가 내 배를 찌르고 그대로 입까지 찢어버린것만 같았어. 
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어.
그땐 거의 11시였거든. 넌 이미 죽은지 1시간이나 지난거야..






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어요. 뭘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한시간동안 죽어있었다구요?
의학적으로 이건 불가능해요.
필요할때 앤소니는 어디간거야..
아, 그래 4살짜리 환자의 두개내압을 낮춰주러갔지. 


한시간의 죽음을 다시 없던일로 만드는건 불가능해요.
크리스의 나머지 이야기를 듣고나니 뭐가 어떻게 된건지 좀 알거같긴했어요.
크리스는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계속 말을 이었죠.






크리스: 파텔 의사선생님이 방을 나가고..  난 정말 혼자가 된거같았어.
회진 끝내고 금방  돌아오신다고 하셨지만.


그때 메간 의사선생님이 방에 들어오셨지.
필리핀 여자분이었는데 168cm 정도 되는 키에 짧은 검은머리를 한 사람이었어.
내게 손을 올리고는 위로를 해주더라고..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사람 좀 이상하게 생기긴했었어. 입술이 좀 컸어.
그땐 거기 신경쓸 여유는 없었지만..


아마 냄새도 났을거야. 
그땐 산타클로스 퍼레이드가 내 옆을 지나가도 몰랐을텐데..뭐.
그런데 그 사람이 내 다리에 손을 올리더니 '다시 살릴 수 있어요' 라고 하더라.


"죽은지 한 시간 된 사람을 살릴수있다구요?
당연하죠.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제발요!"


난 그렇게 말했어. 그러자 그녀가 내 다리에서 손을 떼더니 내 눈을 바라봤어. 
이상하게 차가움이 느껴졌지만 신경도 안썼지. 널 되살리고 싶단 생각뿐이었으니까.


"좀 어렵죠. 그런데 할 수 있을거같아요."


메간 선생님이 말했어. 난 상관없었어. 너희 어머님이 이걸 겪으시는걸 보고있을 수가 없었고..
나도 이걸 겪을 수가 없었다고.. 난 네가 다시 돌아오길 바랬어. 그래서 메간 선생님에게 하라고 했지.


"하지만 기억해두세요. 빚을 갚아야한다는걸."


메간 선생님은 눈도 떼지않고 말했어.
의사들이 마약중독자의 친지들에게 하는 뻔한 '알아서 처신하세요' 같은 구나 했어.
일어나면 우리보고 야단치라는 그런거 말야.
그 사람은 방을 나가더니 20분쯤 지나서 돌아왔어






전 아무 기억도 안나요. 모르는일이에요. 어안이 벙벙했죠.
대체 저를 죽음에서 구해준 이 기적의 의사는 누구란 말이죠?






크리스:


"이제 그를 보러 가셔도 좋아요. 그의 어머니도 데려가세요."


그녀가 열린 문을 잡고 네가 있던 병실을 가리키며 말했어.


방에 들어서자 이상하단걸 알았어. 넌 너무나..너무나 정상같아보였거든.
마치 너한테 아무일도 없었단 듯이 말야.
그냥 침대에 앉아서 벽을 바라보며 우리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난 너에게 키스를 하고 너희 어머니는 현실로 돌아오셔서는 네게 팔을 두르고 독일어로 소리치셨지.


"아이고 내 아들, 어디로 안보낼거야." 


파텔 의사선생님이 방에 들어오셔서는
5분도 안되서 네 차트를 다시 보고 우리에게 웃으며 말씀하셨어


"아, 또다른 빚이 생겼군요"


그말만 남기고는 병실을 나가셨지. 
네가 돌아왔단 사실에 그가 한 말엔 신경도 쓰지 않았어.
메간 선생님은 정말 기적을 보여주셨어. 그게 다였지.


넌 퇴원하고 이틀 뒤에 마약 중독치료를 시작했어. 그리고 단 한번도 마약에 손대지 않았지.
그건 정말 기적이었어. 넌 정말 치료가 된거야.
3개월쯤 지나서.. 메간 의사선생님을 찾아 커다란 장미 한다발을 사들고 병원에 갔어.
널 다시 살려주신 그 분을 다시 뵈려고.


병원 오피스에 가서 메간 선생님을 찾아왔다니까 병원에선 그런 사람 없다그러더라고.
메간이란 이름의 여자 의자는 꽤 퉁퉁한 중국인이었는데 그날밤 널 구해준 그 사람과는 조금도 안 닮았더라고.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
난 천사가 널 살려준걸거라 생각했거든.
이제야 그게 천사랑은 거리가 꽤 먼거란걸 알았지만..






제가 끼어들었어요. 


피터: 의사가 빚이 어쩌구 했으면 어떻게 아무도 이걸 눈치못챘을수가 있어요? 엄마는 뭔가 아셨어야죠!


전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이 지경에 몰아넣은 가족과 제 자신을 향한 증오로 화가 났어요.
엄마는 저를 무력하게 쳐다보며 말씀하셨죠.


엄마: 피터,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걸 감수하고 살아왔어. 
그 빚에 대해 그 누구에도 말하지 않겠다고 너희 아버지한테 약속했는데
그럼 그때 내가 뭘 했어야됐니?
그때는 잘 알지도 못했던 크리스토퍼한테 '어머 우리아들이 우릴 쫓아다니는 마술부리는 놈팽이한테 잡혀가게 생겼어요' 라고?!


제게 사실을 털어놓은 뒤로 엄마가 처음 화를 내셨죠. 전 그래도 쌌어요.
크리스토퍼가 계속 말을 이었어요.






크리스: 넌 원래 죽을 목숨이었어. 
너희 아버님의 빚은 부모님 두분다 돌아가시기 전까진 청구되지 않을거였어. 그런데 네가 선수를 친거야.
네가 너희 어머님보다 먼저 죽었거든.
그리고 그 생명체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래서 네 목숨을 다시 되돌려준거야.
네가 네 목숨을 맡긴거야, 피터. 내가 아니라. 메건 의사선생님이 널 그냥 죽게 내버려둘수도 있었고, 그 생명체도 널 그냥 죽게 내버려둘수도 있었어.
그런데 네가 날 통해 구원을 받은거야. 네가 원했단걸 알고 있었어. 내가 널 원했어.


피터 미안해, 그런데 네 생명을 맡긴건 너였어. 너 대신 빌 수 밖에 없는 못난 놈이었어.
그 땐 욕심을 좀 부려야했어. 그냥 이기적으로 떠나버린 널 다시 살려달라고..






갑자기 테라스 전체에 그 냄새가 났어요. 우리 모두는 오른쪽을 돌아보았죠.
괴생명체가 보였어요. 


그가 우릴 보며 여행가방을 내려놨어요.
그리고는 그 여행가방을 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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