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2월 구국선교단 무료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최태민. [현대종교]
74년은 엄혹한 유신 시절이었다. 당시 기독교계는 박정희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저항 세력이었다. 최태민이 총재를 맡았던 대한구국십자군의 창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탁 소장은 “최태민이 박 대통령의 영애 근혜양을 만나면서부터 당시 저항 세력이었던 기독교계의 저항을 희석시켜 보려는 의도에서 대한구국십자군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던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기독교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차에 근혜양을 통해 최태민씨의 구국선교단 십자군사령부의 창설 건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알려진 것처럼 박 대통령이 최태민을 무조건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체제 유지 차원에서 대한구국십자군을 활용한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최태민은 75년 4월 구국선교단을 창설한 뒤 총재가 됐다. 5월에는 멸공단합대회를 개최했다. 목사들을 선발해 집총군사훈련도 시켰다. 50기로 나누어 무려 5000명을 훈련시킬 계획이었다. 6월에는 서울 종로구 순화동에 있던 배재고등학교 교정에서 구국십자군을 창설했다. 창군식에는 큰 영애도 참석했다.
경호원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창군식이 거행됐다. 구국십자군은 최태민 총재와 박근혜 명예총재 등 임석상관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이후에도 최태민이 주최하는 대회에는 각급 기관장들은 물론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http://v.media.daum.net/v/2016110402320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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