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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썬이동혁ll조회 1212l
이 글은 6년 전 (2017/7/18) 게시물이에요

[단편] 흑구.txt | 인스티즈




고3. 수능이 끝나자 팽팽했던 긴장감이 풀려버렸다 그동안 어떻게 참고 지내왔었는지 어떤 식으로 생활했는지.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 얘기를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3년 간의 노력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에 수능은 나에게 거대한 산과 같았다 수능 전에 운좋게 수시가 붙어 학교에 놀러다니는 심정으로 다니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었는데..

수시는 당사자에게는 좋지만 타인들에게는 좋은 영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질투와 시기, 부러움이 교실내에 가득했고 많은 친구들이 경쟁을 시작하는 반면, 이미 포기해버리고 다음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행히 난 그 고비를 잘 넘긴 편이어서 그런지 뭔가 커다란 것을 하나 정리한 느낌이 아주 좋았다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모조리 하느라 내 하루하루는 아주 바쁘게 흘러갔다

하지만 뭐든지 좋은 것도 지속되면 지겨워지는 법이다 난 이 말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었지만 최근 들어 깨닫고 있었고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는 내 친구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자주 모이는 내 친구들 병민이와 혁이. 우린 오랜만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 옥상에 모였다

수능이 끝나면 삼겹살 파티를 하자던 약속은 모두 잊어버린 듯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이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이 우리를 웃게 했으니까

 너네 그 소문 아냐?”

우리 무리 중에서 제법 까불거리는 병민이가 입을 열었다 병민이 놈은 가끔 도가 지나철 정도로 촐싹대지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뭔가가 있는 끼가 많은 놈이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히 인기가 많다 그게 왜 인기가 많은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혁이가 뒷담화를 하지만 아쉽게도 병민이는 얼굴이 조금 잘생긴 편이었다.

또 듣고 와서 깨방정 부리냐

혁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한 두 번 당한 적이 아닌 듯 싶었다 나야 뭐 병민이 놈의 성격을 잘 알기에 어느 정도 가려서 어울려주긴 하지만 혁이는 순진하게 병민이와 잘 어울리곤 했다

 혁아 진짜야 이번엔 진짜 내가 돈주고 사온 소문이라니까?”

병민이의 말에 혁이는 한심스럽다는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나 역시 혁이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병민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기로 했다 이런 우리의 태도에 약간 약이 올랐는지 병민이가 나에게 다가와 재빠른 동작으로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그거 죽으면 다시 해야 된다고 빨리 내놔!”

병민이 놈은 항상 이런 식이다 자기에게 주도권이 오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사람을 귀찮게 한다

상수야 너까지 그러기냐진짜 딱 한 번만 진지하게 들어봐 내가 진짜 돈을 주고 사온 소문이라니까?”

병민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 짧은 순간에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 (진행 중이던 게임의 일시정지)를 잊지 않은 치밀함을 발휘했다 새삼 놈의 민첩성에 감탄하고 나의 미숙함을 한탄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 말해.”

그 작고 가상한 노력을 치하해주기 위해 난 조금 들어주기로 했다 내 태도에 병민이는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어깨 동무를 한 뒤 작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말야 저기 저 공사판 보이지그 공사하다가 이제 안하는 곳 있잖아 뭐야야 박혁 넌 저리가 안궁금하다며왜 와서 그래?”

병민이는 모든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눈을 하고 있지만 순진한 혁이는 우물거리며 내 옆에 섰다 저러니 병민이에게 항상 이용만 당하지어휴

그냥 심심하잖아

그게 혁이가 내뱉을 수 있는 최대의 반론이었다 병민이는 항상 그랬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항상 같은 패턴이다. 이젠 지겹지도 않다.

이번만이다 다들 들어봐

병민이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 어플을 켰다 그리곤 학교 근처에 버려진 공사판을 보여주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 공사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 아냐?”

알게 뭐야

관계 없는 일이잖아 우리랑

우리의 말에 병민이는 입술을 비죽이며 말했다

이런 인정머리라곤 없는 새끼들니네가 그러니까 어여자친구가 안생기는거야 나처럼 인정이 많고 좀 생기면.”

거기서 여자친구 말이 왜 나와우리 그냥 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병민이 놈은 항상 말을 하다가 자꾸 삼천포로 새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잘 듣고 있다가도 짜증이 나곤 한다

미안 흠흠그러니까 이 공사판에 말이야 최근 들어 인부들이나 그 외 평범한 사람들이 엄청 죽어나갔대

그 말에 혁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카더라 아니냐그렇게 죽어나갔으면 뉴스에서 나와야지 왜 조용해지역 신문도 그런 기사는 하나도 없었어

병민이는 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렇지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그걸 비밀리에 감춘다는게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내가 어렵싸리 그 소문을 사온거 아니겠냐

“..뭔 소리야 이거 사기 당한거 아냐?”

혁이가 영 불만족스러웠는지 자리를 뜨려 하자 병민이가 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내가 말재주가 없잖아 너네가 이해해라 아무튼 간에 그 사람들이 죽으면 말야

“....”

시체가 있어야 되잖아상식적으로

“..그렇지

근데 근데 있잖아 그 시체들이 하나도 발견 되지 않았대 이상하지 않냐정해진 공간안을 샅샅히 뒤져봐도 사람들의 시체가 나오지 않는다는거야 그럼 그 시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병민이는 새삼 진중하게 얘기를 했다

분명 뭔가가 개입돼 있는게 분명해 내 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고 최근에 그런 소문이 많이 퍼지면서 몇몇 사람들이 그 공사판에 갔었다나 봐 근데 어떻게 됐는지 아냐?”

라고 반문하는 병민이를 보며 혁이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알면 네 얘기를 듣고 있겠냐

“..그 사람들도 글쎄 돌아오지 못했다는거야 그래서 답답한 부모들이 실종자 신고를 하고 그 공사판 주변이랑 내부를 샅샅이 는데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더래

병민이의 말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여지껏 많은 병민이의 말을 들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진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일까거짓일까끝없는 마음 속의 저울질이 계속될 때 병민이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항상 공사판 주변에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인다는거야 이상하지 않냐사람들이 없어지면 작은 강아지가 공사판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게

강아지그게 왜 중요하지?

 그냥 집없는 개 아니야주인이 버렸다거나

내 말에 혁이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병민이는 아니었다 놈은 손가락을 저으며 말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평범하지가 않단 말이지

뭐가?”

사실상 그런 사건이 일어난지가 족히 6개월이 지났단 말이야 근데 그 강아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 같은데도 계속 살아있어 거기다 그 자그마한 덩치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말이야 사람들이 사라지면 항상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고뭔가 이상하지 않냐?”

병민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혁이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불쌍히 여겨서 계속 밥을 주고 있었나 본데그리고 그런 종 있잖아 처음부터 작은 체구로 태어나는 강아지 뭐라 그래그걸

혁이의 말에 병민이는 격하게 부정했다

아니래도! 그 관찰자한테 내가 다 들었어 그런 강아지 종류는 아니라는거야 그냥 평범한 흑구 같다고 하더라고

“..흑구그 눈 주변에 뭐 있는 진돗개 종류였나? 관찰자는 또 누구고?”

"아.. 그게 좀 있어. 아무튼."



병민이는 난처한 얼굴로 주제를 돌려버렸다. 저런 식으로 나오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우린 재촉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속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던 혁이가 말했다.


 나도 들어본적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진돗개와는 다르게 온통 검은색이라고 하던데

그래 근데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난 넌 있냐?”

아니 난 개 싫어해서

너 고양이과냐?”

.”

우리들의 대화가 죽 이어지고 있을 때쯤 병민이가 사이에 껴서 손을 저었다

 형이 얘기하는데 진짜아무튼 들어봐봐 그 작고 귀여운 강아지 때문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 강아지를 따라가면 그 다음부터는 나오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어 이게 뭐라고 생각해?”

버려진 공사판에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실종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신문사나 언론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곳에는 항상 강아지가 나타나는데.

사람들을 유혹하는건가?”

.”

- -

점심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뭔가 김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병민이도 마찬가지었는지 아쉬운 얼굴을 하더니 문쪽으로 뛰어가며 말했다

 이따 끝나고 모여라 거기 근처에 한번 가보게

빠르게 뛰어가는 병민이를 보며 혁이는 한숨을 쉬며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난 그저 웃으며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을씨년스럽게 버려진 공사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기에 뭐가 있다는거야?"


방과후 우리는 공사판으로 갔다 괴담은 어릴적부터 믿지 않는 성격이어서 이번에 병민이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다음부터 깝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못 박아두기로 혁이와 나름대로 작당을 한 상태였다 혁이는 나와는 다르게 은근 겁이 많아서 조금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들과 같이 가기 때문인지 잘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병민이 놈은 휘파람을 불어가며 앞장 서서 우리들에게 조잘대기 시작했다

하여간 저 새끼 저거 입터는 거

버릇 좀 고쳐줘야 해

병민이는 참 좋은 놈이지만 언젠가 저 입으로 큰 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했었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병민이의 못된 버릇을 고쳐준다면 앞으로 우리들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것만 같았다

여기야

걸음을 멈추고 병민이가 버려진 공사판을 가리켰다

“....”

우린 말 없이 주위를 살폈다 무서운 소문이 퍼질대로 퍼져서인지 근처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온통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전부였다 쓰다 남은 목재철물시멘트 여러 가지 작업 용품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모두 연출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우리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병민이가 먼저 와서 이것저것 뭔가를 해놓지는 않았나 하는 의심적인 마음을 애써 숨기며 공사판 안으로 들어갔다

휘오오-

거센 바람 때문인지 온 몸에 한기가 돋는 듯 했다

확실히 으스스하지?”

병민이가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내 옆으로 왔다 그 뒤로 혁이가 바싹 붙었다 혁이 놈표정이 얼어있다 적당히 보다가 나가는게 좋겠다 휘오오거센 바람이 우리들의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우린 천천히 어둠 속으로 몸을 맡겼다

 플래시 켜 봐

내 말에 혁이는 알았어’ 라고 말한 뒤 밝은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

회색 빛의 수많은 기둥들과 군데군데 버려진 쇠 지지대들 그리고 수 많은 벽돌들이 굴러다니는 평범한 장소였다 적당히 걸음을 옮기며 반쯤 왔다고 생각했을 때뭔가가 이상했다

?”

그러고보니 병민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수다스런 놈이 대체 왜 입을 닫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병민이가 귀신 같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혁이도 당황스러운 눈치를 하며 내게 말했다

뭐야 병민이 어딨어?”

“..

당혹스러웠다 바로 옆에서 걷던 놈이 돌연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혁이와 난 말 없이 입구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분명 질 나쁜 장난을 치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진 채였다

병민이 를 진짜.”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거센 바람이 온 몸을 두드려댔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안의 무언가가 다리를 재촉하고 있었던 걸까 나와 혁이는 저도 모르게 손을 잡고 있었다 바보 같은 꼴이지만 찰나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로 통해 있었던 것 같았다

“..

다시 입구 쪽으로 걸어나오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혁이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고나 역시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

하지만 병민이가 사라진 곳을 단번에 유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린 그렇게 십 분정도를 공사판 주위를 멤돌았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아내진 못했다

 아직도 안받어?”

내 말에 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또 장난치면 죽여버리던가 해야지 김병민이 썩을 놈아어딨어 빨리 나와!”

내 커다란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나와 혁이는 목표를 잃어버린 어린 양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이런 적은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머리가 돌처럼 되버린 것 같았다

얼마나 서있었을까 우린 어두운 공사판 쪽에서 뭔가가 꾸물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뚜렷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작고 이리저리 움직여대는 실루엣을 가만히 보니 뇌리를 스쳐가는 동물 하나가 있었다

흑구.”

저런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눈만 내놓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소문의 흑구가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작은 강아지에 대해 뭐라 판단할 정보가 없었다

“..어딨던거지?”

공사판 내부를 돌아다닐 때만해도 아무런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았었는데저렇게 발발대는 놈이라면 더욱이 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이상했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그렇게 흑구를 보며 골몰해 있을 때 혁이가 내 어깨를 쳤다

 상수야 저기

?”

혁이가 가리킨 곳 바로 우리 옆길에서 20대에서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는 남자는 곧 우리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다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낀 나와 혁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

가까이서 본 남자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우람한 덩치를 가진 혁이보다도 클 정도였으니까

너네도 소문을 듣고 온거냐?”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훑어 봤다 그 눈빛이 묘하게 기분이 나빠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런데요

왜 왔지?”

친구놈이 가자고 해서 따라왔어요

내 말에 남자의 눈썹이 미세하게나마 꿈틀거렸다

설마 그 말 많고 까불거리는 놈 말하는거냐?”

병민이에 대해 잘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말에 우린 대략적으로 병민이에 대해 뭐라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키는 이만하고요 좀 이목구비도 뚜렷한 편이고아저씨 말대로 까불거리는 놈이에요

그래?”

내 말에 남자는 힐끔 공사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저기에 들어갔냐?”

“..

남자는 무거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틀렸어

“..?”

남자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못나와 그놈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휘적거리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나와 혁이는 점점 멀어져 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뭐라도 물어보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

그렇게 중얼거린 혁이 역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혁이의 발걸음을 가만히 보니 뭔가가 꺼림칙했다 왜 미련 없이 몸을 돌리는거지아무리 티격태격하는 사이라도 혁이와 병민이는 저럴 정도가.

“..혁아어디가?”

내 말에 혁이는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리곤 아무 감정이 섞여 있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가자 돌아가자

“....”

그렇게 말하며 멀어져가는 혁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뭐? 야 박혁! 얌마!


내 외침에도 혁이는 묵묵히 걸어나갈 뿐이었다. 


혁이 놈 상태가 이상하다 한번도 저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던 놈인데.. 어째서?


"?"


터벅터벅 힘 없이 걷고 있는 혁이의 어깨를 강하게 잡고 몸을 돌리자 예상치 못한 혁이의 모습에 당황해야만 했다

너 왜 그래?”

혁이는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굵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민이가 갑자기 사라진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덩치값도 못하고 바보처럼 울기만 하는 혁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얌마 박혁왜 그러냐고 진짜!”

답답한 마음에 혁이의 팔뚝을 거칠게 잡고 이리저리 흔들자 곧 굵은 눈물을 닦은 혁이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아까나 봤어

평소 혁이의 목소리 톤이 아니었다 내게만 들릴 정도로 미세하게 소리를 내는 혁이 덕에 난 그 옆에 바짝 붙어야만 했다

뭔데?”

흑구 있잖아 검은개

그건 나도 봤어 그게 왜?”

그 놈처음부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어

혁이의 말이 난 이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몸짓이 가벼운 강아지라도 한들 걸음을 옮길 동안 미세한 소리가 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평소라면 잘 듣지 못했을지 모르겠지만 아까와 같이 쥐죽은 듯 조용한 곳에서 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뭔 소리야 임마

혁이는 주위를 빠르게 둘러본 뒤 내게 말했다

있었어그 개 말이야 그 개의 진짜 모습은 그게 아니었어

 박혁 난 네가 무슨 소리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개가 그랬어

혁이는 거칠게 눈물을 닦아 냈다

친구들을 더 데려오라고그럼 넌 살려주겠다고 말야

“..?”

어이가 없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공사장에는 사람을 홀리게 하는 뭔가가 있는게 분명해보였다 그렇게 건강했던 혁이가 반바보이 되어 를 하는걸 보니 말이다

그럼 난 왜 멀쩡한데?”

넌 믿지 않으니까 힘을 쓸 수 없다고 했어

“....”

넌 처음부터 이곳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네게는 손을 댈 수 없었대

너 진심이냐?”

내 말에 혁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흰 눈동자 사이로 움찔거리는 듯한 얇은 붉은 색의 실핏줄들이 징그럽게 돋아나 있는 것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징그러웠다 평소 알던 혁이가 아니다 정말 뭐라도 홀린 것 같았다

내 말에 거짓은 없어 그리고 아까 그 남자.”

“....”

그 남자의 몸에서 공사장 냄새가 났어

.”

원인 모를 소리를 해대는 혁이에게 난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린 그 자리에서 바로 헤어지기로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여간 찜찜한게 아니었지만 당장 의문을 풀어줄 만한 것은 어떠한 것도 없었기에 난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

병민이가 사라지고 3일이 지났다 슬슬 걱정이 된 병민이의 가족들과 경찰들이 학교에 찾아왔다 그리고 혁이와 난 집중적으로 질문 공세를 받아야만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병민이가 사라진 지점에서 우리들은 같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거기서 혁이는 이상한 말을 해댔다

그 놈은요개한테 먹혔어요 이제 못 돌아와요

거기에 들개들이 산단 말이니?”

아뇨그런 평범한 개랑은 전혀 달라요 이 개는이 개는 달라요 전혀 다르다구요

난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공사장에 들어가면 사라져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문 모르세요그건 사실이라구요!”

혁이의 발작적인 외침에 병민이 부모님은 당황하시며 내게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전 아는게 없어요

“..그래

그들은 힘 없이 돌아갔다 병민이가 사라지고 일주일이 지날 무렵 우리 학교에서는 공사장에 대한 소문이 급격히 퍼져나갔다 한 번 들어갔다 오면 나올 수 없다는 해괴망측한 곳으로 유명해져갔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왜 그런지는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많은 친구들이 공사장으로 발길을 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에서는 혁이가 가장 앞서곤 했는데 안내를 해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표정이 밝아 보였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이제 다 됐다고난 이제 떠나도 된다고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난 그 뜻을 조금 후에 알게 되었다

혁이가 원인 모를 소리를 하고 난 뒤 이틀 후 경찰이 내게 찾아왔다

네가 김상수냐?”

“..그런데요?”

혁이가 자살했다 알고 있는거 없니?”

?”

그 말은 내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어째서왜 혁이가이런저런 질문이 머릿속을 멤돌고 있을 때 경찰이 말했다

뭐라도 생각나는게 있다면 여기로 전화해줘 그리고 병민이가 사라진 뒤 혁이도 죽어버렸어 둘 모두 너와 절친한 사이 아니었냐?”

경찰은 내게서 뭐라도 캐내듯 한 투로 말했다 그것은 엄연히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몰랐고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공사장.. 조사해 봤어요?"


내 말에 경찰은 말 없이 돌아가버렸다.


***

방과 후 유난히 옆이 쓸쓸한 것을 느끼며 집으로 가고 있을 때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매캐하고 뭔가 차가운 듯한 느낌을 가진 냄새 직감적으로 공사장의 냄새란 것을 알게 된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예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머뭇거리지 않고 난 남자에게 다가갔다 혁이의 말대로 남자에게서는 공사장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건 좋지 않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게는 아무런 단서가 없으니까 일단 남자에게 뭐라도 물어봐야만 했다

그 때 병민이못 나온다고 했죠?”

내 말에 남자는 빙긋 웃었다

그랬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글세

남자를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대로 놓치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으스스하고 기분 나쁜 감촉이 전신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 했다

뭐야 당신이 알고 있는거 전부 말해 내 친구들이 모두 죽어버렸다고!”

남자는 잠시 큭큭대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말하면믿을거냐?”

“....”

지금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사라진 병민이와 죽어버린 혁이에 대해 뭐라도 듣고 싶었다

사실 난 너와 친구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

소문이 그렇게 빨리 퍼질 줄은 몰랐거든 설마하고 있었지만 말이야

남자는 즐겁다는 듯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그 덕에 많은 학생들이 공사장으로 오게 되었어 나도 체면이라는게 있으니까 감사의 의미로 넌 면제 시켜줄게어때공평하지?”

남자는 작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 뒤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잠깐잠깐!”

석연치 않았다 남자를 따라 잡기 위해 발을 빨리 놀리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멀리 떨어질 뿐이었다 좁혀지지 않았다 남자와의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난 남자를 놓칠 수 없었다 내 친구들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기다리라고!”

정신없이 남자를 따라간 끝에야 난 깨달았다 여기가 바로 공사장이라는 것을 입구에서 멈춘 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멍하니 안을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시작된 곳이다 그럼 끝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깜깜한 어둠 속으로 몸을 맡긴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원인모를 기운이 온 몸을 더듬는 듯했다 곧 나가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힐 무렵에 난 들을 수 있었다

상수야.”

힘이 빠진 목소리 병민이가 분명했다

김병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소리가 난 곳으로 서둘러 걸어가니 어두운 인영 하나가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상수.”

병민아!”

아직 모습이 확실치 않았지만 그동안 내가 들었던 놈의 목소리가 맞았다 얼른 플래시를 키자 병민이가 힘 없이 나를 보며 서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온건지 피골이 상접한 채로 퀭한 눈을 한 병민이는 그동안 까불거리고 건강해보이던 모습을 잃은채였다

난 됐으니어서 넌 나가빨리 나가.”

병민이는 미세하게 고개를 저으며 쥐어짜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임마 그동안 어디있던거야모두 널 걱정하고 있다고 어서 가자 빨리!”

안돼 난 못가 .”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여기서 병민이를 두고 갈 수 없었다 죽는 사람은 혁이로 족하다 다시 친구를 잃을 수는 없다

여긴여긴 지옥이야 지옥의 입구라고

됐어 난 널 데리고 갈거니까 그렇게 알아

서둘러 병민이를 부축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 병민이는 급격히 몸을 떨기 시작했다

상수야여기여긴 지옥이다  흑구 있잖아 흑구.”

긴장한 탓일까 병민이를 부축한 탓일까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여기에서 나가기만 하면

흑구그 흑구가 지옥.”

병민이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옆구리에 느껴졌던 녀석의 체온도 느껴지지 않았다

“?!”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병민아야 김병민당장 나와 이 새꺄!”

눈물이 흘렀다 병민이처럼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으윽.”

이를 악물고 바깥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끝 없는 암흑만이 보일 뿐 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플래시를 켜고 이리저리로 움직여 보지만 같은 풍경만이 계속 반복될 뿐이었다 이건가이런 공포를 병민이도 느끼고 있었던건가하지만 난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여기서.

헥헥

그 때였다 강아지 특유의 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얼른 플래시를 비춰보니 예의 사람들이 말했던 흑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헥헥

예감이 좋지 않았다 놈과 멀어지기 위해 발걸음을 떼지만 흑구는 어느새 내 옆에 붙어 있었고항상 내 곁을 따라다녔다 '여긴 지옥이라고. 지옥!' 병민이의 말이 마음속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월월.


처음엔 몰랐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 무렵에는 놈의 몸이 상당히 불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윽

무서웠다 무섭고 무서워서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흑구는 더 이상 귀여운 외모를 한 강아지가 아니었다 어느새 신장은 커다랗게 자라 나를 훨씬 웃돌았고 날카로운 송곳니와 어느새 불어나버린 세 개의 머리는 더 이상 평범한 강아지의 면모가 아니었다

크르르르

그것은 신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지옥견 케로베로스였다


***


서너 명의 학생 무리가 공사장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보인다 그 중 안경잡이가 의심 섞인 눈초리로 물었다

 여기가 진짜 소문의 공사장이냐?”

그렇다니까 그 3학년 중에 누구더라하여튼 그 세 명 중에 두 명은 아예 실종됐고 한명은 자살했대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데?”

안경잡이의 말에 조금 이목구비가 뚜렷한 학생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왜 왔어너도 확인하고 싶어서 따라온거 아냐

그렇긴 하지일단 들어가보자 뭐라도 있겠냐?”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학생들은 가방을 고쳐 메고 공사장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기 작은 강아지는 뭐냐?”

공사장에 사는 강아지래

그래누가 먹이라도 주나보지?”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포동포동하겠냐

작은 강아지는 학생들에게 빨리 들어가라는 듯 꼬리를 흔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그런 강아지의 몸짓에 웃음을 지으며 칠흑같이 어두운 공사장으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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