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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년 전 (2017/7/27) 게시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민왕의 북벌 - 공민왕의 요동수복

40여 년에 걸친 고려와 몽골간의 전쟁이 끝나고,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원의 부마국이 된 고려는 자주성을 훼손받는다. 원의 압력에 의해 황제국 체제를 지향하여 그에 맞게 관제를 운영한 고려는 1부 4사라는 제후국 관제를 운영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고려의 세자들이 몽골에 볼모로 지내야 했고, 몽골의 공주들과 혼인해야 했다. 원나라에 의해 고려의 임금이 바뀌는 등 80여년 동안 고려는 원에 눌러지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고려의 상황을 크게 바꾸려고 노력한 왕이 있다. 고려 31대 임금인 공민왕이다. 공민왕은 안으로는 기철을 비롯한 부원배를 척살하고, 밖으로는 원으로부터 잃었던 옛 고려의 땅 쌍성총관부를 회복하였다. 뿐만 아니라 권문세족들로 인해 피폐해진 국가경제, 농촌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 과감한 개혁을 실시하였다. 비록 그의 개혁은 좌절되었지만, 그가 이루고자 했던 개혁은 신진사대부에게 이어져 훗날 조선건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고려 공민왕이 일시적이나마 요동을 점령한 사실을 아십니까? | 인스티즈

공민왕(우)과 노국공주(좌)

공민왕은 원명교체기라는 국제정세 속에서 고려를 자주국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위대한 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공민왕이 요동을 수복하려 했다는 점을 잘 알지 못한다. 공민왕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고려의 임금이었다. 공민왕은 잃었던 옛 고구려의 땅을 되찾고자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알지, 그가 꾀한 북벌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고려의 역사를 전하는『고려사』에는 분명히 공민왕 때 요동까지 진격하고, 일시적이나마 그 땅을 차지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개혁군주 공민왕은 북벌군주였다. 이같이 자랑스런 우리역사를 잘 모르는건 학계의 문제가 아닐까? 고려사에 대한 무관심이 결국 이같은 중요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한 듯 싶다.

공민왕은 즉위하자 마자 군사들을 검열하였다. 이는 그가 즉위할때부터 잃어버린 옛 조상의 땅을 되찾는데 큰 뜻을 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윤달 초하루 갑술일, 재상으로부터 아전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활 하나, 화살 50대, 칼이나 창 한자루씩을 꼭 준비케하고 숭문관(崇文館)에서 이것을 검열하였다.

『고려사』권38 공민왕 임진 원년(1352) 3월1일

재상부터 아전에 이르기까지 군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까지 무장시킨 연유는 북벌을 준비하기 위한 전초작업이었다. 부원배를 척살하고,  고려의 풍속과 관제를 회복하였으며, 국력을 신장시킨 공민왕은 즉위 5년, 북벌을 꾀한다. 이 시기 국제정세는 원이 몰락하고 각지에서 홍건적이 난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포착한 공민왕은 인당에게 군사를 주어 압록강을 건너 원나라를 칠 것을 명령하였다.

고려 공민왕이 일시적이나마 요동을 점령한 사실을 아십니까? | 인스티즈

공민왕 즉위 시 고려 영토

6월 계축일 인당이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婆娑府) 등 세 참(站)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고려사』권39 공민왕 바보 5년(1356) 6월 4일

인당이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공격한 파사부는 고구려 시기 구련성(九連城)으로 불리던 곳이자,  지금의 단동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공민왕이 인당에게 이 곳을 공격하라고 명한 것은 고구려의 옛 땅인 요동을 되찾기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였다.

 

고려 공민왕이 일시적이나마 요동을 점령한 사실을 아십니까? | 인스티즈

고려군의 요양진격로

압록강을 건너 단동에 도착한 다음 봉성(奉城:봉황성, 고구려때는 오골성으로 불림)을 거치면 고구려의 심장부였던 요동성에 갈 수있다.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파사부는 고대부터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고구려는 요동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삼았다.

파사부를 공략한 공민왕은 이후 요동으로 가는 또 하나의 교두보를 확보한다.

공민왕 19년 우리 태조(太祖:이성계)가 올랄산성(兀刺山城)을 쳐서 성(城)이 항복하매

『고려사』권112 열전 제25 한복

공민왕 19년인 1356년 공민왕은, 이성계를 보내 압록강 건너에 있는 올랄산성을 쳐 함락시켰다. 올랄산성은 우라산성으로도 불리는데, 올라, 우라는 만주어와 여진어로 각각 강을 의미한다. 강가의 성이라는 뜻의 올랄산성, 이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오녀산성을 뜻한다.

조선왕조 건국의 정당성과 태조 이성계 및 그 선조들의 위업을 찬양하는 최초의 한글서적『용비어천가』역시 이성계가 오녀산성을 함락했다고 전하고 있다. 『고려사』에는 오녀산성 정벌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조(이성계)가 기병 5천과 보병 1만을 거느리고 동북면으로부터 황초령(黃草嶺)을 넘어 6백여리를 가서 설한령(雪寒嶺)에 이르렀으며 또 7백여리를 가서 갑진일에 압록강을 건넜다.  (중략) 이튿날 두목 20여 명이 군대를 버리고 성을 넘어 도망하였다. 여러 성들이 이러한 형세를 보고 모두 항복하였으므로 항복받은 민호가 1만을 넘었다. 노획한 소 2천 두와 말 수백 필을 모두 그 주인들에게 돌려 주엇더니 북방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여 모두 귀순하여 오는 사람들이 저자에 가는 것같이 많았다. 그리하여 동쪽은 황성(皇城:필자주-오녀산성, 금나라 황제의 성이라 해서 황성이라 불리웠다)까지 북쪽은 동녕부까지, 서쪽은 바다에까지 남쪽은 압록강까지의 지대에 적의 종적이 없어졌다.

『고려사』권42 경술 19년(1370) 봄 정월 

고려 공민왕이 일시적이나마 요동을 점령한 사실을 아십니까? | 인스티즈

고려군의 요성 공략도

오녀산성은 압록강 중류에서 요동성을 공격할 때 중간지점에 있다. 이 곳을 장악하지 않고 요동으로 진격하는 건 앞뒤로 적을 맞는 형국이 된다. 그렇기에 공민왕은 요동으로 통하는 양대길목인 파사부와 오녀산성을 장악한 것이다. 파사부와 오녀산성을 장악한 공민왕은 요동이 중심부 요성을 공략하고, 마침내 고려왕조의 숙원인 고구려의 옛 땅을 다물(多勿:회복)한다.

11월 정해일 태조(이성계)와 지용수 등이 의주에 이르러 부교(浮橋)를 가설하고 압록강을 도하하여 기축일에 요성(遼城)을 진격하였는데 급히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고려사』권42 공민왕 경술 19년(1370) 11월

 

요성(遼城:요동성)을 장악한 고려는 이 곳이 고려의 땅임을 선포하였다.

 

“요양과 심양 일대는 본시 고려의 땅이요, 백성은 고려 백성이다 이제 의로운 군대가 들어와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케 하노니…”

『고려사』권42 공민왕 경술 19년(1370) 12월

 

실로 자랑스러운 쾌거였다. 공민왕의 요동정벌은 고려가 원의 압제에서 벗어나 당당한 자주국이 되었다는 선포요, 고구려의 구토(舊土)를 회복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고려초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북진정책의 결과요, 고구려의 멸망으로 잃었던 조상의 땅을 600년만에 회복한 민족사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비록 군량문제로 장기간 주둔하지 못하고 회군해야 했지만, 고려의 요성정벌은 우리민족이 언제든 잃었던 고구려의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사건이었다.

 

고려 공민왕이 일시적이나마 요동을 점령한 사실을 아십니까? | 인스티즈

공민왕은 요동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고려의 동북방 영토를 넓혔다. 1356년, 쌍성총관부를 탈환한 공민왕은 고려의 영토를 북쪽으로 더 확장시켰다. 이는 『태종실록』에 보인다.

 

  조사해 보건대, 본국의 동북 지방(東北地方)은 공험진(公嶮鎭)으로부터 공주(孔州)·길주(吉州)·단주(端州)·영주(英州)·웅주(雄州)·함주(咸州) 등 고을이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중략)… 지정(至正) 16년에 이르러 공민왕(恭愍王) 왕전(王顓)이 원나라 조정에 신달(申達)하여 모두 혁파(革罷)하고, 인하여 공험진(公嶮鎭) 이남을 본국(本國)에 환속(還屬)시키고 관리를 정하여 관할하여 다스렸습니다

『태종실록』권7 4년 5월 19일

 

지정은 원나라 순제의 연호로, 지정 16년은 공민왕 5년인 1356년으로,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친 그 해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쳐 수복한 땅이 공험진 이남이란 뜻이다. 공험진은 12세기 예종 때 윤관 장군이 별무반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족을 쳐 그 땅에 세운 9성 중 하나다.

여진을 평정한 윤관은 새로이 여섯 개의 성을 쌓고 공험진에 경계비를 세웠다

『고려사』예종 3년

공험진은 윤관이 쌓은 9성 중 고려 국경의 최북단에 위치한 성이었다. 공험진의 위치에 대해 세종 때 실측한 자료를 토대로 만든 지도인 『조선국회도』에는 두만강 너머에 위치했다고 그리고 있다. 게다가 세종실록 지리지 역시 공험진이 두만강 이북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공민왕이 일시적이나마 요동을 점령한 사실을 아십니까? | 인스티즈

조선국회도에 그려진 공험진의 위치, 두만강 북쪽에 있다고 명시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에서 북쪽으로 700리에 공험진이 있고, 동북쪽으로 700리에 선춘현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함길도 길주목 경원도호부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공험진은 지금의 연길인 간도지방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의 최북방경계인 공험진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연구해야 하지만, 최소한 두만강 이북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동으로는 두만강을 넘어 간도지방까지 서로는 압록강을 넘어 요동의 심장부인 요성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차지한 공민왕은 원을 내쫓고 잃어버린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남쪽의 왜구의 준동, 명의 압력, 군량문제로 고려는 애써 회복한 요동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철수하는 대신 공민왕은 요동을 우리 땅임을 선포하였다. 이는 언제라도 여건이 되면 다시 되찾아오겠다는 공민왕의 의지, 더 나아가 고려의 의지였다.

고려 공민왕이 일시적이나마 요동을 점령한 사실을 아십니까? | 인스티즈

공민왕이 회복한 영토

고려사에 몇 줄 기록되어 있는 이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공민왕에 대해 기억하는 우리의 이미지는 개혁군주일 것이다. 하지만 공민왕은 잃었던 영토를 되찾으려 한 북벌군주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후대 고려를 뒤엎은 조선은 종묘에 공민왕의 신위를 모셨다. 이는 조선에서조차 공민왕을 훌륭한 임금이라 보았다는 증거이고, 또한 조선이 고려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를 이은 국가임을 내외에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민족의 염원을 일시적으로나마 이루었고, 고려의 영토를 요동과 동만주지역까지 확장시킨 북벌군주 공민왕...

이것이 우리가 공민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고려 공민왕이 일시적이나마 요동을 점령한 사실을 아십니까?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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