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이동형 씨의 최신작인 <정치과외 제 1교시>에서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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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상류층 출신으로 남한, 즉 한국에 망명했던 이한영이란 사람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 사람은 한동안 언론의 조명을 받고 유명해졌는데, 1997년 2월에 자기 집 문 앞에서 누군가로부터 권총 사격을 받고 죽었지요. 경찰 당국에서는 북한 첩보원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한국으로 와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이동형 씨의 최신작인 <정치과외 제 1교시>에 담겨 있는데, 무척 흥미롭더군요.
원래 이한영의 본명은 리일남이었는데, 1982년 유학 중이던 스위스에서 한국 대사관과 비밀리에 접촉해서 미국 망명을 하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주 스위스 한국 대사관에서는 이런 리일남을 설득해서 미국이 아닌, 남한으로 망명하게 했다는 것이죠.
남한으로 망명한 리일남은 김정일의 보복이 두려워서 이름도 이한영으로 바꾸고, 아예 얼굴 전체를 뜯어 고치는 성형 수술을 하고, 한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정착금을 제공받은 것은 물론, 자신의 신변 문제를 우려해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비밀에 붙이고 살게 됩니다.
한편, 리일남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도 북한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인 성혜림과 성혜량은 한동안 별다른 불이익없이 계속 살던 관저 15호에서 살았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과 얼굴까지 바꾸고, 남한에 정착한 이한영 본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본래 북한의 상류층 출신이어서 호화로운 생활에 익숙했는데, 마음대로 돈을 끌어다 쓸 수 있었던 북한에서와는 달리, 남한에서는 그러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죠. 안기부를 제외하면 딱히 이한영에게 돈을 주는 곳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한영 자신도 평생을 편하게 산 사람이라 돈 버는 재주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한영이 기댈 곳이라고는 자신을 한국으로 데려 온 안기부 밖에 없었는데, 안기부에서도 시간이 가도 계속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는 이한영이 점차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안기부에서는 "우린 더 이상 당신에게 돈을 못 준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에 적응하면서 살 생각을 하라. 정 한국에서 사는 게 싫으면 다시 북으로 돌아가라!"라고 이한영에게 새로운 삶을 살도록 노력하라고 압박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한영은 평범한 인생을 사는데 실패했습니다. KBS 피디로 입사하여 방송일을 하기도 했지만, 영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얼마 후에 퇴사를 하고 러시아어 관련 사업을 하다가 경기가 좋지 않아 빚만 잔뜩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돈에 쪼들리던 이한영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과거를 언론사에 팔 생각을 하고, 한국 최대의 언론사인 조선일보를 찾아가서, 모 기자(실명을 그대로 쓰면 명예훼손 어쩌고 할 것 같아서 그냥 가명 처리합니다.)에게 자신의 이모인 성혜림의 남편 즉 이모부가 바로 북한의 실권자인 김정일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조선일보 기자는 제 발로 굴러 들어온 이 특종감에 놀라서 이한영에게 5백만원을 내주었는데, 마침 무척 가난한 신세였던 이한영은 5백만원을 받는 대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김정일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 모두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조선일보 기자는 한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성혜랑이 살고 있는 모스크바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그대로 공개해 버렸던 것입니다.(당시 성혜랑은 건강이 안 좋아서 모스크바로 치료차 떠나서 살고 있던 중이었음)
그 결과, 아들이 남한으로 망명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혜랑은 더 이상 북한에서 살 수가 없어서 남한으로 탈출했는데, 그녀는 2000년에 쓴 책인 <등나무>에서 "내 아들은 특종에 눈이 멀어 정보원을 보호하지 않았던 무책임한 기자와 언론사가 죽게 했다."라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한영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다가왔는데, 이한영은 자신이 북한에서 살면서 직접 보고 겪었던 일들과 한국에 망명하여 지내던 일들을 글로 엮어 <대동강 로열패밀리 한국 잠행 14년>이란 책을 1996년에 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오자, 자신의 치부가 처조카의 손에 의해 모두 까발려진 사실에 분노한 김정일은 남파 공작원을 보내서 1997년, 급기야 이한영을 죽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한영의 죽음에 얽힌 기막힌 일들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한영 자신이 책을 낸 이후로 줄곧 북한에 의한 암살을 두려워하여, 성형 수술도 여러 번 하고 집도 자주 옮기는 식으로 피하면서 살았지만, 정작 한국 정부는 이런 속사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이한영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죽기까지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럼 이한영을 암살한 북한 공작원들이 어떤 경로로 그의 집주소를 알아냈느냐 하면, 바로 한국의 심부름센터에 의뢰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심부름센터가 국가 정보부보다 더 뛰어난 정보 수집력을 가졌다는 반증일까요?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신상정보 보호가 너무나 엉망진창으로 관리되어 일개 심부름센터에서 개인의 신상정보를 아무나 볼 수 있다는 증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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