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가 병으로 죽자 세조는 의경세자의 장남(원손)인 월산군이 아닌 자신의 둘째아들을 세자로 삼았다.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즉위했으나 허약한몸으로 즉위한지 얼마안돼 사망했다.
예종의 적자인 당시 원자의 나이는 겨우 네살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에게 왕이라는 자리는 너무나도 컷었다.
순리로 따지면 원자(제안대군)가 즉위해야 하나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왕의 자리는 의경세자의 둘째아들 자을산군(성종) 에게 넘어간다.
성종에게는 이미 즉위전 아내가 있었다 당시 조선최고 권력가였던 한명회의 딸이였다.
하지만 이 공혜왕후가 젊은나이에 사망하자 중전간택이 벌여졌고 성종은 그때 가장사랑했던 후궁 숙의윤씨를 중전으로 삶고싶었다.
그녀는 당시 성종의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비는 크게 반대했다.
나이도 많고 집안도 별로고 성격이 마음에 들지않았던것
젊은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과부가 되어 세아이를 홀로 키워야했던 탓이였는지
인수대비의 지나친 자식사랑은 유별났다
하지만 결국 성종은 윤씨를 중전으로 책봉했고 몇개월 뒤 궐에서 아주 큰 경사가 나타났다.
원자가 탄생했던것.
하지만 조선을 피바람으로 몰고 갈 왕자라는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것이다.
평소에 중전의 질투심많은 성격이 마음에 들지않았던 인수대비는 어미의 성향을 본받을까 염려했고 결국 두 모자에게 생이별을 시켜버린다.
바로 태어나지 얼마안된 원자를 다른곳에 피접보냈던것
한순간에 아이와 이별한 중전은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아이와도 이별하고 더군다나 바람끼가 심했던 성종에게 화가난 중전은 결국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다.
당대로 따지자면 왕에게 상처를 냈다는것은 역적으로 처벌할정도로 큰 죄였다.
그렇게해서 결국 중전은 폐위되고야만다
하지만 성종은 어린아들을 생각했고 조정대신들의 뜻에 다시 윤씨를 복위시킬 생각도 했다.
그래서 한 상궁에게 윤씨의 현재상황을 보고오라 했고
폐위된 윤씨는 잘못을 반성하며 하루종일 울었으나
복위되는게 싫었던 인수대비는 상궁에게 거짓말을 하도록했다.
결국 분노한 성종이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된다.
그리고 얼마안되 후궁이였던 정현왕후가 중전으로 책봉되고
원자도 피접에서 돌아오게 된다.
며느리에 이어 인수대비는 그녀가 낳은 손자마저 탐탁지않게 여겼다.
인수대비는 원자의 내성적이였고 소심했던 성격을 계집아이 같다며 싫어했고
원자 또한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하나 없는 넓은궁에서 홀로 외롭게 성장한다.
또한 몇년후 진성대군이 태어나면서
원자를 친아들처럼 길러준 정현왕후 또한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아낌없이 사랑받는 동생을 보며 어떤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이쯤부터 본인의 출생비밀을 알게됬을 어린세자는 벌써부터 마음에서 칼을 갈고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성종이 승하한후 집권 10년 동안은 아주 나라를.잘 다스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중 연산군10년이 가장 살기좋았다는 기록도 있고
효성이 지극해 세명의 대비(안순왕후 인수대비 정현왕후)에게 아주 극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작스런 사화를 일으키고 그때부터 점점 걷잡을수 없게 된다.
신료들을 죽이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잔인하게 죽이기도 하고
할머니인 인수대비마저 죽이려고 했다.
패륜의 막장을 달리던 그를 지켜보지 못했던 신하들이 결국 중종반정을 일으켜 멈출수가 있었다.
시를 잘 쓰고 감성이 풍부했다는 조선의 적장자이자 군으로 강등된 10대왕
할머니였던 인수대비가 조금만 이해해주고 받아주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더라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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