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사학자가 '통일신라와 발해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정권을 인정받은 관계였다'는 일본 사학계의 정설(定說)을 반박하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는 고미야 히데타카(小宮秀陵·33)씨가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 '신라·발해의 대당번진(對唐藩鎭) 교섭 연구'를 지난달 통과시켰다. 논문의 요점은 '9세기 초 잇따른 반란으로 당나라의 영향력이 약화된 이후 신라·발해가 당나라 번진(藩鎭·황제에게 영지를 받은 절도사가 다스리는 지방정부)과 직접 교섭하면서 실리를 추구했다'는 것. 또 '신라와 발해가 번진과 물자 및 사람을 교류해 이득을 얻고, 당나라 조정의 요청으로 당나라 조정과 번진의 대립에 개입하는 등 당나라 내부와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고미야 박사는 "일본은 '신라·발해가 당나라에 사신을 자주 보내면서도 당나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면에서 일본보다 게을렀다'고 평가하는 등 신라·발해를 폄하해 왔다"며 "그러나 신라·발해는 당나라에 사신을 언제 보낼지 주체적으로 결정했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당나라에 맞서는 번진과도 교섭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라·발해는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도 외교를 중시한 나라였다"며 "두 나라 모두 평화로우면서도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정책을 지향했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식민 시대(일제강점기)에 겪은 아픔을 이해하고 싶어 한국사를 연구하게 됐다"는 고미야 박사는 "앞으로 신라·발해와 중국의 교류를 일본이 당에 파견한 사신인 견당사(遣唐使)와 비교해 관찰하고 싶다"고 했다.
고미야 박사를 지도한 노태돈 교수는 "종래에는 당 조정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다 보니 신라·발해가 조공했다는 기록만이 실체인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며 "고미야 박사의 연구는 당시 한·중 관계를 '조공·책봉 관계'로 파악해온 기존 틀에서 벗어나 다시 검토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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