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처음 들었을 때 1%라도 더 맞다고 생각되는 걸로 결정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1%가 중요한 거에요
반대로 결정했으면 지금보다 1% 더 후회했을 거 아니에요?

후회? 나만큼 했을까 너가?


나도 후회하고 있어. 11년 동안.
그 문을 못 열고 도망갔던 걸.

내가 널 왜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아?
넌 내 인생에서 가장 비겁한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니까
너를 볼 때마다 그 빌어먹을 순간들이 떠오르니까.
그 순간을 내가 얼마나 후회하는 줄 알아?
다시 돌아가서 증언을 할 걸
매순간 아직까지도 후회해
그 순간을 변명하고 싶었어 어떻게든
그날로 나 미술도 포기하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검사가 됐어
너랑 아버지한테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 순간 난 내가 아니였다고 실수였다고

그리고 그 결정을 늘 후회해왔다.
난 아직도 그 때 법정 문을 열었던 것을 후회한다.
그 문만 안 열었어도 이 모든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때 반대의 결정을 했다면 지금보다 더 후회하고 있지 않았을까
한 1% 정도 더

사람 마음이 참 그래요
참말 열 개를 해도 거짓말을 한 번 하면
그 전에 했던 참말이 정말 참말일까
의심하게 되거든요

당신 변호를 맡으면서 매일 매 순간 당신 눈으로, 당신 생각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당신 진짜 생각이 뭔지 알아냈습니다
당신도 인정하고 있죠 이 모든 시작이 당신이라는 걸
어느 순간 그걸 알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을 거에요
멈춘 순간 당신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까
그래서 당신이 우긴 겁니다
사람들을 죽여가면서 당신이 맞다고 땡깡 부린 겁니다
알면서 우기는 거 괴롭지 않습니까
잘못된 걸 우긴다고 맞는 게 되진 않잖아요
우긴다고 돌이킬 수도 없구요
그걸 아는데 계속 우기는 건 자기 학댑니다
그렇게 살다가 당신은 철저하게 자기 편 하나 없이 혼자가 된 겁니다

법이라는 걸 공부해보니까 말입니다
법은 준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잘 이용하는 거더라구요

세상을, 관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건
진실보다 거짓일 때가 많다.
거짓은 잠시 갈등을 봉합하고 불안을 잠재운다.
진실은 거짓보다 불편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진실 앞에서 눈을 감는다.
진실을 전하는 건 늘 고통스럽다.

진실이 재판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재판에서 이기는 게 진실인거야

이 나라에서 피해자는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무죄추정? 합리적인 원칙? 그딴거 다 에요
피해자가 되보니까요 원칙이고 수단이고 다 에요
변호사는 이고
저 역시 그 은 변호사구요

사람 미워하는데 네 인생 쓰지 말라
한번 태어난 인생 예뻐하면서 살기도 모자란 세상이다

딸이라 편든게 아니다
니가 옳아서 편든거다

기억해 놓으려구요. 오늘 이 시간을
전 앞으로 누군가를 변호하면서 많이 다칠 거예요.
피고인들의 거짓말에 실망하고 상처받고 보람도 없는 순간들이 많을 겁니다.
그때마다 변호사를 때려치고 싶을 거고요. 그때마다 오늘 재판을 기억할 겁니다.
그걸로 기억할 거예요. 모든 실망과 상처를 지울 만큼 가치 있는 순간이 있다고.
그 순간을 위해 죽을힘으로 버텨보자고.

죽기 전에 내가 느끼는 마지막 감정이
그렇게 흉한 게 아니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용서하는 겁니다

혹시 도둑 까치 서곡이라는 오페라를 아십니까
한 소녀가 은그릇을 훔친 죄로 처형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도둑은 까치였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 소녀 참 운도 더럽게 없다, 망할놈의 까치는 왜 그걸 훔쳤을까? 그런 생각이 드시죠.
아니요, 소녀는 운이 나쁜게 아닙니다. 까치도 잘못이 없구요. 하지만 이 사건에는 분명 가해자가 존재합니다.
바로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처형이라는 어마무시한 판결을 내린 그 법정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입니다.
스무개가 모자른다고 코끼리 퍼즐이 사자퍼즐이 되진 않죠.
그러나, 그 스무개의 퍼즐이 없기 때문에 그 코끼리가 앞발로 사람을 밟아죽였는지 아니면 공을 차는 건지 알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스무개의 퍼즐 없이 앞발에 채 맞춰지지 않은 퍼즐을 보며 이 코끼리는 앞발로 사람을 밟아 죽였으니 죽이는 게 마땅하다는 판결을 내린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그 코끼리를 죽이고 난 후 나머지 스무개가 맞춰졌을 때 그 코끼리의 앞발 아래에 사람이 아닌 공이 있다면요?
죽은 코끼리는 절대 다시 살릴 수가 없습니다.
피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고하게 수십 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인생이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낸다면 우리는 절대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망할 놈의 원칙이라는 게 필요한 겁니다
제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놔준 개떡 같은 원칙이지만
또 그 원칙이 지금 제 앞에 있는 피고인을 살릴 수 있는 지푸라기 같은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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