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단풍이 짙어지던 여러 해 전 가을
나는 사랑니를 쎄게 앓게 됨
일반 병원 진료시간을 맞추기 힘들어서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야간진료 치과를 방문하게 됨
나는 당시 발치라곤 1도 해본 적 없었음
그리고 현생이 바빠 병원가는 것도 일이었음
나: 왔다갔다 하는 것도 귀찮은데 온 김에 걍 4개 다 뽑고 싶은데요
의사: 그러다 죽습니다
간혹 의사들은 시술의 부작용 정도를
맥시멈으로 던지는 경우가 있음
그러나 발치공감능력저하 였던 나는 쫄지 않음
나: 그럼 두 개라도 뽑을랍니다
의사: (아픈 건 너니까) ㅇㅋ 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이 왜 한반도 오천년 역사 동안
사장되지 않고 맥을 이어오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임
나: 뽑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의사: 삼 사십 분 정도면 뽑아요
나: (가소롭군..)
중이병이 이빨로 옴;
얼굴에 뚫린 천을 쓰고 눕자 뻐근하게 마취주사를 놓음
드디어 본격적인 시술이 시작됨
자 이제 시작이야 이빨을- 이빨을 빼는 여행-
빼까 치!
근데 그 여행이 고난의 행군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음
나는
사랑니와
안전이별을 할 수 없게 됨
입을 양껏 벌리고 누워있은지도 수분
윗 사랑니는 금방 발치에 성공함
그러나 아래 사랑니가 알고보니 개어그로
안 빠지는 것임;
눈이 가려 의사의 얼굴을 볼 수 없음에도
나는 느낄 수 있었음
왜냐하면 입 안에 있는 의료기구가 의사의 손 악력에
부들부들 떨려벌임
흔듬-부르르-한숨소리
이게 사이클처럼 반복 됨
그리고 그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치위생사: 환자분 입 벌리세요~~~
바로 이것임
나: ....아ㅏ!!!!!!(비장)
치위생사: 네~ 조금만 참으세요~~~
나: (이것으로 내 역할은 다 한 것인가..)
치위생사: 환자분~ 입 더 크게 벌리세요~~!
김칫국
나: ....아ㅏㅏㅏ!!!!!!!!!!!!!!!!!!!!
치위생사: 더 크게~~~
나: ....아ㅏㅏ아아아아아!!!!!!!!!!!!!!!!!
이쯤되면
하이퍼즘..
포켓몬 중에 주벳이라는 애가 있음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다니는 박쥐포켓몬임
나는 주뱃이었음
그리고 시술이 지속될 수록
골뱃으로 진화함
기승전골뱃..
삼십분이면 게임셋이라던 의사는 가로 세로 합 4센치가 되지 않는 칼슘덩어리를 잡고 기를 쓰고 있었음
의사: (이게 왜 이렇게 안돼.. 자.. 그럼 이렇게..)
뺀찌: (부들부들)
사랑니: (읍읍읍......!!!)
치위생사: 환자분~~~~~~/~
나: ......아ㅏ아ㅏ아아악!!!!!!!(처절)
이런 싸움이 수십분째 이어짐
아.. 지금 생각해도 질려벌임..
알지 모르겠는데
악관절 최대개방하고 오래 있으면
나사빠진 호두까기 인형처럼 됨
입다무는 걸 까먹음..
그러니까 무슨 기분이냐면
입 다무는 기분이 그리워지게 됨
진짜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손을 들어 타임수신호를 그림ㅋㅋㅋㅋ
이미지는 정적인데
두 손을 빠르게 반복해서 맞닿음
그러자
치위생사: 으음~ 타임~~~~
그리하여 치과진료 최초로
진료 중 쉬는시간을 가짐..
의사: 많이 힘들지요?
나: 입 찢어질라 한다고요...(호소력 짙게)
호들갑 떨면
사실 될 일
치위생사: 자 환자분~ 누우실게요~
어떤 고통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음
결과적으로 사랑니 뽑는데 1시간 넘게 걸림
치가 떨리는 시술이 끝나고 집에 옴
근데 입술 가생이 끝에 뭔 빨간 게 살짝 묻어있는 거임
자세히 봤더니
살짝 칼에 베인거 처럼 선이 두 줄 가있음
진짜 찢어져벌임
이후로 한동안 치과 발길 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