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박사
1989년에 가수로 데뷔한 그는 신바람 이박사 Vol.1 을 출시한다. 기존 고속도로 뽕짝과는 사뭇 다른 노래들로 테이프 판매량 1백만 장 이상을 기록하는 놀라운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인기의 여파로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며, 그 이후 19개의 앨범을 내고, 앨범마다 큰 인기를 얻으며 고속도로에서 신바람나게 팔려나갔다
이박사는 89년 발표한 데뷔앨범 '신바람 이박사 메들리' 1집 하나로 180만 장을 판매했고, 그해 연달아 내놓은 1~5집을 다 합하면 400만 장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신승훈의 1집 앨범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140만 장을 판매하며 데뷔 앨범으로는 처음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는데, 공식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1년 앞서 이박사가 이 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제한된 영역에서의 히트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이박사 측은 1995년 일본 진출을 기획하게 된다. 일본의 모 인디 레이블을 통해 일본 진출 가능성을 점쳐보려 했는데, 샘플을 들었던 사람 중에 운 좋게도 소니 뮤직 대표가 있어, 쉽게 앨범을 내고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니뮤직에서 제작한 포스터
일본 활동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다섯 개 앨범을 내고, 1000만장 가까이 팔렸다. 음악성도 인정받았다. 일본 최정상 테크노밴드 ‘덴키 그루브’와 협연도 몇 차례 했다. 노래가 한국으로 역수입돼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한국과 일본에서 팔린 앨범 총 2500만장. 대형 콘서트만 50차례를 넘고, 작은 공연까지 합치면 몇천 번은 된다. 일본 대형 실내경기장인 무도관에서 만석(滿席) 콘서트도 열었다
일본에서의 평가는 높아서, 후지테레비의 HEY!HEY!HEY!에 2번째로 출연한 외국인 가수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한국인중 첫번째) 니코니코 동화에 올라오는 그의 영상에는 한국인에게 흔히 붙는 비하나 욕이 전혀 달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영상에 붙는 태그가 '한국을 싫어하는 나도 인정하는 한류 슈퍼스타'. 일본에서 한국어로 노래하는 가수가 이 정도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건 역시 그의 범우주적 센스를 보여주는 듯. 반대로 팝송이나 일본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체화시키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곡이 빌리지 피플의 YMCA와 고다이고의 M Magic.
일본에서 워낙에 인기가 많다보니 처음 일본에 진출했던 90년대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한국하면 Pon-chak아닌가요."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일본 최대 제약 회사 tv광고 모델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국 가수는 누굴까.조용필이나 김연자.계은숙이라고 대답하면 적어도 96년 상반기 현재로선 틀린 대답이 된다.국내에선 무명에 가까운 이박사(본명 이용석.42)란 가수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 기 때문이다. 올해 3월하순부터 일본시장에서 모두 3장의 음반(싱글1장 포함)을 발표한 이박사의 인기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타워.HMV등 대형 레코드매장에는 이박사 음반의 판매대가 따로 설치돼 있고 판매량도 일본의 톱가수에 뒤지지 않는다. 오사카등 간사이 지방에서부터 촉발된 이박사 선풍이 일본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그는 인기 TV프로에 잇따라 출연했고 일본최대의제약업체인 긴쵸사는 그를 CF모델로 기용했다.또 지난달 23일에는 일본의 톱가수들도 서기 어렵다는 도쿄 부도칸 (무도관)에서 데뷔공연을 벌였고 만석이였다. -1996.05.23 중앙일보
태진아는 이박사가 잘 나갈 시절, 뮤지션이 아니라 그냥 광대라면서 폄하성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이박사'라고 하면 뽕짝 가수라며 별 가치없는 가수로 생각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기는 젊은이들 사이에 뽕짝은 하급문화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었다
“나는 나예요, 그냥. 음악은 모방이 없다. 창작이다. 개발이다. 노력이다. 예술은 멀다. 질리지 않는다. 재밌다. 재밌는 삶이다!” - 2012년 9월 10일 동아일보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