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극동 아시아 게임 대참사 사건
1913년 극동 아시아 게임이라는 축구 대회가 존재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만 참여했던 국가대항전으로 지금의 동아시아컵의 전신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191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 1회 대회가 열렸고, 1915년은 상하이에서 열리게 됩니다.
1회 대회 모두 중국과 필리핀만 참여했고, 제 3회 대회이던 1917년 도쿄 대회부터 일본이 합류하게 됩니다.
바로 저 1917년 대회가 문제였습니다.
(1917년 일본 대표팀으로 추정되는 사진)
당시 최강은 중국으로 일본은 5월 5일에 열린 1차전에서 중국에 0-5로 패배했습니다.
이후 5일뒤인 1917년 5월 10일 필리핀과 일본의 경기가 열리게 됩니다.
일본은 주장인 타케우치를 중심으로 토미타, 히가, 타케이, 요시키, 우에야마, 와타나베 등의 선수들이 있었으며
필리핀에는 1900년대 초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최고의 선수 파울리노 알칸타라가 있었습니다.
(파울리노 알칸타라)
당시 알칸타라는 바르셀로나에서 뛰다가 의사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필리핀으로 복귀한 상태였습니다.
이 경기는 일본이 무려 15골이나 실점했고, 경기는 2-15로 필리핀이 승리하게 됩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경기는 파울리노 알칸타라가
'일본을 분쇄시켰다'
'어린아이 다루듯 일본을 가지고 놀았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력차이가 정말 크게 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101년전 이야기이다 보니 이 경기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는 자료는 없고
단지 알칸타라가 일본을 처참하게 박살냈다 정도만 나와 있습니다.
(몇골 넣었는지 조차도..)
이후 정확히 50년이 지난 1967년
일본은 도쿄로 필리핀을 초청했고, 그들은 필리핀의 골망을 무려 15차례나 흔들며 15-0으로 복수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건 일본측에서는 1917년 당한 2-15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