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발발, 예비군 4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밝아지는 주변.

 

그제서야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포상, 차량, 분주하게 움직이는 병사..언뜻언뜻 보이는 예비군..

 

그리고..미처 못 봤던..한 쪽에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포탄들.

'수류탄이 문제가 아니네...저거 하나 잘못 건드려서...다 터지면....'

 

...그러면서 다시 수류탄 잘 매달려있나 확인도 하고..

 

 

 

 

 

'나 말고 다른 예비군은 어떨까...' 하면서 흘끔 보니

 

다들 현역이랑 뭔가 얘기하면서 부자재들을 만지거나, 직접 조준경을 보기도 하고..

 

 

 

 

 

...왠지....주눅이 들다가도, 제대로 알고 온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기도...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게 아니라...적어도 전쟁 중에는 나보다 더 쓸모있는 사람...'

 

 

 

 

 

 

 

뒤이어 밀려드는 후회.

 

 

 

예비군 훈련이랍시고 가서 뒤로 빠져서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고..

 

"한 번 해 보시겠습니까?" 하는 말에 괜히 X팔릴까 쥐뿔도 모르면서

 

"예전에 많이 해 봤어 야야..그냥 좀 쉬자..간부도 안보이는데~ 너무 괴롭히는 거 아냐?"

 

"아...예...하하..."

 

 

 

 

 

 

'...하...X신...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뭐해...'

 

 

 

 

 

있던 포상으로 오니,

 

다들 하나같이 말이 없고, 표정이 굳어있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어떻게 해야 하나..'

 

그다지 신경쓸 것도 아니지만, 다른 예비군들의 행동을 보고 나서인지...

 

 

 

 

 

어렵게 마음 먹고 한 마디..

 

"...괜찮을거야...음...곧 미군 온데잖아, 그리고 뭐..아직 여기까지는 못 온 거 같은데...기운들....내..고..."

 

 

 

 

 

...아무도 말이 없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하...우...X신, 뭐라 말한거야....이 와중에...무슨 겉멋.....'

 

 

 

 

 

 

 

"....예..."

 

...그 와중에도 부사수가 대답하니, 머쓱하게 웃으면서 괜히 총기 멜빵끈만 만지고,

 

 

 

 

 

 

한참을 서로 말 없이 서 있는 중..

 

 

 

 

 

지휘소 천막에 모여있던 포반장들이 뛰어오면서

 

"사격준비명령이다.."

 

 

 

 

 

...머리가 멍해지며 갑자기 몸을 확 감싸는 긴장감.

 

'...시작...시작이구나...'

 

 

 

 

 

삽, 곡괭이같은 부자재를 챙기면서 불현듯 스치는 생각.

 

'...105...105MM..사거리...'

 

 

 

 

 

행정병 일하면서 수도없이 업무보고 치고, 작계를 수정하면서

 

알게된 105MM 포에 관해서 몇 가지 중 하나.

 

 

 

 

 

사거리.

 

 

 

 

 

 

10km 내외...

 

잠실대교 8개를 이어붙인 거리.

 

'....저 앞에 북한군이 있다는 거....겠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지만

 

언덕 하나만 넘으면 북한군이 개떼처럼 뛰어올 것 같은 긴장감에

 

심장은 빨라지고, 방탄 안은 어느새 습기와 땀으로 뒤범벅.

 

볼 옆으로 구정물처럼 흐르는 땀.

 

위장크림이 지워지는지도 모르고 이마를 닦는데

 

 

 

 

 

둘러보니 모두 뛰어다니면서 탄약 나르고,

통신병은 통신망 설치, 가설 재확인,

 

포차 운전병은 이미 포차 빼 놓고 주변 경계.

 

숨돌릴 새 없이 주변이 돌아가고...

 

 

 

 

 

 

그렇게, 잠깐 한 눈 판 사이.

 

우리 화포가 측각기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고, 가신 좌우로 펼치고 있는 중.

 

헐레벌떡 가서 가신 펼치는 거 도와주고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머뭇머뭇.

 

사수, 부사수는 양 손이 바쁘게 뭔가 돌리고 눈으로 확인하고..

 

 

 

 

"파!!!"

 

 

 

 

 

옆에 있던 일병 하나가 곡괭이로 땅을 파는 모습에 정신이 퍼뜩 들어 남은 곡괭이를 잡고 맞은 편의 땅을 미친 듯 내리 찍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이것 밖에는...나머지는....'

 

 

 

 

눈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생각도 않고 파고, 파고.

 

얼굴에 돌, 모래 튀는거 신경도 안 쓰면서 곡괭이질.

 

다음에 삽으로 흙을 퍼내면서 각 잡는데 돌에 삽 부딪히면서 불꽃 튀어오르고.

 

 

 

 

 

구덩이가 다 파지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

 

땀에 녹아 목 언저리까지 번진 위장..

 

 

 

 

 

사수 지시에 따라 포 각도 몇 번 다시 맞추고, 맞추고..

 

 

 

 

 

 

"박아"

 

라는 말에 발로 철주를 고정시키고 힘껏 함마를 휘두르는데.

 

"땅!!!!"

 

....

 

....

 

'...아....'

 

급하게 박아넣으려다 빗나가 가신을 냅다 쳐 버리고,

 

 

 

 

 

모두 얼어붙고... 사수 재확인...

 

"...괜찮습니다. 계속...."

 

 

 

 

 

손이 저릿저릿 하지만...철주를 다 박고, 사수 조준 완료...

 

 

 

 

 

사수는 포반장에게 주먹을 쥐어 조준이 끝났음을 알려주고,

 

포반장은 차폐각을 따고, 방열이 끝났음을 확인..

 

"하나포 방열끝, 전방조준점 XXX, 차폐각 XXX....."

 

알아듣지 못하는...그러나 예비군 훈련때마다 들었던 말..

 

 

 

 

 

"포탄인계"

아까 본 포탄을 들고 오는데,

 

 

 

 

 

부사수..

 

"....조심해...떨어뜨리면........다 죽는다" 

 

 

 

 

 

괜히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

"사격 준비 완료"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잘.......쏘는건가....각은 잘 조절한건가.....잘못되서 터지진 않겠지..........'

 

 

 

 

 

 

찰나의 순간이지만 드는 오만가지 생각과 스쳐지나가는 군 사건 사고들....

 

마른 입술만 이로 뜯고, 말 한마디 없이 얼굴, 눈만 쳐다보는

 

숨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는 순간...

 

 

 

 

 

 

그리고 잠시 후, 떨어진 발사명령.

"발사!!!"

 

 

 

 

 

 

 

 

 

포대원 모두 귀 막고 살짝 구부정한 자세로 "발사!!!" 를 외치고,

귀 막고 뒤돌아 있었음에도 귀가 조금 멍멍할 정도.

 

흙먼지가 날려 온통 뒤집어쓰고, 

 

눈도 잘 뜨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현역들은 끊임없이 무전연락, 탄 인계..

 

 

 

 

 

 

 

뒤에서 날아가는 탄을 보고

 

'...저정도면...다 죽겠지...? 이쪽으로 오지마라......오지마라......'

 

K-2 꽉 붙잡고 앞의 숲만 쳐다보면서 누구든 하나 움직이면 쏴버릴 생각만 하고 있는데,

 

그렇게 각개사격 중

 

 

 

 

 

 

순간 들리는 

 

"일제사격 명령입니다."

 

 

 

 

 

 

 

 

잠시 포 사격을 멈추고 전방 수기신호만 바라보는 상태.

 

"발사!!!"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난생 처음 보는 일제사격.

 

아까 사격과는 달리..몇 배나 큰 소음과 먼지...

 

 

 

 

 

 

 

'....하.........' 멍하니 바라보는데...

 

 

 

 

 

 

 

"구경나왔어? 이야!! 빨리 진지변환 준비해!!!" 간부의 호통소리.

 

"에....예!!!!"

 

 

 

 

 

 

 

사수, 부사수는 이미 앞쪽 철판을 접고 있었고,

 

맞은 편 가신에서는 철주 뽑아 정리중,

 

뒤에서는 이등병들이 각종 부자재를 챙겨 낑낑거리며 운반, 

 

 

 

 

 

 

'빨리..진지변환.......빨리....'

 

철주를 뽑으면서 예전에 간부한테 들었던 얘기가 스쳐지나가고,

 

 

 

 

-

 

"..야, 너 왜 대대에서 한 번 쏘고 진지변환하고 그러는줄 알아?"

 

"...모르겠습니다."

 

"쟤네들 아무리 후지고 그렇다지만, 포병 레이더라는게 있어....어디쯤 진지에서 쐈는지 알 수 있단 말이지...이런것도 몰라서 포병 하겠어?"

 

"하하....저는...그냥 행정병 아닙니까~"

 

 -

 

 

 

 

'........지금은.........아니다....'

 

 

 

 

 

철주 다 뽑고, 가신 다리 모으고, 

 

'포차..포차에 이제 결속만 하면 돼....빨리....'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우당탕탕 소리.

 

 

 

 

 

"으앗....."

 

 

 

 

 

뒤이어 부사수의 고함

 

"...저 병X 빨리 안일어나!!!!"

 

 

 

 

 

위장망 줄에 걸려 이등병은 넘어지고 정리한 부자재는 다 쏟아지고. 얼굴은 흙투성이.

 

 

 

 

 

 

허겁지겁 일어나서 부자재 정리하는 이등병.

 

나머지는 뛰어가서 위장망 핀 뽑고, 대충 묶어서 차에 싣고..

'...이제...가면 돼...가자..얼른...죽기싫어....'

 

언제 북한군이 올 지, 아니면 포격이 올 지 몰라서 더 불안한 상태....

 

금방이라도 언덕 넘어서 북한군들 바글바글 뛰어올거같아 주변 산 두리번 두리번...

 

 

 

 

 

'차 시동은 걸려있는데...'

 

언제 출발하는지 모르는 초조한 상황.

그런데 바로 옆 포상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간부의 호통소리

 

"무슨 일이야!!!!"

 

 

 

 

 

 

"....가신.....가신 발톱에 발등이 찍혔습니다......"

".........일단 이동해야 하니까 얼른 차로 옮겨!!!!!!!!' 

 

 

 

 

 

"으...으악........."

 

 

 

 

부축받아 절뚝이면서 2돈반 차고 옮겨진 부상병..

 

지휘차량을 비롯해 4/5톤 차량들도 속속 이동준비 완료.

 

이윽고 포차가 한대씩 빠져나가고..

 

 

 

 

 

 

'간다...간다...'

 

뒤에 앉은 포대원들 얼굴을 보니 한결같이 상기되어있는 표정.

 

'........나나.....쟤들이나.......전쟁은...처음 겪어보는거지....' 하고 생각하는데,

 

 

 

 

 

차량 선탑자의 고함소리.

 

"사주 경계 안해!? 정신 안차려!?"

백미러로 노려보는 간부를 보고서야 다들 '아차' 했다는 생각으로 얼떨떨하게 사주경계.

 

그렇게 잘 빠져나가나 싶더니,

 

 

 

 

"끼이이이이이이익!!"

 

몸이 뒤로 넘어갈 정도의 급브레이크.

 

 

 

 

'...뭐야...왜....'

 

 

 

 

 

 

포반장이 일어나 옆으로 살짝 보더니,

 

"....이런 ......짜개핀 안끼웠나보다...."

 

....다들 기가막혀하는 분위기....

 

차량 견인고리에 포 연결 후, 고정핀을 안끼워 차량이 '덜컹' 하면서 포가 따로 떨어진 것.

 

 

 

 

 

'...........'

 

 

 

 

앞 차의 선탑자.

 

"빨리 내려서 다시 안끼워 이 들아!!!!!!!'

앞 차에 앉아있던 병사들 우르르르 내려와 다시 견인고리에 결속하는데

 

 

 

 

 

 

".....우리는? 했어!? 막내? 했어?"

 

아까 넘어진...이등병....

 

 

"...아............"

 

아무말 못하고 있고,

 

 

 

 

 

"...이들..아무도 신경 안썼어!??!?....빨리 내려서 안해!? 차 정지시....."

 

 

"내가....했어.....내가.....아무도 안하길레...그정도는 할 줄 알아...예비군 가서 자주 했었어...."

 

 

 

 

.....

 

 

 

 

다들 아무 말 없고,

 

차는 다시 출발.

 

 

 

 

 

진지를 벗어나니 긴장이 풀려 온 몸에 힘은 없고,

 

그래도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 지 몰라 사주경계..

 

 

 

 

 

 

'어디로 가는걸까....'

 

물어보려다가 관두고,

 

'....안다고 달라질 거 있나....'

 

 

 

 

중간중간 멀리서 들릴 듯 말 듯 '쿠구궁...' 소리.

 

'우리가 쏘는...포 소리겠지...? 저기도 나같은 예비군이 있겠지....?....'

어느덧 해는 하늘로 높이 떠, 뜨거운 햇빛을 내리쬐고,

 

차는 더 깊숙한 진지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