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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전 (2014/1/31) 게시물이에요

1. The beatles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리버풀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4명의 청년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록 밴드 THE BEATLES'

 

 

 









 

 

비틀즈는 존레논 (John W. Lennon 1940.10.9~1980.12.8), 폴 메카트니(James Paul McCartney 1942.6.18~ ),

 

조지 헤리슨(George Harrison 1943.2.2~2001.11.29), 링고 스타(Ringo Starr 본명 Richard Starkey 1940.7.7~)

 

등 네 명의 영국 리버풀 출신 청년이 모여 결성한 그룹이다. 리버풀 출신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네 젊은이는 여러 경로를 거쳐

 

비틀즈라는 거대한 대중음악의 활화산 속으로 모여 들었다. 비틀즈가 언제 출범했는 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른바 비틀즈 유일의 공인 전기로 평가 받는 ‘더 비틀즈(대교베텔스만)’의 저자 헌터 데이비스가 기록한 바를

 

쫓아가면 '존 레넌'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추정된다

 

 

 

존 레논은 “어린 시절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틀즈의 노래는 로큰롤, 포크 록, 싸이키델릭 록, 아트 록, 하드 록, 블루스, 컨트리, 팝 에서 월드 뮤직까지 여러 장

 

르를 아우르는데, 이는 현대 음악 스타일의 장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비틀즈는 단순히 음악뿐 아니라 1960년대의 사회 및 문화적 혁명을 야기하였다

 

 

 

 

 

 

비틀즈 그 신화의 역사!

 

도전과 노력, 그리고 성취. 사람들의 화합과 반목, 비틀즈의역사는 한편의 '휴먼 드라마'였다

 

네 명의 멤버 중 존과 폴이 만난 것을 비틀즈 출범의 한 계기라고 한다면, 리버풀 인스티튜트에서 존이 폴을 만난 1957년 7월 6일

 

을 꼽을 수 있다.

 

 

존은 이 날을 “바로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날. 내가 폴을 만난 바로 그날이었다.”라고 말했다.

 

 

 

 

 

 

1956년 5월, 17파운드짜리 기타로 출발하였다.

 

존 레넌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상심의 호텔'이 가진 힘과 우아함에 매료되어 그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그는 스키플(미국 흑인 재즈와 민속음악을 접붙인 장르)에 심취하였고 그 해 결성한 그룹의 첫이름은

 

'블랙 잭스'였다. 그 후 레넌은  다니던 고교 이름을 본떠 '쿼리 멘'으로 밴드명을 바꿨다.

 

 

 

그러나 존과 폴 모두 리버풀 인스티튜트로 진학하면서 더 이상 '쿼리 멘'이란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이들은 그때그때 떠오로는대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서로 다른 색깔의 셔츠를 입고 왔다고 해서 ‘레인보우스(The Rainbows)’ 어떤 때는 ‘문독스(The

 

Moondogs)'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 즐기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것. 이게 바로 비틀즈의 뿌리였다

 

 

 

 

 

57년 7월 6일 교회의 운명적 조우

 

 

쿼리 멘 밴드이 리버풀 울튼의 '성 피터' 교회에서 연주 하는것을 15세 소년 '폴 메카트니'가 지켜보고 있었다

 

재즈 음악가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평소 기타에 매료되있었고 공연 뒤 레넌이 흥얼거리며 좋아하던 노래 2곡의 가사를 적어 건

 

네며, 기타를 조율하는 기술도 보여줬다.

 

 

레넌은 매카트니의 재능에 반했고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는 걸 감수하고 그 를 영입하였다

 

두 거인(巨人)이 처음 만난 역사적 순간이었다.

 

 

 

58년 2월6일 어린애 취급받던 해리슨

 

 

레넌은 고교를 졸업하고 리버풀 예술대에 들어갔고 밴드는 계속 꾸려갔다. 멤버들은 리버풀의 월슨 홀에서 15세의 어린 기타리스

 

트 조지 해리슨을 만났다.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연습해 출중한 실력을 갖춘 소년이었다고 레넌은 말한다

 

그는 "두 살 반 나이 차는 무시할 수 없다"며 형들에게 무시당했지만 공연을 따라다니는 끈기로 공식멤버가 되었다.

 

 

 

 

 

 

 

 

 

 

 

1960년 5월 세기의 그룹명 탄생! The Beatles

 

 

그는 "버디 홀리&크리켓(귀뚜라미) 밴드를 기리는 뜻으로,그들이 밴드명의 후보 중 하나로 생각했던 

 

“딱정벌레(beetles)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나는 그 철자를 BEAT-les로 바꾸어 써보았다. 비트(Beat)음악을 연상시키는 말장난이었다."라고 존은 밝히고 있다. 

 

 

 

 

 

 

1961년 6월 '더벅머리' 스타일과 최초의 앨범

 

 

비틀즈는 다시 함부르크 여정에 올랐다.

 

스튜어트 서트클리프의 연인이 직접 손질한 더벅머리를 보고 멤버들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곧 같은 모양으로 바꾸면서

 

더벅머리 스타일의 '비틀 거트'가 탄생하였다.

 

 

이곳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비틀즈 '최초의 곡 취입'이었다.

 

6월 독일에서 영국 가수 토니 셰리든을 위해 반주하고 자신들의 곡도 연주했다. 음반사는 멤버들이 영국으로 돌아온 뒤

 

'My Bonnie'를 비롯한 2곡을 셰리든과 비틀즈 이름을 달아 싱글 앨범으로 냈다.

 

 

 

 

 

 

 

 

 

 

 

 

1962년 환상의 4인조, 모습을 드러내다

 

 

연 초 부터 비틀즈는 자신들을 알리고 음반 판매를 위해 여러 과업들을 수행했으나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그해 5월 9일 비틀즈 매니저 엡스타인은 음반 판매 연수를 받을 때 알아뒀던 EMI 음반가게 직원으로부터 엔지니어 '짐 포

 

이'를 소개 받았다. 포이는 EMI 출판 자회사 간부인 '시드 콜먼'을 데려왔고, 그가 조지 마틴과 엡스타인을 연결시켜줬다.

 

 

일상에서 만난 '작은 인연'이 예상치 못한 희망과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마틴은 비틀스곡을 듣고선 "뭔가 호소하는 형언할 수 없는 음질"이라고 했다.

 

 

이제 음반 취입은 탄탄대로를 밟게 되었다

 

 

 

 62년 8월 14일 링고 스타를 품다

 

리버풀에서 257km 떨어진 링컨셔 지역.

 

작은 체구에 슬퍼보이는 눈을 가진 22세의 젊은이가 리조트 캠프에서 드럼을 치며 몇 푼 수당을 챙기고 있었다.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 무대에선 링고 스타로 알려졌다. 멤버들은 당시 드러머 피트 베스트를 퇴출시키고 링고 스타를

 

'뉴 비틀'로 영입하였다.

 

 

이후 해산 때까지 레넌과 매카트니,해리슨,스타는 비틀즈와 동의어가 됐고

 

세인들은 이를 '환상의 4인조(The Fab Four)'라 불렀다.

 

 

이어 10월 비틀즈의 싱글 데뷔 앨범에 수록된 'Love Me Do'가 히트를 치면서 광풍은 서서히 예고되었다.

 

* 링고 스타의 아들 작(Zak)은 록 밴드 'Oasis'에서 드럼을 맞았다

 

 

 

 

 

 

 

 

 

 

 

 

 

 

 

 

1963년 비틀즈,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하다

 

 

2월 두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가 달성이 불가능하다던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차트 1위에 올랐다.

 

4월 내내 비틀즈는 영국을 순회 공연했고 '비틀즈 소동'도 시작됐다.

 

 

이들은 순식간에 영국의 아이돌(우상)로 부각되었으며, 비틀즈의 선풍은 계속 끊이지 않고 인기 그룹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레코드 회사 간부들이 비틀즈 같은 밴드 발굴을 위해 리버풀로 모여들었다.

 

 

팝 음악을 깔보던 언론도 비틀즈 뉴스를 전국에 타전하였고 그들은 '지역구'에서 '전국구가' 됐다

 

 

 

 

 

 

 

 

 

 

 

 

 

 

1964~65년 세계의 혼을 빼내다

 

 

63년 11월11일 미국 진출 계약을 필두로 세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에드 설리번 쇼(당시 미국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함)와의 계약을 시작으로 어떤 후폭풍을 몰고올지 정확히 짐작하지 못했다.

 

 

소위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략)이라 하여, 비틀즈는 미국의 초기 로큰롤 및 R&B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칼 퍼킨스와 같은 백인 음악가들과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레이 찰스와 같은 흑

 

인 음악가 양 쪽 모두에게 칭송받았다.

 

 

 

이때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미국에서 100만 장 넘게 팔렸고, 9일 출연한 설리번 쇼는 7300만 명의 관중이 시청했다.

 

세계의 대 기록이었다. 비틀즈가 63년 영국을 정복했다면, 64년은 전 세계를 점령한 해였다.

 

 

 

1965년 6월 12일에는 비틀즈의 레코드와 악보출판 등의 매상이 영국 총 수출액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명목으

 

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MBE)를 수여받아서 영국의 고위 관리들에게  일대 혼란이 일기도 했다.

.

 

 

 

65년 6월 20일 Yesterday.

 

멤버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며 6월 14일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폴 매카트니 최고의 작품으로 거론되는

 

'Yesterday' 녹음이 시작됐다. 팝 음악 최초로 현악 4중주가 도입됐다.

 

 

 

초기 히트곡들에 비해 예술적인 꾸밈같은 것이 상당히 풍부해졌다. 노래를 만들면서 스튜디오 레코딩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들은 전례 없는 질의 레코딩들을 발표해 선보였고, 동시대의 어떤 뮤지션보다 앞선 효과들을 적용시켰다.

 

 

 

 

 

 

 

 

 

 

 

 

1966년 희대의 대사건 '예수 보다 위대한 비틀즈'

 

 

66년 3월 레넌은 친구이자 작가인 모린 클리브에게 종교 서적을 폭 넓게 읽는다고 말했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기독교는 죽을 것입니다 줄어들다 소멸할 겁니다 내가 맞을 겁니다. 지금의 비틀즈는 예수보다 유명합니다"

 

 

그후 6월29일 미국의 10대 잡지 '데이트북'은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런 제목을 썼다.

 

"나는 로큰롤과 기독교 둘 중에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난리가 났다. 멤버 중 누군가 총에 맞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레넌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제 비틀즈의 한마디는 이미 음악인 이상의 것 이라는걸 깨달았다.

 

 

 

8월 29일 비틀즈는 샌프란시스코의 캔들스틱 파크 야구장에서 'Long Tall Sally'를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9년의 시간 동안 1400회의 라이브 공연을 남겼다.

 

 

11월 말 해체설이 도는 가운데 다시 모여 녹음을 하였고 콘서트 없이도 그룹으로 남을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라이브 공연 상징인 '몹 탑스(더벅머리 스타일)'이미지 도 그렇게 벗었다.

 

 

 

1967년 6월 1일 다시 모여 녹음한 새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발표됐다.

 

음반 재킷부터 가사,곡까지 비틀즈는 흑백에서 컬러의 세계로 발 돋움한 듯 했다.

 

25일엔 BBC방송 주최로 'Our World'에 출연해 5개 대륙의 35억 명을 대상으로 'All you need is Love'를 연주했다.

 

 

 

 

 

 

 

 

 

 

 

1968~70 '전설의 종말'

 

 

 

 

69년 1월 30일 최후의 라이브 공연

 

 

런던의 애플 스튜디오 빌딩 옥상에서 'Get Back' 공연이 시작됐다.

 

원래 폴 매카트니는 그룹의 재단합을 위해 공연을 제안했다.

 

북아프리카의 로마 원형극장을 비롯해 여러 무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결국 옥상 무대로 합의점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오노 요코는 비틀즈 진영에 침입했고, 매카트니는 그룹을 좌지우지하며 해리슨의 연주에 설교를 늘어 놓았다.

 

 

 

이 모든 갈등은 전년도에 'The Beatles' 를 녹음하면서 곪아 터진 것이었다.

 

 

봄이 지나고 사업상 문제들은 어떻게 누가 관리할지 두고 멤버들 간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벽이 생기고 말았다.

 

 

 

 

1970년 4월 10일 역사의 대단원을 내리다

 

 

결국 서로간의 타협점을 찾지못한채 비틀즈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이었다.

 

비틀즈는 1969년 10월 마지막 걸작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를 펴내고, 1970년 4월 10일 폴 매카트니가 솔로

 

앨범 발매와 동시에 비틀즈 탈퇴를 선언하면서 해체했다.

 

 

 

 

비틀즈가 해체한 지 한 달 뒤인 1970년 5월, 그 전에 제작됐던 ‘렛 잇 비(Let It Be)’가 발매됐다.

 

 

이후 존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그의 팬이었던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남은 비틀즈 멤버들은 존 레논의 미완성 곡이었던 ‘프리 애즈 버드(Free As Bird)' '리얼 러브(Real Love)'를 각각

 

1994년 1995년에 공동 녹음했고, 조지 해리슨은 2001년 11월 29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틀즈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것과 영향력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비틀즈의 앨범은 215여 곡 정도며 전 세계에서 '13억' 장의 앨범을 팔았다.

 

한화로 따지면 약 25조원에 달한다.

 

 

 

이는 '과거의 비틀즈가 현재의 가수를 이긴다' 라고 말한다. 빌보드 차트에 1위로 올린 노래가 20여 곡이나 되며

 

아직까지 이 기록을 깬 가수는 없다.

 

 

 

미국의 음반산업연합회 (RIAA)의 공식 집계는 10월 현재 비틀즈의 음반 판매량은 1억7700만 장으로 1위며

 

그 뒤로 컨트리 가수 가스 브룩스가 1억 2800만 장으로 2위, 엘비스 프레슬리 1억 1150만장 으로 3위,

 

레드 제플린 1억장 으로 4위를 달리고 있다. 

 

 

 

2008년 빌보드지는 '핫 100 차트(Hot 100 Chart)' 50주년을 기념하여

 

50년간 성공적인 차트 기록을 올린 아티스트들의 기록을 분석해 순위를 발표했고, 비틀즈는 1위에 올랐다

 

 

 

1999년 타임지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비틀즈를 선정했다.

 

 

 

* 현대의 모차르트 라고도 불리는 'The Beatles' 그들의 영향력은 시대를 초월하며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 새겨져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 US,UK 를 넘어서 전세계 1위

 

 

 

 

 

 

 

 

 

 

 

 

 

 

 

 

 

 

 

 

 

 

 

 

 

 

 

 

 

 

2. Oasis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영국의 국민 록 밴드 'Oasis'

 

 

오아시스(Oasis)는 1991년 영국의 공업도시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5인조 브릿 팝 밴드이며,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멤버로 보컬인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와 리더이자 기타를 맡고 있는

 

노엘 갤러거(Noel Gallgher)가 형제로 밴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이들은 여름 지나고 가을로 다가설 무렵 돌연 해체를 선언하고 이들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는데요. 어디로

 

튈지 모를 보컬이자 노엘의 동생인 리암 갤러거의 성격과 행동을 비추어 볼 때 이들은 언젠간 재결성으로 팬들에게 감격

 

스러움을 전해줄 것만 같은 악동스런 밴드이기도 합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초창기 “The Rain”이란 이름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오아시스는 당시 멤버로는 현

 

재 보컬과 탬버린을 맡고 있는 리암 갤러거를 비롯해, 기타 폴 아더스(Paul Arthurs),

 

베이스 기타 폴 맥가이건(Paul McGuigan), 드럼과 퍼커션에 토니 맥캐롤(Tony

 

McCarroll)이 활동을 시작하게 됐으며, 곧 리암의 형이자 리드 기타를 맡고 있는 노

 

엘이 합류하게 됩니다. 2009년 6월까지 오아시스의 활동을 되돌아본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전세계 약 7천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8곡의 UK 싱글 차트 1위곡과 7장의 넘버 원 앨범, 15번의 NME 어워즈 수상, 9번의 Q Award 수상,

 

4번의 MTV 유럽 뮤직 어워즈 수상, 6번의 브릿 어워즈 수상 등에 빛나는 화려한 수상 경력을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07년 발표한 BBC Radio 2의 청취자 선정 최근 30년간의 베스트 앨범중 첫번째 앨범으로 손꼽히기도

 

하였고, 3차례 그래미 어워즈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초기 인디 레이블로 알려진  레코드사를 통해 앨범 발표를 하게 됐고, 이후 1994년 발표한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 역시 이곳을 통해 선보이게 됩니다.

 

 

 

이듬해인 1995년 평단에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발표와 함께

 

새 멤버 드러머인 알란 화이트(Alan White)를 영입하게 됩니다.

 

 

갤러거 형제들의 불협화음과 그들의 거친 관계는 정기적으로 영국의 신문지상을 달궜던 화제의 스토리이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1997년 3번째 앨범 [Be Here Now]로 새롭게 모습을 보인 이들은 UK 차트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며 가장 빠른 판

 

매량을 기록하게 되었구요. 2000년 앨범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를 발표하며 폴 맥가이건과 폴 아더스는 다

 

른 음반사로 이적하여 오아시스를 떠나게 됐고, 이를 대신해 젬 아처(Gem Archer)와 앤디 벨(Andy Bell)이 오아시스의 명

 

성을 이어가며 2002년 [Heathen Chemistry] 앨범부터 합류하게 됩니다.

 

 

 

 

 

이들의 합류로 밴드는 다시 한 번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게 됐으며, 이러한 실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동시에 2005년 [Don’t Believe The Truth]와 2008년 [Dig Out Your Soul] 앨범을 끝으로 영원할 것만 같

 

은 오아시스의 역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US         UK

 

1994  Definitely Maybe            58               11995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411997  Be Here Now             212000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2412002  Heathen Chemistry            2312003  Don't Believe The Truth            1212008  Dig Out Your Soul             51

 

 

 

 

 

 

 

 

 

 

 

 

 

 

 

 

3. ColdPlay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브릿 팝 최고의 스타 Cold Play

 

 

1997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록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는 리드 보컬리스트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을 비롯, 리드

 

기타리스트 조니 벅랜드(Jonny Buckland), 베이시스트 가이 베리맨(Guy Berryman), 드러머 윌 챔피언(Will Champion) 등 4

 

인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초기 작품은 여타 영국 출신의 밴드인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비롯해,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유투(U2), 트래비스(Travis) 등과 비교되곤 했는데요. 콜드플레이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2000년 데

 

뷔 앨범 [Parachutes]에 수록된 ‘Yellow’라는 싱글을 통해서 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매년 영국과 아일랜드의 음악시상식으로 열리는 “Mercury Music Prize”에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2002년 그

 

래미 어워즈에서는 “Best Alternative Music Album”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2002년 발표한 콜드플레이의 두 번째 앨범 [A Rush Of Blood To The Head]는 영국

 

의 음악잡지  선정 “올해의 앨범상” 수상을 비롯한 다양한 시상식에서의 수

 

상의 영예를 가져주기도 했습니다. 차기작인 2005년 발표한 [X&Y]는 이전작들에 비

 

해 덜한 평가를 받긴 했지만, 현재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 되고 있습

 

니다.

 

 

 

 

이후 2008년에 발표한 네 번째 앨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는 대중적인 앰비언트 뮤직

 

의 창시자이자명 프로듀서 알려진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손을 거치며 또 한번의 찬사를 받게 됐고, 첫

 

싱글 ‘Viva La Vida’는 빌보드와 영국 싱글 차트 정상을 동시에 석권하게 이릅니다.

 

 

 

또한 2009년 제 5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 부문 등 3개의 트로피를 받는 영예를 안겨기도 했습니

 

다. 콜드플레이의 앨범은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5천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데뷔 앨범 [Parachutes]에 발표 이후 이들은 다른 음악의 소스를 자신의 음악에 접목하는 실험을 시도하게 되는데

 

요. 후작 [A Rush Of Blood To The Head]에서는 뮤즈(Muse)를 비롯한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케이

 

트 부시(Kate Bush) 등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게 됐고,

 

 

 

2005년 [X&Y]에선 조니 캐시(Johnny Casy)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를, 2008년 [Viva La Vida]를 통해 

 

블러(Blur),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등의

 

음악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게 됩니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는 아이티 재건을 위한 캠페인, 엠네스티 보호 등 사회적, 정치적인 활동을 비롯해,

 

“Band Aid 20”, “Live 8”, “Sound Relief”, “Hope for Haiti Now”, “A Global Benefit For Earthquake Relief”,

 

“Teenage Cancer Trust” 등 자선 운동에도 모습을 보이며 국제적인 박애정신 확산에 기여한 밴드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US             UK

 

2000    

Parachutes 51                     12002A Rush Of Blood To The Head                                   5                     12005X&Y 1                     12008Viva La Vida 1                     1

 

 

 

 

 

 

 

 

 

 

 

 

 

 

 

 

 

 

 

 

 

 

4. Led Zeppe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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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록 밴드 Led Zeppeli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은 비틀즈(The Beatles),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딥 퍼플(Deep Purple)

 

과 더불어 가장 전설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록 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잦은 멤버 변동 없이 고정된 라인업을 유지했고, 디스코그라피가 비교적 정리하기 쉬우며, 10년 남짓하

 

게 활동하고 해체했다는 점에서 다른 그룹들보다 신사적(?)으로 기억되고 있지요.

 

 

게다가 네 명의 멤버가 모두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수많은 추종자들을 양산할 정도로 연주가 뛰어났던 인물

 

들이라 그 조합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레드 제플린은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도 거쳐갔던 야드버즈(The Yardbirds)의 기타리스트 출신

 

인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결성한 그룹입니다.

 

 

그는 야드버즈 이후에 새롭게 활동할 밴드 멤버들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 홉스트위들(Hobbstweedle)에서 노래를 부르던 로버트 플랜트를 추천 받습니다.

 

 

 

 

 

뛰어난 보컬리스트였던 로버트 플랜트에게 매료된 지미 페이지는 곧 그에게 가입을 제안하였고, 이후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까지 영입하여 밴드를 위한 초석을 다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드러머로는 로버트 플랜트가 자신의 옛 밴드인 밴드 오브 조이(The Band Of Joy)에서 같이 활동하던

 

존 본햄(John Bonham)을 추천하였고, 이후 그가 들어오면서 4인조 라인업이 갖춰집니다.

 

 

 

 

 

뉴야드버즈’라는 이름으로 30시간에 걸쳐 첫 녹음을 마친 이들은, 기존의 이름을 버리고 새 그룹명을 레드 제

 

플린이라고 명명했으며, 1968년 끝자락에 데뷔앨범을 발매합니다.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곧바로 투어에 돌입한 이들은 “U.S. Top Ten”에 오르며 높은 인기를 누렸고,

 

이 여세를 투어 중에 녹음한 곡들을 중심으로 2집도 곧바로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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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의 의욕이 충만했기 때문인지 레드 제플린은 브리티쉬 포크에서 영향

 

은 3집을 불과 1년 만에 다시 내놓았고, 역시 1년이 지난 1971년에는 4집

 

까지 발매하면서 매년마다 정규앨범을 한 장씩 내는 추진력을 자랑합니다.

 

 

무려 1600만 장이나 팔린 4집은 ‘Stairway To Heaven’을 담고 있는 명반이기

 

도 합니다. 이후 1년 간은 3집과 4집의 수록곡을 중심으로 투어를 이어가다

 

가 1973년 처음으로 부제가 붙은 앨범 [Houses Of Holy]를 내놓았고,

 

 

 

 

 

1975년에는 밴드 최초의 더블앨범 [Psysical Graffiti]로 보다 깊어진 음악성을 자랑합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1위를 석권했던 이 앨범은 현재까지도 레드 제플린의 많은 팬들이 4집과 더불어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으로 꼽기도 하죠.

 

 

 

 

 

 

이후, 변화된 음악성이 엿보이는 [Presence](1976), 라이브 세션 모음집 [The Song Remains The Same](1976), 깔끔한 구

 

성의 [In Through The Out Door](1979)를 내고 다시 음악활동에 매진하려 했으나,

 

 

1980년 드러머인 존 본햄이 지나친음주로 인해 자신의 침대에서 질식사로 숨지면서 레드 제플린은 해체의 길을

 

선택합니다.

 

 

 

 

 

존 본햄의 사망 이후 멤버들은 각자 솔로의 길을 걷게 됐고, 레드 제플린이라는 이름으로는 미발표 트랙들을 모은

 

[Coma](1982)가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 됩니다.

 

 

 

 

 

레드 제플린은 록 음악사를 통틀어서 누구나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대형그룹치고는 딱 10장이라는 비교적 적은

 

디스코그라피를 가졌기 때문에 전작을 컬렉션하기에도 수월하고, 데뷔 후 해체하기까지 단 한번도 라인업의 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멤버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쉬워서 록 팬들에게 더더욱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US              UK

 

1969 Led Zeppelin                                 10                       61969 Led Zeppelin II                                  111970 Led Zeppelin III                                  111971 Led Zeppelin IV                                  211973 Houses Of The Holy                                  111975 Physical Graffiti                                  111976 Presence                                  111979 In Through The Out Door                                  111982  Coda                                  64

 

 

 

 

 

 

 

 

 

 

 

 

 

 

 

 

 

 

 

 

 

 

 

 

 

 

 

5.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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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정통 브리티쉬 록의 대명사, 퀸(Queen)은 1970년 영국의 수도 런던을 시작으로 이들의 활동 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와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베이시스트 존 디콘(John Decon),

 

드러머 로저 테일러(Roger Taylor)로 라인업을 갖췄다.

 

 

 

 

퀸은 지금까지도 라이브를 가장 잘하며, 영국 출신의 밴드의 역사 테두리안에서 최고의 밴드로 평가받고 있습

 

니다.

 

 

 

 

이들은 현재까지 15장의 정규 앨범, 5장의 라이브 앨범을 비롯, 수많은 컴필레이션을 발표

 

하였고, 2009년 BBC와 영국 독립 레이블에 근거한 자료를 토대로 한 의 보고에 따르

 

면 전세계적으로 3억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록 음악의 대부격으로 추앙받아 마땅한 밴드

 

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퀸은 1970년대 초를 시작으로 1974년 [Sheer Heart Attack]과 1975년 [A

 

Night At The Opera] 앨범을 통해, 영국 안에서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하며

 

시작된 퀸의 붐은 전세계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중 세대를 초월

 

한 곡인 ‘Bohemian Rhapsody’는 영국 차트에서 무려 9주 동안 1위를 지키며

 

그들의 아성을 새롭게 아로새기게 됩니다. 퀸의 크나큰 성공은 1970년대를

 

시작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아우르며, 영국 밴드 음악사에 획기적인

 

                                           한 획은 긋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1987년 퀸의 대표 멤버인 프레디 머큐리의 AIDS 양성 반응에 이은 1991년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고, 존 디콘 역시 1997년 머큐리 다음으로 밴드 활동을 접게 됩니다.

 

 

 

 

퀸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아직 퀸으로 남아 이따금 스페셜한 무대를 통해 퀸을 갈망하

 

는 팬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퀸은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가시지 않는 이들의 명성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2004년과 2009년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배드 컴퍼니(Bad Company) 멤버였던 노장 폴 로저스(Paul Rodgers)와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하여 “Queen + Paul Roders”란 프로젝트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US               UK

 

1973  Queen                                    83                    241974  Queen II                                    4951974  Sheer Heart Attack                                    1221975  A Night At The Opera                                     411976  A Day At The Races                                     511977  News Of The World                                     341978  Jazz                                     621980  The Game                                     111982  Hot Space                                    2241984  The Works                                    2321986  A Kind Of Magic                                    4611989  The Miracle                                    2411990  Innuendo                                    3011995  Made In Heaven                                    581

 

 

 

 

 

 

 

 

 

 

 

 

 

 

 

 

 

 

 

 

 

6. Metall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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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캘리포니아 주 LA에서 결성된 메탈 밴드 메탈리카(Metallica)는 덴마크 출신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

 

Lars Ulrich)의 지역 신문의 광고를 통해 라인 업을 결성하였다.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제임스 헤필드(James Hetfiled)와 리드 기타리스트 커크 해밋(Kirk Hammett), 그리고 몇

 

번의 베이스 교체에 이은 2003년부터 메탈리카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로버트 트루질로(Robert Trujillo) 가 멤

 

버로 활약하고 있다.

 

 

 

초창기 메탈리카 음악의 특징으로 손꼽을 수 있다면 빠른 템포를 바탕으로 한 웅장한 연주와 함께 공격적인 것

 

을 넘어 살기 가득한 느낌의 사운드를 선보이며, 80년대 초중반 빠르고 강렬한 스래시 메탈을 인기 스타일로

 

발전시킨 슬레이어(Slayer), 메가데스(Megadeth), 앤스락스(Anthrax) 등과 함께 “스래시 메탈계의 Big 4”로

 

자리하게 됩니다.

 

 

 

 

메탈리카는 언더그라운드의 소수 마니아들과 평론가들에게서 호응을 얻어내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해나가기 시

 

작했고이어 1986년 스래시 헤비메탈 앨범의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는 [Master Of Puppets]를 발표하며 평단

 

의 호평을 받게 됩니다.

 

 

 

 

5년 뒤대중적과 평단을 사로잡은 셀프 타이틀 앨범 [Metallica]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했고,

 

그 결과 메인스트림 청자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기며 포괄적인 팬층 확보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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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한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가 서서히 고개를 들던 2000년대 초 메

 

탈리카는 팝 뮤지션의 대표로 나서 허가없이 뮤지션들의 음악을 무단 복제하

 

여 서비스했던 “냅스터(Napster)”를 상대로하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요. 이들의 소송은 결국 승소로 이어지며 이들은 자신들의 음원을 사용한 것

 

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게 된 사건이 있기도 하다.

 

 

 

 

 

 

2003년엔 [St. Anger] 발표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차트 넘버 원에 등극했음에

 

도 불구하고 팬들은 그 동안 메탈리카가 들려주었던 특유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한 기타 솔로와 철통을

 

두드리는 듯한 스네어 드럼의 절제로 다소 소원해지게 한 앨범이 되기도 했다..

 

 

 

 

메탈리카는 현재까지 9장의 정규앨범을 기본으로 2장의 라이브앨범과 2장의 EP, 45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며,

 

총 24편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인 살아있는 헤비메탈의 역사이자 산증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또한 9차례의 그래미 어워즈 수상과 함께 5번 연속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또 하나의 역사를 낳았다.

 

 

이 기록은 북미 지역의 가장 대중적인 밴드로 알려진 데이브 매튜스 밴드(Dave Mattews Band)를 잇는 기

 

록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91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앨범 [Metallica]는 미국에서만 1,5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했고전세계적으로는

 

2,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빌보드 차트 발표를 위해 각종 순위 차트 집계를 담당하고 있는 닐슨 사운드 스캔이 발표한

 

지난해 12월자 기사에 따르면 메탈리카의 이 앨범은 1997년 컨트리 가수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의 앨

 

[Come On Over] 이후 최고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5,000만 장전 세적으로 1억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중인 메탈리카는 2009년  [Death Magnetic] 

 

범을 5년 만에 발표하며 전 세계 팬들에게 최고의 메탈 밴드로써의 입지를 여전히 구축하고 있습니다.

 

 

 

 

 

 

 

                                                         US                  UK

 

1983  Kill 'Em All                               120                           -1984  Ride The Lightning                               100871986  Master Of Puppets                                29411988  ...And Justice For All                                 641991  Metallica                                 111996  Load                                                       111997  Reload                                 141993  St. Anger                                 132008  Death Magnetic                                 11

 

 

 

 

 

 

 

 

 

 

 

 

 

 

 

 

 

 

 

 

 

 

 

 

7. Radio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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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 팝 얼터너티브의 제왕 Radiohead

 

 

 

영국 옥스퍼드셔에서 결성된 라디오헤드(Radiohead)는 리더 톰 요크(Thom Yorke)를 중심으로 한 5인조 밴드입니다.

 

오아시스(Oasis), 블러(Blur)와 함께 1990년대 브릿 팝의 대표주자다.

 

 

1992년에 공개된 그들의 첫 싱글이자 대표 곡 ‘Creep’은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집 [Pablo Honey]가 1993년에 발매되고 유럽 투어가 진행되면서 이 노래는 미국의 라디오와 MTV를

 

통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벨리(Belly)를 비롯한 일부 밴드 공연의 오프닝을 장식하면서 그들의 미국 내 인지

 

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UK 싱글차트 7위에 오른 이 곡은 그들의 위대한 커리어의 출발점이 되며 점차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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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년이 지난 후 2집 [The Bends]는 ‘Creep’ 단 한 곡으로 성공 행

 

진이 그칠 것이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면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더욱 성숙해지고 깊어진 그들의 음악은 영국 내에서의 인기를 탄탄히 다

 

졌다. 게다가 현대인의 소외를 그린 1997년의 3집 [OK Computer]는

 

그들에게 세계적인 화려한 명성을 안겨 주었습니다.

 

 

 

 

 

 

록 음악의 고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요소를 골고루 담아낸 포괄적인 사운드 덕분에

 

이 3집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앨범으로 기억되고 있다.

 

 

 

각각 빌보드 앨범차트 1, 2위를 차지한 2000년의 4집 [Kid A]와 2001년의 5집 [Amnesiac]에서는 일렉트로닉과

 

재즈의 영향을 받은 라디오헤드의 진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4집은 평단의 반응이 엇갈렸지만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고

 

5집 역시 전작과 제작진들이 같았지만 완전히 다른 앨범이라고 멤버들은 밝혔습니다.

 

 

 

 

<EMI>와의 마지막 앨범이 된 2003년의 6집 [Hail To The Thief]는 기타 중심의 록 음악과 일렉트로닉이 혼합

 

되어 있었고 전쟁 등을 노래한 인상적인 가사로 빌보드 앨범차트 3위를 밟았습니다.

 

 

 

 <EMI>에서 내놓은 최초의 여섯 정규앨범은 2007년 기준으로 2,5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참고로 2006년 7월, 보컬리스트 톰 요크는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기반한 솔로 1집 [The Eraser]를 선보이기도 했

 

습니다.

 

 

2007년의 7집 [In Rainbows]는 대형 유통 업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발매했고 특이하게 온라인 사용자가

 

앨범 다운로드 시에 스스로 가격을 부과할 수 있게 하는 판매 정책을 선보이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수많은 팬들과 평단의 선호를 받고 있으며 특히 2005년에 <롤링 스톤> 지는 “The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73위에 그들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물론 커리어 초기의 음악들은 영국 풍의 스타일이 듬뿍

 

담겨 있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 기저에 있었습니다.

 

 

 

 

특히 3집부터 7집은 모두 UK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인이 선호하는 팝송에는 언제나 그들의 노래

 

‘Creep’이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8. Deep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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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록의 전설 Deep Purple!

 

최초 그룹은 Jon Lord(키보드), Nick Simper(베이스), Richie Blackmore(기타), Rod Evans(보컬), Ian Paice(드럼)의 라인업으

  

로 구성되었다. 1968년 처녀작인 [Shades Of Deep Purple], 소포모어 음반 [Deep Purple], 3집 [The Book Of Taliesyn] 등의

 

작품을 발표하지만 그들만의 캐릭터가 명확히 잡히지 못하여 큰 반응을 얻지는 못한다.


 

 

 

 

이후 Evans와 Nick Simper가 탈퇴하고 Ian Gillan(보컬)과 Roger Glover(베이스)가 새로이 투입되며 [Concerto

 

Group And Orchestra]를 시작으로 그들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Child In Time', 'Speed King', 'Strange Kind Of Woman', 'Black Night', 'Smoke On The Water',

 

'Highway Star' 등을 줄줄이 히트시키면서 밴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73년 [Who Do You Think We Are]를 끝으로 Ian Gillan과 Roger Glover가 탈퇴하였고 팀은 이후 David

 

Coverdale(보컬)과 Glenn Hughes(베이스)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1974년 [Burn]과 같은해 [Stormbringer]로 히트 퍼레이드를 펼쳐낸다.

 

러나 곧바로 Richie Blackmore가 Rainbow를 결성하며 팀은 좌초의 위기에 몰린다.

 

 

 

 

하지만 이후 영입된 Tommy Bolin이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며 재즈 풍의 음반 [Come Taste The Band]를 발표

 

한다.

 

 

 

 

1976년 영국 투어를 끝마친 후 휴지기에 들어간 팀은 1984년 [Perfect Stranger], [The House Of Blue Light]등을 내놓으며 여전

 

한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팀내의 분열로 Ian Gillan대신 Joe Lynn Turner를 보컬로 기용했던 1990년 앨범 [Slaves And Masters]를

 

시작으로 그룹의 인기 곡선은 하향세를 그린다.

 

 

급히 Ian Gillan을 재수혈해 녹음했던 [The Battle Rages On]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룹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나가며 통상 16집인 [Purpendicular]와 17집인 [Abandon]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9. Red Hot Chili Pe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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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울리는 베이스 Red Hot Chili Peppers!!

 

 

 

Red Hot Chili Peppers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Anthony Kiedis, Flea 와 Hillel Slovak, Jack Irons의 라인업으로

 

1983년 미국 LA에서 결성되었다.

 

 

 

 

훗날 밴드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광적인 무대 매너를 초기 시절부터 뽐내면서 서서히 유명세를 탄 이들은 1984년 셀

 

프타이틀인 [Red Hot Chili Peppers]를 발표,

 

 

 

 

흑인 음악인 Funk와 백인 음악인 Punk를 결합시킨 독특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이후 이듬해 발표한 [Freaky Styley]는 비록 상업적으로는 히트하지 못했지만 신인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는 역할을 해주며 언더그라운드에서 인지도를 넓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1987년 [The Uplift Mofo Party Plan] 발표 이후 Slovak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고 Jack Irons도 그룹

 

을 떠나면서는 위기의 상황이 닥쳐왔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멤버를 보강하여 [Mother's Milk]와 [Blood Sugar Sex Magik]를 발

 

표하였다. 특히 [Blood Sugar Sex Magik]에서는 싱글 'Give It Away'와 최초로 싱글 차트 10위권에 진입한

 

'Under The Bridge'등이 선전하면서 7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몬스터 히트를 기록해 내었다.


 

 

하지만 과도한 약물 중독 증세를 보인 John Frusciante가 밴드를 떠나면서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멤버를 재정비하여 앨범을 발표하였지만 전작과 같은 인기를 얻지 못하였고 이런 이유로 Dave Navarro가 탈퇴하고

 

John Frusciante가 솔로 앨범을 발표하여서 이들의 해체설을 부추겼다.


 

 

 

1999년 이들은 전성기때 멤버로 돌아가 [Californication]를 내놓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Scar Tissue',

 

'Otherside' 등의 차트 1위 싱글을 배출해 냈으며, 'Scar Tissue'는 그래미에서 '베스트 록 송' 부분을 수상하였다. 


 

 

이 후 밴드는 완벽한 자기 휴식에 들어 가고 2002년 3년만에 앨범 [By the Way]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예전의 격정적인 분위기는

 

많이 사그라 들었으나, 진정한 대가로서의 Red Hot Chili Peppers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10. Nirv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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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너티브 밴드의 대명사 Nirvana

 

 

더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의문의 죽음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 그의 여자친구였던 코트니 러브 역시 너바나의 밴드 흐름을 파악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거론되고

 

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의 죽음을 방관한 용의자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 록 음악사에 있어 대단한 흔적을 남긴 너바나의 일대기는 미 서북쪽 워싱턴주에 위치한 시애틀 부근의 해

 

안가 에버딘에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끔 너바나를 평가하는 다른이들은 시애틀 출신의 그런지 밴드로도 소개하고 있긴하지만,

 

시애틀은 이들이 거주했던 곳의 대도시였기에 엄밀히 말하면 이들이 음악을 시작한 지역은

 

해안도시 에버딘을 근거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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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워싱턴 주에 위치한 에버딘에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커트 코베인

 

과 베이시스트 크리스 노보셀릭(Krist Novoselic)은 밴드 너바나를 탄생시키

 

게 됩니다.

 

 

그후 1990년 당시 드러머로 명성이 자자했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을 멤버로 합류시키며 이들은 3인조로 본격적인 밴드로써의 심폐활동

 

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들의 첫 앨범 [Bleach]는 당시 독립 레이블로 알려진

 

                                           을 통해서 1989년 발표하게 됐구요.

 

 

 

 

이후 그들의 노력에 힘입어 메이저 레이블로 알려진 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메이저 계약 직후 발표한

 

1991년 작품 [Nevermind]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Smells Like Teen Spirit’을 수록한 명반으로,

 

 

 

결과적으로 너바나는 시애틀 출신의 로컬 밴드에서 승천하여 메인스트림의 드넓은 바다로 뛰어들게 됐고,

 

이들이 부르는 음악은 90년대 시애틀 그런지라는 고유명사를 남기며

 

얼터너티브 록 음악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너바나의 프론트 맨인 커트 코베인은 한 매체를 통해 자신은 X세대의 기축점인 너바나를 통해 시대를 대변하

 

고자 하는 자신을 찾아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커트 코베인은 온갖 열악한 환경과 악조건 속에서도 오로지 밴드 음악에만 초점을 맞추며

 

대중들에 의해 잘못 받아들여진 밴드 음악의 상징과 아티스트에 대한 관점을 신봉하면서

 

1993년 그들의 3번째 앨범 [In Utero]를 선보이게 됩니다.

 

 

 

 

이듬해인 1994년 4월 5일,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너바나의 짧고 굵었던 밴드의 역사는 마침표를 찍게 됐지만, 그가 사망한

 

후에 오히려 밴드의 인기와 영향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전달되게 됩니다.

 

 

 

 

2002년 끝내 마무리짓지 못한 싱글 ‘You Know You’re Right’는 밴드가 남긴 마지막 곡으로 전세계 라디오 순위

 

를 갈아치우게 되었고, 데뷔 이후 미국 내에서만 2천 5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함과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5천

 

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의 미국 팝 역사상 가장 짧고굵은 행보를 기록한 밴드로 남아있습니다.

 

 

 

 

 

 

                                                      US          UK

 

1989  Bleach         89                 331991  Nevermind          171992  Incesticide         39141993  In Utero          111994  Unplugged In New York          111996  Singles (Box Set)          --1996  From The Muddy Banks Of The Wishkan          142002  Nirvana          332004  With The Lights Out [Box Set]         19562005  Sliver: The Best Of The Box         21562009   Live At Reading (Live)         3732

 

 

 

 

 

 

 

 

 

 

 

 

 

 

 

 

 

 

 

 

 

 

 

11. Bl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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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거리면서 명쾌하고, 유쾌한 사운드를 선사하는 Blur!

 

 

 

90년대 브릿팝 밴드들에 의해 주도된 영국 음악계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는 밴드이며 Blur의 지적인 음악 스타

 

일은 영국인들의 취향에 잘 맞아떨어져 음악적,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Blur는 1989년 영국 콜체스터에서 Damon Albarn(보컬, 키보드, 기타), Graham Coxon(기타), Alex James(베이

 

스), Dave Rowntree(드럼)의 라인업으로 'Seymour'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이름을 Blur로 바꾼 후에 데뷔앨범 [Leisure]를 발표하였고, 첫 싱글 'She's So High'가 차트 50위, 'There's No Other

 

Way'가 차트 8위에 오르면서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한다.이후 2집인 [Modern Life Is Rubbish]에서는 시사적인 가사와 'Two-

 

Tone Movement'라는 사조를 음악에 도입함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Blur는 도시 빈민들의 소외된 삶과 가진 자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노래를 선보인다.

 

 

 

그들의 세 번째 작품인 [Parklife]는 지난 앨범의 부진을 완전히 씻어버리며 발매직후 영국 앨범차트 1위에 오른다.

 

Blur는 이 앨범으로 1995년 브릿어워즈에서 베스트 싱글, 앨범, 비디오, 그룹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또한

 

[Parklife] 앨범을 통해 '브릿팝'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기도 했다.

 

 

 

95년 발표한 4집 [The Great Escape]는 Oasis의 [What's the Story of Morning Glory] 앨범과 비교되기 시작하면서 Blur는

 

'Oasis와 Blur 비교하기'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수록곡인 'Country House'가 경쟁끝에 오아시스의 'Roll With It'을

 

2위로 밀어내며 선전했지만 Blur로서는 상당한 고전의 시기였다.

 

 

5집인 [Blur] 앨범부터는 대중성을 포기하고 다양한 역량과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한다. 노이즈와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부분적인 언급도 돋보이는 이 앨범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에서도 대단한 히트를 치게 된다.

 

 

특히 'Song 2'의 세계적인 히트는 Blur에게 큰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오리지널 라인업을 11년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대단한 내부적 결속력을 자랑하는 Blur!

 

변화무쌍한 아이디어로 11년의 음악 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바이다

 

 

 

 

 

 

 

 

 

 

 

 

 

 

 

 

 

 

 

 

 

 

 

 

 

 

 

 

 

 

 

 

 

 

 

12. 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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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가 낳은 세계적인 록 그룹 'U2'

 

 

 

이모셔널하면서 각종 사회적 문제를 잘 긁어주는 가사로 정체성이 확실한 아티스트.. 라이브 투어로 어마어마한 수입

 

을 올리는 아티스트.. 그래서 살아 생전에 내한공연으로 꼭 한 번 보고 싶은 아티스트.. 하지만 너무나 여전히 큰 몸값

 

으로 모셔오기 쉽지 않은 아티스트..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22위에 랭크된 그들

 

의 명성답게 20년 넘은 활동 속에 각종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평

 

론가들의 극진한 사랑 속에 무려 22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독차지 했습니다.

 

 

 

(이 기록은 살아있는 아티스트중 스티비 원더와 함께 최다 수상 기록임). 물

 

론 지금까지 발매한 12장의 스튜디오 앨범, 7개의 라이브 앨범 등을 포함한

 

                                                전세계적인 앨범 판매량만 해도 1억 5천 만장이 넘으니 대중적인 인기도 무시

 

                                                못할 그야말로 완벽한 밴드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유투는 1976년 11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보노(Bono/리드 보컬)를 중심으로, 엣지(The Edge/기타), 아담 클레이튼(Adam

 

Clayton/베이스), 래리 멀린 주니어(Larry Mullen, Jr./드럼) 등 4인조 라인업으로 결성됐습니다.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

 

은 유투는 1980년 데뷔 앨범 [Boy]를 발매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UK 신에서 주목을 받다가 1983년 3집 앨범 [War]부터 미국 음악 신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고, 결국 1987년

 

명작 [Joshua Tree]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첫 싱글 ‘With Or Without You’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스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특히 미국 내에서 다이아몬드(1,000만 장 이상의 판매앨범) 앨범으로 공인된

 

[Joshua Tree] 때 처음 그래미상을 받은 이후 “그래미상=유투”라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그 해 앨범을 냈으면 그 해

 

그래미 어워즈엔 꼭 유투의 시상식 소감을 들을 수 있었죠.

 

 

 

 

 

이후 2009년에 발매된 12번째 스튜디오 앨범 [No Line On The Horizon]까지 2000년작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를 제외한 모든 앨범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으면서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 시대가 지나

 

도 변치않는 유투만의 카리스마로 다른 후배 밴드들에 수많은 영향을 주었고 귀감을 사고 있습니다.

 

 

 

 

텁텁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보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타고난 그룹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유투가 앞으로도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US               UK     

 

1980  Boy                  63                    521981  October                 104111983  War                  1211984  The Unforgettable Fire                  1211987  The Joshua Tree                   111988  Rattle And Hum                   111991  Achtung Baby                   121993  Zooropa                   111997  Pop                   112000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312004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112009  No Line On The Horizon                   11

 

 

 

 

 

 

 

 

 

 

 

 

 

 

 

 

 

 

 

 

 

 

13. Mr.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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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Bend' 의 출현 MR.BIG

 

 

 

Eric Martin(보컬), Paul Gilbert(기타), Billy Sheehan(베이스), Pat Torpey(드럼)의 라인업으로 1988년 결성된

 

Mr. Big은 이미 각 분야에서 최고의 헤비메탈 뮤지션으로 대접받고 있던 이들의 결합으로 결성 당시부터 큰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1989년 데뷔앨범 [Mr. Big]을 발표, 'Addicted To That Rush'가 히트를 기록했으며 'Take A Walk, Blame

 

It On My Youth'등의 곡이 주목받으며 앨범도 큰 사랑을 받았다.

 

 

 

1991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Lean Into It]은 전작보다 훨씬 더 높은 인기를 얻으며

 

대중성과 음악성 모두 성공을 이룬 앨범이었다.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 'Road To Ruin'등 거의 전곡이 사랑 받았으며

 

어쿠스틱 발라드 곡인 'To Be With You'는 빌보드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팝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동시대 히트 곡인 Extreme의 'More Than Words'와 함께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 받는 어쿠스틱 넘버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록씬의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이들의 인기는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꾸준한 공연 활동을 펼치

 

면서 간간이 라이브 앨범을 내놓는 등 인기 메탈 밴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던 이들이지만,

 

 

 

1996년 발표한 [Hey Man]은 이미 새로운 음악에 귀를 빼앗긴 대중들에게 외면당했다.

 

 

오랫동안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이들은 이 앨범의 실패로 각 멤버들에게

 

그룹 활동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켜 결국 각 멤버들은 나름대로의 솔로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룹의 결속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상황에서 1998년 결국 그룹의 핵심 멤버 Paul Gilbert가 탈퇴를 선언하였다.

 

 

이에 Mr. Big은 기타리스트 Richie Kotzen을 새로 받아들여 2000년 [Get over It]을 내놓으며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

 

 

 

 

Richie Kotzen은 Paul Gilbert의 빈자리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멋진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듬해인 2001년 그들은 새앨범 [Actual Size]를 발표, 아직도 건재하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4. Sex Pist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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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던 영국 밴드 -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섹스 피스톨즈는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던 영국의 펑크 록 밴드다.

 

1975년 런던에서 결성 되었으며 밴드는 스티브 존스(기타),폴 쿡(드럼),쟈니 로튼(보컬),글렌 매트록(베이스),글렌 매트

 

록은 후에 시드 비셔스로  교체 된다.

 

 

 

비로 그들의 초기 활동 기간이 2년 반에 불과했으며 넉 장의 싱글 앨범과 한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냈을 뿐이

 

지만 섹스 피스톨즈는 "영국 펑크 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밴드" , "영국의 펑크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이들은 로큰롤 역사에서 첫 번째 "세대 차이" 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78년 1워 US투어를 마치고 쟈니 로튼은 밴드를 탈퇴했고 공식적으로 해체 되었다.

 

이후 몇달 동안 남은 3명의 멤버들은 섹스 피스톨즈의 이야기에 대한 영화 "The Great Rock 'n' Roll

 

Swindle"를 촬영했다. 한편 1979년 시드 비셔스가 헤로인 복용으로 사망했다.

 

 

 

1996년 쟈니 로튼,스티브 존스.폴 쿡,글렌 매트록이 재결성하여 공연을 펼쳤다.

 

 

2006년 2월 24일 원래의 4명의 멤버와 시드 비셔스까지 포함하여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만

 

비판의 편지를 보내고 헌액 기념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섹스 피스톨즈는 전신인 The Strand에서부터 시작되었다.

 

 

The Strand는 런던에서 나온 밴드로 1973년에 만들어졌다.

 

 

 

그 밴드의 구성원들은 스티브 존스(보컬),폴쿡(드럼),그리고 윌리 나이팅게일(기타)였다.

 

폴 쿡의 말로는 훔친 악기들로 연주를 했다고 한다.

 

이것은 얼마나 밴드의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말이다.

 

 

 

 

 

스티브 존스와 그의 멤버들은 항상 킹 로드에 있는 옷 상점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 옷가게는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의 말콤 맥라렌 (나중에 그 사람은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져

 

가된다)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상점 이였다.

 

 

 

이 상점달은 점점 펑크 록의 장소로 바꾸어져 나갔다.

 

이런 상점에서 시드 비셔스나 마르코 피로니 등의 미래 펑크 록 스타들이 나왔다.

 

 

 

 

 

 

 

 

 

 

 

 

 

 

 

 

 

 

 

 

 

 

 

 

 

 

 

 

 

 

 

 

 

 

 

 

 

 

 

 

 

 

 

 

 

 

 

15. The Rolling Stones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비틀즈의 영원한 라이벌 The Rolling Stones

 

 

 

이들의 초기는 기타리스트이자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 피아니스트 이안 스튜어트

 

(Ian Stewart)와 보컬리스트 믹 재거(Mick Jagger), 기타리스트 키스 리차드(Keith Richards), 베이시스트 빌

 

와이맨(Bill Wyman), 드러머 찰리 왓츠(Charlie Watts)와 함께 초기 라인 업 구성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롤링 스톤즈의 첫 번째 매니저였던 ‘앤드류 루그 올드햄(Andrew Loog Oldham)은 멤버였던 이안 스튜어트를 단지 못생겼

 

다는 이유로 1963년부터 라인 업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5년 스튜어트의 사망 전까지 그는 로드 매니저와 때때로 키보드 연주를 맡아

 

밴드를 보필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1963  레코드사와의 계약 이후 이들은 ‘The Rollin’ Stones’에서 ‘The Rolling Stones’로 밴드 이름을

 

바꾸게 됐고버를 비롯한 다른 몇몇은 이들을 ‘The Stones’라 일컫기도 했습니다.

 

 

 

1963년 보컬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는 밴드 내에서 음악을 만드는 거의 모든 작업을 독점적으로 하게 되었는데요결론적으로 이

 

것은 당시 밴드에서 리더로 자리하고 있던 브라이언 존스에 위화감을 갖게하며 잦은 마찰을 빚게 됩니다.

 

 

 

미국의 주요 블루스와R&B 송을 커버로 하며 레코딩 작업에도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했던 이들은

 

1966년 작품인 [Aftermath] 이후부터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의 곡으로 레파토리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1969년 브라이언 존스의 사망 전 짧게나마 믹 테일러(Mick Taylor)가 존스를

 

대신하여 활동했고, 이후 테일러는 1974년 롤링 스톤즈를 떠났으며, 다시 테

 

일러를 대신해 1975년 로니 우드(Ronnie Wood)가 롤링 스톤즈의 멤버로 자

 

리를 이어가게 됩니다.

 

 

또한 1992년 빌 와이맷 역시 롤링 스톤즈를 떠났고 그 자리를 대신해 1994년 베이시

 

스트 활동 이후 공식적인 밴드 활동 가지지 않았던 대릴 존스(Darryl Jones)가 그 뒤

 

                                                      를 잇게 됩니다.

 

 

 

 

영국을 시작으로 해서 서서히 대중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한 이들은 1960년대 초 영국 출신의 밴드들이 미국 음

 

악계를 점령했던 시절인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시기와 맞물려

 

미국에서 꾸준한 투어를 갖게됩니다.

 

 

 

현재까지 영국에서 22장의 정규 앨범, 미국에선 24장의 앨범 발표를 비롯해, 8장의 라이브 앨범,

 

다수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선보였고, 전세계적으로 2억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영국 뿐만아니라 미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밴드로 남아 있습니다.

 

 

 

 

 

1971년 [Sticky Fingers]를 시작으로 최근 발표한 2005년 작품 [A Bigger Bang]까지 8장의 앨범의 연이은 스

 

튜디오 앨범 발표는 미국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한 주요 업적이 되었습니다.

 

 

 

 

또한 198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헌액을 비롯해, 2004년엔 <롤링 스톤>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가장 훌륭한

 

100대 아티스트 4위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2008년엔 <빌보드>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빌보드 100대 아티스트 차트에선 10번째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그들의 진가를 보여주었습니다

 

 

 

 

 

 

                                                                     US                UK

 

1964  The Rolling Stones (UK)                -11964 England's Newest Hit Makers (US)               11                      -1964 12 X 5                3-1965 The Rolling Stones No. 2                -11965 The Rolling Stones, Now!                5-1965 Out of Our Heads                121965 December's Children (And Everybody's)                4-1966 Aftermath                211967 Between the Buttons                231967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321968 Beggars Banquet                531969 Let It Bleed                311971 Sticky Fingers                111972 Exile on Main St.                111973 Goats Head Soup                111974 It's Only Rock 'n' Roll                121976 Black and Blue                121978 Some Girls                121980 Emotional Rescue                111981 Tattoo You                121983 Undercover                431986 Dirty Work                441989 Steel Wheels                321994 Voodoo Lounge                211997 Bridges to Babylon                362005 A Bigger Bang                232010 Exile on Main St. (Deluxe Edition)                -1

 

 

 

 

 

 

 

 

 

 

 

 

 

 

 

 

 

 

 

 

 

 

 

 

 

 

 

 

 

 

 

 

 

 

 

 

 

 

 

 

 

 

 

 

16. Pearl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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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밴드 Pearl Jam

 

 

 

그들의 시초는 1990년 워싱턴 주 시애틀, 제프 아멘트와 스톤 고사드는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에서 각각

 

베이스와 기타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보컬을 맡고 있던 앤드류 우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밴드는 해체되었고, 혼자 곡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던 스톤

 

고사드는 곧 마이크 매크리디 그리고 제프 아멘트와 함께 합주 및 연습을 시작하였다.

 

 

 

얼마 후, 그들은 보컬와 드러머를 찾기 위해 다섯개의 자작곡을 임시로 녹음하여 주변에 돌렸다.

 

 

 

 

당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드럼 주자였던 잭 아이언스도 이 데모 테이프를 하나 받았는데, 같이 농구를 하던 친구인 에

 

디 베더에게 이를 넘겨주었다.

 

 

당시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던 에디 베더는 밴드 "배드 라디오(Bad Radio)"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 테이프를 듣고 바닷가에 나가 취미인 서핑을 하며 가사를 집필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데모 테이프의 반주 위에 자신

 

의 노래를 녹음하여 되돌려 보냈다. 몇 일 후 그는 시애틀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고, 한 번의 합주 후 밴드의 일원이 되었다.

 

 

 

 

1990년 10월 22일, 데이브 크루센을 드럼주자로 영입한 그들은 "무키 블레이락"이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공연을 가진

 

다. 무키 블레이락은 그 당시 활약했던 농구선수의 이름인데, 법적문제를 우려해 결국 "펄 잼"으로 밴드명을 바꾼다.

 

 

 

1992년 데뷔 음반 "Ten"  이 출시하며. 1990년대 초의 그런지 열풍을 일으킨 밴드였던 펄 잼은

 

 

이후 뮤직 비디오 만들기를 거부하고 티켓마스터(Ticketmaster)를 상대로 대대적인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전통적인 음악계의 현행에 저항했다.

 

 

 

 

롤링 스톤은 펄 잼을 “자기 자신들의 유명세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데 지난 10년간을 보냈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펄잼에게는 숙명의 라이벌이 존재했다 비틀스 시대에 롤링스톤스가 마이클 잭슨 시대에 프린스가 있었다면

 

펄잼은 너바나와 동시기에 등장해 강력한 라이벌구도를 형성하였다


 

 

1991년 데뷔앨범 'Ten'을 통해 앨범차트 2위에 오르며 너바나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였고

 

90년대 초 책가방을 둘러맨 우리나라 세대들에게도 너바나와 펄잼 파로 나눠질 만큼 파워경쟁구도였다

 

펑크를 근간으로 했던 너바나와 달리 하드록을 중심으로 한 펄잼은 X세대의 좌절과 분노를 표출하였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에 대한 노래 'Jeremy'가 이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곡이다

 

 

 

 

 

데뷔 앨범 이후 3장 연속 앨범차트 넘버원에 올랐고 너바나가 없는 얼터너티브 록을 수성하였다.

 

RIAA의 2006년 12월 기록에 의하면 펄 잼의 미국 내 음반 판매량은 2900만 장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펄 잼은 1990년대 초 전면으로 부상했던 당시 얼터너티브 록의 많은 주자들이 쓰러져 간 것과는 달리 현재까지 지속적

 

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90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21세기에도 꾸준히 히트 음반을 발매하면서 성공적으로 투어를 하고 있으며, 평론가들의 갈채를 받고 있다.

 

 

 

 

 

 

 

 

 

 

 

 

 

 

 

 

 

 

 

 

 

 

 

 

 

 

 

 

 

 

 

 

 

 

 

 

 

17. Tr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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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 Coldplay, Oasis, Blur와 더불어 영국 팝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밴드 Travis! 


 

이들은 1996년 가을 첫 정규 EP인 [All I Wanna Do Is Rock]을 발매하면서 '당시의 브리티쉬 록의 정신을 구현했

 

다'라는 찬사를 받는다. 그 후, 히트 싱글인 'Happy'와 'Tied To The 90's'를 발표하고, 1997년에 등장한 정규 1집

 

인 [Good Feeling]이 영국 차트 Top 10에 오르면서 전국적 밴드로의 명성을 얻게 된다. 

 

 

1999년 두 번째 앨범인 [The Man Who]에서는 Radiohead를 연상할 만큼 내성적이고 감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면

 

서 6번의 플래티넘 획득, 영국 차트 1위 등극, 앨범 판매량 4위를 기록하며 히트 퍼레이드를 펼친다. 2000년도 브릿

 

어워즈에서 '최우수 앨범상'과 '최우수 그룹상'을 받는 등 그 해의 주요한 상을 휩쓸기도 했다. 

 

 

이후 2001년 기대 속에 발매된 [Teh Invisible Band]는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어렵지 않은 멜로디 라인에 아기자기한 악

 

기 편성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이 앨범의 수록곡인 'Sing'은 '2001년의 발견'이란 칭호를 얻으며 브릿팝 매니아들에게 전

 

폭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잘 나가던 이들에게도 시련이 찾아왔으니 바로 드러머인 Neil Primrose의 사고이다. Neil은 수영장 사고로 목뼈가 세

 

개나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여생을 반신불수로 보낼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는 10년을 가까이 함께 활동해 온

 

Travis에게는 사형 선고와 가까왔다.

 

 

하지만 기적에 가깝게 Neil은 휠체어에서 일어나 드럼 세트 앞에 앉았으며, 그가 회복하는 기간동안 밴드는 벌충의 시

 

간을 가지며 자성의 시간을 갖는다.

 

 

이어 2003년 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12 Memories] 앨범을 발표, 다시금 팝계의 주목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8. Aero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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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 시골 출신들로 구성된 Aerosmith

 

 

 

당시 존경 받던 Led Zeppelin(레드 제플린) 그리고 The Stones(더 롤링스톤즈)과 같은 영향력 있던 전통을 가진 블

 

루스에서 바로 끌어온 음절을 토대로 거칠고, 폭력적면서 도발적인 음색으로 70년대 록 무대를 열었다.

 

 

*스티븐 타일러(Steven Tyler:리드보컬, 하모니카·피아노·타악기 연주), 조 페리(Joe Perry:백그라운드 뮤직, 기타·허디거디·슬라

 

이드기타 연주), 브래드 휘트퍼드(Brad Whitford:기타), 톰 해밀턴(Tom Hamilton:베이스 연주), 조이 크래머(Joey Kramer:드럼)

 

의 5명으로 구성되었다.

 

 

 

 

결성 초기에 독창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1973년 1월 첫 앨범 《에어로스미스 Aerosmith》를 발표했고, 이

 

앨범은 후에 《드림 온 Dream On》을 수록한 싱글로 재발매되었다. 보스턴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한 이

 

들은 1974년 3월 발표한 제2집 앨범 《겟 유어 윙스 Get Your Wings》로  비약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4반세기의

 

활동기간 동안 전세계에 걸쳐 무려 1억 장에 가까운 앨범을 발매했다.

 

 

 

이 그룹은 대중음악계에서 단지 생존하여 번성만 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경향이나 유행을 초월하여 가장 지속적으로

 

청중을 도취시키는 힘을 발휘해 왔다.

 

 

 

 

Joe Perry의 길게 끄는 악절은 리드 싱어 Steve Tyler의 소녀 그룹('Walkin' In The Sand')에서 Bowie Funk

 

('Last Chil')의 영향을 받은 저속한 Jagger 스타일의 노래와 완벽하게 조화된다.

 

 

한때 신문 배달 소년들도 이들을 알아서 이들이 어디서 BMX 자전거를 타는지, 담배는 피우는지 그리고 Aerosmith의 저속하면서

 

도 내놓고 도발적인 음악을 들으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과 비슷한 수명을 누린 몇몇 록밴드들과 비교해 볼 때 유별난 것은 이 그룹이 인기 차트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경력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마약 중독으로 거의 끝날 지경에 이르지만 1980년대 중반에 완전히 깨끗하고

 

깨인 상태로 복귀하여 놀라운 수준의 성공을 거둔다.

 

 

 

이들의 새로운 음악은 주제에 접근하데 있어 파워-발라드와 훌륭하게 제작된 블루스를 사용하지만, 여러분이 가까

 

이서 들으면 모든 특수 효과 뒤에 숨은 Joe Perry의 모든 것을 찢어 버릴 것 같은 뱀 같은 소리를 들을 수있다. 1985

 

년 재결합한 후 원래의 구성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자랑거리이다.

 

 

 

 

2001년 1월 8일 '올해의 미국음악상(Year's American Music Awards)' 시상식에서 28년 동안 단 5차례밖에 시상

 

되지 않은 명예로운 '국제가수상(International Artist Award)'을 수상했다. 이전에 이 상을 받은 사람은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비지스(Bee Gees) 등이었다.

 

 

 

 

이들은 또 1월 28일 MTV가 제작한 제35회 슈퍼볼 중간휴식 공연에서 《나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I Don't Want

 

To Miss A Thing 》 《제이디드 Jaded》 《이렇게 걸어 Walk This Way》 등 3곡을 메들리로 불러 라이브 밴드로

 

서 쌓아올린 확고한 명성을 재확인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메리 J. 블리지(Mary J. Blige), 넬리(Nelly) 등이 함께 공연한 이 행사는

 

8650만 시청자를 끌어들였으며, 슈퍼볼 역사상 중간휴식 공연으로서는 가장 많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때 부른 노래 가운데 《나는 하나도 놓칠 수 없어》는 영화 《아마겟돈 Armageddon》에 삽입되었으며, 1998년 4

 

주 동안 '핫 100(Hot 100)'의 1위를 기록했다.

 

 

 

2001년 3월 19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등록되었으며, 그 기념으로 유명한 팝 멜로디와 록의 반복 악

 

절이 결합된 새 앨범 《저스트 푸시 플레이 Just Push Play》를 제작했다.

 

 

 

히트곡으로는 "비욘드 뷰티풀 (Beyond Beautiful), 플라이 어웨이 프롬 히어 (Fly Away From Here),트립홉인 Trip Hoppin, 선샤

 

인 (Sunshine),언더 마이 스킨 (Under My Skin, 루이 라이스 (Luv Lies), 아우타 유어 헤드 (Outta Your Head), 나인 라이브스

 

(Nine Lives), 라이트 인사이드 (Light Inside) 등이 있다.

 

 

 

 

 

 

 

 

 

 

 

 

 

 

 

 

 

 

 

19. Ke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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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스트 서식스의 작은 마을 친구들과 결성한 밴드 킨(Keane)

 

 

 

보컬리스트 톰 채플린(Tom Chaplin)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피아노 록 음악을 발전시켜왔습니다.

 

1997년에 팀을 결성한 그들은 처음에는 대학 카피 밴드로 활동했고 그 당에는 4인조였습니다.

 

 

 

 

킨은 고향 지역에서 여러 해에 걸쳐 투어 공연을 가졌고 유투(U2)나 오아시스(Oasis) 그리고 비틀즈(Beatles) 등의 명곡

 

들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1998년 무렵에는 점점 본인들의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톰이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애

 

든버러 대학교로 잠시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만 그는 1년 후에 런던으로 돌아와 더욱 열심히 킨 활동에 매진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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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의 흥겨운 테너 보컬과 키보드 연주가 섞인 셀프 데뷔곡 ‘Call Me What

 

You Like’ 2000년에 공개되었고 이듬 해에는 ‘Wolf At The Door’라는 노

 

래도 내놓았지만 기타리스트 도미닉 스코트(Dominic Scott)이 팀을 떠나는

 

문제가 생깁니다.

 

 

3인조 활동을 하던 그들의 긴 침체기는 콜드플레(Coldplay) 발굴에도 일

 

조했던 레코드사의 CEO 사이먼 윌리엄스(Simon Williams)가 친구의 소    

개로 킨의 런던 공연을 보게 되면서 종지부를 찍습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사이먼은 즉시 그 자리에서 다음 싱글 ‘Everybody’s Changing’을 발매하기로

 

킨과 계약합니다.

 

 

한정판으로 공개된 해당 곡은 영국 라디오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일부 대형 기획사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2003년에 <Island> 레코드사와 계약한 킨은 와의 마지막 곡 ‘This Is The Last Time’을 선보였습니다발매

 

1주 만에 UK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한 그들의 정식 데뷔앨범 [Hopes And Fears] 1년 후에 발매되었고 수

 

록곡 ‘Somewhere Only We Know’가 미국에서까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Best Album” 부문을 비롯해 2005년 브릿 어워즈 2관왕에 빛나는 그들은 그래미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고 이

 

막강한 1집은 그 해 영국 최다 판매 2위 앨범으로 등극했습니다.

 

 

2004라이브 앨범 [Live Recordings 2004]가 소개되었고 킨은 유투의 2005년 공연 오프닝도 수 차례 장

 

식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조금 어두워진 2 [Under The Iron Sea]를 선보였고 밴드의 대표 곡이 된 ‘Is It Any Wonder?’에 힘입

 

어 빌보드 앨범차트 4위와 UK 앨범차트 정상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2008년의 3 [Perfect Symmetry]에서는 자기타가 가미되는 등 약간의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고 2년

 

이 흐른 후 킨은 소말리아 출신 래퍼 케이난(K’Naan)과 함께 8곡이 담긴 EP [Night Train]을 선보이며 UK

 

앨범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US            UK

 

2004  Hopes And Fears                              45                 12006  Under The Iron Sea                               412008  Perfect Symmetry                                712010  Night Train (EP)                               -1

 

 

 

 

 

 

 

 

 

 

 

 

 

 

 

 

 

 

 

 

 

 

 

 

20. Green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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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DAY

 

 

1987년 미 서부 캘리포니아 이스트 베이에서 결성된 펑크 록 밴드 그린 데이(Green Day)는 1972년생 동갑내기

 

인 보컬리스트 빌리 조 암스트롱(Billie Joe Armstrong), 베이시스트 마이크 던트(Mike Dirnt), 드러머 트레 쿨

 

(Tre Cool) 등으로 구성된 남성 3인조 펑크 록 밴드 입니다.

 

 

 

 

1990년 밴드 결성 멤버 존 키프마이어(John Kiffmeyer)를 대신해 밴드로 합류한 트레 쿨 이후 결성 초기 멤버로

 

활동하는 최장수 밴드 중의 하나로 유감없는 면모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린 데이는 초기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펑크 신(Scene)의 한 부분으로 출발하였습니다그들은 초창기 독립

 

레이블이었던 을 통해 인디 앨범을 발표하면서 대중적으로 호평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그린 데이를 좋아했던 몇몇 팬들은 그들이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할 당시 배신감에 등

 

을 돌리기도 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그럼에도 불구하고 1994 [Dookie]를 통해 메이저로의 데뷔를 했던 그린

 

데이는 미국 내에서만 천만 장의 판매량 기록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1,5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급부상하게 됐고,

 

 

그 결과로 당시 이들과 함께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펑크 밴드

 

프스프링(The Offspring)이나 랜시드(Rancid) 등 역시 펑크 록의 급성장에

 

준한 동반 상승을 누리며 미국 내 메인스트림 밴드로 성장하는 중요한 순간

 

                                                      을 맞이하게 됩니다.

 

 

 

 

 

 

[Dookie] 이후 발표한 3장의 앨범 [Insomniac](1995), [Nimrod](1997), [Warning](2000) 앨범은 [Dookie]만

 

큼의 메가톤급 히트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골드(50만 장)를 기록한 [Warning]을 제외하고 두 앨범은 더블 플래

 

티넘(200만 장)을 기록하며 소소한 성과는 이룬 앨범이었습니다.

 

 

 

 

심기일전 끝에 21세기 첫 앨범을 들고 온 그린 데이는 2004년 신작 [American Idiot]으로 돌아와 미국 내에서만

 

5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젊은 음악 팬들에게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또한 전세계 26개국에서의 동반 인기그 중 19개국에서 1위에 오르며 1,400만 장의 판매량을 올리게 됩니다.

 

특히싱글 히트곡 ‘Boulevard Of Broken Dreams’로는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레코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5년만에 발표한 2009년작 [21st Century Breakdown]을 통해 절정에 이른 록 오페라를 노래하며,

 

[American Idiot] 앨범과 함께 빌보드 앨범 차트 연속 1위, 그래미 어워즈 “Best Rock Album” 부문 2연패의 영

 

예를 안았습니다..

 

 

 

 

얼마 전 내한 이후 무수한 뒷 이야기를 남기고 돌아간 이들은 잠시 휴식기를 맞이하며 록 오페라 시리즈 마지막 앨범 구

 

상에 여념이 없다고 합니다.

 

 

 

 

                                                                  US             UK

 

1990  1039 / Smoothed Out Slappy Hours                     -                  -1992 Kerplunk                     --1994 Dookie                     2131995 Insomniac                     281997 Nimrod                    10112000 Warning:                     442004 American Idiot                     112009 21st Century Breakdown                     11

 

 

 

 

 

 

 

 

 

 

 

 

 

 

 

 

 

 

 

 

 

 

 

21. The Beach 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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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서핀으로 세계를 덮친 The Beach Boyes



 

 

미국의 팝 & 락 역사에서 가장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를 꼽자면 비치보이스 The Beach Boys 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미국적인 밴드를 말하더라도 답은 역시 서핀뮤직의 대가 비치보이스다.






이들의 사운드는 푸르다 못해 파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만 같은 캘리포니아의 하늘과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눈부신 태양,젊은 


청춘을 남김없이 집어삼킬 것 같은 태평양의 상큼한 바닷물과 바람 그리고 모래사장이 달콤한 그들의 목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어 만들


어 낸다.


196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호손에서 결성된 서프 락 밴드 비치보이스는 거의 모든 곡을 만드는 Brian Wilson이 사촌형인 Mike 


Love와 친구는 Al Jardin,그리고 브라이언의 두 동생인 칼과 데니스를 끌어들이면서 탄생하게 된다.






이들의 등장은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변방으로 취급당하던 서부지역을 메이저급 음악의 산실로 바꾸어 버리고 웨스트-코스트 사운드


Whest-coast Sound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실제로 당시 언론에서는 비치보이스의 등장을 '동부에 대항하는 새로운 서부영웅의 출현'이라고 썼다.






신의 은총을 독차지한 자연과 인간이 만들었지만 자연을 타고 넘는 서핀 사운드로 1960년대 초반은 비치보이스가 미국을 완전히 접


수하였고 1964년 비틀즈를 필두로 펼쳐지는 브리튀쉬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에 의연히 단기필마로 대적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이들은 데뷔곡'Surfin'을 히트 시키고 62년도에는 "Surfin'safari"로 입지를 다지며 63년도 'Fun,fun,fun , Dance,dance,dance등을 


연속적으로 히트 시키며 서부에서 동부 끝까지 손아귀에 넣는다.




특히 비틀즈의 살인적인 돌풍 앞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I get around'로 미국 차트 1위를 지켜내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살려준 밴드이다.




이후 65년도 Help me Rhonda,Do you wanna dance, California girls 등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66년도에는 'Pet sounds'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의 팬들을 경악케 하는데, 그들의 서핀 사운드에 익숙한 팬들은 낯선 음악적 실험에 


실망감을 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앨범은 세계적인 명반 대열에 올라 롤링스톤스가 선정한 인류 500대 앨범중 2위에 선다.





미국의 비틀즈 비치보이스는 미국 락 밴드로서는 가장 많은 서른 여섯 곡의 전미 차트 탑40과 네 곡의 넘버 원 히트 싱글을 자랑하며 


1988년에는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22. The Off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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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Day 와 네오펑크 양대산맥의 락밴드 Offspring

 

 

 

오프스프링은 1984년 결성된 미국의 펑크 록 밴드이다.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기타리스트 '덱스터 홀랜드' 와 베이시스트 '그렉 크리셀' 이 결성한 밴드 매닉 서브사이덜

 

(Manic Subsidal)로부터 시작되었다. '톰프슨'이 보컬로 밴드에 합류하였으며, 드러머는 '짐 벤턴'이 맡았다.

 

 

이후 '케빈 누들스 와서맨' 도 합류를 하였는데 이유는 나이가 어렸던 다른 멤버들 대신 술셔틀을 했기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벤턴'과 '톰프슨'이 밴드를 탈퇴한 이후 '제임스 릴리아' 가 드러머를 맞으면서 매닉 서브사이

 

덜은 1985년에 밴드이름을 'The Offspring' 으로 바꾸었다

 

 

 

1987년, 오프스프링은 첫 번째 싱글 [Blackball/I'll Be Waiting]을 발매하였다.

 

싱글이 발매되고 얼마 후, 릴리아가 학업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였고 '론 웰티'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1988년 네메시스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프로듀서 '톰 윌슨'과 함께 데뷔 음반 [The Offspring]을 제작하여 1989년에 발매하였다.

 

 

 

이 음반은 당시 [12" 레코드]로 한정된 수량만이 발매되었으며, [콤팩트 디스크|CD] 버전은 1995년에야 발매되었다.

 

 

 

 

1991년에는 EP [Baghdad]를 제작하여 발표하였으며,

 

후에 [에피타프 레코드]와 계약을 맺은 밴드는 1992년에 두 번째 정규 음반 [Ignition]을 발표하였다.

 

 

 

1994년, 오프스프링은 이들의 음반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음반 'Smash' 를 발매하였다. 'Smash' 는 빌보드

 

200 차트 4위에 올랐으며, 싱글 [Come Out and Play], [Self Esteem], [Gotta Get Away]도 줄줄이 히트를 치면

 

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전 세계적으로 3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Smash'의 성공으로 많은 수입을 올린 이들은 첫 음반 'The Offspring'의 권리를 구입하였다.

 

 

 

홀랜드와 크리셀은 음반사 [[니트로 레코드]]를 설립하였으며, 권리를 구입한 데뷔 음반 'The Offspring'을 니트로

 

레코드를 통해 재발매하였다.

 

 

 

'Smash'의 투어 공연을 마친 오프스프링은 1997년 2월에 'Ixnay on the Hombre'를 발매하였다. 이번 음반은 'Smash'만큼 성공

 

적이지는 못했지만, 빌보드 200 차트 9위에 올랐다.

 

 

 

 

이 음반은 에피타프 레코드에 속해 있던 밴드들이 표방하던 정치적인 펑크 테마를 벗어나,

 

All I Want〉, 〈Gone Away〉, 〈I Choose〉등과 같은 주류 음악을 좀 더 많이 담았다.

 

 

 

"I Choose" 의 뮤직 비디오는 덱스터 홀랜드가 직접 감독을 맡아 제작하기도 하였다.

 

 

 

 

 

1998년에는 다섯 번째 음반 'Americana'를 발매하였다.

 

이 음반은 미국 음반 차트 2위에 오르며 지난 음반 《Ixnay on the Hombre》보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에는 여섯 번째 음반 'Conspiracy of One'을 발매하였다. 인터넷에서 음악을 다운 받는 데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던 오

 

프스프링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전곡을 공개하고자 하였으나 컬럼비아 레코드가 법적으로 대응하려 하자 첫 번째 싱

 

글인 〈Original Prankster〉만을 공개하였다

 

 

 

 

 

2003년, 오랜 기간 동안 드러머를 맡아 온 '론 웰티'가 밴드 [스테디 그라운드]의 활동을 위해 오프스프링을 탈

 

퇴하였다. 같은 해에 오프스프링은 일곱 번째 음반 'Splinter' 를 발매하였고 비어 있던 드러머의 자리는 '조시 프리

 

즈'가 맡아 음반을 제작하였으며, 나중에 정식 드러머로 '아톰 윌라드'가 발표되었다.

 

 

 

이후 2005년에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히트곡들을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Greatest Hits'를 발매하였고 같은 해

 

여름 '반스 워프드 투어'에 처으로 참가하였으며, 'Greatest Hits' 세계 투어 공연 이후에는 휴식기를 가졌다

 

 

 

 

 

 

 

 

 

 

 

 

 

 

 

 

 

 

 

 

 

 

 

 

 

 

 

 

 

 

 

23. RATM (Rage Against The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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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콘'과 함께 하드코어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신화적인 밴드 RATM

 

 

 

이들의 명맥은 1990년대를 꽉 채우며 90년대 록의 흐름을 헤비메탈에서 하드코어, 2000년대 들어 뉴메탈이라

 

일컬어지 신종 음악 장르를 양산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하드코어뿐아니라 랩과 힙 합 음악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내는 선도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하드코어가

 

더 이상의 하드코어 역할을 만들어내지 못한 2000년대 비로소 자신들의 한계를 느끼며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됩

 

니다.

 

 

 

 

 

사회적 제도에 대한 분노와 반항을 의미하는 이들의 밴드명 답게 1990년대 얼터너티브펑크힙합헤비메탈

 

에 “Funk”적 요소를 결합함과 동시에 정치적이며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마구 토해내는

 

 

RATM은 1990년대 헤비 메탈에 다소 진부함과 식상함을 느낀 소수로부터 강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1990년대 RATM의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된 국내 팬들은 한때 콘과 라이벌화하며 저마다 서로에게 최고

 

의 밴드임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1992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하였고 이듬해 페리 패럴에 의해 기획되어 초창기 투어 형식을 띈 록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엄청난 각광을 받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차기작은 4년에 걸친 인고끝에 [Evil Empire]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되었지만, 소포모어 징크스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을뿐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에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3년 뒤 RATM의 고심은 결국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됐고,

 

국 이 앨범은 이들이 발표한 피날레 앨범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빚어낸 9년의 활동 끝에 사람들에게서 얻어낸 것은 대중적이면서도 사회에 대한 불합리에 대한 각성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는 역할의 밴드로 거듭나게 됐다

 

 

 

 

 

 

이들이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2000년에는 커버 앨범인 Renegades]를 발표하며 RATM만의 색이 담긴 음악들을 세상에 읊

 

어내는 것은 계속됐습니다.

 

 

 

 

2000년 밴드 해체의 수순 이후 프론트맨 잭 드라 로차는 초고음의 랩핑을 선보였던 래퍼에서 벗어나 낮은 키의

 

솔로로 새로운 자신을 시작하게 되었고남은 세 멤버는 보컬의 공백을 사운드 가든(Soundgarden) 출신의 크

 

리스 코넬(Chris Cornell)로 대신하며 슈퍼 그룹 오디오 슬레이브(Audio Slave)로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지만 오디오 슬레이브 마저 2007년 다시 해체를 맞이하게 됐고,

 

같은 해 4월 RATM은 “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을 통해 7년 만에 처음으로 손발을 맞춰보았다.

 

 

 

 

 

이것에 이끌려 RATM은 새로운 머터리얼은 내놓치 않으면서 2008년부터 각종 라이브를 무대로 다양한 방식(?)

 

의 재결성으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4. K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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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The V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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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하면서도 장중한 싸이키델릭 The Verve

 

 

더 버브는 영국 맨체스터 위건출신 락밴드로서 사이키델릭한 느낌과 브릿팝에 충실한 느낌이 특징입니다

 

 

리드보컬 리차드 애쉬크로프트를 중심으로 1990년도에 영국 위건에서 4인조로 출발하여

 

최정상급의 밴드로 자리잡았다 20년경격의 밴드이지만 실제 활동기간은 절반에 이를만큼

 

두번의 해체와 세번의 결성이 말하듯 휴면기간도 비례하는 그들이다

 

 

 

 

국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지닌 대중화 그룹 오아시스 콜드플레이등과 달리

 

The verve는 블러처럼 영국의 절대적인 인지도에 비해 국내에선 부족하다

 

 

 

 

그러나 오아시스와 달리 블러처럼 대중친화 보다는 압도할수있는 음악성을 지닌독자성이 강한 그룹

 

이라는 것은 밴드에 익숙한 청자들은 충분히 구분되며체감하고 있을것이다

 

 

 

 

단음절 이름의 거친 목소리를 가진 인디/댄스 크로스오버에 대한 잠재력을 가진 The Verve는고향에 익숙하고 반짝이

 

는 신발을 좋아하는 세대들에게는 로큰롤의 히트로 비쳐졌다.

 

 

흐릿한 천상의 상징 헤드폰을 울리는 싱글 그리고 반쯤 잠에 잠긴듯한,

 

데뷔 레코드에 드러난 The Verve의 강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연기가 자욱한 창고에서 몇시간이고 연습하였으며 약에 취한 증기엔진과 같이 울리는 리듬을 준비하며 그 이상

 

격력할 수 없을정도의 라이브 공연을 할수있도록 준비되어있었다

 

 

 

1993년도에 발표된 데뷔앨범 A Storm in Heaven에서도 슈게이징 장르에 영향을 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도취상태

 

에 빠지게 하는 인디진영의 음악성격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1995년도에 발표된 두번째 앨범 A Northern Soul 부터는 아무래도 브릿팝적인 정서가 어필되기는 시작했지만 전작과

 

크게 동쩔어지지 않는 진행이었다고 디스코그래피 과정으로 말할수있다

 

 

 

두번째 앨범과정에서 기타리스트 닉 메케이브와 리차드간의 불화를 시작으로 첫 해체가 되었고 2년후 1997년도 기타

 

리스트가 다시 합류하면서 새앨범을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1997년도 세번째앨범 urban hymns가 발표되었고 전설적인 명곡 'Bitter Sweet Symphony' 가 탄생하였

 

다. 영국차트 넘버원은 물론 빌보드에서도 23위로 올랐다

 

 

 

 

이는 두장의 앨범으로 대중들은 물론 평단들에게도 충분히 각인시켰다는 방증으로 삼을수있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앨범은 전작에 비하자면 대중친화적인 요소를 두고있지만 사이키델리적인 요소가 더 강해졌다는 정도로 이해할수있다

 

 

 

 

그러나 그룹의 최고순간은 물론 엄청난 상업적인 성공을 올려준 앨범을 통해 롤링스톤즈와의 표절시비에 휘말린다

 

 

 

The Verve의 최고의 곡 'Bitter Sweet Symphony'은 리차드 애쉬크로프트가 롤링 스톤즈의 The Last Time 에서

 

감을 받아서 쓴곡으로 사전에 양해를 구한뒤 4마디를 샘플링 했는데도 이곡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자 롤링스톤즈가

 

절시비를 통해 소송을 걸었고 재판결과 저작권료와 앨범 수익금 모두를 주었다

 

 

여기서 The Verve 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훔친행위가 아닌 계약과정에서 오류 혹은 법적 대응에 대한 미비한 부분

 

으로 해석될 수있다

 

 

 

 

 

 

이후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그 결과 1999년 초반에 밴드는 공식적으로 해체된다

 

 

 

그러나 2008년 10년만에 재 결성한 그들은 포스가 느껴지는 4번재 앨범 'Forth' 가 발매되면서 다시 한번 큰 성공을

 

거둔다. 대곡 지향적 싸이키델릭 록 사운드의 향연 과거의 영광에 자만하지 않고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한층 더 진일보한 더 버브만의 몽롱하고 무거운 싸이키델릭과 아름다운 발라드가 교차하는 앨범이 탄생하였다

 

 

 

 

 

 

 

 

 

 

 

 

 

 

 

 

 

 

 

 

 

 

 

26. M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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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한 광분의 라이브 MUSE

 

 

 

 

영국 서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데본 출신의 3인조 얼터너티브브릿팝 밴드 뮤즈(Muse). 리더 매튜 벨라미

 

(Matthew ellamy/리드 보컬), 크리스토퍼 볼첸홈(Christopher Wolstenholme), 도미닉 하워드(Dominic Howard)

 

의 라인 업으로 구성

 

 

 

뮤즈는 에너지 넘치며광분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이는 밴드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프로그레시,

 

클래시컬, 하드 록부터 사이키델릭, 일렉트로닉 음악까지 모든 장르를 공연을 통해서 그들의 테크니션을

 

선보이는 밴드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반 “Teignmouth Community College” 재학 당시 이들은 각자의 밴드에서 활동 중에 있었다.

 

그러던 중 벨라미가 하워드 밴드에 기타리스트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밴드로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둘은 당시 드러머로 활동했던 크리스 볼첸홈에게 밴드를 위해 베이스를 배우며 베이스 파트를

 

맡아줄 것을 권유했고 기꺼이 이둘의 의사를 받아들인 볼첸홈은 베이스 레슨을 받아가면서까지

 

뮤즈의 구성원으로 현재까지 활약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1994년 밴드를 결성한 이들은 로켓 베이비 돌(Rocket Baby Doll)이란 이름

 

으로 고딕/글램 록을 주 장르로 하여 지역에서 열린 밴드 경연대회에 참여하

 

게 된다이 대회에서 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실력으로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당시 학생신분이었던 이들은 이것을 계기로 학업을 포기한 채

 

바로 음악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고 한다.

 

 

 

 

 

 

 

 

경연대회와 지역에서의 공연으로 다수의 팬층을 확보한 이들은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에서 처음으로 연주를 갖

 

게 되는데요. 이 곳에서 그들은 뮤즈 밴드사에서 중요한 만남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당시 의 사장인 데니스 스미(Dennis Smith)를 만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74년 설립된 는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최정상급 뮤지션들이 작업했던 곳으로 


정평이 나 있던 곳이기도 했다.

 

 

 

이 곳을 거쳐간 뮤지션을 말하자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출신의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오아시스(Oasis), 버브(The Verve), 슈퍼그래스(Supergrass), 이저라이트(Razorlight) 등을 꼽을 수 있다.

 

 

 

 

 

현재까지 총 5장의 정규 앨범을 비롯해한 장의 라이브 앨범과 2002년 사운드트랙을 발표하였다.

 

 

 

이 중 2006년 작품 [Black Holes And Revelations]는 머큐리 시상식에서 밴드상을 수상하게 한 작품이 됐고,

 

 선정 2006년 올해의 앨범에서 3위로 선정되며, 앨범의 가치를 재확인하게 됩니다.

 

 

 

이 밖에도 뮤즈는 많은 시상식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차례의 MTV 유럽 뮤직 어워즈를 비롯해, 5번의 Q 어워즈, 8번의 NME 워즈, 2번의 브릿 어워즈,

 

 

 

그리고 영국 음악 잡지중 하나인 에서 주최한 시상식인 Kerrang 어워즈에서

 

4차례 수상등 화려한 수상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US                  UK

  

1999  Showbiz                        -                        292001  Origin Of Symmetry                       161 32003  Absolution                       107 12006  Black Hole & Revelations                         9 12009  The Resistance                         3 1

 

 

 

 

 

 

 

 

 

 

 

 

 

 

 

 

 

 

 

 

 

 

 

 

 

 

 

 

 

 

 

 

 

 

 

 

27. Guns N' R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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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 and 로큰롤의 대명사 Guns N' Roses!

 

 

 

 

1980년대 후반 헤비 메탈과 로큰롤의 대명사로 불려졌던 Guns N' Roses는 1985 보컬에 Axl Rose, 기타에 Slash,

 

Izzy Stradlin 베이스에 Duff "Rose" McKagan, 드럼에 Steven Adler의 라인업으로 LA에서 결성되었다.

 

 

 

그 후 클럽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후 LA와 그 인근 지역을 돌며 무명 생활을 하다 1986년 데뷔 EP [Live?! Like A Suicide] 를 발표

 

하고, 이듬해인 1986년 첫번째 데뷔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 을 내놓는다. 

 

 

이들의 데뷔 앨범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MTV에서 'Sweet Child O' Mine' 을 방영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섹스, 약물등을 다룬 가사와 마초적인 분위기는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뮤직비디오 방영 이후 그들의 인기는 승승장구 하였고, 앨범 발매 1년만에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예정보다 반 년이나 지연된 끝에 1991년에 발매된 앨범 [Use Your Illusion I] 과 [Use Your Illusion II] 도

 

예상대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Nirvana을 필두로 한 Alternative Rock 음악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헤비 메탈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Guns N' Roses도 위기를 맞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Axl Rose와 Slash 사이의 주도권 다툼으로 팀 내부에 균열이 오고 Izzy Stradlin 마저 팀을 탈

 

퇴하면서 Guns N' Roses는 '공식 해체' 만 없을 뿐이지 사실상 해체를 맞게 된다. [The Spaghetti Incident ('93)]

 

이후 현재까지 그들의 신보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카리스마 가득한 보컬 Axl Rose와 독특한 개성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두 기타리스트 Slash 와 Izzy

 

Stradlin의 강한 이미지! 그리고 옐로우 페이퍼들을 즐겁게 했던 숱한 사건들과 염문들로 화제를 몰고 다녔던 이들이

 

록 신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xl Rose가 새 멤버들을 꾸려 Guns N' Roses의 신작을 준비하고 있으며,

 

다른 멤버들도 앨범 세션으로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2004년에는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를 발매하기도 하였다. 앞으로

 

의 그들의 행보와 신작 앨범을 기대해 본다.

 

 

 

 

 

 

 

 

 

 

 

 

 

 

 

 

 

 

 

 

 

 

 

28. MCR (My Chemical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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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적이면서 야만적인 사운드 My Chemical Romance




마이 케미컬 로맨스와 함께 소리 질러라!


위험하지만 멋진 실생활을 추구하는 자유로움의 표출! 진정한 록큰롤 사운드



My Chemical Romance는 자신들을 억압하여 완성한 위대한 도전을 독창적이면서도 정직하게 동시에 야만적인 사운드


로 전세계 음악씬에 전달하고 있다. 




자신들이 직접 다락방에서 완성한 데모 Dreams about Stabbing and or Being Stabbed로 My Chemical Romance


는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고 강렬한 라이브 무대를 통해 폭발적인 팬층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A Swarm of Vampire 


Bats'를 연주할 때 이들의 공연은 마치 엑소시즘을 방불케하는가하면, 폭발적인 드럼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여기에 속주 


베이스 라인과 어두우면서도 멜로딕한 보컬까지 동반된다고 한다.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 전 세계적으로 이모코어의 붐을 정점에 이르게 한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와 [The Black 


Parade]는 MCR 최대의 히트작으로 부와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록 밴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진 빡빡한 스케줄의 월드 투어로 인해 누적된 피로, 이들의 앨범이 한 십대 소녀


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논란, 2009년 봄 드러머 밥 브라이어의 탈퇴 등으로 밴드는 한때 침체기에 빠지기도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작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새 앨범에 대한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와이프이자 같은 음악의 길을 걷고 있


는 린지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토끼 같은 딸까지 얻은 후 한층 성숙해진 MCR의 프론트맨 제라드 웨이는 [The Black Parade]를 


만들 때 새로운 음악 스타일과 규칙을 정하고 그에 준하는 앨범을 만들려고 너무 노력했었다고 고백한다. 이번 신작을 구상하면서 기


존의 스타일과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하려는 목표 자체가 MCR만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표출하는데 의외로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깨


달았다고.








3집의 대성공 이후 섹시 프론트맨으로 주가를 올린 제라드는 몇몇 잡지를 위해 레인코트와 타이를 맨 커버 사진을 촬영한 이후 남성 


잡지들로부터 몰려드는 커버 슛 촬영 요청에 새삼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기존에는 앨범의 이미지 상으로 표출된 MCR의 모습이 매우 


괴상하게 보였기 때문에 이런 요청이 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이게 과연 밴드가 성숙해 져가고 있다는 뜻인가 했지만 결국 이것이 밴드


의 발목을 잡을 덫과도 같다는 것을 느꼈다고. 그 당시 MCR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과 뭐든 닥치지 않고 진행했던 그 


미친 용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가족을 데리고 캘리포니아의 사막으로 여정을 떠난 제라드는 많은 생각의 시간을 보냈다. 새 앨범에 대한 방향뿐만 아니


라 밴드가 과연 음악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자리 잡을지,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갈구하고 있는 것이 무언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 무


렵 린지가 조언했다. “당신은 단순히 뮤지션이 아닌 아티스트잖아. [The Black Parade]에서 뭘 저질렀는지 생각해봐. 당신이 원하


는 걸 그냥 저지르고 사람들에게 보여줘.”






“서른 살이 넘은 시점에 이미 자신의 밴드가 모든 명성과 부를 얻었을 때 자연스레 30대 뮤직 히어로를 원하는 모던 록 컬쳐를 몸소 실


감할 수 있었다.”라고 제라드는 말한다. 아마도 명성으로 인해 달라진 주변 환경은 물론 NME 어워드에서 ‘Hero of the Year’ 상을 수


상한 영향도 있었을 듯 하다.








결국 MCR이 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닌 자유로움의 표출이었다. 그 동안 부담감으로 작용했던 모든 것에 대한 고민을 놓아버리


고 자신의 세계로 빠져든 제라드는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작업한 만화책에 등장하는 킬조이들(Killjoys)이라는 캐릭터를 음악


에 영입했고, 소비자주의, 팝 아트, 밴드를 향한 비난에 대한 항변 등 여러 가지를 조합해 리프를 만들었고 곡을 통해 표출했다. LA로 


돌아와 밴드 멤버들과 전작의 프로듀서 롭 카발로를 만난 제라드는 새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물론 그의 아이디어는 당장 


앨범을 완성할 만큼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밴드는 자유롭게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9년 3월 드러머 밥 브라이어가 탈퇴를 선언했고 밴드는 잠시 침체기에 빠진다. 하지만 이를 바로 잡아준 것은 프로듀서 


롭이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무작정 뛰어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무런 제한이나 규정 없이 작업할 것을 조언했고, 다


시 의기투합한 밴드의 결과물로 첫 싱글인 “Na Na Na”가 탄생했다.






“Na Na Na”로 물꼬를 튼 MCR의 창의력은 거침없이 발휘되었다. 제라드의 만화책에서 차용한 소외된 아웃사이더와도 같은 존재, 킬


조이들에 대한 테마나 틀에 박힌 세상에 대한 신랄한 가사, 그리고 직설적인 곡이 줄줄이 이어졌다. 






2010년 가을 드디어 [Danger Days: the True Lives of the Fabulous Killjoys](위험한 나날들 : 끝내주게 멋진 킬조이들의 실상)라


는 근사한 제목의 신작 발매일과 쿠엔틴 타란티노 스타일의 “데스 프루프(Death Proof)”를 연상시키는 연출의 프로모 뮤직 비디오 


“Art Is the Weapon”이 발표되었다. 




“우리는 대담하지 않은 건 안 해! (We don’t do anything but bold!)” - 제라드 웨이




제라드의 십대 시절 이슈와 할머니의 죽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은유를 표출했던 2, 3집에 비해 이번 신작 [Danger Days: the 


True Lives of the Fabulous Killjoys]는 세상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MCR은 [The Black Parade]보다 훨씬 선을 넘은 광


기를 표출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앨범 역시 대중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거나 젊은 이들의 문화를 망친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자신들


이 정말 ‘위험한’ 밴드가 맞을 것이라고 대담하게 세상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제라드는 자신이 세상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의견을 가사를 통해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앨범의 수


록 곡들이 대부분 있는 사실 자체를 노래하고, 좀 더 세상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매우 즐거운 프로세스였다고.






전작과는 달리 하나의 테마를 주제로 이루어진 앨범이 아니기에 이번 신작은 매우 꾸밈없이 심플하면서 극명한 곡들을 보여준다. 록


큰롤에 대한 러브 레터를 쓰고 싶었다는 제라드의 고백처럼 재기 발랄한 분위기와 많은 선배 밴드들의 영향을 받은 사운드가 다양하


게 구성되었다.






‘Art is the Weapon’ 프로모 비디오에도 등장하는 해적 라디오 방송 디제이 닥터 데스 드파이(Dr. Death Defy)의 오흐닝 멘트에 이어 


질주하는 펑크 록큰롤 넘버 ‘Na Na Na’가 대담하게 앨범의 막을 열고 마치 코믹 북의 영웅을 위한 주제가와도 같은 ‘Bulletproof 


Heart’가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앨범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기존의 MCR 사운드에서 엿볼 수 없었던 신서사이저와 전자음의 자유로운 차용이다. 키보드와 전자 사운드


를 바탕으로 미드 템포의 드럼 비트로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코러스 부분에서 폭발하는 ‘SING’이나 4/4비트의 하우스와 같


은 댄스 펑크 넘버 ‘Planetary(GO!)’는 마치 프란즈 퍼디난드가 지난 작품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차용한 개러지 록을 선보였던 것


처럼 그 동안 MCR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180도 반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동안 깨닫지 못했던 신세계를 발견했다. 
(We found a whole new world we didn’t know was there.)” - 마이키 웨이




공상과학 영화의 엔딩과도 같은 몽환적인 신서사이저 사운드와 심플한 기타 리프, 전자음 효과로 구성된 ‘The Only Hope For Me Is 


You’는 [The Black Parade]의 발라드 곡 ‘I Don’t Love You’의 희망찬 버전과도 같이 보이며, ‘Na Na Na’와도 흡사하면서 매우 거친 


펑크 넘버 ‘Party Poison’는 기존에 ‘Death Before Disco’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졌던 MCR의 초기작 중 하나로 이번 앨범의 분위기와


도 매우 잘 어울리면서 이들의 초기 시절을 회상시키는 발랄한 곡이다.








정통 록큰롤 사운드의 기타 솔로를 시작으로 MCR 전형의 폭발적인 진행을 보여주는 ‘Save Yourself, I’ll Hold Them Back’는 전작의 


‘Famous Last Word’와도 같이 심플하면서도 서사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이어 MCR표 발라드 넘버 


‘S/C/A/R/E/C/R/O/W’가 앨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MCR은 ‘S/C/A/R/E/C/R/O/W’가 밴드의 예술적인 면을 보여주는 곡이


자, 킬조이들의 세계에서 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경찰 세력에 대한 방어력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저물어 가는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


로 드라이브를 하는 킬조이들의 모습을 눈 앞에 펼쳐주는 배경음악과도 같은 ‘Summertime’은 마치 뮤즈의 ‘Starlight’과도 같이 무한 


엔돌핀을 뿜어내는 미드 템포의 넘버로 ‘S/C/A/R/E/C/R/O/W’와 비슷한 맥락을 이어간다.








앨범의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헤비한 사운드로 다시 박차를 가하는 ‘DESTROYA’가 새로운 전환을 부여하면서 끝까지 달릴 것 같은 예


상을 뒤엎고 나타나는 ‘The Kids From Yesterday’는 떼창을 유도하는 멜로디의 코러스가 귀에 쉽게 감기며, 마지막 곡 전에 작별을 


고하는 닥터 데스 드파이의 전언과 함께 영화 ‘컬리 수’의 장면처럼 방송의 종결을 알리는 미국 국가가 펼쳐진다.






트와일라잇 사운드트랙에 곡을 실으라는 주변의 수많은 요청에 답해 만든 ‘Vampire Money’은 록키 호러 픽쳐 쇼를 연상시키는 정통 


록큰롤+펑크 사운드, 그리고 마구 달리지만 시끄럽지 않은 경쾌한 구성과 함께 트와일라잇 OST에 참여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칭


하는 뱀파이어 머니에 대한 직설적인 가사가 웃음을 자아내며 앨범의 막을 장식한다.






[Danger Days: the True Lives of the Fabulous Killjoys]는 MCR의 극명한 자유 논리를 표출한 한편의 서사시와도 같다. 미래는 방


탄된 세상과도 같이 완전하다고 노래하는 이들의 대담한 표현 방식은 매우 컬러풀하며 빠르게 진행된다. 






완전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MCR이 말하자 하는 진정한 록큰롤 사운드, 그것이 바로 이 앨범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위험하지만 멋진 실생활”일 것이다.






 

 

 

 

 

 

 

 

 

 

 

 

 

 

 

 

 

 

 

 

29. Hoobastank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모던 록계의 희망봉 Hoobastank

 

 

더그 롭 (보컬), 댄 에스트린 (기타), 크리스 헤세 (드럼), 제시 찰런드 (베이스)로 이루어진 캘리포니아 출신 4인조

 

포스트 그런지 록 밴드 Hoobastank!

 

 

보컬인 '더 그롭'이 고등학교 밴드배틀에서 알게된 '댄'과 밴드를 결성하기로 약속하고 

 

'베이시스트로 마쿠'와 '헤세'를 영입하면서 후바스탱크를 결성하게 됩니다

 

 

 

 

 

 

그들은 2001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작 [Hoobastank] 로 일약 모던 록계의 희망봉으로 솟아올랐다.

 

 

첫싱글인 Crawling in the Dark가 빌보드 핫 차트 68위 모던락 차트7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mp3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하는등 좋은 성적으로 시작합니다 

 

 

 

이어 2003년 발표한 성공적인 소포모어 앨범인 [The Reason] 타이틀 트랙인 The Reason은

 

2004년도에 빌보드 핫차트 2위까지 오르고 미국과 세계 모던락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미국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캐나다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합니다 

 

 

 

 

화끈한 볼륨 업으로 듣는 이들의 청각적 감수성을 습격하는 첫 곡 'Same Direction' 을 비롯하여 첫 싱글 'Out of

 

Control', 미드 템포 발라드 'Lucky'와 'Unaffected'등의 업그레이드된 트랙들을 선보였다.

 

 

 

 

이 앨범으로 Hoobastank는 음악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많은 팬들에게 보여주었고,

 

새로운 록의 대안을 제시하는 미국 록 음악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30. Linki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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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코어를 매니아용 음악에서 '대중 음악' 으로 끌어올린 Linkin Park!

 

 

그들은 록음악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Fuck' 등의 비속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멤버 전원이 술, 담배, 마약 등과 담을 쌓고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존의 록 밴드가 가지고 있던 불량스러운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는 '모범생 밴드'

 

Linkin Park는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기성 세대에도 호감이 가는 밴드로 자리 잡았다. 

 

 

 

Linkin Park는 사우스 캘리포니아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인 Brad Delson(기타), Mike Shinoda(보컬), Rob Bourdon(드럼) 의 라인

 

업으로 구성되었다. 이어 아트스쿨에서 공부를 하던 DJ Joseph Hahn (한국계라고 알려져 있다), Chester Bennington(보컬)이 합

 

류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발표한 데뷔 음반인 [Hybrid Theory]은 차트 16위에 올라서며 플래티넘을 획득했고, 수록곡 'Crawling'과

 

'One Step Closer'는 모던 록 차트에서 각각 9위와 5위를 차지하는 등 Linkin Park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의 데뷔 음반은 2년에 걸쳐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또한 이들은 44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하드 록 보컬 부문을 수상했으며, 롤링 스톤지는 '올해의 인물'로 Linkin Park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Linkin Park는 초창기 Korn이나 Limp Bizkit의 아류라는 편견을 완전히 뒤엎었다.

 

 

2003년에는 미국보다 하루일찍 국내에 소개된 [Meteora]를 발표하여 'MTV' 에서 최고의 록 뮤직비오'Somewhere

 

I Belong' 및 팬들이 선정한 뮤직비디오'Breaking the Habit' 상을 받았고,

 

 

 

2004년 라디오 뮤직 시상식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및 올해의 곡'Numb' 부문에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비록 'Meteora'는 'Hybrid Theory'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2003년 한 해동만 많이 팔린 음반 3위를

 

기록하였고 린킨 파크는 처음으로 전 세계 투어 공연 및 프로젝트 레볼루션, 몇 개의

유럽 공연을 가졌다.

 

 

 

 

 

'Meteora'가 성공한 후, 밴드는 다음 음반 작업을 몇 년간 미루고 여러 프로젝트 활동을 시작하였다

 

 

04년, 밴드는 '제이-지'와 함께 리믹스 음반 작업을 해 2004년 11월 'Collision Course'를 발매한다.

 

 

시노다는 또한 사이드 프로젝트인 '포트 마이너'를 새로 결성해 제이-지 등 여러 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아

 

데뷔 음반 'The Rising Tied'를 발매하고 비평가들에게서까지 호평을 들었다.

 

 

 

 

 

 

 

린킨파크는 대중그룹 답게 여러 자선행사 ('허리케인 찰리',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들에게 기부, 2004년 3월 미국

 

특수부대군인재단에 7만 5천 달러를 기부,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 사태등) 에 많이 참가하여 좋은 이미지를 굳혔다

 

 

 

 

이후 새로운 음반작업에 체스터 베닝턴은 언론을 통해

 

이전에 했었던 '뉴 메탈'에서 새로운 장르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나온 앨범 'Minutes to Midnight'은 첫 주에 6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린킨 파크가 근래에 작업한 음

 

반 중 가장 성공한 음반 하나로 기록되었고 또한 '빌보드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하였다.

 

 

 

 

또 한 음반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곳곳에 투어를 전개면서 2008년 프로젝트 레볼루션 투어를 마지막으로 3집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이후 영화 OST에 참여 , 게임사업, 2010 첫번째 투어를 알리면서 새 앨범을 알리는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있다


 

 

 

 

 

 

 

 

 

 

 

 

 

 

 

 

 

 

 

 

 

 

 

 

 

 

 

 

 

 

 

 

 

 

31. Fall Out Boy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21C를 이끄는 팝 펑크의 한 획  Fall Out Boy!

 

 

 

능수능란한 프로덕션과 상업적 마인드의 작곡 능력, 대중을 사로잡는 베이스 연주자를 갖춘

 

폴 아웃 보이는 2005년 중반 이모 신(Scene)의 선두로 떠오른다.

 

 

 

 

밴드의 4명의 멤버들은 최초로 시카고의 윌멧(Wilmette)에서 2001년에 만난다.

 

 

 

드러머로 오디션을 보았지만 매력적인 목소리로 밴드의 보컬이 된 패트릭 스텀프(Patrick Stump), 베이스와 작사를 맡고있는 피

 

트 웬츠(Pete Wentz) 드러머 앤디 헐리(Andy Hurley), 그리고 기타리스트 조 트로만(Joe Trohman)은 모두 시카고의 하드코어

 

언더 그라운의 다양한 밴드에서 활동을 해왔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사실 폴 아웃 보이는 결성 초기에 이름이 없는 밴드였다.

 

공연 도중 이들은 관중들에게 밴드 이름을 지어 달라고 소리쳤고 한 관중의

 

제안으로 지어졌던 밴드 명이 심슨의 “Radioactive Man” 동료를 지칭하던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 였다.

 

 

이들은 2001년 셀프 데모를 통해서 데뷔했다. 이듬해인 2002년 5월 28일 그룹

 

프로젝트 로켓(Project Rocket)이 피치링한 EP 앨범 [Split]과 2003년 미니 앨범

 

 [Fall Out Boy's Evening Out With Your Girlfriend] 를 선보인다.

 

 

 

 

 

 

이후 폴 아웃 보이는 2003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프로듀서 션 오키프(Sean O’Keefe)와

 

작업한 [Take This To Your Grave]를 발매하며 드디어 인지도를 얻게 시작했다.

 

 

 

 

그 후 2005년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정식 메이저 데뷔작 [From Under The Cork Tree]를 발매했다.

 

 

 

 

그들의 “Breakout” 앨범이라 할 수 있는 [From Under The Cork Tree]로 폴 아웃 보이는 2005년 봄을 시작으로 빌

 

보드 앨범 차트에서 10위권내로 진입하게 된다(최고 순위 9위).

 

 

 

이어서 싱글 ‘Sugar We’re Going Down’과 ‘Dancd, Dance’가

 

연속으로 빌보드 팝 싱글차트 Top 10에 진입하게 된다.

 

 

 

 

 

 

이후 계속되는 인기로 폴 아웃 보이는 대대적인 세계 투어와 공연, 뮤직어워드쇼 등 휴식없는 바쁜 일정을 보냈고,

 

 

 

2007년 이들의 두 번째 메이저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Infinity On High]를 발매한다.

 

 

발매하자마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리드 싱글 ‘This Ain’t A Scene, It’s An

 

Arms Race는 빌보드 팝 싱글차트 2위, UK 싱글차트 2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폿 아웃 보이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008년 초, 에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있었던 이들의 라이브 공연을 담은 CD/DVD 패키지 [Live In Phoenix]가 발매됐고,

 

 

2009년에는 5번째 스튜디오 앨범 [Folie a Deux]를 발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0년 2월, 비공식적인 폴 아웃 보이의 해체 소식을 듣게 된다

 

 

많은 논란이 일었던 가운데 블로그를 통해 피트 웬츠(Pete Wentz)가 해체에 관한 글을 올렸으며,

 

리더인 패트릭 스텀프(Patrick Stump)가 한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했었죠.

 

 

이후 각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에 들어갔고, 패트릭은 2010년 중반을 목표로 솔로 앨범 발매를 준비 중에 있다.

 

 

 

 

 

 

 

 

 

 

 

 

 

 

 

 

 

 

 

 

 

 

 

32. StarSailor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

 

 

 

포스트 브릿팝 시대의 슈퍼스타 이자 희망 Starsailor

 

 

 

기타,보컬 "제임스 월쉬"를 축으로 이뤄진 4인조잉글랜드 위건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96년 월쉬가 베이시스트 "제임스 스텔폭스"와 드러머 "벤 번"을 만나면서 스타트를 끊은 이래

 

키보디스트 "배리 웨스트"드가 막차를 타면서 현재의 라인업을 완성하였다.

 

 

 

 

Starsailor 라는 밴드명 자체가 전설적인 포크 뮤지션 팀 버클리 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니

 

자연산 어쿠스틱 사운드에 깊은 애정이 있음이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일이다

 

 

 

 

때문인지 이들의 음악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

 

아무때고 꺼내서 들을수있는 편안함이 있어서 한결 친숙한 느낌이며

 

또 한 이들만의 구슬픔을 선보이며 우리들 곁으로 다가온다

 

 

 

 

 

스타세일러는 정식데뷔 이전부터 이미 상당히 호평을 받아왔다

 

제2의 트래비스,콜드 플레이 라는 갖은 찬사와 그 뒤를 잇는 브릿 팝의 희망이라 불렸다.

 

 

일례로 당시 영국의 음악 전문지인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ew Musical Express)는 그들에게 콜드플레이의 반대 의

 

미인 웜플레이(Warmplay)라는 별명을 헌사하며 대대적인 환영의사를 밝혔던 바 있다.

 

 

 

 

현재와 같은 라인업이 2000년도에 완성되고 스타세일러는 자신들의 선율 제조 능력을 단번에 검증받았다.

 

여기에 누구와도 대별되는 제임스 월시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스타 파워를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탁월한 곡 쓰기와 제임스 월시의 개성적 가창의 합일은

 

스타세일러가 히트의 고속도로로 곧장 진입할 수 있었던 비기(秘技)였다.

 

 

 

 

물론 제임스 월시 역시 선배들의 잔영이 감지되는 보이스를 지녔지만 하나가 아닌 여럿이 녹아 들어있기에,

 

즉 다중(多重) 캐릭터를 지닌 목소리로 인해 그만의 보컬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과거의 유산들을 음악적 자양분 삼아 체내에 흡수한 뒤, 자신만의 보컬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스타세일러는 이른바 포스트(post)의 족쇄에서 벗어나 그룹만의 독자성을 일궈낼 수 있었다.

 

 

 

 

 

 

그런 찬사속에 만들어진 첫싱글 Fever!! 이 싱글은 나오자마자 차트에 오르고 엄청난 찬사를 받는다

 

 

 

첫싱글 fever와 1집 Love is here은 신생밴드 답지않게 완성도면서 매우 훌륭하고 영국에서 또 하나의 훌륭한 초식계

 

브릿팝의 희망이 나왔다는것을 알림과 1집은 데뷔작이자 스타세일러의 음반중에 가장 훌륭했다는 평을 받는다

 

 

 

 

1년 뒤 국민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은 전작을 뒤로하고 2집 "Silence is easy" 을 발표한다.

 

 

2집을 준비하는동안 전 세계로 투어를 돌고 가정을 가지면서 무겁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1집에서 부각된 Lullaby 나 Fever 에서의 압착된 우울함은

 

여전히 2집에서도 그런한 매력을 고스란히 담은 월시의 성대를 통해 잘 발산되었다.

 

 

오히려 Telling Them , White Dove 등의 완전한 브릿팝 트랙들을 통해

 

점령한 영국 국민가요 다운 작법의 고지는 상당히 높아보였다.

 

 

 

 

요컨대 트래비스나 콜드플레이의 견고한 대중성에 견줄만큼 풍성하고 감미로운 그래서 대중에게 더욱 더 다가가기 쉬

 

운 멜로디 메이킹과 편곡상의 센스를 보여준 작품이였다.

 

거기에 Four to the floor 같은 곡을 보면 포크성향이 강했던 전작과 달리 록삘이 좀더 충만해졌다.

 

 

 

 

 

그로부터 2년후 어느가을 3집 On The Outside로 돌아왔다

 

성공적인 1,2집 이후 이들은 새로운 변신을 고심하고 헤비하게 바뀐 사운드로 대변신을 하였다.

 

 

 

3집을 발표할때 월시는 "다른 밴드들이 미니멀하고 블루지한 노래를 만들어내려 애쓸 때 우리는 반대로 가능한 한 크고

 

넓게 펼쳐진 스크린과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라고 말했다.

 

 

 

그동안 어쿠스틱한 감성적인 노래를 해왔던 스타세일러


 

그러나 헤비해진 사운드를 다루기엔 스타세일러와의 이미지가 안맞았고,

 

 

가을밤의 고즈넉한 정취 속에서 이 "별의 항해자들"과 함께 달콤 씁쓸한 감정을 공유하고자 했던

 

기존의 팬들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준다

 

 

 

 

 

스타세일러 3집의 실패 원인은 다름 아닌 강성(剛性) 록에의 집착에 있었다.

 

자연스레 전반적인 선율감은 떨어졌고, 귀에 들리는 맛도 덜했다.

 

 

 

 

 

 

그후 음악적 도전과 고심끝에 4집 All the plans 로 다시 어쿠스틱한 감성을 가진 브릿 팝으로 돌아온다

 

 

"All The Plans" 는 뮤지션 스스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음반이다.

 

 

스타세일러의 이번 네 번째 작품은 지난 3집의 실망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는 것을 훌쩍 넘어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르면서 한 편의 록 파노라마를 그려낸다.

 

 

 

 

또한 어두운 포크적 감성이 메인 메뉴였던 1집에 비해

 

본 4집은 2집 때처럼 보다 다채로운 소리의 가능성들을 끌어와 차별화를 굴삭한다.

 

 

 

 

 

그래서 ‘blue’라기보다는 ‘romantic’에 가깝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확장된 스케일인데, 오버드라이브 기타와 풍성한 건반, 잔잔한 여성 코러스의 하모니가 압권인 타이틀 ‘All

 

The Plans’를 비롯해 슬로 템포 발라드 ‘Neon Sky’, 외지의 평가를 빌리자면 “견고한 비트와 환상적인 하모니가 결합한 ‘You

 

Never Get What You Deserve’ 등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더불어 전체적으로 볼륨을 높여 더 ‘로킹’해진 점도 인상적이다.

 

아마도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 3집의 실패가 멤버들에게 큰 교훈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텐데, 이렇게 하나둘 따지고

 

보면 예상 외로 많은 실험을 가한 작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집 앨범 [All The Planes]는 

 

메인스트림 록의 주요한 미덕을 훌륭하게 실천하고 있는 ‘올해의 기대치 못했던 발견’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 스타세일러의 시간은 데뷔 시절을 향해 거꾸로 가고 있다.

 

 

그리고 얼마 뒤 이 시간이 담겨진 모래시계가 바닥나게 되면, 시간은 다시 순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힘찬 움직임으로

 

 

 

 

 

 

 

 

 

 

 

 

 

 

 

 

 

 

 

 

 

 

 

 

 

 

 

 

 

 

33. Pink Flo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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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레시브 락 ( Art Rock ) 의 정화 Pink Floyd

 

 

 

 

1965년 영국 런던에서 시드 바렛, 로저 워터스, 닉 매이슨(드럼), 릭 라이트(키보드), 데이비드 길모어(기타)로

 

라인업을 결성했다.

 

 

 

 

그룹 이름은 블루스 연주자 핑크 앤더슨(Pink Anderson)과 플로이드 카운실의 첫이름을 따서 붙였다.

 

 

 

보컬과 기타 연주, 작곡을 겸한 바렛이 그룹을 이끌었으며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의 불협화음 등을 혼합하여 영국 전위

 

음악계를 이끄는 그룹으로 부상했다.

 

 

 

 

 

 

핑크플로이드는 음악적으로는 사이키델릭을 기본으로 하며 내용적으로는 현대사회의 개인화 성향에 대한 비판이 전성

 

기 음반의 주 된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1967년 초에 성(性) 전환자에 관한 노래 "아널드 레인 Arnold Layne"을 발표하여 영국에서 히트했고

 

뒤이어 데뷔 앨범 "더 파이퍼 앳 더 게이츠 오브 돈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과 즉흥연주를 도입한

 

"인터스텔러 오버드라이브 Interstellar Overdrive"를 발표했다.

 

 

 

 

 

 

1968년 바렛이 기타 연주자 길모어로 교체된 후 공연 활동에 주력하면서 《아톰 하트 머더 Atom Heart Mother》

 

(1970)와 《메들 Meddle》(1971)로 미국의 인기순위에 올랐으며,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Dark Side of the Moon》(1973)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작곡을 맡은 워터스는 죽음과 정서적 불안을 강조하는 침울한 음악적 경향을 보였는데,

 

그의 음악성 덕분에 그룹은 10년 이상 미국의 인기순위 상위권에 머물렀다.

 

 

 

바렛을 위한 노래 《샤인 온 유어 크레이지 다이아몬드 Shine On You Crazy Diamond》가 수록된 앨범

 

《위시 유 워 히어 Wish You Were Here》(1975)는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애니멀스 Animals"(1977)를 발표한 뒤 그룹 내부의 갈등이 깊어져 1979년 "더 월 The Wall"이 베스트셀러 앨범이

 

되었음에도 워터스가 라이트를 해임하는 등 불협화음을 보이다가 "더 파이널 컷 The Final Cut"(1983) 이후 활동을

 

중단했고, 밴드의 이름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싸고 법적 시비를 벌이기도 했다.

 

 

 

 

 

 

해체 이후에 워터스는 솔로로 활동했으며 길모어와 메이슨·라이트는 재결합하여 "어 모먼터리 랩스 오브 리즌 A Momentary

 

Lapse of Reason"(1987)과 "더 디비전 벨 The Division Bell"(1994) 등이 수록된 2장의 앨범을 내놓았다.

 

 

 

 

19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부문에 올랐다.

 

 

 


 

 

 

 

 

 

 


 

 

 

 


 

 

 

 

 

 

 

 

 

 

 

 

 

 

 

 

 

 

 


 

 


 


 

 

34. Judas Pr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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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을 가르는 메탈머신 Judas Priest

 

 

 

 

헤비 메탈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룹이 누구냐?' 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의 음악팬들은 주저없이 Judas Priest를

 

꼽을 것이다.

 

 

70년대 영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Glenn Tipton과 Rob Halford에 의해 결성된 Judas Priest는

 

30년 가까이 '헤비메탈의 신'으로 군림해 왔다.

 

이들은 1971년부터 몇번의 시행 착오 끝에 1974년 대망의 1집 [Rocka Rolla]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끝에 발매된 이 데뷔 음반은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하였다.

 

 

 

 

이어 그들의 이름을 알리게 만든 1976년 작 [Sad Wings Of Destiny]는 보다 강력해진 기타음과

 

서정적인 건반 연주가 공존하며 헤비메탈의 폭발력과 아트록의 아룸다움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음반으로

 

팬들에게 그룹을 각인시켰다.

 

 

이 앨범을 성공으로 'CBS'와의 계약을 체결하고 [Sin After Sin]과 [Stained Class]를 잇따라 발표해

 

호평을 받으며 화려한 시기를 예고했다.

 

 

 

 

이후에도 [Hell Bent For Leather]와 [British Steel]을 발표, 'Before The Dawn', 'Breaking The Raw', 'Living After Midnight'

 

등의 싱글을 히트시켰다.

 

 

 

미국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올리며 그칠 줄 몰랐던 이들은 [Ram It Down] 발표 후 드러머 Dave Holland가 탈퇴하면

 

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Racer X 출신의 테크니션 Scott Travis가 가세해 만든 작품 [Painkiller]를 공개하면서

 

다시 한 번 영광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자살을 시도한 2명의 팬들 때문에 고소를 당하면서 93년까지 법정 싸움을

 

했고, 이런 갈등으로 인해 이들의 인기는 하락세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보컬인 Rob Halford 는 그룹을 떠나 Fight라는 새로운 팀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Judas Priest는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실력파 보컬리스트 Tim "Ripper" Owens를 투입하여 7년 만에 신보

 

[Jugulator]를 발표하며 팬들의 우려를 잠재웠다.

 

 

2001년 이들은 다시 [Demolition]을 공개해 열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35. Snow Patrol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레코드  'Snow Patrol'

 

 

 

 

스노우 패트롤은 북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출신들로 이루어진 5인조 얼터너티브 밴드이다.

 

리드기타이자 보컬인 개리 라이트보디에 의해 1994년 스코틀랜드에서 슈러그 (Shrug)라는 이름으로 처음 결성되었다.

 

이후 '조니 퀸'과 '네이단 코널리','마크'로 라인업을 맞추고 후에 '마크'가 탈퇴하고 '톰 심슨'.'폴 윌슨'이 합류한다.

 

 

 

1997년 밴드의 이름을 Snow Patrol 로 바꾸면서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그들은

 

'When It's All Over We Still Have To Clear Up','Songs For Polarbears' 이라는 두장의 앨범을

 

마이너 레이블을 통해 공개하며 꾸준히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결국 메이저 레이블인 폴리도어와 계약을 체결한 그들은 2003년 첫 싱글'run'이 영국 싱글차트 5위에 오르는

 

대 히트를 기록하고 세장의 싱글이 연속으로 차트에 오르는 대선전을 하며

 

메이저 데뷔 앨범 [Final Straw]를 전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들어 놓는다

 

 

 

 

2005년 라이브 8 공연에 오를 정도로 밴드로서의 무게감을 인정받은 스노우 패트롤은

 

2006년 [Eyes open] 을 발표하는데 'Chasing Cars' 등이 기록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2006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타이틀을 거뭐쥐었고 세계적으로도 500만장이나 판매를 하게된다

 

 

 

 

 

특히 chasing cars는 최고인기 드라마 '그래미 아나토미'의 ost가 되면서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5위에 오르며 13년 만에 빌보드 싱글차트 5위권에 진입한 영국 밴드라는 칭호를 얻었고,

 

앨범이 미국에서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하는데 큰 기여를한다.

 

 

 

 

 

 

2007년 영화 '스파이더맨 3'의 주제곡 'Signal Fire'를 공개하며 화제가 되었고

 

'라이브 어스'에 출연하며 런던의 웸블리 구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스노우패트롤은

 

2008년 앨범 'A Hundred Million Suns'를 통해 히트 싱글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잔잔하고 경쾌하며 때론 고요한 적막감을 노래한다.

 

조용한 보컬보이스로 시작해 점점 터져나오는 듯한 기타 리프음들

 

그들의 기타 손놀림은. 억지스러움 없이 정말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흥분시키며

 

사운드트랙 0초부터 끝까지 관중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리듬을 타게 만든다.

 


 


 

 

 

 

 

 

 

 

 

 

 

 

 

 

 

 

 



















 

 

 

 





36. Bon 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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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락의 교과서 Bon Jovi 








1983년 뉴 저지에서 결성된 아메리칸 록 밴드 본 조비는 리더 존 본 조비(Jon Bon Jovi)를 중심으로기타리스트 리치 샘


보라(Richie Sambora), 키보디스트 데이빗 브라이언(David Bryan), 드러머 티코 토레스(Tico Torres), 1994년 전 베이시


스트 알렉 존 서치(Alec John Such)를 대신해 현재 베이시스트로 활약중인 휴즈 맥도날드(Hugh McDonald)의 멤버로 현


재까지 26년간 변화없는 라인업을 유지하며 활동 중입니다. 





 

락의 교과서와도 같은 1986년 세 번째앨범 [Slippery When Wet]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게 되는데요이 앨범에 수


록된 ‘Livin’ On A Prayer’는 본조비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들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 밖에도 대표곡이라 칭


할 수 있는 ‘You Give Love A Bad Name’, ‘Wanted Dead Or Alive’, ‘Bad Madicine’, ‘Keep The Faith, ‘Bed Of Roses’, 


‘Always’, ‘It’s My Life’, ‘Have A Nice Day’, 그리고 가장 최근 히트 싱글 ‘We Weren’t Born To Follow’’ 등이 그들을 이름


을 기억하게 할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인류 최고의 밴드들 | 인스티즈80년대 후반 다수의 투어를 갖게 된 것을 시작으로, 90년대 뉴 저지 투어를 마지막으


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가운데존 본 조비와 리딩 기타리스트였던 리치 샘보라 각


각의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이후 1992년 이들은 다시 의기투


합하며[Keep The Faith] 앨범을 들고와 1980~90년대 성공적인 팝 메탈 밴드로 자리


매김하게 됐으며이후 2000년대 첫 싱글 ‘It’s My Life’를 발표한 이후 두 번째 휴식


기에 돌입하게 됩니다.





 

2000년대 돌아온 본 조비는 새로운 진화를 이루게 됐는데요. 8,90년대 초 음악사의 한 축을 이뤘던 정 통메탈을 벗어나 당


시 뉴 메탈의 급부상으로 록 음악계 격동기를 이뤘던 시점과 맞물려 젊은 청자들에게 어필하는 신선한 록 음악을 제시하게 


됩니다이후 정통 하드 록에서 팝 메탈로 변신을 꾀하며 다소 대중적인 느낌의 얼터너티브와 함께 최근엔 미국 음악에 주


류로 떠오른 컨트리 록까지 이들의 음악적 소재로 만들어, 2009 11월 싱글 ‘We Weren’t Born To Follow’를 발표하게 됩


니다.

 





이들은 총 11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2장의 컴필레이션 앨범한장의 라이브 앨범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총 1 2천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고, 2006년 명예의 전당 헌액과 함께 2004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를 비롯, 2009년 작곡가 명예의 전


당에 존 본 조비와 리치 샘보라가 가입되기도 했습니다.











37.  The 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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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소울 차세대 아이리쉬 The Script











아일랜드라 하면 으레 U2나 밴 모리슨(Van Morrison),그리고 최근 해체를 선언한 웨스트라이프(Westlife) 라던가 영화


[원스[Once]의 주인공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의 예시들로 미루어 봤을 때 아일랜드라는 나라는 은연중에 음


악강국으로써 전세계에 세력을 뻗쳐나가는 지역이었다. 이들의 곡에는 아이리쉬 특유의 악센트 이외에도 어떤 서정성 같


은 대목들이 감지됐고 그런 요소들은 불현듯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 치게끔 유도해냈다. 





최근에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3인조 밴드 스크립트(The Script)가 이런 아이리쉬 대형 뮤지션들의 대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보도를 탔고 크게 선전해내고 있다












대니 오도우너휴 와 마크 시한은 10대에 더블린, Michael의 거리의 도심지역 클럽에서 만났다. 그들은 그 당시 MTV 에 


나오던 흑인 미국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가까워졌다.



마크와 시한과 대니 오도우너휴는 1996년 My Town이라는 밴드에 소속되었다. 이 밴드는 보이 밴드로서 본래에 네명의 


구성원이 있었다. 구성원 : 대니 오도우너휴 (Danny O'Donoghue), 마크 시한 (Mark Sheehan), 테리 델리(Terry 


Daly)와 폴 워커 (Paul Walker).




이들은 또한 일찍이 재능있는 위대한 음악가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서 R&B의 전설이 될 Dallas Austin, Montell Jordan 


와 Teddy Riley를 직접 ?아가 그들 중 어떤이를 ?아가 음악제작을 하기로 약속한 상태에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초대했


다.





그들은 수년 동안 영국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블린으로 돌아가 그들의 새로운 밴드에 글랜 파워를 뽑아서 구성했


다. 글랜 파워는 15살때 그의 자본으로 자신의 집에서 솔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곤 했다. 하지만 대니 


오도우너휴와 마크 시한을 만나고 나서 글렌 파워는 그 일을 그만두고, 그들과 함께 글렌 파워의 집에서 한주만에 음악 3


곡을 만들었다. 글렌은 이를 두고서 "나는 어떠한 밴드에서도 나의 자유를 표현하지 못했다." ("I had never had a 


chance with any other band to express myself with such freedom.")이라고 말했다. 




이는 서로가 존중하며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서 The Script 밴드는 결성되었고 밴드는 2005년 


(Phonogenic)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Last.FM에 EP에 출시되었다. 밴드는 diverse 그룹의 음악가들과 U2, The 


Police, The Neptunes, Timbaland, 그리고 Van Morrison의 영향을 받았다.





이 밴드의 최대 매력은 Script(대본)라는 이름에서 정체성과 지향성이 드러나는 것처럼, 


가사 한줄 한줄이 명대사라는 것이다.



가사의 예술성 보다는 깊은 감성을 자극하고 그 깊이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더 스크립트는 밴드 시작부터 록 음악의 전형에서 벗어난 사운드를 선보여 왔는데, 밴드 결성의 주축 멤버였던 대니와 기


타리스트 마크시언이 어려서부터 흑인 음악을 좋아했던 영향이 크다. 이 두사람은 이곳 빈민가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음악이라고 여겼으며,그 동경의 대상은 스티비 원더였다.



아일랜드가 낳은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U2 그래서 아일랜드 출신 신예들은 거의 대부분 U2의 뒤를 잇는 아일랜드 대표 


밴드라는 클리셰가 뒤따르지만, 더 스크립트는 U2가 힙합 비트를 만났다는 재미있는 평가를 듣고 있다.





























 

 

1.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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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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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실력파 Vocalist를 배출한 록 밴드  "부활"

 

 

 

기타리스트 김태원을 리더로 섹시한 보컬 이승철, 채제민(드럼), 서재혁(베이스)로 라인업을 이룬

 

대한민국 대표 록밴드"부활"이다.

 

 

 

이승철이 참여한 1집과 2집에서 '부활'은 '희야'라는 곡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누린다.

 

 

이제는 고전이 된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슬픈 사슴', '인형의 부활', '슬픈 환상' 등은 그들을 추종하던 모든 밴드의 카피 곡이 되

 

었으며 2집에서 김태원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회상'은 부활을 전설 속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아직까지도 부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2집에선 한꺼번에 많은 곡이 인기를 얻었으며 '천국에서' 등은 두고두고 매

 

니아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1987년 2집을 끝으로 이승철이 솔로로 독립하며 멤버들이 각자의 길로 흩어져 잠시 해체했던 부활은

 

1993년 김태원이 6년만에 그룹 작은 하늘의 보컬리스트였던 김재기와 앨범 작업을 시작하며 다시금 가요계로의 복귀

 

를 선언했다.

 

 

 

그러나, 앨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김재기가 교통사고로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김태원은 결국 정준교, 김성태, 故 김재기의 동생 김재희와 후반부 작업을 마쳤고 이 작업이 '사랑할수록'이라는 대히

 

트곡을 내며 그들의 앨범 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한 3집과 함께 화려하게 솟아오른다.

 

 

 

 

여기에는 김재기의 유작 '사랑할수록'의 힘이 컸다.

 

이후 부활은 박완규, 김기연, 이성욱, 다시 이승철 등의 보컬로 교체되며 내부에서 새로운 변화를 계속 시도하였다. 

 

 

2003년에 발표한 부활의 8집 [Never Ending Story]를 발표하여 3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며 국내 Rock

 

음악의 지존임을 입증한다.

 

 

 

1년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발표한 9번째 앨범 [Over The Rainbow]는 부활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장 한국적인

 

Rock Ballad곡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Rock음악의 세계를 담고 있다.

 

 

 

 

타이틀곡인 '아름다운 사실'은 음악 케이블 TV에서 뮤직비디오로 소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섬세하면서도 빼어난 가창력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Rock Ballad의 수작이다.

 

 

 

 

 

 

 

 

 

 

 

 

 

 

 

 

 

 

 

 

 

 

 

 

 

 

 

 

 

 

 

 

 

 

 

 

 

 

 

 

 

 


 

2.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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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살아있는 전설의 록 밴드 " N.E.X.T "

 

 

신해철은 정기송과 이동규와 함께 그룹을 결성하고 그룹명을 '넥스트(N.EX.T)'로 정하였다.

 

 

넥스트란 새로운 실험집단(New EXperimental Team)이란 말의 줄임말로 항상 새로운 것에 끝없이 도전하는 그들의

 

음악적 성향을 나타내준다.

 

 

 

 

1992년 이들은 데뷔앨범 [Home]을 발표, 일렉트릭 사운드가 강조된 테크노와 헤비메탈, 그리고 사이키한 록 사운드

 

에 사물놀이가 결합된 형태의 프로그레시브한 음악들이 담긴 이 앨범은 TV방송활동 없이 오로지 공연 위주의 활동만

 

으로 수십만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넥스트는 이 앨범을 통해 기존의 록 그룹과는 달리 탈 언더그라운드 그룹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2집 [The Return of N.EX.T - Being]에서는 정기송이 팀에서 빠지고 임창수, 이수용, 이동규로 팀을 정비하여

 

1집에 비해 더욱 강렬한 메시지와 하드한 사운드로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열광시켰고,

 

타이틀곡 '날아라 병아리'는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1995년 넥스트는 신해철을 주축으로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의 진영으로 다시 한번 새롭게 팀을 구성하고 보다 진보된 사운드 프

 

로덕션과 앨범 아트워크로 완성도를 높인 3집 [The Return of N.EX.T - World]를 발표하였다.

 

 

 

 

 

3집은 동성동본 문제를 다뤄 많은 화제와 인기를 모았던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해' 등을 비롯해 전작에 비해 보다

 

사회적인 문제에 접근한 메시지를 담은 수록곡들이 들어있다.

 

 

 

 

이후 연이어 두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 넥스트는 1997년 4집이자 국내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 앨범인

 

[Lazenca-A Space Rock Opera]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그룹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4집 앨범은 타이트한 연주에 드라마틱한 구성과 강한 멜로디 라인을 가진 앨범으로, 특히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대중적으로 큰 인

 

기를 누리며 많은 화제가 되었다.

 

 

 

 

 

해체된 이후 다른 그룹을 결성해 호라동하던 신해철은 쭈니, 데빈 리, 쌩과 함께 넥스트를 재결합해 2004년 5집 [Dear American]

 

을 발매, 넥스트만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3. 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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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적인 슬픔이 흐르는 맑은 선율 'Nell'

 

 

그들은 국내 모던락 장르 중에서도 어느 팀에게도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음율과 사운드 컬러를 지닌 밴드이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모여 1999년 처음 밴드를 조직하고 그 해 8월 조디포스터 주연의 영화 제목에서 따와 밴드 이름을

 

'넬(Nell)'로 바꾸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전곡의 작사·작곡을 담당한 보컬 '김종완'을 비롯하여 기타리스트 '이재경', 베이시스트 '이정훈', 드러머 '정재원'은 모두 80년생임

 

에도 불구하고 멤버 각자 상당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1년 1월에 1집 [Reflection Of Nell] 그리고 그 해 9월에 2집

 

[Speechless]를 발매하여 팬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아 왔다. 


 

 

 

그들이 2003년 '서태지컴퍼니'의 '괴수인디진 레이블'에 합류하여 오랜 기간의 음악 작업 끝에 6월 12일,

  

새 앨범 [Let it rain]을 발매하게 되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맑은 슬픔과 서정미는 넬만의 고유한 코드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을 넬만의 서정적인 단어들로 아름답게 표현한 가사..

 

그리고 절제로 일관되다가 어느 순간 거침없이 쏟아놓는 보컬의 음색은

 

 

이내 듣는 이로 하여금 아픈 감정선을 건드리고야 말게 한다

 




 

 

 

느낌이 흐르는 사운드에 원래 존재한 듯 자연스레 녹아 있는 가사는 멤버의 개인적인 생각과 철학을 표현한 것으로

 

Nell을 설명함 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인간 내면의 거대한 우주를 그들만의 톤으로 표현하는 넬.

 

 

기타선율 속에서 슬픈 듯 맑게 흐르는 보컬의 감수성과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는 사운드... ,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둘의 절묘한 조화, 이것이 바로 Nell에게서만 발견되는 저력이다.

 

 

 

읊조리다가 한 순간 폭발하는 듯한 이들의 음악을 듣노라면 이내 넬에 중독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나위

 

 

 

 


 

 

 

 

 

한국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헤비메탈 밴드 ' 시나위 '

 

 

 

원래 시나위의 시작은 신대철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3년이었다고 한다.

 

1967년생이지만 생일이 2월이라 학년이 1년 빨랐다.

 

 

 

당시 신대철은 센세이션이라는 교내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교내밴드라는 것이 다 그렇듯 뻔한 음악들 뿐이라 보

 

다. 본격적으로 전문적인 헤비메탈을 연주해보고 싶은 욕심에 만든 밴드가 바로 시나위였다.

 

 

 

시나위란 음악시간에 우연히 국악에서의 즉흥연주를 뜻하는 "시나위"라는 단어를 듣고서 결정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뭉친 멤버가 베이스에 안준섭, 드럼에 김정휴, 보컬에 주준석, 당시 많은 밴드가 그러했듯 레드제플린과

 

DC/AC의 음악이 그들의 주된 레파토리였었다.

 

 

 

 

그러나 한 살 많았던 안준섭은 졸업, 김정휴는 고3에 올라가고, 더구나 주준석이 군대 가 버리면서

 

이들의 짧은 만남은 그해 겨울 잠시 멈추게 된다.

 

 

 

그때 약속했다고 한다. 주준석이 군대에서 제대하면 다시 모여 밴드를 하자.

 

 

물론 주준석이 군대 가 있는 동안에도 시나위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신대철을 중심으로 시나위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진찬규라는 보컬을 만나고, 또 오디션에서 이제는 시나위보다 더 유명해진 김종서를 뽑아 내세우고,

 

그러나 아마 당시도 신대철은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

 

 

 

 

 

 

의기투합했던 원년멤버이자 초대보컬인 주준석이 제대해 돌아오기를.

 

 

리고 함께 시나위를 함께 하기를. 단지 그 동안에도 시나위를 그만둘 수는 없었기에

 

보컬을 바꿔가며 활동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듬해 신대철은 군대 갔던 주준석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신대철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으며 슬픔이었다.

 

 

 

 

당시 신대철의 심정이 어떠했는가. 노래를 들으면 알 수 있다.

 

 

노래 가사는 역시 함께 의기투합하여 시나위를 만들었던 안준섭의 것이었고, 멜로디는 주준석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를

 

애도하기 위해 쓴 신대철의 것이었다.

 

 

그것을 완성한 것은 주준석의 뒤를 이어 시나위의 보컬을 맡은 임재범이었다.

 

 

 

그 어떤 사운드보다도 묵직한 감성이. 무겁게 내려앉는 그 비극적인 감수성이. 그러나 슬픔조차 이기고자 하는 그 끝

 

없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 명곡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나위의 시작에 대한 비화와 함께.

 

 

 

 

한국사람에게 헤비메탈은 맞지 않는다. 한국어로 된 헤비메탈이란 맞지 않는 옷과 같다. 절대 불가능하다.

 

 

무당이 헤비메탈이라고 들고 나온 사운드는 확실히 본격적인 헤비메탈이라기에는 손색이 있었다.

 

여전히 주류무대에서 가장 무거운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은 윤수일밴드 정도였다.

 

 

 

80년대 중반까지 오로지 윤수일밴드만이 제대로 된 록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런 때 과연 한국에서 헤비메탈이 가능하겠는가

 

 

 

한국에서 메탈은 안 돼."

 

 

라는 편견을 그것을 깨버렸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서태지가 몸담았던 밴드 시나위에 의해서. 

 

 

 

1986년 나온 시나위 1집은 한국'헤비메탈 '나아가 한국 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포효였던 것이다.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다.

 

 

 

 

 

실제 시나위가 나오고 시나위를 필두로 그 해 부활의 1집이 나왔다. 백두산의 1집이 나왔다.

 

H2O와 작은하늘도 이듬해 자신들의 데뷔앨범을 내놓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국 록의 부흥기 - 아니 전무후무했던 한국록의 전성기였다.

 

 

 

 

 

단지 하지 않았을 뿐 당시의 대중은 - 젊은이들은 그들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나위의 1집이 그 음악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평가받는 부분이 바로 그런 것이다.

 

시나위 1집은 그야말로 개척자였다.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여 길을 여는 선지자였다.

 

그로 인해 부활도, 백두산도, H2O도, 작은하늘도 가능했었다.

 

 

 

 

 

카리스마와 외인부대와 사하라와 블랙신드롬과 블랙홀과...정말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음악이 가능하구나.

 

우리나라말로도 이런 사운드가 가능하구나. 우리나라 연주자에 의해서도 이런 소리가 들리는구나.

 

 

 

 

 

 

 

 

신대철이야 말로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다.

 

그 이전 부활이 시나위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던 언더그라운드시절은 잘 모르니.

 

그런 언더그라운드 공연까지 쫓아다니기에는 공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거리가 조금 있었다.

 

시나위야 말로 시작이었고, 신대철이야 말로 처음이었다.

 

 

 

 

 

 

 

아직 풋풋하던 시절의 임재범의 목소리

 

방위 입대를 앞둔 목소리이기도 하고. 지금의 목소리와 비교해 본다면...

 

문득 듣고 만 것이다. 임재범의 라이브앨범에서 한참 나이가 들어 원숙해전 임재범이 부르는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를.

 

 

 

 

 

그리고 음악을 들어본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 아주 먼. 돌아갈 수 없는. 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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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 Aguilera  QUEENOFPOP
글 재밌네요 켄트 개인적으로 진짜 좋아하는데 왜 글이 없지ㅠㅠ 시규어로스도 이름 오를 법 한데....
그리고 국내에 들국화가 없다는게 말이 안됨ㅠㅠ 넬이 있으면 자우림이나 윤밴도 있어야 할텐데
아무튼 글 잘 읽었어요!

10년 전
고구마구마구  츽흰먹고싶다
아....오아시스 브금.....
10년 전
으르렁  으르르르르르르르ㅡ
와 다읽었는데 내가 모르는사람들도 많다...ㄷㄷㄷ
와싯이랑 뮤즈랑 비틀즈 콜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는 밴드는 이거밖에 없어서 노래는 이밴드들밖에 안들어봤는데 듣기 좋아요
글 잘 읽고갈께요 ㅋㅋㅋ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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