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아편전쟁의 승리로 항구 강제개항 및 아편판매의 이득과
홍콩섬 및 구룡반도를 확보한 영국
하지만, 돈의 욕망은 채우려 해도 채울수가 없었고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한번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영국이 잡은 꼬투리는 애로호 사건이었다.
해적행위를 한 해적하나가
애로호에 숨어 도망쳐들어가자
청나라 관원이 잡으러 들어갔던 사건이다.
이 애로호 는 선박소유가 중국인이었으나,
선장은 영국인이었다.
그러니 당시 애로호는 청나라 선박이었다.
청나라 선박에 청나라 관원이 해적 잡으러 간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 상황.
하지만, 영국은 이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어거지를 쓰기 시작한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청나라는
결국 영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줬지만,
'문서 서식이 틀렸다,'
'왜 하급관원이 와서 소식을 전하냐'
와 같은 말도 안되는 꼬투리를 잡아
영국은 다시한번 전쟁을 일으킨다.
그렇게
제 2차 아편전쟁이 발발한다.
청나라에서 아편이 퍼지고 국부가 유출되자
청나라 '스스로' 아편을 재배해 판매하기 시작했고
영국의 주요 수출품 모직물 또한
청의 면직물에 비해 경쟁력이 우월하지 않아
영국이 얻는 이익이 줄어들었다.
그것이 불만이었던 영국이 꼬투리를 잡아 터진 2차 아편전쟁
서양의 국가들은 이런 행위들을
합리화 시키려고 약육강식의 논리를 적용시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장기적으로는 너희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라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논리를 폈다.
그들은 집에서는 신사였을지 몰라도
밖에서는 본인의 악행을 합리화시키는 사람들이었다.
제 2차 아편전쟁에서는
프랑스가 잡은 꼬투리는
자국인 선교사가 피살당했다는 이유에서 였다.
1856년 발발된 제 2차 아편전쟁.
영국의 군대와 프랑스의 군대는 청나라를 휩쓸었고,
급기야 1860년,
약 2만명의 영*프 연합군은 베이징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북경이 공격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에
충격을 받은 청나라 황제는 도주했고,
청나라의 최정예 군, 팔기군 8만명이
영프연합군과 싸웠으나
ㅠㅠ
모래성을 물로 흩뿌리듯이
그들도 결국 무너져 버렸다.
북경에 입성하는 영프연합군
붙을때마다 깨지며 속절없이 무너진 청나라는
제 2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톈진 및 10개 무역항을 개항할 것.
청나라 영토 일부를 할양하거나 내어줄 것
크리스트 교 포교의 자유를 줄 것
아편무역을 합법화 할 것
을 주 내용으로 하는 '톈진조약'을 맺게된다.

항구를 개방당하고, 아편무역을 통해
서양국가가 본격적인 이득을 취해가는 동안.
청나라에서도 도저히 이래서는 안된다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양무운동" 이었다.
서양의 군수기술을 배우려 노력하고
유학생등을 해외에 파견하며 근대화 운동을 시작한 것.
또한 낡아빠진 고리타분하고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낡은 제도를 개혁하자는 운동인
" 변법자강운동" 도 함께 일어난다.
청나라는 이러한 격동의 과정을 통해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중화사상의 오만함을 버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렇다면, 아편전쟁이 조선에 준 영향은 어떤 것일까?
조선은, "서양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대국 중국을 이기겠느냐?"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북경이 함락됬다는 소식을 듣고
쇼크를 먹는다.
이 청나라의 패배 소식을 듣고,
조선에선
두 가지 논리가 나오게 된다.
첫번째, "성리학의 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망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성리학을 지키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니 망하지 않을것이다."
이른바 유교원리주의였다.
두번째는, 서양공포증, 즉, '서양을 배척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본격적으로 선교사들 탄압과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게 된다.
이전에 있었던 박해는 잠깐 잠깐 있었던 반면,
흥선대원군에 의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병인박해'는
천주교 신자를 완전히 말살하는 것이었다.
끝까지 추격해서 다 죽이자는 기나긴 박해는
조선 최대규모의 천주교박해였다.
이 사건은 근대 한국을 뒤흔들게 된다.
그렇다면, 아편전쟁이 일본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성공시킨 일본은
청나라가 종이호랑이였다는 것을 아편전쟁을 통해 알게 되고,
다시한번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야욕을 품게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한 일본은
전국의 임진왜란 관련 서적을 모아 패인을 분석하고 복기하며
다시 전쟁사를 공부해나갔다는 점.
( 지금 일본에 남아있는 임진왜란 자료들이 이때 모두 모은 것)
다시한번 조선 > 만주 > 대륙으로 가는 전략을 연구한 일본
역사로부터 배운다라는 마인드만큼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던 일본은
그렇게 "청일전쟁"을 일으킨다.
청일전쟁이후, 외세에 당했다는 엄청난 콤플렉스가 생긴 중국은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1920년대 '무협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무협소설에서 날아다니고, 총알을 손으로 잡는 등의 묘사가 나오는 것은
콤플렉스 극복의 방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
그와 같은 소재들이 영화화 된 것이
"황비홍" 과 같은 영화였던 것이다.
무협과 동시에 떠오른 것은 임칙서의 신화였다.
제 1차 아편 전쟁이 일어날 당시,
황제로부터 특명을 받아 광저우로 파견된 인물 중 유일한 행동파가 임칙서였다.
그는 처음엔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서한을 보내
아편문제 해결을 호소하며 외교적인 방법에서 부터 문제를 풀어갔다.
임칙서가 등장할때즈음
청나라는 아편을 어떻게 근절시킬 것인가? 에 대안으로
이금론 (아편에 세금부과)
엄금론(아편을 철저히 금지)
등이 나왔다.
임칙서는 엄금론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아편을 끊을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한 임칙서는
아편을 끊는 약이나 수영시설 등 재활지원을 통한 방법으로
아편을 애초에 근절하자는 주장이었다.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했던 임칙서의 주장이 맘에 든 청나라 황제는
광저우로 아편문제를 해결하라며 임칙서를 보낸 것이다.
임칙서가 존경받는 이유는
부정부패와 아편 근절 모두에 굉장히 힘썼기 때문이다.
(그의 별명은 임청천이다)
임칙서는 명백한 행동파 관료였다.
다른 관료들이 부패의 늪에 빠져있을때,
직접 행동으로 하나하나 사회를 바꿔가기 시작한 그.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문제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했다.
본인이 가서 하지말라고 강경하게 말해봤자
하나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있었던 것이다.
연구를 통해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 파악한 그는
먼저 영국에게
" 아편은 몰수해도 돈으로 우리가 보상해 주겠다. "
라고 협상을 걸었다.
물론 원만하게 해결되지는 못했다.
영국은 어차피 공격할 마음이 있었기에 생트집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협상을 검과 동시에 뒤로는
영국이 공격할지도 모르니 공격을 대비했다.
영국이 이미 마음먹었다는 걸 안 임칙서는
결국 강경책을 택한다.
2만 상자 몰수, 전량 폐기.
허나 그 결과로
아편전쟁이 발발했고
제 8 대 황제 도광제는 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유배보낸다.
임칙서는 전통의 중화사상에서 벗어나 세계로 시야를 넓힐 것을 주장한 사람이어서,
임칙서를 파면하지 않았으면
중국이 부패척결하고 부국강병 했을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 객관적으로 서양을 인식하자는 그의 시각이 담긴
해국도지가 한국에 들어오며
조선 개화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아편이 근절되었을까?
아편은 중국에서 한동안 근절되지 못하고
폐해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서
국공내전때까지도 사회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국민당 정부에서는 많은 주요 간부들이 아편에 찌들어 있었는데
공산당 정부는 돈이 없어 아편을 하지 못했다.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모택동)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가
주더 라는 인물(후에 군 총 사령관)이
모택동을 철저히 밀어줬던 점인데
이 사람은 원래 군벌출신으로서
성 하나를 장악하고는 성공했다며 호화로운 생활과 아편에 빠져살았다.
어느날 '세상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각성한 주더는
아편중독을 끊고 혁명에 투신한다.
주더는 아편을 끊을때, 양자강에 배를 띄워놓고 군의관에게 권총을 주며
금단현상이 나와서 뛰쳐나가면 자기를 쏴 죽이라고 했다고 한다.
군의관은 그를 차마 쏘지는 못했지만,
금단현상 때문에
배에서 몇번이나 뛰쳐나간것을 부하들이 붙잡았다고 한다.
그런 극단적 방법을 동원해 아편을 끊은 주더는
공산당의 승리뿐 아니라 마오쩌둥이 승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이렇듯 아편전쟁은
오늘날 중국의 형성에까지도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