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나무 숲에서 보낸 편지
한미영
안녕 당신, 우리가 못 본 지도 한참 됐군요
난 지금 편백나무 울울한 숲에 와 있어요
편지를 받고 아직도 내가 그립거든
답장은 하지마세요
나는 다만 욕망을 연기하는
신경증 환자처럼 기다릴 뿐 이에요
이 곳 나무들은 팔을 치켜들거나
앞으로 뻗은 채로 배고픈 향기를 뿜어요
배가 고플수록 당신이 그리워요
당신은 입을 크게 벌린 나무사이로
포도주처럼 흘러내려요
새벽이면 늙고 주름진 슬픔이
부드러운 흙속에서 불쑥 솟아올라
나는 나무보다 더 새파랗게 기절하곤 해요
이곳에선 당신을 사티로스라고 부른 답니다
사랑의 수정주의라 해두죠
한 집 건너마다 유령처럼
텅 빈 뉘앙스가 당신을 덮쳐요
팔을 늘어뜨리고 잠든 나무 위로
내 몸을 덮칠 수 있을까요
잠을 잃은 건 백년도 지났어요
피톤치드는 불면증 치료에 효과가 좋은 듯해요
봉투에 봉함해서 보낼게요
사티로스 이만 안녕,
당신을 사랑해요
나도 라는 부족한 말로 답장은 하지마세요
나는 다만 끝없이 사라질 뿐 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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