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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조회 2274l 3
이 글은 2년 전 (2021/7/31) 게시물이에요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인스티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개인적으로 전자책으로 먼저 읽고 종이책으로 살 정도로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구절이 마음에 드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소피.

우리가 왜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지를 생각해본 적 있어?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나는 말했어.

당신의 마지막 연인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냐고.

나는 그에게 지구로 다시 함께 가겠냐고 물었어.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스펙트럼

 

-잘 자.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그들은 분절된 개체이다.

희진은 한 루이가 죽고

다른 루이가 다시 그 자리를 채울 때

연속적이지 않은 두 자아 사이의

어긋남을 목격했었다.

 

영혼은 이어질 수 없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다른 루이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같은 루이가 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어떤 초자연적인 힘도

작용하지 않는다.

루이들은 단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들은 기록된 루이로서의 자의식과

루이로서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경험, 감정, 가치, 희진과의 관계 까지도.

 

 

 

 

 

 

 

희진은 이해하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루이의 연속성을,

분절되지 않은 루이의 존재를.

 

그때 네 번째 루이가 희진을 보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희진은 그것이 미소임을 알았고,

그래서 마주 웃어주었다.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찬란했던 색채들이 한 줌의 재로 모였다.

나는 할머니의 유해를 우주로 실어 보내

별들에게 돌려주었다.

 

 

 

 

공생 가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류드밀라의 세계에 열광하고,

환호했을까.

 

왜 사람들은

류드밀라의 세계를 보며

눈물을 흘렸을까.

 

왜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한 향수를,

오래된 그리움을 느꼈을까.

 

"우리에게 그들이 머물렀기 때문이겠죠."

 

 

 

 

 

 

뇌에 자리 잡은 그들의 흔적.

막연하고 추상적이지만 

끝내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

 

우리를 가르치고 돌보았던 존재들에 관한

희미한 그리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내가 여전히 동결 중인지,

사실 이 모든 것이 몹시 추운 곳에서

꾸는 꿈은 아닌지,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정말로 

나를 영원히 떠난 게 맞는지,

그들이 떠난 이후로 100년이 넘게

흘렀다면 어째서 나는 아직도 동결과 각성을

반복할 수 있는지.

 

왜 매번 죽지 않고 다시 깨어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많이 세상이 변했는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다시 만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럼에도 잠들어 있는 동안은

왜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왜 나는 여전히 떠날 수 없는지..."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아무리 가속하더라도,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가도 그녀가 가고자 했던 곳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뒷모습은 자신의 목적지를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먼 곳의 별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작고 오래된 셔틀 하나만이

멈춘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감정의 물성



"부정적 감정 라인은

판매되는 물량에 비해 

실 사용량이 적대요.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언제든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하지만 고통의 입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내 폐 속으로 들어오겠지.

 

이 환각이 끝나면."

우울체 하나가 탁자 위를 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더 나은 결론일까."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 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 벽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운 질감.

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나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었다.

 

 

 

 

 

관내 분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흔히

애증이 얽힌 사이로 표현된다.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삶을 재현하기를 거부하는 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는 딸과

딸에 대한 애정을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하는 엄마.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다른 세대를 살아야 하는

모녀 사이에는 다른 관계에는 없는

묘한 감정이 있다.

 

 

 

 

 

 

 

모든 상황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사람을 무너뜨린다.

 

만약 그때 엄마가 선택해야 했던 장소가

집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든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면.

 

표지 안쪽, 아니면 페이지의 가장 뒤쪽 작은 글씨,

그도 아니면 파일의 만든 사람 

서명으로만 남는 작은 존재감으로라도.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러면 그녀는 그 깊은 바닥에서

다시 걸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지민아. 넌 마인드에 한 번도 접속해본 적이

없다고 그랬지.

나는 봤어. 그건 너무 진짜 같았다.
죽어서까지 나를 만나는 게

고통일 거라고 생각했어.

단 한 번이었지.

 

더는 만날 수가 없었다."

 

 

 

 

 

책과 노트,

벽을 채운 그림들,

은하가 지민의 엄마이기 전에

사랑했던 것들,

 

자신의 삶을 구성했던 것들로 채워진 공간.

 

문득 떠올린 것은,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는

엄마만의 방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이제...

엄마를 이해해요."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사이보그가 되는 대가로

잃는 감각 중 하나가 미각이었다.

 

생각해보면 재경은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유진이 잔뜩 보내오는 간식들을 매번

맛있게 잘 먹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터널 너머의 우주였다.

가윤은 휘청거리며 벽면의 손잡이를 잡았다.

 

별들과 뿌옇게 흩어진 성운이 보였다.

더 많은 별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수도 없이 보았던 저쪽 우주와

별 다를 바도 없었다.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가윤은 조망대에 서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천천히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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