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3일. 휴가를 가기 위해 선착장에 있던 고(故) 서정우 하사는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리를 듣곤, 지체 없이 귀대(歸隊)하다 포격을 맞았다.
"우리 아들 지금 살아있다면 뭐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억누를 길이 없어 무작정 쓰게 됐다"며 "훗날 정우의 동생이 아들을 낳으면, '너희 큰아버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었어' 하고 이 기록을 보여주고 싶다"
대전 현충원의 아들 묘를 찾았다. 그의 손에는 아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치킨과 피자가 들려 있었다. 광주광역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있는 김씨는 지난 2년간 한 달에 두세 번씩 빠지지 않고 이곳을 찾고 있다. 아들 묘역 앞에서 만난 김씨는 “연평도 포격을 두고 ‘우리가 진 전투’라는 소리가 있지만, 아직 어린 20대 우리 군인들은 목숨 걸고 싸웠다. 어떤 해병대원은 방탄모가 불타는데도 대응 사격을 했고, 내 아들도 선착장까지 갔다가 부대로 돌아왔다”면서 “서정우는 일개 사병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까 수많은 ‘우리 아들’ 덕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제2연평해전 유족이 당시 군 관계자들을 고소한다는 기사에 ‘이제 돈이 다 떨어졌나 보네. 더 필요한가?’라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면서 “만약 정우 이야기에 저런 댓글이 달렸으면 도저히 못 살 것 같아 혼자 몰래 썼다”고 말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적은 글은 현충원을 찾기 일주일 전에 쓰였다. “2012년 11월 10일. 시간이 참으로 빠르다. 아픔은 여전한데 벌써 2년이 지났다. 세상의 많은 사람은 잊어 간다.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줄 알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행복하게 사랑하고, 이야기할걸.”
이날 현충원을 찾은 김씨는 약 1시간 동안 비석의 먼지를 훔쳤고, ‘해병 하사 서정우의 묘’라고 새겨진 비석을 한참 바라봤다. “올 때마다 아들이 하늘에서는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건강하게 지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