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汝何所思 / 所思北海湄 / 思之愈久愈不止 / 黯然銷魂而已矣 / 魂旣銷魂思不休 / 如痴如狂復如羞 / 徊徨繞壁還自語 / 腸回九曲苦低頭 / 千較萬量總無力 / 不如從今斷相憶 / 欲斷未斷思又生 / 肝肺如焚心如盡.
그대 어디를 그리워하나?
그리운 저 북쪽 바닷가.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생각나
내 혼은 말없이 스러질 뿐.
혼이 스러져도 생각은 멈출 수 없어
멍청한 듯, 미친 듯, 또 넋이 나간 듯.
사방 벽을 빙빙 돌며 혼잣말 하자니
구곡간장 끊어지고 괴로이 머리 꺾이네.
천번 만번 생각해도 도무지 어쩔 수 없어
차라리 이제는 생각을 끊고 말아야지.
생각을 끊자 해도 못 끊고 또 생각나니
간장이 타는 듯, 심장이 다 타는 듯.
問汝何所思 / 所思北海湄 / 池塘蓮花紅萬蘤 / 蓮姬之故亦愛爾 / 同情同意又同憐 / 豈羨人間幷蔕蓮 / 百年歡家變寃家 / 好因緣成惡因緣 / 地角天涯隔山河 / 畢身空唱離恨歌 / 前生罪過他生戹 / 蓮兮蓮兮奈若何
그대 어디를 그리워하나?
그리운 저 북쪽 바닷가.
연못에 붉게 핀 연꽃 천만 송이
연희 생각에 더욱 사랑스럽구나.
마음도 같고 생각도 같고 사랑 또한 같았으니
한 줄기에 나란히 난 연꽃을 어찌 부러워했으랴?
평생을 살면 즐거운 이가 원망스런 이가 되고
좋은 인연이 나쁜 인연이 되는 건지?
하늘 끝과 땅 끝이 산과 강에 막혀서
죽도록 부질없이 이별의 노래만 불러대네.
전생의 죄로 이생에서 이렇게 고생하는지,
연희야! 연희야! 너를 어찌하랴?
問汝何所思 / 所思北海湄 / 我家南州數頃田 / 背山臨水饒雲煙 / 向來我與蓮姬約 / 買得靑蓑及綠箬 / 我把長鑱渠把鋤 / 百年同享田家樂 / 人事營爲徒妄想 / 只將空言撫疇曩 / 安得奮飛歸樂郊 / 更指雲龍作息壤.
그대 어디를 그리워하나?
그리운 저 북쪽 바닷가.
남쪽 고을 우리 집 몇 이랑 밭은
뒤에는 산, 앞에는 물, 풍광도 좋지.
예전에 연희와 약속했지.
"삿갓 사고 도롱이 구해
나는 보습 잡고 너는 호미 들고,
평생토록 농사짓는 재미 함께 하자구나."
인사를 도모한 건 부질없는 망상
다만 빈 말로 옛날을 더듬네.
어찌하면 떨치고 날아서 즐거웠던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운룡산 가리키며 굳은 약속할까?
問汝何所思 / 所思北海湄 / 我有剛腸百鍊鐵 / 不爲尋常可斷絶 / 抵死難忘小蓮華 / 不是寃家是恩家 / 窮途義氣層雲薄 / 女子林中古押牙 / 自古紅閨稱烈俠 / 深井阿榮身姓聶 / 安得龍門太史手 / 健筆揄揚添數葉.
그대 어디를 그리워하나?
그리운 저 북쪽 바닷가.
나의 마음은 백 번 단련한 강철 같아서
쉽게 끊어지지 않건만,
죽도록 저 연화만은 잊지 못하는 것은
원한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베푼 은혜 때문.
궁한 처지 도와준 의기는 높은 구름에 닿아 있어
여자 중의 의사(義士) 고압아(古押牙) 같았지.
예로부터 규중에도 열협(烈俠)이라 칭하는 이 있으니
심정리(深井里)의 섭영(聶榮)이 그런 여인이었지.
어찌하면 용문의 태사공(太史公) 손을 빌려
굳센 붓 끝으로 너의 이름 드날려 역사서에 남길까?
問汝何所思 / 所思北海湄 / 五載居胡面巳慣 / 眞情相愛及童艸 / 徐家二雛俱妙姸 / 阿寅阿辰僆齊肩 / 春甲兄弟今何如 / 乙女無父最堪憐 / 更有英得性懶惰 / 石片厖子能擔荷 / 兩髦髧髧照眼明 / 不知何日更見那.
그대 어디를 그리워하나?
그리운 저 북쪽 바닷가.
변방 살이 다섯 해에 낯이 익어서
아이들까지 진정 사랑했었네.
서씨네 두 아이 모두 예뻤고
인아와 진아는 쌍둥이였지.
춘갑이 남매는 잘 있는지?
누이동생 아빠 없어 가련했었지.
영득이는 천성이 느릿하였고
석편이와 방자는 짐을 잘 졌지.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눈에 선한데
그 아이들 언제나 다시 볼는지?
* 1797년 32세의 나이로 부령으로 유배되었다가, 4년 뒤인 1801년 다시 진해로 이배되어 1806년 해배되기까지 5년을 살면서 김려金鑢가 쓴 시 『사유악부』. 모두 290편으로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시는 한결같이 "그대 어디를 그리워하나? 그리운 저 북쪽 바닷가"로 시작하고 있다.
"마음도 같고 생각도 같고 사랑 또한 같았던" 여인 연희에 대한 농도짙은 사랑과 부령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조선후기 최고의 장편 연작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