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스페인 땅이여할 것 같지만 이곳은 엄연히 영국의 자치령입니다. 인구는 32,200명에 면적 6.8km제곱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스페인어도 사용합니다. 이곳의 행정부 대표들도 뒤에 소개하겠지만, 영국식이 아니라 스페인식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1인당 GDP는 PPP기준 대략 5만 달러 정도 되고, 화폐는 영국 파운드와 1:1로 연동된 지브롤터 파운드를 씁니다.
영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지브롤터 경제는 크게 4가지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관광, 금융, 해운, 온라인 도박(사설 토토 말하는건가?)이 주력 산업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1. 부족 사회
2. 로마 공화국령 -> BC 3세기, 포에니 전쟁에서 스키피오에 의해 영역화됨
3. 서고트(게르만족의 일파) 왕국령 -> 5세기
4. 후기 우마이야(이슬람 계열) 왕국령 -> 8세기
5. 스페인령 -> 15세기
6. 영국령 -> 18세기~현재
이렇게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었던 곳입니다. 따지고 보면 스페인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것(레콩키스타) 자체가 15세기의 일이니.
지브롤터가 영국령이 된 시기는 대략 18세기 초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 때였습니다.
"유럽 놈들은 왜 남의 나라 왕위를 계승하는데 자기들이 개입해서 싸우냐??" 하는 분도 있을텐데, 그게 다 유럽의 복잡한 결혼 상속 제도때문입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아직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지금처럼 크지 않고 전쟁이나 정치는 철저히 왕실 가문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진핑이 한국 대통령 자리를 겸하거나, 문재인이 일본 총리직을 겸해도 이 당시에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던겁니다. 물론 현대인 정서에서는 끔찍하지요. (물론 이 당시에도 외국인이 지배한다는 인식은 존재했고 반발이 없는건 아니였습니다만, 대체적으로는 수용하는 편이었습니다)
가문끼리 결혼을 하고, 부인이 속한 가문의 영지를 남편에게 지참금으로 가져오고, 거기에서 낳은 아들이 양측 가문의 영지를 통합 지배하는 등 이런식으로 진행되어 온거고, 지금의 프랑스나 스페인 등의 유럽국들의 영토도 다 그런 결혼 및 상속(+ 전쟁)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18세기 초에는 유럽 전체를 들끓게 만들만한 경악스러운 떡밥이 펼쳐집니다.
이 당시
프랑스 왕 : 태양왕 루이 14세(부르봉 가문)
스페인 왕 : 카를로스 2세(합스부르크 가문)
인데, 카를로스 2세가 합스부르크계 여인 2명이랑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력의 문제인지.. 자식을 못낳고 죽어버렸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유럽 최강국이던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나섰습니다. 당시 루이 14세의 어머니와 부인이 모두 스페인 출신이라서, 루이 14세의 인척이 스페인 왕위에 도전할 명분이 생긴겁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프를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로써 즉위시킵니다. 그리고 펠리페 5세가 죽으면 프랑스 왕이 스페인의 왕을 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근데 이거 가지고 왜 다른 유럽 애들이 호들갑이냐구요?
이 지도를 보십시오.
저 상속이 성사될 경우 빨간색으로 표시된 저 스페인의 드넓은 영토들이 모조리 다 프랑스의 손으로 들어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사진은 스페인 최전성기 시절의 영토고, 18세기에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스페인은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유럽 국가들 입장에선 마치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한 것과 비슷한 임팩트였습니다.
결국 영국, 네덜란드, 독일의 각 공국(프로이센, 하노버 등),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다 달려들어 이 괴물같은 루이 14세의 야욕을 막기 위해 프랑스에 선전포고 합니다. 그래서 루이 14세의 손자가 지배하는 스페인도 당연히 프랑스와 동맹이 되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물론 말이 동맹이지 사실상 프랑스의 2중대에 소속된거나 마찬가지로 싸웠습니다. 연합국이라 칭하지만 사실상 자기 혼자 주도하는 미국처럼 말입니다.
이당시 영국의 전쟁 수행 전략은 크게 3가지입니다.
1. 유럽 대륙을 통일하는 패권국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다.
2. 유럽 대륙에 있는 동맹국에 지상군을 파견해서 지원한다(보통은 주로 더 약한쪽을 지원해서 밸런스를 맞춤)
3. 우세한 해군력을 이용하여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를 공략한다.
3번은 특히 묶어놓고 패기 전략인데, 이건 나중의 일입니다만 7년 전쟁(1756-1763)에서는 영국이 스페인 해안을 봉쇄시켜서 스페인의 함대를 묶어버리고 필리핀과 쿠바 식민지를 동시에 공략해서 함락시키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한마디로 적국의 식민지와 본토를 차단시키는 전략입니다.
뭐 아무튼, 이런 전략들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각 섬들 + 지브롤터가 그 대상이 된겁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양상은
지상전(유럽 대륙) : 영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독일 공국들이 주축이 된 연합군과 프랑스군의 대결 양상입니다. 스페인은 당시 영국-네덜란드 함대에 의해 제해권을 빼앗겨 언제 자국 영토를 침략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지상전에 별로 참전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략적으로 연합군 측이 약간 우세했지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고 끝납니다.
해전 : 당시 세계 최강이던 영국 해군(Royal Navy)을 중심으로 네덜란드 해군(Koninklijke Marine)까지 가세해서 유럽 각국의 해안이나, 식민지들을 누비고 다니는 양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영국-네덜란드 vs 프랑스-스페인의 양상이었는데, 해전에서는 연합군 측이 확실히 이겼습니다.
참고로 말보로라는 담배 이름도 사실 런던에 있는 말보로 거리에서 따온겁니다. 물론 이름만요. 이 전쟁에 영국측 사령관으로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이 참전했는데, 이 사람은 이 전쟁에서 거의 영웅 수준으로 활약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외젠 공작과 더불어 지상전에서는 연합군 승리를 거의 하드캐리했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이 존 처칠의 머나먼 후손이 바로 2차 세계대전에 등장하는 윈스턴 처칠입니다.
다구리를 당하며 힘이 빠진 프랑스가 전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전쟁을 포기했고 그 결과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됩니다.
조약의 결과로 프랑스는 스페인 왕위 계승을 포기하기로 선언, 이로써 스페인 영토를 모조리 집어삼키려던 프랑스의 의도는 좌절됩니다.
그리고 영국은 전쟁 중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은 섬이나 각종 영토들을 반환하면서도 지브롤터 만큼은 조약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딱 기가 막힌 위치에 알박고 있지 않습니까? 지중해를 드나드는 입구로써 사실상 지중해를 감시하는 눈의 역할을 합니다. 러시아 흑해 함대의 지중해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또 이들이 대서양으로 나가는걸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도 이곳 만큼은 영국의 지배에 대해 별달리 말을 안하는겁니다.
그렇다면 지브롤터는 스페인과 가까우니 스페인으로 귀속을 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물론 스페인은 힘으로 안되니까 외교 정책으로 숱하게 지브롤터를 스페인령으로 귀속시키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 결과 2번의 국민투표를 합니다.
1967년 : 스페인의 독재자로 군림한 프랑코 시절입니다. 이 때는 한창 식민지 독립 바람이 불고, 제3세계가 뜨던 시기라 영국도 스페인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지브롤터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합니다.
Q. 지브롤터를 영국령으로 둘 것인가? 스페인령으로 둘 것인가?
A. 영국령 지지 : 99.6% / 스페인령 지지 : 0.4%
그리고 2002년에 또 한번의 국민 투표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질문 내용이 조금 다름
Q. 지브롤터를 영국과 스페인의 공동 주권으로 삼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A. 찬성 1% / 반대 : 99%
네, 보시다시피 스페인에게 주권이 넘어갈만한 어떠한 결정도 지브롤터에서는 극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근데 인구 구성은 영국계 27%, 스페인계 24%, 이탈리아계 20%, 포르투갈계 10%, 기타 등등(물론 공용어는 영어인만큼 정치계에서도 영어를 씁니다.) 즉 영국계뿐만 아니라, 스페인계, 이태리계, 포르투갈계도 스페인에 귀속되길 거부하고 영국에 남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카탈루냐보다도 여기가 오히려 더 스페인에 귀속되길 싫어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브렉시트로 인해 지브롤터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 영국은 거의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지브롤터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서 EU측도 쉽게 건드리기 힘들겁니다. 영국인들도 엄연히 자국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매우 극단적인 상황이 닥쳤을때나 그렇다는 것이니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국 총리도 대충 "전쟁 발언까지는 오버이지만, 우리는 결코 지브롤터를 내어줄 일 없으니 포기해라"라는 식으로 응수하는 중.
물론 지금 스페인 해군의 전력으로는 영국의 지브롤터 함대 전력 하나 이기는데만 해도 엄청난 손실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라.. 여러모로 스페인의 지브롤터 반환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힘이 빠지고 있습니다.
지브롤터 행정수반인 파비안 피카르도씨입니다. 이름은 영국식이 아닌 스페인식인데, 인종만 스페인계일뿐 지브롤터 사람들은 스페인령으로 귀속되기를 극도로 꺼려합니다. 위의 국민투표가 증명하듯이요.
행정수반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를 담당합니다. 외교와 국방은 런던에 있는 중앙 정부의 몫이구요. 즉 내정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재밌는건 지브롤터는 영국령이지만, 브렉시트 투표때는 96%가 EU 잔류를 지지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탈퇴를 결정한 영국 본토의 입장과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라 좀(사실은 매우) 난감한 상태이긴 한데.. 그래도 최근에는 입장을 정리했더군요.
파비안 피카르도(지브롤터 행정 수반)
"지브롤터의 주권은 양국 간 논의나 협상에 달려있지 않다. 지브롤터인들이 자유롭게 표현하는 민주적 바람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는 지브롤터가 100% 영국령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지프 가르시아(행정 부수반)
"브렉시트 협상과 관련해 (지브롤터 쟁점에 대하여) EU가 스페인에 부여한 거부권은 비합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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